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257화 (257/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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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괴뢰선의 천겁독이 싸움을 매조지다 >

그린 듯이 멈춰 있던 갈편주의 눈동자가 천천히 돌아갔다.

그런데 그 시선이 정지한 곳은 의외로 기식이 엄엄한 괴뢰선이었다.

괴뢰선은 갈편주가 발동시킨 기기현문의 기관 진법을 방어하지 않고 도리어 녹색의 광선을 이용하여 그를 공격 했던 것이다.

그 때문에 괴뢰선은 지금 까맣게 그을려 꼴이 말이 아니었다.

“무엇이냐? 이것이?”

갈편주가 괴뢰선을 노려보며 물었다.

“누구나···. 비장의 한 수는 있기 마련이 아니겠습니까? 천겁··· 독이라 하더이다.”

파지지지직!

괴뢰선이 그렇게 대답할 때, 그의 양쪽 팔에서 흐릿한 뇌전이 터지더니 결국 팔이 잿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괴뢰선은 도리어 몸을 꼿꼿하게 세우고 갈편주와 눈싸움을 하고 있었다.

“천겁독이라니! 그것이 사라진 것이 언제인데, 어찌 그런 것이 예서 나와?!”

그런데 의외로 고함을 지른 것은 마선이었다.

그는 정말 놀랐다는 듯이 괴뢰선에게서 두어 걸음 물러나기까지 했다.

“듣자니 천겁독이란 것은 천겁뢰와 비슷한 듯 한데 맞습니까?”

건우가 흐려진 금강패갑공의 기운을 다시 끌어 올려 황금빛을 더하며 마선에게 물었다.

“옳다. 아주 오래 전엔 천겁이 번개 이외에도 여러 형태로 내렸다고 한다. 그 중에 독의 형태였던 것이 천겁독이다. 하지만 천겁독은 그 폐해(弊害)가 너무 커서 어느 때부터는 내리지 않게 되었지.”

“폐해가 크다니요?”

“번개는 내리쳐 대상을 치고 나면 끝이지만 독은 그 이후로도 계속 남는 것이 아니더냐. 지금 나타난 것처럼 천겁독이 의외의 용도로 쓰이기도 하고.”

“아!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건우는 쉽게 납득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지속성의 문제였던 것이다.

“어쨌거나 이 수도계에서도 이미 아는 이도 거의 없을 정도로 오래 전에 사라졌던 천겁독을 괴뢰선 네가 숨기고 있었더란 말이냐?”

마선이 건우를 무시하고 괴뢰선을 노려보며 물었다.

그는 당장이라도 괴뢰선을 때려죽일 듯이 사나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감당하기 어려운 흉기를 들고 있는 이를 곁에 두기 꺼려하는 태도가 분명히 드러나 있었다.

아니, 여차하면 그 흉기를 든 놈을 죽이는 것이 낫다고 여기는 모습이었다.

“믿지 않으시겠지만 제가 가진 천겁독은 이제 없습니다.”

괴뢰선이 까맣게 그을린 얼굴로 마선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그렇게 말했다.

마선은 그 말에 살짝 망설이는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돌려 갈편주에게 시선을 주었다.

갈편주는 여전히 뜻 모를 눈빛으로 괴뢰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그가 검선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내가 수세에 몰리긴 했군. 그래서 어쩔까? 계속 끝장을 볼까?”

그리고 그렇게 검선에게 물었다.

“그리 말씀을 하시니 도리어 무섭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겁난다고 물러나긴 아쉽군요.”

검선이 무슨 이윤지 꺼려하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기기현문의 보고를 열어 주겠다. 원하는 것을 하나씩 취해서 물러가라. 그리 하겠다면 싸움을 예서 멈추겠다.”

그러자 갈편주가 지금까지와는 달리 몇 걸음 양보한 협상을 제안했다.

그 말에 검선과 마선이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한동안 뭔가 의논을 나누었다.

그 모습을 보는 건우는 상황이 어찌 돌아가는 것인지 좀처럼 판단이 서지 않았다.

갑자기 약한 모습을 보이는 갈편주는 천겁독에 당해서 그렇다고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상황이라면 당연히 갈편주를 몰아붙여 끝장을 봐야 하는 것이 수도계의 이치가 아닌가.

굳이 그와 협상을 할 이유가 있을까 싶었다.

‘그게 아닐 수도 있지. 정말로 태령기 중기의 저 갈편주란 수사와 싸웠을 때, 그 피해가 생각보다 클 수도 있어. 앞에 당연히 이길 거라고 큰소리쳤던 것도 결국은 공염불에 불과했다면? 그럼 이렇게 협상을 하는 것도 이해가 되는 건가?’

그리 생각을 해 보지만 그래도 뭔가 석연찮았다.

그런 중에 검선과 마선이 의견을 모았는지 검선이 앞으로 몇 걸음 나서며 말했다.

“좋습니다. 갈 수사께서 그리 양보를 해 주신다면 당연히 저나 마선도 받아들여야지요. 기기현문의 보물창고를 열어주신다 했으니 그럼 어디 구경이나 해 보지요.”

“그럴 것 없다. 여기 창고의 목록이 있으니 그 중에 원하는 것을 말하거라. 그러면 곧바로 내어 줄 것인 즉.”

갈편주는 말과 함께 허공을 더듬어 멀리 기기현문의 본원에서 옥간 하나를 불러와 검선에게 던졌다.

갈편주가 약한 모습을 보이며 협상을 제안했고, 검선이 그것을 받아들인 모양새지만 갈편주 역시 완전히 굴복하고 양보하는 것은 아니었다.

따져 보자면 지금 갈편주가 던진 옥간에 기기현문의 진짜 보물이 빠져 있지 않을 거라고 어찌 확신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검선은 옥간의 내용을 살피고는 말없이 마선에게 그것을 내밀었다.

그리고 그 후엔 다시 괴뢰선을 거쳐서 건우에게까지 옥간이 넘어왔다.

건우는 옥간의 내용을 살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귀한 보물들의 목록이긴 했지만 고대 거대 문파의 보고에 있는 것이라 보기엔 급이 많이 떨어졌던 것이다.

그래도 기기현문의 금제 공간에 들어오면서 건우가 얻고자 했던 전광석이 목록에 들어 있기는 했다.

그것을 취하면 목적을 달성했다 할 수 있으니 손해는 아닐 것이다.

“이상하게 생각할 것 없다. 네 수준이 고작 성령기 초기에 불과하니 그에 맞춰서 보고의 목록이 드러나는 것일 뿐이다.”

건우가 의아해할 것을 짐작했는지 검선이 건우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 말에 건우는 얼굴을 붉히며 다시 옥간의 내용을 세심하게 살폈다.

그러자 옥간에 걸린 금제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다.

의념은 물론이고 권능과 영기의 수준에 따라서 옥간에 기록된 내용이 드러나게 되어 있었다.

게다가 그 외에도 특정한 공법에 반응하여 드러나는 내용도 있는 모양이었다.

“너희는 원하는 것을 모두 정했느냐?”

건우가 다시 옥간을 살피며 거기에 걸린 금제를 풀고 내용을 살피려 할 때, 검선이 그와 괴뢰선을 보며 물었다.

결국 옥간의 내용을 다시 살필 시간 여유가 없게 되었다.

“저도 하나를 택할 수 있다면 전광석을 얻고 싶습니다.”

건우는 머뭇거리지 않고 곧바로 원하는 것을 답했다.

그럴 일이야 없겠지만 혹시라도 괴뢰선이 먼저 전광석을 택하면 곤란해질 것이니 선수를 친 것이다.

물론 괴뢰선은 전광석 보다는 혼원석을 택할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지만.

“혼원석이 여럿 있는 것 같으니 그 중에서도 선계급의 혼원석을 원합니다.”

그리고 건우의 대답에 이어진 괴뢰선의 선택은 그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다만 그 괴뢰선이 선택한 등급의 혼원석이 건우가 읽은 옥간의 내용에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 건우의 심기를 건드렸다.

결국 같은 옥간에서 괴뢰선이 자신보다 더 많은 내용을 읽었다는 것이고, 그것은 객관적인 평가로 자신이 괴뢰선보다 못하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비록 옥간에 걸린 금제로 서로를 비교한 것이지만 어쨌거나 이곳에 있는 다섯 수사 중에 자신이 제일 못난이가 된 것이라 속이 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나는······.”

이어서 마선이 갈편주에게 뭐라 이야기를 했지만 건우나 괴뢰선은 들을 수가 없었다.

그것은 검선의 선택 역시 마찬가지였다.

검선과 마선이 갈편주에게 무엇을 요구했는지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역시! 오래 묵은 노괴들이라 그런지 일을 허투루 하는 법이 없구나. 저렇듯이 자신들의 정보를 숨기는 것이 일상적이라니.’

건우는 그런 두 수사의 모습에 새삼 깨달음을 얻었다.

자신이 숨기려 해도 갈편주나 검선, 마선이 불쾌히 여기면 문제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시도를 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런 발상조차 하지 못했다는 것은 반성해야 할 일이라 생각했다.

“자, 그럼 모두 원하는 것을 얻었으니 이만 물러나라. 이제부터 이곳 금제 공간을 닫아걸고 기기현문은 다시 오래도록 봉문을 할 것인 즉.”

갈편주는 시간을 끌지 않았다.

마선과 검선의 요구까지 들은 후 그는 곧바로 본원으로부터 네 개의 옥함을 불러와 각자에게 밀어주었다.

건우가 받은 옥함에는 상급의 전광석이 들어 있었다.

상급 전광석이면 능히 대성과 대성 사이를 건너뛸 수 있는 전송진을 만들 수 있는 수준이었다.

건우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고, 괴뢰선이나 검선, 마선도 함을 확인하여 소매에 넣고는 곧바로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너희도 어서 따르거라.”

그리고 그 둘은 각각 의념을 떨쳐 건우와 괴뢰선을 하나씩 붙들고는 몸을 날렸다.

둔술을 펼치는 것도 아니고 그저 비행 술법을 쓸 뿐인데도 그 속도가 워낙 빨라 넷은 오래지 않아서 금제 공간과 외부가 연결되는 입구를 지날 수 있었다.

그렇게 네 사람이 금제 공간을 나서자 곧바로 입구가 하나의 점으로 수렴되더니 씻은 듯이 사라졌다.

“으음. 이젠 어디에 기기현문의 금제 공간이 있는지 알 수가 없군. 깔끔하게 외부와의 접점을 지워버렸어.”

조금 전까지 입구가 있던 곳을 아무리 파헤쳐봐야 다시 기기현문의 금제 공간을 찾을 수는 없다.

이미 기기현문의 금제 공간과 현실 공간의 연결점은 끊어지고 없는 것이다.

다시 금제의 힘이 약해지거나 의도적으로 금제를 비틀어 외부와 연결하기 전까지는 밖에서 기기현문의 금제 공간을 찾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 될 것이다.

건우가 그런 생각을 하며 입구가 사라진 허공을 살피고 있을 때였다.

“자, 그럼 이제는 우리 일을 봐야 할 때가 되었군.”

검선이 건우를 향해 강력한 기세를 떨쳐 그를 찍어 누르며 말했다.

건우는 갑작스러운 압력에 짓눌려 발목까지 땅에 묻혀 버렸다.

그 모습에 조금씩 몸을 회복하고 있던 괴뢰선이 깜짝 놀라 건우와 검선을 번갈아 바라보며 어쩔 줄 모르는 표정을 지었다.

***

“끄으응! 천겁(天劫)의 독(毒). 과연 대단하군.”

갈편주는 기기현문의 본원, 거대한 대전의 문주 태사의에 홀로 앉아서 신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영족, 그것도 무생물인 대들보에서 태어난 갈편주는 독에 대한 내성이 강한 편에 속한다.

하지만 그런 그도 천겁독 앞에서는 무력하기 짝이 없었다.

애초에 영족이 된다는 것이 하나의 새로운 종족으로 생명을 얻은 것이라 무생물체가 아닌 생명체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 놈들, 내가 천겁독을 뿌리고 함께 죽자고 할까봐 겁이 나서 물러난 것이지. 크크크. 따지고 보면 독을 맞기 전의 나보다 독에 중독된 내가 더 무서웠겠지.”

그것이 오래 전에 천겁의 종류 중에 독(毒)이 빠진 이유였다.

천겁독으로 천겁의 대상이 죽은 후에도 독은 여전히 남아서 다른 피해를 양산해 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와 비슷하게 천겁독에 중독된 갈편주가 그 독기를 뿌리며 싸운다면 검선이나 마선도 중독될 가능성이 높았다.

검선과 마선도 그것을 우려하여 적당히 타협하고 물러난 것이다.

갈편주가 던진 옥간에서 보상을 선택하는 것을 받아들인 것도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봐야 했다.

자칫 이의를 제기하다가 갈편주와 끝까지 싸우게 되는 것은 곤란했을 테니까.

“으음.”

딱!

갈편주가 다시 한번 신음소리를 내더니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대전의 중앙 공간이 일그러지더니 그 안에서 한 사람이 튕겨져 나왔다.

우당탕탕!

마치 내던져진 듯 대전 바닥을 나뒹군 것은 다름 아닌 종선생이었다.

“어, 어르신!”

종선생은 끌려 나오자마자 곧바로 대전 바닥에 엎드렸다.

“놈, 용케도 지금껏 숨어 있었구나.”

“요, 용서해 주십시오. 어르신.”

“되었다. 이미 우리 기기현문은 다시 외부와 단절된 상태, 네가 아무리 재주를 부려봐야 밖으로 나갈 수도 없을 것이니라.”

“네? 네. 네.”

“그러니 너는 앞으로 내 수발을 들도록 하거라. 어차피 이 넓은 곳에 수사라곤 너와 나 밖에 없으니 부려 먹을 놈이 없어 살려 주는 것이다.”

“네? 아, 알겠습니다. 주인님.”

“주인이라 부르지 말고 문주라 불러라!”

“네 넵. 문주님.”

“쿨럭, 그래. 그러하면 된다. 그런데 너··· 에이, 혼원석이 한계로구나?”

갈편주는 어렵지 않게 종선생의 상태를 알아봤다.

“송구합니다. 어르신.”

종선생이 부끄럽다는 듯이 고개를 바닥에 처박았다.

“되었다. 보고에 괜찮은 혼원석이 몇 있을 것이니, 네 하는 꼴을 봐서 내어 주던지 하겠다. 무슨 뜻인지 알아 듣느냐?”

“가, 감사합니다. 문주님을 위해서 머리털을 뽑아 신을 삼으라 해도 삼겠습니다.”

“쯧, 말로야 무엇을 못 할까. 어차피 오래도록 함께해야 할 테니, 어디 두고 보자꾸나.”

갈편주는 대전에 엎드린 종선생을 못미더운 눈빛으로 바라봤다.

일이 다급하여, 일단 기기현문을 외부와 단절시키고 보니, 그 혼자만 덩그러니 남게 되었다.

그런데 다행히 기관 진법에 갇혀 있던 놈들 중에 명이 질긴 놈이 하나 있었다.

그래서 재빨리 꺼내 온 놈이 바로 눈앞에 있는 입령기 초기의 괴뢰다.

앞서 봤던 괴뢰선이란 놈과 연관이 있는 놈이지만 이미 이곳이 외부와 단절되면서 그 연계는 끊어진 후였다.

그렇다면 이제 갈편주 자신의 후사를 맡기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문파의 문주가 되었으니 제자도 거두어야 하지 않겠나.

‘죽기 전에.’

갈편주는 그런 생각을 하며 지그시 눈을 감았다.

< 괴뢰선의 천겁독이 싸움을 매조지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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