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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호를 통해 마선과 거래를 하다 >
“그래, 무슨 용건으로 나를 따로 보자 했더냐?”
종선생과 조예령을 내보내고 조호와 단둘이 마주 앉은 건우가 조호의 대답을 재촉했다.
“사실 제가 길 어르신, 아니 건우 어르신을 찾아온 것은 마선 어르신의 특명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으음. 마선? 나는 마선 어르신과는 별다른 인연이 없는데?”
건우는 마선이 태령기 수사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가 있었기에 어르신이라 불렀다.
“그러실 것입니다. 하지만 원래 건우 어르신은 저와 작은 인연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일 때문에 마선 어르신과의 관계도 생기게 된 것입니다.”
“흐음. 사정이 짐작이 되지 않는구나. 그냥 털어놔 보아라.”
“네. 어르신. 사실 저는 인계에 있을 때에 흉사독문이라는 수도 문파를 이끌고 있었습니다.”
“그래, 그랬다 했었지.”
“그리고 그 때에 저의 제자들 중에 호래(胡?)라는 녀석이 있었습니다.”
“호래? 네가 그 녀석의 스승이라고?”
건우는 아주 오래전 짧은 인연을 맺었던 호래란 이름이 조호의 입에서 나오자 깜짝 놀랐다.
사실 호래란 이름은 오래 기억할 이유가 없는 이름이었는데 지금까지도 또렷하게 기억하는 것은 모두 마귀팔면호령 때문이었다.
건우가 마귀팔면호령을 중하게 여기다 보니 그것을 건우에게 내어 줬던 호래란 수사를 때때로 떠올려 잊지 않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습니다. 그 녀석이 바로 저의 제자였지요.”
“흠. 호래가 나에게 마귀팔면호령이라는 호신부를 줬었지. 나는 중요할 때에 그 호신부의 도움을 몇 번 받았고.”
“역시 어르신께서 마귀팔면호령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건우의 말에 갑자기 조호가 반색을 하며 어조가 격앙되었다.
건우는 그 반응에 조호가 자신을 찾은 것이 마귀팔면호령과 연관이 있음을 짐작했다.
“마선 어르신의 명으로 나를 찾았다 했더냐?”
건우가 물었다.
“그렇습니다. 어르신”
“그렇다면 마선께서 내가 가진 마귀팔면호령에 관심이 있으시단 이야기구나?”
“그, 그게···. 역시 영민하십니다. 이리도 빨리 일의 전후를 유추하시다니요. 바로 그렇습니다. 마선 어르신께서는 건우 어르신이 아직도 마귀팔면호령을 지니고 계신지 궁금해 하셨습니다. 그리고 혹시 가지고 계시면 그것을 구해 오라 명하셨습니다.”
“너를 보낸 것을 보면 내게서 마귀팔면호령을 빼앗아 오라는 것은 아니겠구나. 그렇다고 마선 어르신의 이름으로 나를 핍박할 것도 아닌 거 같고?”
“이를 말이겠습니까. 비록 마기를 익히고 계시지만 마선 어르신께서는 그렇게 경우가 없는 분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내 호신부와 바꾸려 하느냐? 이런 경우엔 대체로 물물교환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지 않더냐.”
건우는 마선이라는 태령기 수사가 마귀팔면호령을 탐내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만한 인물이 움직였으면 자신이 모르는 어떤 비밀이 있다는 이야기일 터.
그러니 거래를 한다면 그 비밀의 값까지 더해서 대가를 받는 것이 당연하다 여겼다.
“사실 마귀팔면호령에 특별히 큰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는 건우 어르신께서도 바로 아셔야 합니다.”
그런데 조호의 입에서 기대하지 않았던 말이 흘러나왔다.
마귀팔면호령이 그렇게 큰 가치는 없다는 이야기다.
“그럼 왜 마선께서 이것을 원하신다는 것이냐?”
건우는 내친김에 소매를 통해 마귀팔면호령을 꺼내 들었다.
“솔직히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마선 어르신께서는 지고한 마공 공법을 익히고 계시는데 거기에 티끌처럼 작은 흠이 있습니다.”
“공법에 흠이 있다?”
“정확하게는 부족한 부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오호? 대단하구나. 그런 공법으로 태령기에 오르셨다니 말이다.”
건우가 놀란 표정으로 감탄을 금치 못했다.
온전치 못한 공법으로 태령기에 올랐다니 어찌 놀랍지 않을까.
“그렇지요. 하지만 그 모자람은 사실 티끌같은 것일 뿐이지요. 그게 아니라면 어찌 마선 어르신이 그 경지에 오르셨겠습니까. 이는 마선 어르신께서 직접 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공법에 부족함이 있기는 하지만 무시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일 뿐이란 거구나? 그리고 들어보니 그 작은 부족함을 이 마귀팔면호령으로 채울 수 있다는 이야기고?”
건우는 상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조호는 그 말이 틀리지 않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렇습니다. 그 마귀팔면호령을 이용하면 마계에서 수련 공법 하나를 얻을 방도가 있습니다.”
“그래?”
건우는 마계의 수련 공법이란 말에 눈빛을 빛냈다.
“하지만 그 수련 공법은 그다지 대단할 것은 없습니다. 고작해야 인계에서나 통할법한 그런 저급한 공법일 뿐이지요.”
“흐음. 그 말이 정말이냐?”
건우가 아쉬운 듯이 마귀팔면호령을 이리저리 돌려보며 물었다.
“어찌 거짓을 고하겠습니까. 한 치의 거짓도 없습니다.”
“그래? 그럼 믿어보마. 그런데 말이다.”
건우의 어조가 은근해졌다.
“네, 말씀하십시오. 어르신.”
“그 공법이 나에겐 별 소용이 없어도 마선 어르신께는 요긴한 것이겠지?”
“그건 그렇습니다. 그 마귀팔면호령으로 얻을 수 있는 공법을 마선 어르신의 공법에 더하려는 것이니 당연히 그렇지 않겠습니까.”
“나에겐 별 가치가 없으나 마선 어르신께는 나름 의미가 있다는 말이지. 그렇다면 조호.”
“네, 넵 어르신.”
“마선께서는 당연히 그 분의 필요와 가치에 따라서 이것의 값을 책정하셨겠지?”
목 마른 놈이 우물을 파는 법이다.
그러니 마선이 마귀팔면호령을 필요로 하는 만큼 값을 쳐 주는 것이 당연하리라.
건우는 그리 생각했다.
“물론 마선 어르신께서는 적당한 값을 치러 주실 것입니다. 하지만 건우 어르신께서도 양보를 해 주심이 좋지 않겠습니까?”
조호가 조심스럽게 건우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내가 양보를?”
건우가 ‘왜?’라는 눈빛으로 조호를 보며 물었다.
“너무 크게 욕심을 부리시면 마선께서 값을 치르면서도 불쾌히 여기지 않으시겠습니까. 제가 보기에 건우 어르신께서는 작은 이득을 보았다 여기시고, 마선 어르신께서는 싸게 구했다 여길 정도의 수준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너무 몰아세우진 말라는 뜻이구나? 네가 마선 어르신께 가서 면을 세울 수 있을 정도로?”
“아, 아닙니다. 절대로 제가 공을 세우고 싶어서 드리는 말씀은 아닙니다.”
건우의 말에 조호가 화들짝 놀라며 손사래를 쳤다.
“뭐, 좋다. 일단 그래서 네가 가지고 온 것이나 내어 보거라.”
이럴 때에는 상대의 패를 먼저 보는 것이 유리하다.
게다가 입령기 초기에 불과한 조호가 감히 건우를 상대로 크게 장난질을 치지는 못하리라.
“마선 어르신께서 몇 가지 내어주신 것이 있습니다. 그 중에 건우 어르신이 원하시는 것을 내어드리겠습니다.”
“여럿 중에 하나란 소리냐?”
“그리 하시면 마선께서도 기분이 상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 말은 두 개를 택해도 교환은 될 수 있을 거라는 말이구나?”
건우가 그렇게 말하며 웃었고 조호는 얼굴색이 더욱 검어졌다.
***
- 마공법을 익힌 수사여서 그런지 건우 님이 취할 게 별로 없었죠?
조호와 종선생이 조예령과 함께 돌아간 뒤, 홀로 남은 건우에게 루야가 말을 걸었다.
‘그래도 쓸만한 것을 얻었으니 나쁘지 않은 거래였지. 어차피 마귀팔면호령의 호신 위력은 지금 내 수준에 맞지 않았고.’
- 그래도 마귀팔면호령을 더 강하게 만들 방법을 찾고 계셨잖아요. 귀하게 생각했던 거 아니에요?
‘의미가 있는 물건이기는 했지만 어차피 나와는 성향이 맞지 않은 것이기도 했다. 게다가 조호의 말로 그 마귀팔면호령에 숨겨진 비밀이 나에겐 별 의미가 없는 것이라니 이번 교환은 나에게나 마선에게나 서로 이익이 되는 것이라 봐야지.’
- 하지만 조호의 말을 모두 믿을 수 있는 것은 아니잖아요. 어쩌면 그 패에 어마어마한 비밀이 있을지도 모르죠.
‘그럴 수도 있지만, 만약 그런 귀물이라면 마선이 고작 조호 따위를 보내서 일처리를 하지는 않았겠지. 또 그것까지 고려를 해서 욕심을 낼 정도라면 자칫 보물을 지닌 죄로 쥐도 새도 모르게 목이 떨어질 수도 있고.’
건우는 조호와 거래를 하기 전에 마귀팔면호령을 마선에게 내어주지 않을 생각까지도 해 보았었다.
하지만 자칫 마선이 직접 나서는 경우를 불러올 수 있다는 생각에 그런 생각을 접었다.
게다가 조호가 준비한 것들 중에 마음에 꼭 드는 것도 있어서, 능히 마귀팔면호령과 바꿀 만했다.
그래서 흔쾌히 거래를 마쳤고, 이제 지난 일에 대해서는 미련을 가지고 싶지 않았다.
‘마귀팔면호령을 내어주는 것으로 마선의 화를 피하고 아울러 령보급의 비행 법기를 얻을 수 있다면 나쁘지 않아. 솔직히 마귀팔면호령과 부양도를 저울에 올리면 부양도가 더 무겁지.’
- 하긴, 건우 님이 만족하신다면 그걸로 좋은 거겠죠. 게다가 제가 생각해도 부양도를 령보급 비행 법기로 바꿀 수 있는 비방이라면 충분히 괜찮은 거 같아요.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건우는 짙은 갈색의 옥간 하나를 손에 쥐고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그가 들고 있는 옥간에는 령보급 비행 법기를 만드는 방법이 들어 있었다.
그것을 건우가 가지고 있는 부양도에 적용하면 영계에서도 남부럽지 않은 비행 법기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 쏟아부어야 할 재료들은 이제부터 구해 봐야 할 테지만.
- 기대가 돼요. 괴뢰심이 얼마나 좋은 값에 팔려나가게 될지 말이에요.
‘이제 곧 알게 되겠지.’
혁개성의 대경매가 코앞에 다가온 때였다.
- 아, 그런데 그게 통할까요?
루야와 대화를 마치고 명상에 들려는 순간, 루야가 맥락없는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건우는 루야가 무엇을 묻는 것인지 쉽게 알아차렸다.
‘마선이라고 해도 천겁이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니겠지. 그리고 천겁이 아니라도 멸계전이 벌어지는 세상으로 넘어가고 싶은 이들은 많이 있을걸?’
- 등선을 시도하다 죽을 확률이 높으니 차라리 멸계전에 참가하는 쪽이 좋다고 생각할 거라는 말씀이죠? 그래서 조호에게 슬쩍 그런 이야기를 흘린 거고요.
‘내가 무슨 대단한 이야기를 한 것은 아니지. 내가 검선과 모종의 일을 추진하고 있다는 정도만 알 수 있도록 한 거 뿐인데.’
- 마선이 그 사실을 알면 궁금해할 거고, 그러면 결국 멸계전까지 알아낼지도 모르잖아요. 뭐 그러라고 흘리신 게 분명하지만요.
‘수미산 상징을 현실로 구현하는 게 쉽지 않은데, 그걸 죽어라 연구해서 고작 검선 하나만 받아서야 되겠냐?’
- 하긴 호갱은 많을수록 좋은 거죠.
‘······.’
***
= 그래? 그렇게 했다고?
= 네, 어르신.
= 제법 눈치가 있는 놈이구나. 욕심을 부리거나 강짜를 놓으면 내가 직접 찾아가 목을 비틀어 버리려 했더니.
= 비행 법보에 대한 옥간을 취한 것은······.
= 상관없다. 어차피 그런 것을 내가 만들 일이 있겠느냐? 나는 나에게 별 가치가 없는 것을 내어놓은 것이고, 그 건우란 아이 역시 별 가치가 없는 마귀팔면호령을 내어놓은 것이지.
= 그럼에도 서로에게 이익이 된 것이로군요?
= 그렇다. 이것이 가장 좋은 상황이지. 힘들이지 않고 원하는 것을 얻지 않았느냐.
= 네. 어르신.
= 그런데 그 놈이 검선과 무얼 한다고?
= 내용은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다만 얼마 전에 검령 하나가 찾아왔었단 이야기를 했습니다.
= 건우란 놈이 직접 그런 말을 했어?
= 네, 어르신.
= 내 귀에 그 이야길 전하고 싶었던 모양이군. 그리고 그 뒤는 알아서 하라는 뜻이겠고. 맹랑한 아이가 아닌가.
= 크으윽!
그저 전신부를 통해 대화를 주고받고 있을 뿐인데, 마선의 심기가 불편해지자 조호의 입에서 주르륵 피가 흘렀다.
마공 공법에 의해 종속된 상태였기에 먼 거리에서도 마선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 무슨 일인지 알아보긴 하겠지만 만약 별 것이 아니라면 나를 귀찮게 한 대가를 치러주면 될 일이고.
피를 토하는 조호에겐 관심이 없다는 듯이 홀로 중얼거린 마선의 기운이 전신부에서 흐려지며 사라졌다.
조호는 마선과의 전신부 연결이 끝나자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그리고 밖으로 나가자 종선생과 조예령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조호의 상태가 좋지 않음을 알았지만 굳이 이유를 묻지 않았다.
다들 십이비선의 유산을 얻어 영계로 올라온 후, 여러 이유로 자유롭지 못한 처지라 동병상련의 마음이 있었던 것이다.
“남의 일이 아니지. 나도 이번 경매에서 좋은 성과를 내지 못하면 어찌 될지 모르니······.”
“휴우, 저라고 뭐가 다르겠어요.”
종선생과 조여령이 동시에 얕은 한숨을 토했다.
< 조호를 통해 마선과 거래를 하다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