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2)
< 어라? 이건 뭔 통수? >
괴뢰선의 고백이 있은 후, 오래지 않아서였다.
기기현문의 금제 공간에 난데없이 석수 괴뢰 군단이 등장했다.
지금껏 괴뢰선이 가지고 있으리라 생각했던 1만 괴뢰심의 등장이었다.
그런데 이 1만의 석수 괴뢰는 딱히 어느 한 수사만 공격하는 것이 아니었다.
누군지 모를 수사는 1만의 석수 괴뢰를 한꺼번에 전방위로 몰아쳐 기기현문의 금제 공간 전체를 장악하려 했다.
“미친 짓입니다. 이 자는 지금 이곳 금제 공간 전체를 차지하려 하고 있습니다.”
괴뢰선이 깜짝 놀라 소리쳤다.
“그래도 밖으로 나가는 것은 어느 정도 용인해 주지 않습니까. 그것도 기한을 정해 뒀다지만 목숨을 구하고 싶다면 빠져나갈 구멍은 있는 셈이지요.”
건우가 뒷짐을 지고 괴뢰선의 괴뢰와 침입자의 석수 괴뢰가 싸우는 모습을 지켜보며 말했다.
지금 석수 괴뢰를 막고 있는 괴뢰선 쪽의 괴뢰들 중에는 종 선생도 끼어 있었다.
입령기 경지의 종선생이 중심이 되어 괴뢰들을 부리며 방어를 맡고 있는 것이다.
“저 녀석이 있으니 어떻게든 시간은 벌 수 있을 것 같은데, 건우 수사께서는 어찌하시렵니까?”
“무엇을 말입니까?”
“이대로 계속 중심부를 향해 나아갈지, 아니면 정체 모를 수사와 전면전을 벌여볼지 결정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제게 선택을 하라하면 지금 상황에서는 어떻게든 중심으로 치고 나가는 것이 답일 듯 합니다.”
건우는 오래 고민하지 않고 대답했다.
“그건 뒤를 보지 않겠다는 뜻이 아닙니까.”
괴뢰선이 건우의 대답에 놀라면서도 밝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어쩌겠습니까. 이대로 물러나기는 너무 아쉬우니 최대한 애를 써 볼 밖에요.”
건우는 언제든 위험을 벗어날 최후의 수단이 있다.
그러니 실제로 지금의 선택이 건우에게 큰 무리가 가는 일은 아니다.
하지만 괴뢰선은 그런 사실을 모르니 건우가 자신과 함께 목숨을 걸고 일을 함께 하겠다는 뜻으로 들릴 뿐이다.
괴뢰선은 지금 여기서 물러나면 뒤가 없는 상태였다.
그런데 건우가 함께 해 주겠다니 어찌 감동하지 않겠는가.
“고맙소이다. 내 건우 수사의 의리를 절대 잊지 않겠소이다.”
괴뢰선은 건우의 결심을 확인하자 곧바로 소매에서 수백 마리의 괴뢰를 꺼내어 풀어 놓았다.
그리고 그 모두를 종선생에게 맡겨 뒤를 지키게 했다.
“네 판단으로 더는 방법이 없다 싶으면 곧바로 물러나 내게로 오거라. 할 수 있겠느냐?”
“믿어 주십시오. 최대한 시간을 끌겠습니다.”
“그래, 보중하거라.”
괴뢰선은 그렇게 후방을 종선생에게 맡기고 건우와 함께 기기현문의 기관 진법으로 향했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벽을 뚫어야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최대한 앞으로 나가는 것이 유일한 길이었다.
* * *
파스스스스슷! 휘이이이잉!
건우의 손이 움직일 때마다 바닥에 황금색의 선들이 복잡하게 내려앉고, 이미 새겨져 있던 법문들과 뒤엉켰다.
건우가 거기에 상급 영석 몇 개를 던져 넣어 정해진 위치에 꽂았다.
그러자 지금까지 있었던 황금색 선과 문양들이 환상이었다는 듯이 씻은 듯 사라졌다.
금제 진법이 제대로 발동한 것이다.
“매번 보아도 굉장합니다. 건우 수사의 진법은 가히 일절이라 하겠습니다. 저로서도 감히 절반을 알겠다 하기 어려우니 말입니다.”
그 모습에 괴뢰선이 감탄을 터트렸다.
“얼굴이 뜨겁습니다. 몇 번이나 금칠을 하시는 겁니까. 자, 이쯤 해 놓고 서둘러 다음으로 넘어가십시다.”
괴뢰선의 칭찬에 건우가 손사래를 치며 앞쪽 방향을 가리켰다.
“그러지요. 가십시다.”
그러자 괴뢰선도 더는 호들갑을 떨지 않고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런 괴뢰선의 좌측에는 호랑이와 표범을 섞어 놓은 것 같은 갱(坑)이 있었고, 우측에는 짧은 가시털이 몸 전체에 나 있는 도마뱀 형상의 굴(掘)이 있었다.
그것들은 종선생이 부릴 때보다 크기가 커지고 몸체를 이루는 구성요소가 달라지긴 했지만 생긴 것은 과거와 거의 다르지 않았다.
여전히 갱의 오른쪽 앞발은 특별히 두텁고, 굴의 앞발 두 개는 과하게 넓고 컸다.
모두 땅 파기에 좋아 보이는 모습으로 신화 속 갱과 굴의 본성을 그대로 반영한 듯 했다.
그 갱(坑)과 굴(掘)은 지금 괴뢰선과 건우가 기기현문의 기관 진법을 빠르게 뚫고 나가는데 큰 도움을 주고 있었다.
이에 건우는 매번 금제 진법을 설치해서 뒤따라오는 적의 발걸음을 붙잡아두는 역할을 자청한 것이다.
물론 때때로 기기현문의 기관 진법을 살펴 약점을 찾아내는 데에도 혁혁한 공을 세우는 중이었다.
콰르르르릉! 그그그극!
앞서가던 괴뢰선이 기기현문의 벽을 만나자 갱을 부려 벽을 허물었다.
기기현문의 벽에는 기관 진법이 첩첩이 쌓여 있어 위험하기 짝이 없다.
그런데 그런 벽이 갱의 앞발에 허무하게 무너져 내리는 것이다.
하지만 이도 연이어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갱과 굴의 앞발에 깃든 법칙의 힘도 기기현문의 기관 진법을 깨트리면 그만큼 힘을 잃는다.
다시 회복되기는 하지만 점점 회복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었다.
그만큼 기관 진법이 강력해져서 한 번에 쓰이는 힘의 크기가 커지고 있다는 이야기다.
“으음. 이제부터는 직접 뚫어야 하겠습니다.”
갱이 어느 정도 벽에 구멍을 뚫은 후에 괴뢰선이 갱을 뒤로 물리며 말했다.
그리고 곧바로 벽으로 다가가 기관 진법을 살폈다.
기관 진법이 특이한 것은 진법의 구축과 운용에 여러 다양한 기물들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특히 제대로 된 기관 진법은 톱니처럼 맞물린 수많은 술법 기물을 사용하는데, 그것은 마치 거대한 기계 장치를 돌리는 것과 비슷했다.
“으음. 삼할 정도는 파훼를 했습니다만 아직 7할 가까이가 남았습니다. 건우 수사 어디를 먼저 허무는 것이 좋겠습니까?”
건우가 가까이 다가오자 괴뢰선이 물었다.
“위험을 감수한다면 정면을 감방(坎方)으로 두었을 때, 손방(巽方)을 치는 것이 좋겠고, 그게 아니라면 건방(乾方)을 노려봄이 좋겠습니다.”
감방은 정북을 의미하고 손방은 동쪽과 남쪽의 사이를 말하며, 건방은 북쪽과 서쪽의 사이다.
“지금 사정이 급하니 손방을 치겠습니다. 건우 수사도 도움을 주시겠지요?”
“그리 하시겠다면 당연히 조력을 해야겠지요. 시작하시지요.”
괴뢰선의 결정에 건우가 곧바로 금강패갑공을 끌어 올려 황금색 갑주를 몸에 둘렀다.
쒜엑!
건우가 앞으로 나서자 먼저 시작된 것은 화살의 공격이었다.
화살이 먼저 도착하고 이어 소리가 뒤따르는 공격은 섬뜩할 정도로 매서웠다.
하지만 그것도 갱의 공격에 기관 진법이 일부 고장난 상태라 위력이 떨어진 것이 그 정도였지 그렇지 않았다면 화살의 숫자도 더 많았을 것이고, 속도도 빨랐을 것이다.
카강!
하지만 그런 화살도 건우에게 닿지는 못했다.
슬쩍 휘두른 성광검이 화살을 가볍게 쳐 냈기 때문이다.
“좋소이다. 이쪽이 맞겠지요?”
건우가 그렇게 화살을 쳐 낸 순간 괴뢰선이 벽의 한 부분을 향해서 꼬챙이 같은 검을 찔러 넣었다.
조금 전에 발동된 진법의 움직임을 보고 그 약점을 찾아 찌른 것이다.
“옳습니다. 그 다음은 여기를 노리는 것이 좋겠군요.”
그런 괴뢰선의 뒤를 이어서 이번에는 건우가 벽의 한 부분을 성광검으로 찔렀다.
그러자 다시 괴뢰선이 벽의 한 지검을 검 끝으로 가리켰다.
“그럼 다음은 여깁니까?”
“그렇지요. 다음은 이곳이 좋겠습니다. 아닙니다. 거기 보다는 하방의 왼쪽 무릎 높이, 바로 그겁니다. 그곳이지요.”
그렇게 건우와 괴뢰선은 번갈아가며 기기현문의 기관 진법을 해체해 나갔다.
갱이나 굴을 이용하여 강력한 한 방으로 진법의 일부를 허물고, 그 뒤는 허물어진 부분을 더욱 넓혀서 끝내 진법을 완전히 무너뜨리는 것이다.
원래 갱과 굴을 쓸 생각은 없었지만 1만 괴뢰심의 주인이 나타나 위협을 가하니 어쩔 수 없이 선택한 방법이었다.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제 곧 중심에 닿을 것입니다.”
그렇게 다시 몇 달이 흐른 후, 결국 건우와 괴뢰선은 금제 공간의 중심을 앞두게 되었다.
기기현문의 외원과 내원을 모두 뚫고 들어와 이제는 본원이라 할 수 있는 영역만 남은 상태였다.
대부분의 수도 문파는 그 본원 영역에 문파의 핵심 시설들을 두기 마련이다.
당연히 기기현문의 장경각이나 보물 창고 같은 곳도 본원에 있을 터였다.
“그런데 이상한 일입니다. 어째서 모든 것이 멀쩡한데 수사들만 감쪽같이 사라진 것일까요? 지금껏 인골의 흔적조차 본 적이 없지 않습니까.”
갱과 굴이 법칙의 힘을 회복하기를 기다리던 중에 문득 건우가 괴뢰선을 보며 물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기기현문이 워낙에 오래 된 수도 문파라 남은 기록이 별로 없습니다. 그저 기관 진법과 법기 제작에 특기를 가진 수도 문파라는 정도만 알려졌을 뿐이니 이곳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그렇습니까? 저는 제가 워낙 견문이 얕아서 모르는 것이 아닌가 했는데, 실제로 제대로 된 정보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려.”
“누가 건우 수사를 두고 견문이 모자르다 하겠습니까. 그건 말도 안 되는 일이지요. 더구나 진법이나 금제, 봉인에 대한 건우 수사의 깨달음은 이미 저를 훨씬 뛰어 넘었습니다. 따지자면 태령기 어르신들 중에도 건우 수사보다 나은 분이 그리 많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하하. 무슨 그런 말씀을.”
“게다가 그게 전부는 아니겠지요. 언뜻 느끼기에 연단술은 물론이고 괴뢰술에도 뛰어난 재주가 있으신 것 같던데요.”
“괴뢰술이라니요. 어찌 괴뢰선께 제가 그런 소리를 들을 수 있겠습니까. 감당할 수 없는 말입니다.”
건우가 애써 부정하며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 다시 기기현문에 대한 이야기로 화제를 돌리려 했다.
“그러지 마시고 이곳 기기현문의 금제 공간에 대해서나 이야기를 좀 더 해 보십시다.”
“네? 무슨 이야기를 말입니까?”
“뭐긴 뭐겠습니까. 과거 이곳에서 일어났을 일에 대해서 추측을 해 보자는 것이지요.”
건우는 그 사이에 이곳 금제 공간에 대한 비밀을 약간은 알아차렸다.
그래서 혹시 괴뢰선도 비슷하게 알아낸 것이 있으면 서로의 생각을 맞춰 보는 것도 좋겠다 싶었던 것이다.
“네 놈들이 궁리를 한다고 알 수 있을 것 같으냐? 그럴 필요 없다. 내가 알려줄 것이니!”
그런데 그 순간 건우와 괴뢰선이 있는 공간 전체에 누군가의 의념이 덮쳐오며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으음? 누구냐!”
“이건 혹시 태령기 수사의 의념?”
괴뢰선과 건우가 동시에 벌떡 몸을 일으켜 다급히 주위를 살폈다.
그와 동시에 의념을 극도로 끌어 올려 빼앗긴 천지 영기에 대한 장악력을 다시 빼앗아 오기 시작했다.
‘다행이다. 그래도 아예 싸워보지 못할 정도로 장악당한 것은 아니야.’
건우는 내심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건우와 괴뢰선은 일부 영역의 천지영기를 어렵게 되찾아 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크와와왕! 츠츠츠츠츳!
거기에 갱과 굴이 몸을 일으켜 괴뢰선을 보호하기 시작했다.
“제법이다. 하지만 그래봐야 목숨이 조금 더 연장된 것에 불과하다. 어차피 너희들은 이곳을 벗어나지 못할 테니까. 하하하.”
다시 누군지 모를 목소리가 두 사람을 놀리며 비웃었다.
건우와 괴뢰선이 의념을 최대한 펼쳤지만 어차피 기관 진법을 허물고 지나온 통로 이외로는 의념을 펼치는 것이 불가능했기에 넓은 범위를 살필 수 없었다.
그것은 원래부터 금제 공간이 지닌 특성이 그랬다.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소이다. 건우 수사는 어떠시오?”
괴뢰선 역시 건우와 같은 상황이었는지 그렇게 물었고, 건우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낯선 목소리를 보아하니 숨어서 음모를 꾸미던 바로 그 수사인 모양입니다.”
괴뢰선이 화가 나서 붉어진 얼굴로 그렇게 말했을 때였다.
“억울할 거 없다. 원래 이곳 기기현문은 내 사문이니 침입자인 너희가 응보를 받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느냐. 이제 기다리거라. 너희를 위한 준비가 거의 끝이 나고 있으니.”
“기기현문의 문도라고?”
“그게 무슨? 기기현문의 종적이 사라진 것이 언제인데 지금 그 문도가 있단 말인가!”
기기현문의 문도란 소리에 건우와 괴뢰선이 동시에 놀라 소리쳤다.
< 어라? 이건 뭔 통수?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