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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둥 조각에서 태어난 갈편주 >
갈편주(乫片柱)는 영족 수사로 오래 묵은 건물의 기둥에서 태어났다.
원래 그 기둥이 떠받치고 있던 건물은 홍애지에서도 이름 높은 거대 수도 문파의 종주가 거처하는 곳이었다.
갈편주는 그 종주의 수련에 영향을 받아 태어난 것이다.
이후 그 종주는 선계 등선까지 성공했고, 또 그 때에도 갈편주가 떠받치던 건물에서 등선이 이루어졌으므로 갈편주가 그 혜택을 많이 받았다.
원래 건물의 기둥, 그것도 일부의 조각에서 영족이 탄생하는 것은 극히 어려운 일이지만 진선이 된 수사의 수련과 그 기운이 기적을 부른 것이다.
하지만 그 종주가 등선한 이후 갈편주의 존재를 알아차린 그 수도 문파의 고계 수사들이 갈편주를 마땅치 않게 생각하면서 문제가 생겼다.
갈편주는 태생이 그러해선지 문파를 떠받치는 기둥으로 우뚝 서고자 하는 욕망이 있었다.
그것은 갈편주의 정체성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런 갈편주가 끝내 문파에서 축출당하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이것이 갈편주의 성향을 완전히 바꾸어 놓는 계기가 되고 말았다.
스스로 하나의 기둥이 되고자 했던 갈편주는 결국 자신은 기둥에서 떨어져 나온 조각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스스로의 정체성을 재정립한 갈편주는 온전치 못한 자신을 완성하는 것을 수련의 목표로 두었고, 그 궁극은 스스로 하나의 수도 문파가 되는 것으로 정했다.
그렇게 오랜 세월이 흐르고 갈편주가 태어났던 거대 수도 문파도 세파에 휩쓸려 무너졌지만 그들과 연을 끊은 갈편주는 꾸준히 경지가 올라 결국 태령기 중기까지 이르렀다.
이즈음 갈편주가 새로운 기연을 만났는데 그것이 바로 기기현문의 장문령주였다.
문파의 문주 신분을 나타내는 그 장문령주에는 기기현문의 기관 진법을 통제하는 비법이 들어 있었다.
그 외에도 여러 내용이 들어 있었지만 워낙 오래 되어 세월의 흐름에 씻겨 나가고 남은 것이 별로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장문령주는 갈편주의 입장에선 더할 나위 없이 맞춤한 보물이었다.
그가 일생을 두고 꿈꾸던 문파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도 그랬고, 태생이 기둥에서 시작한 그에게 기관 진법은 딱 맞는 성향이기도 했다.
건물과 기계 장치, 법기, 진법의 결합.
기둥에서 태어난 그에게 이보다 더 어울리는 수련법이 어디에 있을까.
장문령부를 얻은 그 때부터 갈편주는 기기현문을 찾기 위해 홍애지를 떠돌았다.
하지만 운이 없었는지 기기현문의 금제 공간이 다른 수사들에 의해서 발견되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그로부터 수많은 수사들이 기기현문의 금제 공간으로 몰리니 갈편주가 손을 쓰기 어려운 상황이 되고 말았다.
대부분의 시간을 홀로 수련하며 보낸 갈편주로선 기기현문의 금제 공간을 손에 넣을 수단이 마땅치 않았던 것이다.
‘마침 화신기 괴뢰심 1만 개를 얻을 기회가 생긴 것은 일생일대의 행운이었지.’
갈편주는 작은 석실 공간에 앉아서 몇 개의 거울로 기기현문의 금제 공간을 살피며 홀로 중얼거렸다.
그의 앞에 떠 있는 거울들은 기기현문의 기관 진법을 뚫고 있는 수사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는데, 이제 남은 것은 무리는 고작 셋 뿐이었다.
얼마 전에 태령기 초기의 수사 하나가 갈편주가 발동시킨 기관 진법의 함정에 걸려서 영혼까지 녹아 사라졌다.
그 함정은 장문령부에서 어렵게 복원한 기록 중에서 찾은 기관 진법의 함정이었는데 마침 근처에 그 태령기 수사가 있어서 그리 끌어들여 끝장을 본 것이다.
사실 갈편주는 그 일을 처리하고 잠시 휴식을 취하는 중이었다.
이제 다시 남은 무리를 정리해야 할 것이다.
남은 것은 세 무리였는데, 잘 하면 오래지 않아서 두 무리는 크게 애쓰지 않아도 공략을 포기하고 물러날 듯 했다.
그 두 무리가 모두 태령기 수사들인 것은 예상치 못했지만 의외로 성령기 수사 둘이 모인 쪽이 공략에 제일 빠르니 그 쪽이 끝까지 남는 것이 갈편주로선 제일 좋은 결과였다.
원하는 것을 얻은 이후에 정리를 하기에도 태령기 보다는 성령기가 수월할 테고.
‘괴뢰심 1만 개를 얻고도 그것들을 다시 괴뢰로 만드는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지.’
갈편주가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그것이 아니었다면 기기현문의 금제 공간은 벌써 오래전에 갈편주의 손에 들어왔을 것이다.
게다가 공략을 이렇게 늦게 시작하지 않았다면 굳이 다른 수사들이 뚫어 놓은 길을 탐낼 일도 없었을 것이다.
스스로 그 정도 역량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뒤늦게 도착해서 보니 기기현문의 본원 가까운 곳까지 길이 뚫려 있었다.
그런 마당에 굳이 자신이 새로 길을 뚫느라 고생할 이유가 어디 있단 말인가.
게다가 감히 자신의 문파를 허락도 없이 침입한 이들을 징치하는데 거리낄 이유도 없고.
그렇게 갈편주의 1만 괴뢰를 동원한 토벌 겸 통로 개척이 벌어졌다.
‘장문령부의 내용이 많이 지워져서 본원까지 이르는 기관 진법의 해법을 알지 못하는 것이 아쉽기는 하지. 그게 아니었다면 이미 본원에 들어가 모든 기관 진법을 장악하고 침입자 놈들을 단숨에 제압할 수 있었을 텐데.’
갈편주는 내심 그렇게 투덜거리며 다시 몸을 일으켰다.
또 다른 침입자 놈들을 처리하기 위해서였다.
* * *
“어르신께서 기기현문의 문도라 하셨습니까?”
괴뢰선이 앞으로 나서며 허공을 향해 물었다.
“정확하게는 내가 기기현문의 당대 문주이니라.”
목소리의 주인이 당당한 음성으로 기기현문의 주인을 자처했다.
그 말을 듣는 건우와 괴뢰선은 어이가 없었다.
기기현문에 어찌 당대 문주가 있을 수 있다는 말인가.
역사 기록에서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오래 전부터 종적이 사라졌으며 금제 공간 안에도 인적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당대 문주가 등장하다니.
“그러하면 어찌 어르신께선 낯선 이들이 문파에 들어와 난장판을 만드는데 지금까지 지켜만 보고 있었단 말입니까.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아닙니까.”
“하하하. 네가 이해를 하거나 말거나 그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란 말이냐.”
“그, 그건······.”
“내가 기기현문의 장문령부를 얻어 스스로 기기현문의 문주임을 자처하지만 그것을 너희가 받아들일 거라 생각지 않는다. 내가 진정 기기현문의 주인이라도 힘이 없으면 무슨 소용이겠느냐?”
건우는 허공에서 들려오는 음성을 들으며 약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태령기로 짐작되는 저 수사가 기기현문의 문주거나 아니거나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지금 중요한 것은 목소리의 주인과 싸워서 이길 수 있느냐 하는 문제였다.
이길 수 있다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고, 그렇지 못하다면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울 수도 있었다.
건우와 괴뢰선이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좋습니다. 어르신. 어르신께서 이곳 기기현문의 문주라 하시니 저희 후배들에게 원하는 것이 있으십니까?”
괴뢰선이 한 걸음 양보하는 태도로 물었다.
원하는 바를 들어보고 협상을 할 의향이 있음을 드러낸 것이다.
“이미 다른 놈들은 꽁지를 빼고 도망을 쳤다. 그 중에 하나는 영혼도 남기지 못하고 죽었고.”
“으음.”
“그런······.”
“태령기 놈들도 그러했는데 너희라고 다를 것 같으냐? 그런 상황에서 너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뭐가 있겠느냐?”
“그냥 곱게 금제 공간을 떠나라는 말씀입니까?”
“그 정도로는 부족하겠지. 너는 거기 있는 두 마리의 괴뢰를 남기고 가고, 거기 어린 놈, 너는 손에 들고 있는 검을 놓고 가거라.”
괴뢰선이 조심스럽게 목소리의 주인에게 뜻을 물었는데 돌아오는 대답은 난처하기 짝이 없었다.
괴뢰선에겐 갱과 굴을 내어 놓으라 했고, 건우에겐 삼백육십성광검을 내어 놓으라 했다.
이는 목소리의 주인이 둘의 모습을 오래도록 살펴 귀한 것을 추려 냈음을 의미했다.
- 어찌하면 좋겠소?
- 저 자의 말이 모두 사실인지 어찌 믿을 수 있다는 말입니까?
- 그럼 괴뢰선께선 저 자와 맞서 싸우자는 말씀입니까? 괴뢰 1만을 거느렸을 텐데요?
- 어차피 기관 진법의 공간이 좁아서 그만한 괴뢰를 몰아넣지도 못합니다. 결국은 저 자와 우리 둘의 싸움이 되지 않겠습니까. 갱과 굴이 있으니 해 봄직 하다고 봅니다만.
- 하지만 태령기 수사가 아닙니까. 승산이 있겠습니까.
- 여기는 저와 같이 생기가 없는 수사들에게 유리한 곳입니다. 그렇지 않은 수사라면 태령기라 하더라도 성령기 이상의 힘을 내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지금껏 다른 태령기 수사들이 우리와 직접 싸우지 않은 것이 아닙니까.
- 그러니 상대가 태령기라 해도 싸워볼만 하다고 하시는 겁니까? 하지만 상대 역시 생기를 지닌 수사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걸 잊으셨습니까?
- 그렇다면 저리 나왔겠습니까? 능히 우리를 어찌할 능력이 있었다면 굳이 이리 우리에게 기회를 주려 하지 않았을 겁니다.
괴뢰선은 상대가 자신들에게 선택의 여지를 준 것에 주목했다.
상대 역시 자신들을 부담스러워 하기 때문이라고 착각한 것이다.
갈편주는 그저 성령기 수사들이 자신이 뚫어야 할 기관 진법을 처리해 준 것을 가상히 여겨 목숨만은 부지해 주려 한 것인데, 그걸 곡해해버렸다.
- 으음. 솔직히 저도 제 검을 바치기는 싫습니다. 괴뢰선께서 싸움을 각오하셨다면 역시 이번에도 저는 최선을 다해서 조력하겠습니다.
건우는 결국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그런 건우의 결정에 괴뢰선의 표정이 확 밝아졌다.
혼자 보다는 둘이 나은 것은 자명한 일이다.
“어르신, 너무 과한 요구를 하시는 것이 아니십니까. 어찌 후배의 보물을 그리 요구하실 수가 있단 말입니까?”
그리고 곧바로 허공을 향해 불만을 터트렸다.
즉, 상대의 제안에 거부의사를 드러낸 것이다.
“어리석구나! 감히 너희가 내가 준 기회를 버리고 스스로 칼날 아래에 목을 내밀어? 좋다! 그렇다면 나도 망설이지 않고 그 목을 따 주마!”
그러자 곧바로 허공에서 한 명의 수사가 모습을 드러내며 분노를 터트렸다.
그는 검은 머리카락을 뒤로 질끈 묶은 사십대 중반의 남성 수사였는데 체격이 탄탄해 보였다.
다만 전체적으로 약간 균형이 어긋난 듯 느껴지는 감이 있었는데 건우나 괴뢰선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태생이 기둥의 일부인 까닭에 생기는 부조화임을 그들이 어찌 알 수 있겠는가.
“끄으으으!”
“큭!”
그리고 이 순간 건우와 괴뢰선은 그런 한가한 생각을 할 여유도 없었다.
갈편주가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다시 한 번 공간 대부분의 천지 영기를 장악당했기 때문이다.
“여, 영족 수사입니다. 그것도 무생물체에서 태어난······.”
건우가 어렵게 입을 열어 상대의 정체를 알렸다.
“뭐, 뭔가 잘못 되었습니다. 어찌, 이런······.”
괴뢰선 역시 상대의 정체를 어렴풋이 짐작하고는 당황하여 말을 잇지 못했다.
“어리석은 것들! 너희 선택이니 나를 크게 원망하진 말거라!”
갈편주가 그런 둘을 보며 의념을 크게 일으켜 둘을 짓눌러 죽이려 했다.
크아앙! 스스스스슷!
콰지지직! 파가가가각!
하지만 그 순간 괴뢰선이 갱과 굴을 움직여 갈편주를 공격했다.
갱과 굴이 법칙의 힘이 담긴 앞발을 갈편주를 향해 휘둘렀다.
갈편주도 이미 갱과 굴에 대해서 알고 있었기에 태만하지 못하고 의념을 일으켜 공격을 막아냈다.
태령기 수사의 의념은 곧 권능과 같은 힘을 지니며 그것이 더욱 강해지면 어느 순간부터 법칙에 이르게 된다.
사실상 진선이라 하는 이들은 바로 그 법칙의 한 자락이라도 얻은 이들을 말하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 태령기 중기의 갈편주는 갱과 굴의 공격을 막으며 미약하게나마 법칙의 흐름을 드러냈다.
‘저럴수가!’
괴뢰선보다 건우가 먼저 그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법칙을 장악하는 것이 앞으로 자신이 가야 할 길임을 확실히 알아차렸다.
“감히! 죽여 주마!”
하지만 그것도 당장의 위기를 벗어나고 볼 일이다.
갱과 굴의 공격을 막아낸 갈편주가 붉어진 낯빛으로 수인을 맺어 기기현문의 기관 진법을 움직이고 있었다.
건우는 본능적으로 위협을 느끼고 금강패갑공을 극성으로 끌어 올렸다.
그리고 여차하면 혼자라도 아공간으로 숨어들 생각을 했다.
< 기둥 조각에서 태어난 갈편주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