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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홍애지, 검선과 마선을 만나다 >
“후우우.”
건우는 눈앞에 펼쳐진 넓은 바다를 보며 깊은숨을 내쉬었다.
- 괜찮을까요?
그런 건우에게 루야가 말을 걸었다.
“괜찮지 않으면?”
- 이대로 검선이 대천겁을 맞을 때까지 기다릴 건 아니죠?
“솔직히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이 없지는 않아. 그 놈이 죽거나 살거나 관심을 끊어 버리는 것도 나쁘진 않잖아.”
- 그러다가 정말로 건우 님을 죽이겠다고 쫓아다니면 어떻게 하시려고요?
“이런 방법이 있는데 뭐가 걱정이야?”
건우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 아공간 현실 구현과 손으로 잡고 있는 수미산 상징을 둘러보며 말했다.
홍애지에서 발현한 아공간 현실 구현이 그대로 수미 세계로 넘어왔다.
아울러서 수미산 상징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걸 보면 현실에 구현한 수미산 상징을 이용해서 타인을 수미 세계로 보내는 것도 가능하고, 건우가 함께 이동하는 것도 가능할 듯했다.
“그래도 깔끔하게 상급 영석 100개를 먹어치우는 건 변함 없네.”
문득 건우가 아공간의 상급 영석 수를 파악하고는 그렇게 말했다.
- 그건 이미 각오한 거잖아요. 그래서 수미산 상징을 현실로 구현하는 술법진에 미리 상급 영석을 넣어 두기도 했고요.
“그래도 이렇게 직접 확인한 것은 아니었잖아. 뭐 상급 영석 100개야 이젠 부담되는 것도 아니긴 하지만.”
- 성령기 수사들 중에는 그 100개의 상급 영석을 쓰는 것도 고심할 이들이 많을걸요?
“하긴, 나도 이곳에서 홍애지로 갈 때에 성령기에 오르느라 빈털터리 신세긴 했지. 그러고 보면 성령기라도 모두 부유하진 않겠네.”
건우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태풍이 가라앉은 대양을 두루 살폈다.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가늠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심지어 이곳이 어딘지도 모르는 상태가 아닌가.
그저 바닷물이 짜지 않으니 함해(鹹海)가 아니란 사실만 분명할 뿐이다.
게다가 어쩌면 이곳이 구산팔해의 여덟 바다가 아니라 어느 대륙의 드넓은 호수일 가능성도 없지는 않았다.
드넓은 영계에 끝이 보이지 않는 호수야 손으로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을 것이다.
건우는 그런 생각을 루야에게 전했다.
- 팔해 중에 하나가 아니라 호수일 가능성이요? 그러고 보면 그럴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그게 뭐 중요해요? 어차피 여기가 어딘지 모르긴 마찬가진데요.
“그건 그렇지.”
건우는 그렇게 대답하며 손을 뻗어 출도령패를 불러낸 후, 출도령패에서 다시 부양도를 호출해 그 위에 올랐다.
“비행을 하는 동안 전송진 설치나 해야겠다.”
- 전송진을 설치해도 이동할 곳의 좌표를 모르잖아요. 전송진을 만든 후에 좌표를 설정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건 그렇지. 그리고 이곳 수미 세계의 전송진 좌표는 또 홍애지와 달라서 그에 맞춰서 전송진을 바꿔야 하기도 하지. 뭐, 이참에 이곳 수미 세계와 저 쪽 홍애지에서 쓸 전송진을 각각 만들 생각이지만.”
- 전광석 하나를 공유하는 형태로 만들어야겠네요? 전광석이 하나니.
“그래. 어쨌거나 한동안은 이 일에 매달릴 생각이다. 어차피 50년 내로 다시 홍애지로 가야 할지도 모르니 시간이 오래 걸릴 수련은 시작하기 어렵겠지.”
건우는 그렇게 말을 하며 허전한 허리춤을 더듬었다.
한 몸 같았던 삼백육십성광검의 빈자리가 더없이 크게 느껴졌다.
그래서 더더욱 한 가지 일에 몰두하며 그 허전함을 잊으려고 하는 것인지도.
‘두고 보자. 검선, 만약에 내가 다시 너를 만나게 된다면 너는 내 검을 빼앗아 간 대가를 크게 치러야 할 것이다.’
건우는 내심 그렇게 이를 갈며 부양도 중앙섬에 있는 전각으로 향했다.
그 전각의 지하에 전송진을 만들 생각이었다.
***
30년 후.
건우는 드디어 부양도에 장거리 전송진을 설치하는 데 성공했다
.
그것도 수미 세계와 홍애지, 양쪽에서 각각 쓸 수 있는 전송진을 만들고 전광석을 공유하게 하는 것까지 성공했다.
그렇게 목표를 이룬 때에 복이 겹쳐 오듯이 드디어 부양도가 육지를 앞두었다.
칠흑처럼 새까만 화산암으로 이루어진 대륙이 저 멀리 보였다.
건우는 그 대륙이 의념에 잡히는 즉시 부양도를 세웠다.
당장이라도 대륙으로 날아가 정보를 얻고 싶었지만 그에겐 아직 처리해야 할 문제가 남아 있었던 것이다.
“어쩔까? 검선의 대천겁.”
건우가 루야에게 의념을 보내어 물었다.
- 일단 그냥 두실 거면 이야기할 필요가 없고요. 대천겁 전에 홍애지로 넘어간다고 가정하면 두 가지 방법이 있겠죠.
“두 가지 방법?”
건우가 궁금한 듯 물었다.
- 아공간에서 이동을 하느냐, 수미 상징을 현실로 불러낸 후에 이동을 하느냐 하는 거요.
“아공간에서 이동하면 저 쪽에 가서 은밀하게 주변 상황을 살피기 좋겠군. 하지만 아공간 입구를 열었다가 검선이나 마선에게 걸릴 위험이 있고.”
- 그렇죠. 대신에 이곳에서 수미 상징을 현실로 불러낸 후에 넘어가면 곧바로 마선이나 검선을 만나게 될 수도 있어요. 게다가······.
“그 자리에 놈들이 함정을 파 놓았을 수도 있겠지.”
- 맞아요. 그래서 선택이 쉽지 않죠.
“그래도 그나마 안전한 방법이 있긴 하네.”
건우가 잠시 고민을 하더니 문득 무슨 생각을 했는지 그렇게 말했다.
- 그나마 안전한 방법이요?
“일단 아공간에서 넘어가는 거지. 그리고 주변을 살펴. 이때 아공간 입구를 연 것 때문에 들키게 되면 그건 정말 어쩔 수 없는 거고.”
- 그래서요? 아공간에서 주변을 살펴서 상황을 보고 밖으로 나가는 건 이미 했던 이야기잖아요.
“아, 여기서 선택을 달리 하는 거지. 상황을 파악한 후에 다시 수미 세계로 넘어와, 그리고 수미산 상징을 현실 구현한 후에 홍애지로 넘어가는 거지.”
- 아공간으로 가서 정찰하고, 다시 이곳으로 넘어왔다가 현실 구현을 한 후에······. 상급 영석이 풍족하니 그런 생각도 하시네요. 이전 같으면 그런 발상을 하기도 어려웠을 걸요? 상급 영석이 아까워서······.
“하하하. 그건 나도 그랬을 거 같긴 하다. 음, 그나저나 막상 넘어가려니 좀 이상하네.”
건우가 부양도 상공으로 몸을 띄우고 주변을 살피며 말했다.
그러자 루야가 무슨 이윤지 알겠다는 듯이 대뜸 물었다.
- 왜요? 그 연꽃 선자가 안 나타나서요?
“그래. 내게 선자의 기운이 있다 했으니 내가 홍애지로 넘어가는 순간 선자도 알았겠지.”
- 건우 님이 수미 세계에서 사라졌거나 혹은 죽었거나 그것도 아니면 뭔가 강력하게 봉인되었다고 여기긴 했겠죠.
“그랬던 내가 몇 백 년 만에 다시 나타났는데 선자가 와 보지 않은 건 좀 이상하잖아. 뭔 일이라도 있나?”
- 설마 그 연꽃 선자를 걱정하시는 거예요? 세상 쓸데없는 걱정인 거 같은데요? 무슨 문제가 생겼다고 해도 고작 성령기 초기에 불과한 건우 님이 뭘 하실 수 있겠어요? 깜냥이 안 되는 일에 마음을 써서 득 될 것은 없어요.
“쯧, 냉정한 것. 말은 옳다만, 그래도 유 선자에게 받은 것이 적잖은데 마음이 쓰이는 것이 당연하지.”
- 네네. 그래서요?
“그래서는 무슨, 그냥 그렇다는 거지. 일단 정리하고 홍애지로 넘어가 보자. 검선과 마선이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지 궁금하네.”
건우는 그쯤에서 연꽃 선자에 대한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루야의 말처럼 자신이 그런 고계 수사의 일에 무슨 간섭을 한다는 말인가.
건우는 출도령패를 내밀어 부양도를 다시 불러들이고 곧바로 아공간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아공간의 수미산 상징을 이용해서 홍애지로 향했다.
***
“검선과 마선이 여전히 이곳에 머물고 있군.”
- 반쯤은 그럴 거라고 예상했잖아요.
“그렇긴 하지.”
건우는 아공간 안에서 밖을 살피고 있었다.
투명하게 열린 아공간 입구를 통해서 의념을 넓게 펼쳐 주변을 살폈는데, 멀지 않은 곳에서 검선과 마선의 기운을 느꼈다.
그들은 건우가 사라졌던 곳을 중심으로 각각 동과 서로 나뉘어 일정 간격을 두고 떨어져 있었다.
그중에 검선은 엄청난 숫자의 검을 이용하여 검진을 설치하고 있었는데, 그 기운이 사뭇 삼엄했다.
그에 비해 마선은 작은 동부를 세우고 그 안에서 수련을 하는 모양인지 짙은 마기가 동부 주변에 가득했다.
“괴뢰선은 보이지 않는군.”
- 죽었거나 혹은 어디론가 떠나서 수련을 하고 있겠죠. 원하던 혼원석을 얻었으니 벌써 태령기에 올랐을 수도 있고요.
“그렇지. 혼원석을 얻었으니 태령기에 도전을 했겠군. 그리고 그걸 검선과 마선도 알았을 것이고.”
- 설마 검선과 마선이 괴뢰선을 해코지 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
“굳이 그래야 할 이유는 없을 것 같지만, 또 절대 그렇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기도 어렵네.”
- 하긴 괴뢰선이 천겁독을 썼던 것을 생각하면 검선이나 마선이 괴뢰선을 예쁘게 안 봤을 수도 있겠네요.
“그거야 뭐, 이제 저들을 만나서 물어보면 될 일이지.”
건우는 꼼꼼하게 주변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 결과 딱히 위험한 것은 없다는 결론을 얻었다.
물론 태령기의 검선과 마선이 건우가 파악하지 못할 수작을 부렸을 수도 있다.
하지만 건우는 스스로 진법이나 금제, 봉인 따위에 남다른 재주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어쩌다보니 연화경을 연구하여 연꽃 선자를 구해냈고, 이후에는 연꽃 선자의 안배로 고태 수사의 금제 공간에서 다시 금제와 봉인을 궁구해야 했다.
그 과정을 거친 건우의 눈을 속이는 함정을 검선이나 마선이 준비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정말 그런 함정을 준비했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
그럴 일은 없을 거라고 자신하면서도 건우는 내심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다시 수미 세계로 돌아갔다가 그곳에서 아공간을 현실에 구현하고 수미산 상징을 불러낸 후, 그를 통해서 홍애지로 넘어왔다.
“드디어 왔구나!”
“검선의 예상이 틀리지 않았군.”
그런데 건우가 홍애지로 넘어와 기운을 추스르기도 전에 동서 양쪽에서 검선과 마선이 둔광을 번뜩이며 모습을 드러냈다.
건우는 그들이 자신을 기다리며 기척을 염탐하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토록 환영받을 줄을 알았다면 조금 더 일찍 올 것을 그랬습니다.”
건우가 짐짓 너스레를 떨며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의 손은 수미산 상징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여차하면 곧바로 다시 수미 세계로 넘어갈 요량이었다.
물론 최대한으로 끌어 올린 금강패갑공은 기본이고, 보이지 않게 겹겹이 두른 방어 술법들은 덤이었다.
“그래, 확실히 그러하다. 마선은 몰라도 나는 너를 몹시도 기다렸느니라.”
검선이 건우를 향해 부드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러자 마선이 곧바로 나섰다.
“그 무슨 말을 그리 해? 나 역시 검선 못지않게 저 녀석을 기다린 것을 몰라 그러나?”
마선은 그렇게 검선을 향해 한 마디를 던지고는 곧바로 건우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하하하. 너는 꽤나 담이 크구나. 우리를 30년이나 기다리게 하다니.”
마치 잘못을 지적하는 듯한 마선의 말이었다.
하지만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어조는 부드러웠다.
그는 건우를 타박하기보다는 도리어 기특하게 여기는 기색까지 보이고 있었다.
“역시 좀 더 일찍 올 것을 그랬습니다.”
“그러지 그랬느냐.”
검선이 건우의 말을 받았다.
“하하, 그게 어디 쉬운 일이었겠습니까. 어르신들이 무서워서 좀처럼 돌아오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으음, 그럴 수도 있다고 여기긴 했다. 우리는 네가 검선의 대천겁이 끝난 후에나 나타날 수 있다는 생각까지 했었느니라.”
마선이 웃는 얼굴로 말했고, 검선은 계면쩍은 표정으로 수염을 쓸어내렸다.
“어찌 그럴 수가 있겠습니까. 따지고 보면 제가 검선 어르신과의 인연이 작은 것이 아닌데 그럴 수는 없는 일이지요.”
건우는 마치 정말로 그런 생각은 한 적도 없다는 듯이 정색하며 말했다.
“어쨌거나 되었다. 이제 네가 왔으니 검선이 대천겁을 걱정할 이유는 없겠구나.”
그런 건우를 보며 마선이 은근히 검선의 수미 세계 행이 확정이라도 된 듯이 말했다.
건우도 그것을 알았지만 굳이 따지지 않았다.
어차피 검선의 대천겁 이전에 홍애지로 돌아온 이유가 그를 수미 세계로 보내기 위함이었으니 굳이 부정할 생각은 없었던 것이다.
다만 아무리 그래도 검선에게 마땅한 대가를 받지 않을 수는 없었다.
당연히 거기에는 자신의 삼백육십성광검을 빼앗은 것에 대한 보상까지 받아 내겠다는 생각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를 말이겠습니까. 검선 어르신께서는 수미 세계로 가실 수 있으니 대천겁 따위는 고민할 이유가 없겠지요. 다만······.”
건우는 말꼬리를 흐리며 검선의 허리춤을 바라봤다.
거기에는 허름한 검 한 자루가 걸려 있었다.
물론 그것이 삼백육십성광검은 아니었다.
하지만 건우가 검을 바라보며 말끝을 흐린 이유를 모를 사람은 없었다.
검선이 건우를 보며 설핏 흐릿한 미소를 지었고, 마선은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검선과 건우를 한눈에 담았다.
< 다시 홍애지, 검선과 마선을 만나다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