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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편주와 싸우다 >
“이리 싸우게 되었더라도 자기소개는 하심이 어떠십니까? 우리는 이미 검선과 마선이라 소개를 했습니다만.”
“흥, 갈편주라 한다.”
“아, 갈 수사셨습니까. 그런데 여기서 적당히 서로 물러나는 것도 한 방법이라 생각하는데 갈 수사께서는 그럴 생각이 없으십니까?”
검선이 싸움이 시작되기 전에 우선 갈편주와 대화의 물꼬를 텄다.
그는 될 수 있으면 싸우지 않고 서로 적당히 타협하는 쪽을 택하고 싶었다.
“나 역시 너희가 적당히 보상만 한다면 이대로 너희를 보내 줄 생각이 없지는 않다.”
그런데 갈편주의 대답은 검선이 생각한 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뭐라? 곧 죽을 놈이 욕심만 많구나. 네가 우리와 싸워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느냐?”
곧바로 마선이 검선의 마음을 대변하듯 고함을 질렀다.
그와 동시에 마선의 검은 마기가 요동쳤다.
그 모습에 갈편주가 수인을 맺으며 그 검은 마기를 가리켰다.
푸홧!
“어엇?”
그 순간 마선이 뿜어낸 마기의 일부가 굳어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물질도 아닌 기운인 마기를 굳게 만들어 바닥으로 떨어뜨리는 모습에 마선도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신묘한 법칙의 힘이 깃들어 있는 듯합니다. 대단합니다.”
그 모습에 검선이 굳은 표정으로 갈편주를 보며 검을 들었다.
검선이 든 검은 평범한 장검에 불과했는데, 건우는 그 검에 엄청난 수의 검이 중첩되어 있음을 알아보았다.
적어도 수 천 개의 검이 중첩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검에서 뭔가 알지 못할 흐름이 느껴졌다.
그 순간 갈편주가 흠칫한 표정을 지으며 허공을 향해 손가락을 뻗었다.
파지지직! 콰자자작!
“으음.”
“역시!”
그리고 그 허공에서 뭔지 모를 충돌이 일어나며 공간이 무너지고 구겨지는 현상이 짧게 일어났다.
그 작은 충돌 직후 검선은 신음소리를 냈고 갈편주는 탄성을 질렀다.
“고작 태령기 초기에 불과한데 벌써 법칙의 힘을 다뤄?”
그리고 갈편주가 놀란 눈빛으로 검선을 노려보며 말했다.
그 모습에 곁에 있던 마선 역시 의외의 눈빛으로 검선을 보고 있었다.
“운이 좋았습니다. 익히고 있는 공법이 뛰어난 것이라 운 좋게 벌써 법칙의 한 자락을 움켜쥐었지요. 하지만 그 때문에 더욱 승경의 벽이 두꺼워져 애를 먹고 있습니다. 좋은 것이 있으면 나쁜 것도 있는 법이지요.”
검선은 담담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그가 태령기 초기의 경지에 벌써 법칙의 힘을 미약하게나마 깨우친 것은 그가 익히고 있는 검공법 덕분이었다.
하지만 그의 말처럼 뛰어난 공법이기는 하지만 대신에 수련 성취가 느려서 태령기 초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봐야 네 법칙의 힘은 미약하기 짝이 없다. 나에 비할 바가 아니지.”
그런 검선의 말에 갈편주가 애써 비웃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이곳에 저만 있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저기 괴뢰 두 마리도 미약하지만 법칙의 힘을 가지고 있고, 여기 마선은 굳이 법칙의 힘이 아니어도 충분히 강력한 파괴력을 지녔습니다.”
이에 검선 역시 지지 않고 갈편주를 몰아붙였다.
아직 본격적으로 싸움을 시작하지 않은 상태에서 어떻게든 세를 과시하고 자신들의 유리함을 내세우려는 모습이 역력했다.
‘저 갈 수사라는 이나 검선이나 모두 전면전은 꺼려하는군. 어떻게든 협상을 해 보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
건우는 그렇게 둘의 속내를 짐작했다.
그는 돌아가는 상황을 살피고 있을 뿐, 앞으로 나서서 태령기 수사들의 이야기에 낄 생각은 하지 않았다.
지금 자신이 이곳에 있는 다섯 중에서 가장 약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괴뢰선만 하더라도 분명히 숨겨 놓은 수가 있었을 것이다.
검선과 마선이 나타나기 직전에 괴뢰선이 뭔가 하려고 했음을 건우는 뒤늦게나마 알아차렸다.
분명 갈편주에게 한 방 먹일 수단 하나는 가지고 있을 듯했다.
그리고 그 한 방의 수단은 다르게 쓰이면 건우나 검선, 마선에게도 효과가 있는 것일 터였다.
‘이래서 수사들 사이에선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니까.’
건우가 내심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건우가 돌아가는 상황을 살피고 있을 때였다.
검선이 갈편주를 향해 검을 슬쩍 떨치며 말했다.
“갈 수사께서 우리 모두를 감당할 수 없음을 진정 모른단 말입니까?”
그러자 갈편주도 여유로운 표정으로 허공에 손짓을 하며 답했다.
“끄트머리만 보이는 밧줄의 어느 것이 길고 어느 것이 짧을지는 모두 당겨 봐야 알 일이지.”
콰지지지직! 서거걱! 콰직!
갈편주의 대꾸와 함께 허공에서 다시 한번 강력한 힘의 충돌이 벌어졌다.
건우는 그것이 검선과 갈편주가 사용한 법칙의 힘에 의한 것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법칙의 힘은 알아차리기도 쉽지 않군. 갱과 굴이 사용하는 법칙의 힘이나 내가 가진 법장두에 깃든 힘은 그야말로 편린에 불과했을 뿐이야. 제대로 된 법칙은 내 깜냥으로 어찌할 수 있는 것이 절대 아니야.’
건우는 갈편주와 검선이 가볍게 주고받는 공격과 방어를 보며 그것을 절실하게 깨달았다.
그리고 자신의 아공간도 권능이라면 모를까 법칙까지는 절대 피할 수 없을 것임을 짐작했다.
“정히 그렇다면 어디 한 번 끝장을 보자꾸나!”
검선과 갈편주가 가벼운 움직임으로 법칙의 힘을 겨루는 모습에 지금껏 언행을 삼가고 있던 마선이 나섰다.
그는 검선이 벌써 법칙의 힘을 쓰는 것에 충격을 받았고, 자신이 검선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비록 법칙의 힘에는 아직 이르지 못했지만 자신 역시 이번에 공법의 미약한 흠을 채워 넣었다.
그렇게 완성된 공법은 오래지 않아서 마선 자신에게도 법칙의 힘을 쥐어 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 법칙의 힘을 얻지 못한 지금이라고 자신이 얕잡힐 수는 없었다.
그것은 마선이 버리고 싶지 않은 자부심 같은 것이었다.
푸화화화화화홧! 고오오오오!
마선의 몸에서 암흑의 마기가 뿜어져 나와 커다란 마귀상 하나를 만들었다.
네 개의 팔에 각각 검과 창과 방패와 곤봉을 든 마귀상은 찢어진 입 위로 코와 눈이 있어야 할 부분은 완성되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래서 마귀의 얼굴이 어떤 모습인지는 알아볼 수가 없었다.
그 마귀상은 마선의 머리 위에서 갈편주를 노려보며 찢어진 입을 벌려 고함을 질렀다.
하지만 마귀의 고함소리는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고 갈편주에게만 들렸다.
“흐음!”
갈편주는 검선과 법칙의 힘을 주고받느라 마선의 공격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낮은 신음 소리를 냈다.
하지만 제대로 막지 못했음에도 마선의 공격은 갈편주에게 큰 상처를 주지는 못했다.
“여유가 넘치십니다. 어찌 그리 보신에 신경을 쓰시는지, 저와 싸우면서도 방어에 더 힘을 쏟으시다니요.”
그런 갈편주의 모습에 검선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말했다.
그의 말처럼 갈편주는 처음부터 공격보다는 방어에 더 많은 힘을 쏟고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갈편주의 몸에는 그가 깨달은 법칙의 힘이 호신강기처럼 둘러쳐져 있었다.
마선의 공격이 그에게 큰 타격을 주지 못했던 것엔 그런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너희는 뭘 하는 것이냐? 어서 나서지 못하겠느냐?”
그때, 마선이 문득 괴뢰선과 건우를 향해 고함을 질렀다.
강 건너 불구경하듯 물러나 있던 괴뢰선과 건우가 그 고함에 화들짝 놀라 검선과 마선을 바라봤다.
“너희를 살리자고 우리가 나선 것인데, 너희가 눈치를 살피고 있으면 되겠느냐? 그저 너희가 도망갈 틈만 만들어 주려 했으나 저 갈 수사가 저리 패악을 부리니 어쩔 수 없이 끝장을 봐야 할 형편이 되지 않았느냐!”
그에 검선 역시 괴뢰선과 건우를 보며 그렇게 말했다.
이젠 기회를 봐서 몸을 빼 싸움을 피하는 선택지는 없다는 이야기였다.
쿠아아아앙! 스츠츠츠츠츳!
검선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괴뢰선이 갱과 굴을 움직였다.
건우 역시 여전히 아공간 현실 구현을 유지하며 의념을 집중하여 갈편주를 향해 삼백육십성광검을 내질렀다.
아직까지 백팔십개의 검을 한 번에 운용하는 경지밖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아공간 현실 구현의 영역에서 그 공격은 완전한 권능의 힘과 같았다.
“반드시 죽여주마. 네 고집을 원망하거라!”
이에 마선 역시 거대한 마귀상을 움직여 갈편주를 향해 농도 짙은 마기를 쏟아냈다.
그 역시 권능에 속하는 힘이었다.
“이, 이 놈들이!”
갈편주는 그렇게 네 수사의 협공을 받게 되자 얼굴이 붉어지며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다른 것도 그렇지만 어찌 성령기 따위가 자신에게 죽자고 달려든단 말인가.
갈편주가 건우와 괴뢰선을 노려보았다.
콰직! 서걱! 콰당탕!
하지만 그 순간 발현된 법칙의 힘은 검선의 힘에 차단되고 말았다.
뭔가 뭉개지고 잘리고 떨어져 뒹구는 소리가 이어졌다.
“절(切)? 네 법칙이 그것이구나?”
“갈 수사의 법칙은 정의하기가 어렵습니다만, 따지자면 굳히는(塑性) 것입니까?”
갈편주와 검선이 거의 동시에 상대가 사용하는 법칙의 종류를 알아차린 듯이 그렇게 서로 물었다.
“옳습니다. 갈 수사께서 잘 보셨습니다. 후배가 검을 쓰다 보니 결국 자르는 것에 대해서 약간의 깨달음을 얻었지요.”
검선은 자신의 힘을 알아봐 주는 갈편주의 물음이 반가운 듯이 그렇게 대답했다.
하지만 그와 달리 갈편주는 갱과 굴은 물론이고 마선과 건우의 공격까지 신경을 써야 하는 상황이라 여유롭게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그 어느 공격도 무시할 수준은 절대 아니었으니 일일이 반응을 해 줘야 하는 판이었다.
콰득! 콰직! 쿠구구구국!
갈편주를 중심으로 허공에서 갖가지 기음이 터져 나왔다.
건우는 자신이 날린 검들이 갈편주의 몸에 이르지 못하고 뭉개지며 덩어리져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성광(星光)과 영기로 이루어진 검이 갈편주의 근처에 이르러서는 덩어리져 굳은 상태로 건우의 의념을 벗어나는 것이다.
“이런!”
건우는 저도 모르게 그나마 멀쩡한 검들을 급히 회수했다.
지금 한 번의 공격으로 백여 개의 성광검이 빛을 잃고 잠들어 버렸다.
비록 완전히 파괴된 것은 아니지만 다시 원기를 회복하고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오려면 적잖은 시간과 공이 필요하게 되었다.
크와와와왕! 츠츠츠츳!
그것은 갱과 굴도 마찬가지였다.
갱은 오른쪽 발의 발톱을 두 개나 잃었고, 굴은 아예 한쪽 발이 뭉개졌다.
그나마 마선은 직접 피해를 입지는 않았지만 마귀상 여기저기에 구멍이 나 있었다.
“대단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봐야 갈 수사에게 유리할 것은 없지요.”
하지만 마선을 비롯한 세 수사가 그렇게 갈편주를 상대하는 동안에 검선은 원하던 것을 충분히 얻어냈다.
검선에게 필요했던 아주 작은 틈, 그것이 생각보다 크게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검선은 따로 경고하지 않고 검을 매섭게 휘둘렀다.
그러자 그의 상하좌우로 수십 개의 검이 나타나 곧바로 갈편주를 향해 날아갔다.
“어어? 으음!”
갈편주가 날아오는 검들을 보며 놀라다가 암담한 표정을 지었다.
검선의 검 하나하나가 모두 법칙의 힘을 담고 있었는데 갈편주는 그것을 모두 막을 법칙의 힘을 펼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갈편주는 순식간에 수세에 몰리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으드드득! 감히!”
하지만 갈편주에게도 비장의 한 수는 있었다.
그는 어금니를 갈아붙이며 이마를 두드려 위패를 닮은 금속 패 하나를 불러냈다.
그리고 그 패에 의념을 불어 넣어 기기현문의 기관 진법을 발동시켰다.
“죽어봐라!”
콰과과과과광! 콰과과과과광!
콰드드드득! 서걱! 서걱! 푸욱!
갈편주가 기관 진법을 발동시키자 주위를 감싸고 있던 온갖 진법에서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변화가 일어나 검선의 검들을 막아섰다.
법칙의 힘에 비할 수 없는 힘이지만 권능에 비견될 힘이었다.
그것들이 개미가 모여 코끼리를 해체하듯 검선의 검을 조금씩 늦췄다.
모든 것을 잘라버리는 법칙의 힘이지만 아직은 완성되지 못한 흉내일 뿐.
결국 기관 진법의 힘을 가르고 자를 때마다 법칙의 힘은 약해져 갈편주에게 닿은 것은 그 어깨를 찌른 하나뿐이었다.
“하아아아아압!”
쩌저저저저저정! 콰르르르릉!
“타아아앗!”
휘리리릭 스스스슷! 퍼버버벙!
마선이 급히 마귀상을 불러들여 기기현문의 기관 진법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했다.
건우 역시 기합성을 높이며 금강패갑공을 극성으로 끌어 올려 황금빛 갑옷을 두르고 팔뚝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렇게 둘이 갈편주의 반격을 겨우겨우 버틸 때였다.
문득 괴뢰선의 두 눈에 보랏빛 광채가 어리더니 일순간 짙은 녹색의 빛이 갈편주를 향해 날아갔다.
그리고 그 빛은 갈편주의 몸에 닿았다 싶은 순간 일순 허무하게 흩어져 버렸다.
그렇게 한바탕 격돌이 마무리되었다.
“······.”
갈편주와 맞선 검선, 마선, 건우, 괴뢰선이 모두 한 폭에 그려진 그림처럼 멈춰서 서로를 노려봤다.
< 갈편주와 싸우다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