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263화 (263/499)

(262)

< 낯짝이 두꺼워도 그렇지 >

“그만! 어린 아이를 데리고 수작 부릴 것 없이 우리 사이의 일은 우리끼리 해결하지.”

마선이 앞으로 한 걸음 나서며 두두 수사를 향해 마기를 뿜어냈다.

“뭐라? 그 말은 지금 내가 억지를 부리고 있다는 말이오?”

두두가 마선을 노려보며 말했다.

“그게 아니면? 고작 성령기 초기의 아이를 데리고 당신이 그리 열을 올릴 이유가 뭐가 있어? 빤히 보이는 쓸데없는 욕심 부리지 말고 그만 물러나. 괜히 피 보지 말고.”

“이이익, 감히! 고작 초기 나부랭이가!”

“뭐? 나부랭이? 크하하하. 내 그럴 줄 알았지. 어떻게든 핑계를 만들어 우리와 싸우고 싶었던 거지? 그래서 대충 묻어 버리고 이 혼돈역 토벌의 공을 독차지하고 싶었을 것이고. 어때? 검선 네가 보기에도 그렇지?”

마선이 두두 수사를 향해 쏘아붙이고는 검선을 끌어들였다.

“모른 척 하려고 해도 저 자가 뒤에 있는 어린 것들과 부리는 수작질이 뻔히 보여서 그럴 수도 없군. 마선 자네 말이 맞아. 우리 공을 가로채려고 작정을 한 게야.”

검선도 두두의 속이 훤히 들여다보인다는 듯이 그렇게 말했다.

이에 두두라 불린 상두족 수사의 피부색이 한층 짙고 어둡게 변했다.

그리고 그런 그의 등 뒤로 거대한 코끼리가 떠올랐는데 거창한 상아가 한쪽에 네 개씩이나 달려 있고, 꼬리에는 청색의 불꽃이 타오르는 모습이었다.

두두 수사가 그의 절기인 강체술을 극한으로 끌어 올린 것이다.

뿌우우우우우우우!

두두 수사의 등 뒤에 나타난 코끼리가 코를 치켜세우며 길게 울었다.

그러자 그 코끼리의 몸이 크게 부풀어 오르며 삼백 장 높이로 자라났다.

“해 보자는 것이지?”

마선이 허공에 가부좌를 틀고 앉으며 마귀상을 불러냈다.

마귀상은 머리만 나타났는데 그 크기가 두두의 코끼리와 비슷했다.

“나도 돕겠네.”

이어서 검선이 허리춤의 검을 뽑아 빈 허공을 가로 세로로 한 번씩 그었다.

카사삭! 카각! 카삭!

“이, 이 무슨?”

그런데 그 두 번의 칼질에 두두가 만든 거대 코끼리의 상아 세 개가 잘려 나갔다.

비록 깔끔하게 자르지 못하고 거친 저항음이 들리긴 했지만 코끼리의 상아 세 개가 떨어져 나와 허공으로 흩어졌다.

“역시! 간단치 않군.”

그런데 그 두 번의 칼질 이후에 검선이 핼쑥해진 얼굴로 한 걸음 물러났다.

상아 셋을 자르는 쾌거를 올렸지만 동시에 적잖은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다.

“노옴. 벌써 법칙을 장악했다고? 고작 태령기 초기에 불과한 놈이?”

두두 수사가 눈을 똥그랗게 뜨고 검선을 노려보며 말했다.

그러면서 두두 수사의 눈이 마선의 마귀두상을 힐끗거렸다.

검선이 법칙의 힘을 쓸 수 있다면 마선도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여긴 것이다.

“흐으음. 어디 한 번 감당을 해 보거라.”

마침 그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허공에 가부좌를 하고 있던 마선이 양팔을 활짝 벌린 후, 그 사이에 검은 마기를 가득 모아서 손뼉을 쳤다.

짜악! 고오오오오오오!

손뼉 소리와 동시에 마선의 머리 위에 떠 있던 마귀두상이 입을 크게 벌리고 웅장한 고함소리와 함께 검은 화염을 뿜어내었다.

이에 두두도 밀리지 않겠다는 듯이 코끼리 상을 움직였다.

코끼리가 코를 앞으로 내밀어 들며 울음소리를 내더니 앞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육중한 체격의 돌진.

다섯 개 남은 상아는 청동빛을 짙게 머금으며 섬뜩한 예기를 품고 마선의 마귀두상을 향해 달려들었다.

푸화화화화화확!

뿌우우우우우우!

마기가 일렁거리는 검은 불길과 상아의 청동빛이 뒤엉키고 코끼리의 울음이 다시 길게 이어졌다.

화르르르르르륵!

뿌우우우우우! 뿌우우우우우!

“으으음.”

“고작 이런 정도더냐? 검선이란 놈에 비하면 별것 아니구나.”

마선이 신음소리를 내는데 두두 수사가 비웃음 섞인 조롱을 했다.

검선이 절(切)의 법칙을 이용하여 두두가 불러낸 코끼리의 상아를 잘라낸 것에 비해서 마선의 검은 불길은 코끼리에게 별다른 피해를 주지 못한 것이다.

두두는 그런 상황에서 은근슬쩍 검선과 마선을 이간질하는 말까지 늘어놓고 있었다.

“제법 뼈대가 굵구나. 하지만 내가 고작 이 정도가 끝일 듯 싶으냐?”

하지만 마선은 두두의 조롱에도 아랑곳 않는 모습이었다.

그는 두두 수사를 노려보며 혀를 깨물어 피를 내고 그것을 허공에 뿜어냈다.

그러자 마귀두상이 그 피안개를 두 눈으로 빨아들였다.

푸시시시시시시싯!

이어서 마귀두상의 눈에서 혈광이 뿜어지며 검은 불길을 떨쳐내고 있는 코끼리를 노려봤다.

뿌우우우우 뿌우우우우 뿌우!

코끼리는 마귀두상의 혈광을 맞자마자 몸을 이리저리 비틀며 뭔가에서 빠져나가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거대 코끼리는 발을 떼지 못하고 몸만 비틀 뿐이었다.

“이이익. 이, 이게 뭐냐? 네 놈도 법칙의 힘을 쓴다고?!”

두두가 안간힘을 쓰며 코끼리 상을 움직이려 했지만 여의치 않자 마선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너는 유유상종이란 말을 모르는 모양이구나. 내가 검선에 비해서 많이 부족하다면 어찌 함께 다닐 수 있겠느냐. 너는 그 정도도 생각지 못한단 말이냐?”

이번에는 마선이 두두를 조롱했다.

그리고 동시에 마귀두상은 다시 검은 불길을 뿜어 코끼리를 공격했다.

뿌우우우우!

“이, 이런! 이이익!

그 공격에 두두가 다급하게 천지영기를 휘몰아 코끼리를 움직이려 애썼다.

하지만 마선이 얻은 법칙의 힘은 다름 아닌 쇄(鎖), 잠그고 닫아거는 것에 대한 힘이었다.

두두 수사가 불러낸 코끼리는 지금 마선이 펼친 법칙의 힘에 의해서 붙들려 있는 것이다.

“가만히 두지 않겠다! 크아아아아압!”

일순 두두 수사가 고함을 지르며 격하게 천지영기를 움직였다.

그러자 두두 수사의 몸이 그가 불러낸 코끼리만큼 커졌는데, 그는 곧바로 코끼리의 등에 올라타 한 몸이 되었다.

코끼리 등에 오른 두두의 하체가 코끼리의 몸으로 스며든 것이다.

“으라라라라랏!”

그렇게 코끼리 등에 올라 하나가 된 두두가 크게 기합 소리를 내며 용을 쓰자 코끼리의 몸까지 모두 청동빛을 머금었다.

두두 수사가 익힌 강체술의 효과가 두두는 물론이고 거대 코끼리에까지 적용된 것이다.

뿌우우우! 뿌드드드드드득!

“크으윽!”

결국 두두 수사는 코끼리와 하나가 되어 마선이 펼친 법칙의 힘을 깨트렸다.

뭔가 짓이겨지며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코끼리가 앞발을 치켜들더니 곧바로 마선과 마귀두상을 향해 치달리기 시작했다.

건우는 상황이 다급하게 돌아가는 것을 보며 뭔가 해 볼 요량을 했지만 곧 슬그머니 움직임을 멈췄다.

두두의 수하들이 건우를 경계하고 있는 것도 문제였지만 그보다는 검선이 오른발을 앞으로 내미는 것을 봤기 때문이었다.

왼손으로 검집을 잡고 오른손으로 검병을 잡은 검선이 오른발을 앞으로 내밀자 일순 서늘한 기운이 천지를 뒤덮는 느낌이 났다.

철컥!

뒤이어 검선의 검에서 짧은 쇳소리가 울렸고, 검선은 다시 오른발을 뒤로 당기며 몸을 바로 세웠다.

‘잘랐다(切)!’

건우는 검선의 움직임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검선과 두두 사이를 가르는 뭔가를 미약하게나마 느낄 수 있었다.

‘저 상두족 수사도 분명 법칙으로 대응했다. 잘은 모르겠지만 단단함이나 굳건함 따위의 법칙, 하지만 그걸 검선의 검이 가르고 지나갔다. 극쾌의 발검술(拔劍術)에 담긴 절(切)의 법칙이 두두의 법칙을 이겼어!’

건우는 저도 모르게 강렬한 흥분을 느꼈다.

검선과 두두의 일합 다툼에서 뭔가 깨달음의 꼬투리를 잡은 듯했던 것이다.

고작 성령기 초기에 법칙의 한 자락을 엿보다니!

어찌 흥분하지 않을 수 있을까.

“커어어억! 이, 이게······.”

“아아아···!”

하지만 건우의 행운은 순식간에 멀어져 버렸다.

두두 수사가 피를 토하며 내지른 소리 때문이었다.

잡힐 듯 했던 뭔가가 아득하게 사라져 버리는 느낌에 건우가 망연자실 신음소리를 냈다.

마선과 검선이 힐끗 그 모습을 보았지만 다시 고개를 돌려 두두에게 집중했다.

그런 두 수사의 눈에 설핏 경탄과 안타까움이 스치고 지나갔다.

후배가 진일보 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고, 경지의 차이를 극복하고 깨달음의 단초를 찾은 재능에 대한 경탄이었다.

“크하하하하, 대단하구나. 고작 태령기 초기라고 만만히 보았다가 내가 아주 큰 낭패를 겪는구나. 으드드드득!”

뿌우우우우우우우우!

비틀거리던 코끼리에 올라 있던 두두가 결국 이를 갈며 훌쩍 몸을 날려 코끼리에서 내려섰다.

그러자 코끼리는 길게 울며 허공으로 흩어져갔다.

“내, 반드시 이 대가를 치르게 하고 말겠다. 뭣들 하느냐! 어서 나서서 나를 돕지 않고!”

두두는 결국 자신을 따르는 수사들을 끌어들이고 말았다.

그 모습에 마선과 검선이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다 다시 고개를 돌려 건우를 바라봤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건우가 활활 타오르는 눈빛으로 상두족 수사들을 노려보며 말했다.

그리고 곧바로 훌쩍 몸을 날려 부양도로 올라섰다.

지이이잉 지이잉 지이잉!

촤르르르르륵! 촤르르르르!

건우가 부양도에 올라선 직후, 부양도에선 기이한 소리와 함께 찬란한 금광이 피어올랐다.

그 금광들은 모두가 영기가 응결된 것으로 진법과 술법을 이루는 선과 도형, 문자를 이루고 있었다.

“저 놈이!”

그 모습에 처음 건우에게 시비를 걸었던 성령기 후기 상두족 수사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곧바로 성령기 초기의 상두족 수사 셋에게 눈짓을 했다.

건우의 부양도를 공격하라는 의미였다.

휘익, 휘익, 휘리릭!

곧바로 성령기 초기의 상두족 수사 셋이 검선과 마선을 우회하여 부양도를 향해 날아들었다.

“훗!”

건우가 그 모습을 보며 코웃음을 쳤다.

그리고 부양도의 공방 법진을 이용하지 않고 스스로 아공간 현실 구현으로 대응하기 시작했다.

콰지직! 콰과과과과!

“으윽!?”

“어허엇!”

“이, 이런!”

순식간에 부양도 위로 올라왔던 세 명의 상두족 수사가 의념을 제약당하고 천지영기의 장악력을 잃어버렸다.

영기를 움직이지 못하고 의념이 짓눌린 수사.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꿇어라!”

건우가 그들에게 의념을 집중하며 외쳤고, 세 상두족 수사는 그대로 부양도 돌바닥에 오체투지의 자세로 엎어지고 말았다.

“으으으윽, 이, 이걸 풀지 못하느냐!”

“감히 우리를 이렇게 하고도 네가 무사할 것······.”

“도대체 이게 무슨? 어찌 이런······.”

세 상두족 수사는 상황 파악도 제대로 못하고 제 각각 떠들었다.

하지만 곧 건우가 의념을 펼쳐 그들을 조용히 시켰다.

“허어, 그것 참.”

두두 수사가 탄식을 했고, 그 아래 성령기 후기의 상두족 수사는 너무 놀라 할 말을 잊어버렸다.

“두두라 했나? 우리는 우리 할 일을 마저 하지? 네가 거느린 아이들이야 우리 아이가 어떻게든 감당을 해 줄 듯 하니, 우리 일에 방해가 되지는 않을 것 같군.”

마선이 두두를 놀리듯이 말했다.

그러자 두두가 슬그머니 기세를 줄이며 얼굴 표정을 바꾸었다.

“하하, 우리 잠시 이야기를 나눠 봄이 어떤가? 나는 상두족 중에서 청동상아 일족의 두두인 경보(硬步)라 하네. 두두는 우두머리란 뜻일 뿐, 내 이름은 아니라네.”

“허, 그놈 낯짝 한번 두껍네.”

“코끼리들이 원래 피부가 두껍기는 하지.”

“검선 자네는 그걸 농이라고 하는 겐가?”

경보 수사의 극적인 태세 전환에 마선과 검선이 도리어 어이가 없어 표정 관리를 하지 못했다.

건우 또한 부양도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며 혀를 차는 중이었다.

‘뭐지 저 뻔뻔한 작자는?’

< 낯짝이 두꺼워도 그렇지 > 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