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7)
< 나, 간다. >
“네 죄를 네가 알렸다?”
이건 무슨?
건우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검선을 바라봤다.
“제가 어르신께 무슨 죄를 지었다는 말씀입니까? 영문을 모르겠습니다.”
“뭐라? 네가 네 죄를 몰라?”
쿠구구국!
건우의 반응에 검선의 노여움이 더욱 커졌다.
그 덕분에 건우에게 가하는 압력이 더욱 커져서 이제는 종아리 일부까지 땅에 묻힐 정도가 되었다.
“후배가 어리석어 죄를 모르겠습니다. 일러 주시면 깨우쳐 반성하겠습니다.”
건우는 검선의 압력을 견디기 위해서 금강패갑공을 극성으로 끌어 올리며, 여전히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다시 그렇게 말했다.
“하! 이런 고약한 놈을 봤나. 네가 나와 만나기로 약속한 것을 잊었단 말이냐?”
검선이 도리어 기가 막힌 듯 탄식을 하며 물었다.
“어찌 그것을 잊겠습니까. 후배는 그 일을 해결하기 위해 오래도록 혁개성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건우는 자신이 검선과의 약속 때문에 혁개성에서 두문불출했던 것을 일러 말했다.
“그래? 그런데 어찌 갑자기 혁개성을 벗어나 이 머나먼 곳까지 온 것이냐? 그 때문에 나와 마선이 너를 찾아 여기까지 오는 수고를 해야 했음을 모르느냐?”
검선이 그런 건우를 향해 따지듯이 물었다.
“그것은······. 하지만 그것이 어찌 죄라 하겠습니까? 후배도 급한 일이 있었음을 고려해 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건우는 잠시 자신이 검선을 기다리지 않고 이곳으로 온 것에 대해서 죄를 청할까 하다가, 아무래도 그럴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검선이 대천겁을 피해서 목숨을 부지할 방법이 자신 이외에 또 뭐가 있다는 말인가.
따져 보자면 자신이 갑의 입장인데, 목숨을 구해줄 자신을 이리 막 대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억울한 일이었다.
그래서 죄를 청하기보다는 오히려 뻔뻔하게 나가기로 한 것이다.
“뭐라?”
검선이 건우의 맞대응에 눈끝이 치솟았다.
“제가 검선 어르신의 거처를 아는 것도 아니고, 또 연락을 하려 해도 방법도 없었습니다. 그런 차에 급한 일이 생겨 몸을 움직인 것이 그리 죄가 될 일이랍니까?”
건우의 말투가 뾰족해졌다.
“건방지구나! 네가 감히 내게 대드는 것이냐!”
콰과과과곽!
“크으윽!”
곧바로 검선의 응징이 이어졌다.
건우는 일순간 가슴까지 땅바닥에 눌려 박히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건우는 애써 몸을 움직여 땅 위로 기어 올라왔다.
그리고 검선을 향해 몸을 곧추세웠다.
“어찌 이러십니까? 그럼 후배가 언제까지나 어르신을 기다리며 혁개성에서 허송세월을 했어야 한다는 것입니까? 게다가 이것이 있으니 어르신께서 이 후배가 어디로 가든 그것을 못 찾을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건우가 허리춤의 삼백육십성광검을 두드리며 말했다.
그러자 마침 잘 되었다는 듯이 검선이 손을 뻗어 건우의 삼백육십성광검을 빼앗아갔다.
건우가 허공을 가로질러 날아가는 검을 잡으려 했지만 검선의 기운이 검을 감싸고 있어서 잡을 수가 없었다.
“흥! 이것은 본래 나의 것이니 되돌려 받겠다. 그리고 네 말대로 네가 네 일을 보기 위해 움직인 것이 잘못이 아니라 하니, 좋다. 그것은 인정해 주마. 하지만 나와 약속한 것은 반드시 이루어 놓았어야 할 것이다.”
검을 손에 넣은 검선은 일단은 건우를 쫓아온 목적부터 달성하기로 마음을 먹었는지 그렇게 말했다.
“이제야 본론이 나오는군. 나 역시 그에 관심이 있으니 너는 어서 네가 말했던 바를 증명해 보거라. 혹여 그것이 거짓이거나 모자람이 크다면 당장 네 목을 비틀어 버릴 것이다.”
검선의 말에 건우가 대꾸하기도 전에 마선이 끼어들었다.
그는 형형한 눈빛으로 건우를 노려보고 있었다.
건우는 검선과 마선의 기세에 어깨를 움츠렸다.
하지만 속으로는 반발심이 가득 치솟고 있었다.
‘검선과 마선이 이리 죽이 잘 맞을 줄은 몰랐지. 그냥 소문이나 좀 내 보자고 마선 쪽에 이야기를 살짝 흘렸을 뿐인데, 이런 결과라니.’
마선이 검선과 뜻을 함께하고 있다는 것은 전혀 예상 밖이었다.
건우는 보란 듯이 자신의 검을 어깨 위에 띄워 놓은 검선을 힐끗거리며, 성해룡주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성해룡주의 힘을 빌어 아공간 현실 구현을 시작했다.
이미 갈편주와의 싸움에서 보였던 모습이라 굳이 숨길 이유는 없었다.
다만 그 범위를 좁혀 고작 몇 장 범위에만 국한시켰고, 특별한 지형지물을 불러내지도 않았다.
그렇게 아공간의 일부를 현실로 구현한 건우는 이어서 수미산의 상징을 그곳으로 끌어왔다.
“으으음? 굉장한 술법이야. 나조차도 그 내막을 파악할 수가 없군.”
“으음.”
“······.”
마선의 중얼거림은 검선과 괴뢰선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이기도 했다.
세 수사들은 건우가 수미산 상징을 불러낼 때에 드러난 엄청난 영기 술법을 극히 일부만 파악할 수 있었던 것이다.
‘여기 겉으로 드러난 것도 전체의 삼할이 되지 않는다. 네 놈들이 어찌 아공간에서 호응하고 있는 다른 술법들을 알 수 있겠느냐.’
건우는 그것만은 자신이 있었다.
수미산 상징 현실 구현은 절대 이쪽 현실에 드러난 술법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었다.
당연히 아공간을 들여다보지 못하는 이들이 수미산 상징에 대해서 파악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고 봐야 했다.
“이것입니다.”
건우가 자신이 불러낸 수미산 상징을 슬쩍 손으로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 수미산 상징은 이전보다 더 작아서 두 뼘 정도의 높이를 가지고 있었다.
“도대체 그것은 무슨 법보란 말이냐? 설마 선기나 선보라도 된다더냐?”
“실로 헤아릴 수 없고 아득한 진의가 감추어져 있음이 분명하군.”
“······.”
마선과 검선이 감탄을 했고, 괴뢰선의 침묵은 계속 이어졌다.
“이것을 통해서 이 홍애지가 아닌 다른 영계로 갈 수 있습니다. 이것은 그 다른 영계인 수미 세계와 연결된 통로라 보시면 됩니다.”
건우가 감정이 담기지 않은 표정과 목소리로 말했다.
검선에게 핍박을 받은 후부터 건우의 분위기는 많이 건조해져 있었다.
“그것을 통해서 수미 세계라는 다른 영계로 갈 수 있다고?”
검선이 믿기 어렵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 수미 세계가 지금 멸계전을 벌이고 있고?”
“멸계전이 시작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이제 겨우 혼돈역이 드러나며 멸계의 하급 존재들이 비치는 정도입니다.”
“그래, 그러하단 말인데, 내가 그것을 어찌 믿을 수 있느냐?”
건우의 말에 검선이 매서운 눈빛으로 다시 물었다.
“후배는 이 이상은 달리 설명드릴 길이 없습니다. 후배는 이것을 통해서 몇 번 수미 세계와 이곳 홍애지를 넘나들었습니다만, 달리 증명할 방법은 없습니다.”
“결국 내가 그것을 살펴 진위를 파악해야 한다는 말이구나?”
“죄송한 말씀이지만 그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일 것입니다.”
건우는 그렇게 대답했지만 검선이나 마선이 수미산 상징을 살펴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믿지 않았다.
내심은 ‘할 수 있으면 해 봐라.’하는 심정이었던 것이다.
“검선, 이것은 하루 이틀에 될 일이 아니다. 그러니 자리를 옮겨 동부를 세우고 연구를 하는 것이 좋겠다.”
그때, 마선이 자리를 옮길 것을 제안했다.
사실 어디를 가거나 상관이 없는 일이겠지만 그래도 풍찬노숙(風餐露宿)하는 것은 체면을 깎는 일이기도 했다.
검선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좋겠소. 너는 길 나설 채비를 하거라.”
마선에게 동의를 표한 검선이 건우를 보며 명령했다.
건우의 눈썹이 꿈틀했다.
“제가 곰곰 생각해 보니 어르신들의 행사가 참으로 고약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 입에서 상상도 못했던 말이 쏟아져 나왔다.
검선이나 마선은 물론이고 한 걸음 물러나 있던 괴뢰선까지 입을 떡 벌리고 건우를 바라볼 정도였다.
“뭐라? 행사가 고약해?”
검선이 나서기 전에 마선이 먼저 건우를 향해 노성을 터트렸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것은 후배의 것으로 오랜 연구 끝에 다른 분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궁리해 낸 것입니다.”
건우가 수미산 상징에 손을 올린 상태로 마선을 보며 말했다.
“그런데?”
“어찌 두 분 어르신께서는 이것을 마치 자기 주머니 속의 물건처럼 마음대로 취하려 하신답니까?”
“네가 검선에게 대천겁을 피할 방도를 마련해 주겠다 했다던데?”
“물론 그렇습니다만, 예로부터 사람을 부려 이득을 취하려 하면 마땅히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그보다 중요한 것은 이것을 두 분 어르신 마음대로 하려는 것입니다.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건우는 더는 참을 것도 없다는 듯이 제 할 말을 모두 토해내고 있었다.
“하하하. 그러니 지금 네가 그것의 소유를 주장함과 동시에 사용에 대한 대가를 요구하는 것이냐?”
그런 건우의 말에 검선이 뒷짐을 지고 크게 웃으며 물었다.
“그야 당연한 이치가 아닙니까?”
건우가 되물었다.
“그러하면 우리가 그 태령기 중기의 갈편주 수사로부터 너희를 구해 준 것은 어찌할 것이냐? 감히 목숨을 구해줬는데 그런 은인에게 대가를 요구하는 것이 합당하다 여기느냐?”
검선의 눈빛만큼 매서운 혀로 건우를 공격했다.
그 말에 건우가 피식 웃었다.
“웃어?”
검선이 그런 건우의 반응에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검선 어르신이나 마선 어르신께서 오시지 않았다면 당연히 이 후배의 목숨이 끝장났을 거라 생각하시는 모양입니다?”
“그럼 아니란 말이냐?”
“네가 그 상황에서 벗어날 길이 있었다고?”
검선과 마선이 연이어 물었다.
“마땅히 그런 재주도 없다면 어찌 기기현문의 금제 공간으로 겁 없이 들어갔겠습니까. 상황이 이런데 두 어르신께서 구명지은 운운하며 거들먹거리시니 후배가 기가 막히지 않겠습니까?”
“뭐라? 거들먹거려?”
“기가 막혀? 네 놈이 정녕 죽고 싶으냐!”
건우의 말이 과한 면이 없지 않았는데 역시 곧바로 검선과 마선의 격한 반응이 돌아왔다.
“지금만 봐도 그렇습니다. 검선 어르신께서는 후배가 어렵게 마련한 검을 제 주머니 물건 취하듯 취하셨지요. 그리고 마선께서도 이것을 멋대로 살펴 연구하겠다고 거처를 꾸민다 하셨고요.”
건우가 검선의 어깨 위에 있는 삼백육십성광검과 수미산 상징을 번갈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런 건우의 말에 검선과 마선이 살짝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되었습니다. 어차피 두 어르신과는 이미 척을 진 마당에 후배가 굳이 이런 곳에 머물 이유가 뭐가 있겠습니까? 후배는 이만 물러갈 터이니 이후의 일은 두 분이 알아서 하십시오.”
“자, 잠깐! 물러나다니!”
“어디로 간다는 말이냐?!”
“몰라 물으십니까?”
건우는 그렇게 말을 하고는 곧바로 수미산 상징에 의념을 불어넣어 몸을 수미 세계로 옮겼다.
“어어엇?”
“이, 이게 어찌 된 것이야? 이게 가능해? 우리 이목을 감쪽같이 속이고 사라진다고?”
검선과 마선이 깜짝 놀라 허둥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별다른 영기 파동도 없이 건우의 모습이 눈앞에서 깨끗하게 사라진 탓이다.
그것도 산을 닮은 법보와 함께.
“실로 그 놈이 갈 수사의 손에서 벗어날 길이 있다고 했던 것이 거짓이 아니었군.”
“커어엄. 지금 그게 문제야? 그 놈이 도망을 가버렸다고!”
“어찌하겠나? 방법이 없다면 이걸 써 먹어야지.”
마선의 고함에 검선이 삼백육십성광검을 앞으로 끌어오며 말했다.
“그걸 쓴다고?”
“이게 있으면 내 검진의 위력이 조금 더 높아지지. 그렇게 되면 대천겁을 무사히 넘길 가능성이 1할은 높아질 것이네. 그래서 미리 이걸 취해 둔 것이고.”
“결국 처음부터 놈을 믿고 수미 세곈가 하는 곳으로 갈 생각은 없었다는 겐가?”
“그건 아니지. 갈 수만 있다면 가야 하지 않겠나? 자네도 그럴 텐데?”
“그야 그렇지. 누군들 그런 기회를 마다할까. 천겁이 없는 상태로 오래도록 수련에만 힘쓸 수 있다면 그만한 곳도 없지. 게다가 멸계전에서 승리하면 곧바로 선계로 오르는 것인데. 그렇게 생각하니 더 아깝군. 그냥 잘 구슬러 보는 것인데.”
마선이 정말 아쉬운 듯이 입맛을 다셨다.
“걱정하지 말게. 놈은 다시 올 것이네. 아마도 40년 내로 다시 오겠지.”
“응? 그건 무슨 말인가? 그 놈이 왜?”
“그 즈음에 내 대천겁이 있으니까 가장 좋은 값을 받을 수 있지 않겠나.”
“좋은 값?”
“대천겁을 피하게 해 주는 대가 말이네.”
“설마······.”
“놈은 얼마든 몸을 뺄 재주가 있네. 그런데 뭐가 겁이 나겠나? 충분히 애를 태운 후에 거래를 하려 하겠지. 그렇게 한들 자네와 내가 무얼 할 수 있다는 겐가?”
“그야 보는 즉시 목을 비틀어 버리면······.”
“그래서야 수미 세계란 곳으로 갈 방법이 없지 않나?”
“에잉!”
마선은 결국 앓는 소리를 내며 몸을 돌려버렸다.
그런 마선의 앞에는 양쪽 팔을 잃은 괴뢰선이 있었다.
괴뢰선은 슬그머니 고개를 땅바닥으로 향했다.
< 나, 간다.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