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264화 (264/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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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코끼리 새끼가? >

“그래서 너는 지금 예서 싸움을 멈추고 서로 좋게 지내보자는 소리를 하려는 것이냐?”

마선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경보 수사를 보며 물었다.

“세상 이치란 것이 그러하지 않은가. 이득 될 것이 없다면 멈춤이 옳지.”

경보가 대답했다.

“이득이 될 것이 없다? 너는 그리 생각할지 모르지만 우리는 그리 생각지 않는다.”

마선이 그런 경보를 향해 다시 마귀두상을 통해 흉흉한 기운을 뿜기 시작했다.

검선 역시 그에 보조를 맞추듯이 슬쩍 오른발을 다시 조금 앞으로 내밀었다.

“자, 잠깐. 내 말을 들어봐라.”

그러자 경보가 다급하게 두 손을 휘저었다.

“너희 둘과 저 어린놈의 실력이 뛰어난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나와 내가 이끄는 아이들도 그에 못지않다.”

“의미 없는 소리!”

“마선이라 했나? 너희가 정말 나와 싸워 무사할 수 있을 것 같으냐? 내가 마음을 먹으면 적어도 너희 둘 중에 하나는 저승길에 동반할 수 있다. 그리고 저 어린놈 역시 덤으로 데리고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자신이 있다면 해 보거라.”

마선은 경보의 말을 더 듣고 싶지 않다는 듯이 마귀두상의 입을 크게 벌렸다.

“우리를 죽이면 이후 너희는 무사할 것 같으냐? 우리 일족에는 나보다 높은 경지의 수사들이 여럿 있다는 것을 명심해라.”

결국 다급해진 경보가 자신의 뒷배까지 거론하고 나섰다.

“너희를 살려둔다고 해도 이후에 너나 너의 종족이 우리를 해하지 않을 것 같지는 않다만? 검선 자네 생각은 어때?”

“시작을 했으면 끝을 봐야겠지. 그리고 수미 세계가 얼마나 넓은데 고작 상두족 부족 하나의 후환을 두려워한다는 말인가?”

검선도 마선과 마찬가지로 경보나 그 휘하의 수사들을 모두 정리하자는 쪽에 가까웠다.

수도계에서 원(怨)을 맺었으면 뒤끝을 남기지 않는 것은 상식이었고, 검선은 그런 기본에 충실했다.

“맹세를 하겠다. 여기서 멈춰 준다면 내 잘못을 인정하고 보상을 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후 어떤 원망도 품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겠다.”

“허망한 약속 따위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러게 말이네.”

경보가 다시 다급하게 맹세를 운운했지만 마선과 검선의 반응은 시들했다.

하지만 그런 두 수사를 뒤에서 보고 있는 건우는 내심 웃음을 짓고 있었다.

검선과 마선이 노리는 바가 짐작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짐작은 곧바로 경보의 다음 말에서 드러났다.

“내 상아! 상아에 맹약을 기록하여 넘겨주겠다.”

“두두 어르신!”

“어찌 어르신의 상아를!”

“그럴 수는 없습니다.”

경보의 말에 지금껏 조용히 있던 수하들이 격한 반응을 보였다.

건우는 그 모습에 고개를 돌려 피어오르는 웃음을 가리려 애썼다.

상두족, 코끼리 머리를 지닌 이들 종족은 귀와 상아를 매우 귀하게 여긴다.

그리고 그중에 귀가 미추(美醜)나 위엄(威嚴), 품격(品格) 따위를 드러내는 것이라면 상아는 자부심이나 명예를 뜻하는 것이었다.

이런 상두족이 자신의 상아에 뭔가를 기록하여 전하는 것은 그 자체로 큰 의미를 지닐 수밖에 없다.

건우 일행은 혼돈역에 들어오기 전에 만났던 화신기 상두족 수사로부터 그런 내용을 들어 알고 있었다.

그래서 마선과 검선은 경보의 입에서 그런 맹세가 나오도록 몰아붙였던 것이다.

“너는 어떠하냐?”

건우가 웃음꽃을 피워 올릴 즈음, 검선이 뒤돌아 건우를 보며 물었다.

“멸계전이 시작된 상황에서 수미 세계의 모든 수사가 동도라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더구나 서로 만난 곳이 혼돈역으로 멸계 수사와 첨예하게 대립하여 생사를 다투는 곳인데 이런 곳에서 동도의 피를 보는 것은 지양하심이 옳을까 합니다.”

“뭐라? 그럼 이대로 끝내라고?”

건우의 대답에 이번에는 마선이 못마땅한 듯이 목소리를 높였다.

“이미 경보 어르신께서 보상을 약속하셨으니 그것이면 충분치 않겠습니까? 어차피 생사를 결한 일에 대한 보상이니, 지니고 계신 대부분을 선뜻 내어 주실 것이 아닙니까.”

정말 그럴 생각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건우가 이리 말한 순간 일은 그렇게 되어야만 하게 되었다.

간단한 대화 한 번으로 경보 수사 일행의 주머니를 깔끔하게 털어낼 명분이 생긴 셈이다.

“쯧, 그렇게까지 한다면야······.”

마선이 슬쩍 말꼬리를 흐렸다.

그러자 이번에는 검선이 나서며 경보 수사를 보고 물었다.

“어찌 생각하십니까? 저 아이의 말이 과한 면이 좀 있는 것 같기는 합니다만.”

검선은 슬쩍 건우 쪽을 보았다가 다시 경보를 보며 물었다.

“물어볼 것이 뭐가 있단 말인가. 저 아이의 말대로 목숨을 구걸하는 판에 아낄 것이 뭐가 있겠는가. 어차피 부족에 속해 있어 따로 들고 다니는 것이 대단할 것도 없는 마당에, 우리가 가진 것들 전부를 내어 주겠네. 약속하지.”

“아울러 맹약이 새겨진 상아도······.”

“주지! 그것이 없이 어찌 이 타협이 이루어질 수 있겠나. 지금 만들어 주겠네.”

말은 부드럽게 하면서도 챙길 것은 다 챙기는 검선의 말에 경보는 그렇게 대답하고 곧바로 자신의 왼쪽 상아를 손으로 잡아 뽑아냈다.

하지만 한쪽 상아를 뽑아냈다고 경보 수사에게 문제가 생길 일은 없었다.

그가 상아를 뽑아내자 곧바로 그 자리에 같은 상아가 자라나 균형을 맞추었기 때문이다.

우우웅 우우우웅 우웅우웅!

경보는 뽑아낸 상아를 두 손으로 받쳐 들고 의념을 투사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옥간에 여러 내용을 기록하는 것과 과정이 비슷했다.

뚜둑!

“여기 받게.”

그리고 작업이 끝난 후에 경보 수사는 그 상아를 힘주어 반으로 분지른 후에 검선과 마선에게 각각 밀어주었다.

검선과 마선은 그것을 허공에 띄운 상태로 받은 후에 의념을 이용하여 내용을 살폈다.

이후, 둘은 다시 자신들이 받은 상아를 하나로 합쳐 영기를 불어 넣었는데, 그러자 상아가 빛을 내며 경보 수사의 허상을 만들어냈다.

그렇게 나타난 경보 수사의 허상은 혼돈역에서 벌어진 이번 사건에 대하여 객관적으로 서술하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다.

또한 허상은 마지막에 이번 일로 어떤 원한도 품지 않을 것이며 자신이 속한 청동상아 부족 역시 이번 일에 관여하지 않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렇게 상아를 확인한 검선과 마선은 다시 상아를 반씩 나누어 가졌다.

“좋군. 이로서 약속의 절반은 지켰는데, 그럼 다른 절반은?”

상아를 챙겨 넣은 마선이 경보 수사를 보며 그렇게 묻자 경보 수사는 수하들로부터 공간낭과 법보 따위를 거두고, 거기에 자신의 것을 더해서 마선에게 밀어주었다.

“이것은 일단 네가 가지고 있거라.”

마선은 날아오는 것들에 손도 대지 않고 곧바로 뒤쪽에 있는 건우에게 밀어 보냈다.

나중에 자세히 감정하여 분배하겠다는 뜻이었다.

건우는 그것들을 곧바로 부양도의 정자로 옮기고 자신의 발밑에 엎어져 있는 수사들을 풀어 주었다.

세 명의 성령기 초기 수사들이 화들짝 일어나 경보 수사에게로 돌아가려다가 문득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공간낭을 끌러 건우에게 던져 주었다.

건우는 그것들을 받아 정자로 던져두고 보이지 않게 걸어두었던 금제를 풀어 세 수사가 그들의 진영으로 돌아가는 것을 허락했다.

“참으로 허탈하구려. 도대체 두 분은 어디에서 왔소? 내 견문이 좁지 않은데도 들어본 적이 없으니 궁금하구려.”

일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자 경보 수사가 마선과 검선을 보며 물었다.

그의 뒤에는 상두족 수사들이 공손한 자세로 고개를 숙이고 서 있었다.

이제는 끝난 일이라고 하더라도 태령기 수사에게 적대적인 행동을 했으니 겁이 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홍애지 영계에서 왔다.”

경보의 물음에 마선이 불쑥 홍애지를 거론했다.

그러자 경보가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뜨고 큰 귀를 펄럭였다.

“홍애지 영계라니, 그렇다면 수미 세계가 아닌 다른 영계에서 왔다는 말이오?”

그는 확인하듯 마선을 보며 되물었다.

“그렇다.”

“마선, 성급하게 그런 이야기를 털어놓을 이유가 뭐란 말인가?”

마선이 퉁명스럽지만 거리낌 없이 두두의 말을 인정하자 검선이 못마땅한 듯이 곧바로 마선에게 따져 물었다.

“성급하기는. 어차피 우리가 이곳 수미 세계에 정착을 하려면 근본이 있어야지. 뿌리도 없이 갑자기 나타나면 누군들 의심을 하지 않을까.”

“의심이라니?”

“멸계와 전쟁이 시작된 마당에 정체모를 고계 수사의 등장이 어디 간단한 문젤까? 게다가 이들을 만난 곳이 혼돈역인데?”

“하지만 우리는 지실곡을 통해 혼돈역으로 들어온 것이 아닌가.”

검선은 그게 무슨 문제가 되냐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렇지. 그 지실역에 혼돈역으로 통하는 입구가 있었지. 그렇다면 우리가 멸계 출신으로 혼돈역을 거쳐 그 입구로 나왔다는 의심을 받을 수도 있지. 그건 왜 생각을 못해?”

“어허, 그게 그렇게 될 수도 있군.”

검선이 새삼 깨달았다는 듯이 탄성을 터트렸다.

혼돈역의 입구가 나타난 곳에서 그들 일행이 처음 모습을 보였으니, 그 혼돈역에서 나왔다는 의심을 받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란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그러니 애초에 우리 출신을 밝히는 것이 좋지. 또 저 녀석이 이제부터 홍애지의 고계 수사들을 계속해서 데리고 올 텐데, 이왕 알려질 거 미리 알리자는 것이지.”

“그렇군. 그래. 생각해 보니 마선 자네의 말이 옳군, 옳아.”

마선의 말에 검선이 무릎을 쳤다.

건우는 뒤쪽에서 그런 마선을 보며 그가 성격이 급하고 단순한 듯이 보여도 절대 그것이 전부가 아님을 다시 한 번 되새겼다.

혼돈역에 들어와서도 태령기 마수를 잡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법칙의 힘에 대한 실마리를 푼 마선이었다.

그는 건우와의 거래로 마귀팔면호령을 얻고, 그것을 바탕으로 공법의 미진함을 채워 넣었다.

그리고 그렇게 완성된 공법을 기반으로 결국 법칙의 힘인 쇄(鎖)를 일부나마 얻어냈다.

그런 마선의 행보를 보면 절대 방심할 수 없는 심기의 주인임이 분명했다.

“으음. 그럼 혹시 네가 남염부제의 도맹(道盟) 소속이라던 그 녀석이냐?”

건우가 그렇게 마선을 평가하고 있을 때, 갑자기 경보 수사가 건우를 넘겨보며 물었다.

“저를 아십니까?”

건우가 되물었다.

“인계에서 멸계전을 치르고 영계로 비승한 후에 다시 우리 수미 세계로 넘어온 기막힌 녀석이 있다는 소리를 들은 바가 있다.”

“그렇습니까? 말씀을 들어보니 그 이야기에서 말하는 이가 제가 맞는 것 같습니다.”

“그래, 그런 놈이 또 있을 수는 없겠지. 그런데 지금 여기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네가 홍애지란 영계에서 이들을 데리고 왔다는 것 같다만?”

“일이 그렇게 되었습니다.”

“수사에게 비전을 묻는 것은 예가 아니니 자세한 것은 묻지 않겠지만 한 가지는 알려주겠느냐?”

“하문하십시오.”

“너는 홍애지란 영계와 이곳 수미 세계를 오갈 수 있는 것이더냐? 그래서 그곳의 수사들을 이곳으로 데리고 올 수 있는 것이고?”

건우는 경보의 물음을 듣고 망설일 것이 없다 생각하며 곧바로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검선 어르신과 마선 어르신은 그렇게 제가 모시고 왔습니다.”

“다시 홍애지로 가서 고계 수사를 데리고 올 수도 있고?”

“가능합니다. 그리고 최대한 어르신들을 모시고 와서 멸계전의 승리에 도움이 되려 계획하고 있습니다.”

“허어, 놀랍군, 놀라워.”

건우의 말에 경보가 연신 감탄을 하며 큰 귀를 펄럭거렸다.

그리고 건우의 말을 들은 다른 상두족 수사들 역시 마찬가지로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선망의 눈빛을 보냈다.

“고작 성령기 초기에 불과하나 진실로 네가 하는 일은 수미의 어떤 수사도 하지 못할 일이고, 멸계전의 공헌도로 보아도 그보다 큰 공은 없을 것이다.”

경보가 진중한 표정으로 건우를 보며 말했다.

그리고 곧바로 검선과 마선을 보며 말했다.

“두 수사는 어떠한가? 저런 아이를 위험한 곳에 방치하는 것은 크게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

“으음?”

“방치하는 것이 문제라?”

검선과 마선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지 않은가. 저 녀석에게 혹여 문제가 생긴다면 어찌하겠나. 최악의 상황이라도 생기는 날에는 멸계전의 큰 전력을 잃게 되는 것이나 다름이 없지 않은가.”

“그건 그렇지.”

“그렇게 말하자면 옳은 말인 것 같기는 합니다만, 그래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당연히 데려가 보호하며 철저하게 지켜야지. 아울러 저 녀석이 모셔 오는 고계 수사들에 대한 대책도 세워야 할 것이고.”

경보 수사의 입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말이 터져 나왔다.

그것은 건우도 전혀 생각해보지 않은 문제였다.

‘이게 지금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이러다가 어디 붙잡혀 가서 감금이라도 당하는 거 아냐?’

물론 홍애지로 도망갈 수 있는 건우를 감금하는 것은 어렵겠지만 어쨌거나 경보가 건우의 자유에 간섭하려 하는 것은 분명했다.

‘저 코끼리 새끼가!’

< 저 코끼리 새끼가?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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