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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혁개성 대경매를 앞두고 과거의 인연들을 만나다 >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과거 조예령이 안내했던 황금상단의 객관, 건우는 후원의 그 별채에서 다시 그녀를 만났다.
“준비는 다 되었느냐?”
“물론입니다. 어르신. 그리고 어르신의 뜻대로 경매를 첫 날로 잡아 드렸습니다.”
“그래?”
“그렇습니다. 원래 첫 날과 마지막 날의 경매가 가장 주목을 받는데, 어렵게 자리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그렇구나. 그런데 지금도 경매 물품을 등록할 수 있다고 하던데?”
“그렇긴 합니다만, 특별한 것이 아니라면 본 경매가 아닌 하위 경매에서 다루게 될 것입니다.”
“그러냐? 그럼 이것들도 감정을 해서 판매를 해 보겠느냐?”
건우는 조예령에게 공간낭 하나를 내밀었다.
그동안 혁개성 주변을 돌아다니며 구한 갖가지 수련 자원들이 들어 있는 것이었다.
이미 건우 자신이 쓸 것들은 따로 챙겨 두고 성향에 맞지 않는 것들을 모은 것이었다.
“아, 굉장합니다. 성령기 급의 괴수 부산물도 몇 가지 들어 있군요.”
조예령이 건우가 내민 공간낭을 의념으로 확인하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공간낭 안에 있는 것들이 대부분 근래에 사냥하거나 채취한 것임을 알아봤기 때문이다.
고작 30년도 되지 않는 시간에 구한 것치고는 과할 정도로 많았다.
그 말은 그만큼 건우의 능력이 비범하다는 의미였다.
“알아서 경매를 진행하고 네가 취할 이득도 재량껏 챙기거라.”
“감사합니다. 어르신. 이 중에 몇은 본경매에도 올릴 수 있겠습니다.”
“그래, 어차피 괴뢰심 경매를 첫 날로 했으니 그것만으로도 제법 주머니를 채울 수 있겠다. 그러면 이후 경매에서 마음에 드는 것을 발견하면 응찰을 해 볼 수 있을 것이고.”
“걱정하지 마십시오. 경매 낙찰이 되면 즉시 수수료를 제한 대금을 지급해 드리는 것이 혁개성 대경매의 원칙입니다.”
“그래, 알았다. 달리 내가 알아야 할 것이 더 있느냐?”
“아닙니다 어르신. 이제 경매가 시작될 때까지 편히 쉬시면 됩니다. 아,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이번 경매에 종(種) 아무개라는 이가 참가한다고 합니다.”
“종 아무개면 혹시 내가 아는 종선생이라는 녀석을 말하는 것이냐?”
건우는 자신과 적잖은 연이 있는 종(種) 선생을 떠올리며 물었다.
“그렇습니다. 그 자가 십이비선 중에 괴뢰선의 휘하에 들었다는데 이번에 괴뢰심을 구하기 위해 혁개성으로 온다는 소리가 있었습니다.”
“아직 혁개성에 나타난 것은 아니란 말이구나?”
“그렇습니다. 만약 혁개성으로 들어왔다면 만은사나 황금상단에서 놓치지 않았을 것입니다.”
“내 괴뢰심을 원한다니 나쁘지 않구나. 원하는 이가 늘어나면 가격도 높아지는 것이 아니겠느냐.”
“호호호. 그야 이를 말이겠습니까.”
“알았다. 혹여 그 녀석을 보게 되면 한번 만나자고 전하거라.”
“네, 알겠습니다 어르신.”
건우의 말에 조예령은 공손하게 인사를 하고 물러갔다.
별채에 홀로 남은 건우는 곧바로 루야와 의념을 통해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수미 상징을 아공간 현실 구현에서 밖으로 꺼내는 게 쉽지 않네.’
- 그렇죠. 그렇다고 태령기 수사를 아공간에 들어오게 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고요.
‘아공간을 그 수사에게 들키는 것도 문제지만 아공간에서 싸움이라도 나는 날에는 큰 문제지. 연꽃 선자, 아니 유 선자 같은 이는 아무리 아공간 안에서라도 이길 수 있을 거 같지 않거든.’
- 그래도 의념 공간이니까 아공간 밖으로 추방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을까요?
‘그것도 확실하진 않지. 어쨌거나 아공간에 검선을 들일 수는 없어. 그러니 수미 상징을 잠시라도 아공간 밖으로 꺼내야 해.’
문제는 수미 상징이 아공간의 중심에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아공간에서 의념을 권능처럼 쓸 수 있는 건우도 수미산 모습을 하고 있는 상징만큼은 마음대로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아공간 현실 구현에 수미산 상징을 포함시킬 방법을 찾자는 것.
그동안 금제나 봉인에 대한 지식을 크게 늘였으니 수미산 상징에 영향을 줄 진법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진법으로 상징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면 아공간 현실 구현에 짧은 시간이라도 포함시키는 것이 가능할 것이라 생각하는 건우였다.
그는 검령을 돌려보낸 이후 줄곧 그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경매까지 아직 시간이 좀 남았으니 계속 연구를 해 보자꾸나. 그리고 앙천적의도 아공간에 풀어서 내가 알지 못하는 금제나 봉인이 있는지 찾아보게 하고.’
- 건우 님의 의념 공간인데 건우 님이 모르는 금제나 봉인이 있을 수 있어요?
‘아공간에 아직 내가 모르는 비밀이 있을지 어떻게 알아?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꼭 있어야 하는 게 없다는 거야.“
- 네? 꼭 있어야 하는 거요?
‘전에도 한 번 이야기했잖아. 수미세계를 봉인했던 겨자씨, 그게 없다고.’
- 하지만 ‘그 분’께서 그 겨자씨로 아공간을 만든 거잖아요.
‘그럴 거라고 짐작한 거지. 정확한 건 아니잖아. 그리고 아무래도 내가 아공간을 제대로 파헤치지 못한 것 같단 말이지. 어딘가 분명히 겨자씨의 흔적이 있을 거야. 그리고 그걸 찾으면 뭔가 더 얻을 수 있을 거고.’
- 그건 고계 수사로서의 직감 같은 건가요?
‘그건 나도 모르지. 그냥 그럴 거 같다는 막연한 느낌일 뿐이야.’
- 네에. 그럼 저도 조금 더 분발을 해 보죠. 그래봐야 제가 건우님 보다 더 아공간을 잘 살피긴 어렵겠지만요.
‘어린 아이에게도 배울 것이 생길 수도 있는 법이다. 네가 큰 도움이 될지 어떻게 알겠어?’
- 호호호. 네에. 열심히 해 볼게요.
‘그래, 수고해라.’
건우는 그렇게 루야와의 대화를 마무리하고 의념을 집중하여 아공간 전체를 차분하게 살피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앙천적의를 아공간 전체로 풀어서 혹시 모를 금제나 봉인을 탐색케 했다.
그렇게 황금상단 별채의 시간이 조용히 흘러갔다.
***
멀리 혁개성 성벽이 보이는 곳.
두 명의 입령기 수사가 허공에 선 채로 혁개성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중 한 명은 명공이 옥으로 조각해 놓은 듯이 아름다운 외모를 지닌 미남자였고, 다른 하나는 안색이 거무튀튀하고 험상궂은 장신의 수사였다.
“그 말이 정말일까?”
그중에 얼굴이 검은 수사가 미남자 수사를 보며 물었다.
“뭘 말이냐?”
“그 길우몽이란 녀석이 성령기 어르신이 되었다는 거 말이야.”
흑면의 수사 입에서 길우몽의 이름이 나왔다.
그들은 건우와 인연이 있었던 이들이었던 것이다.
흑면은 마선의 유산을 이었던 조호, 미남자는 괴뢰선의 유산을 얻었던 종선생이었다.
종선생은 과거 비승로의 시험에서 괴뢰선의 시험에 나온 괴뢰의 몸을 차지한 바가 있었다.
지금 미남자의 모습을 한 그것이 바로 그 때에 얻은 몸체였다.
물론 그 덕분에 이곳 홍애지에 오르자마자 괴뢰선의 수족이 되어야 했기에 그것이 좋은 선택이었는지는 모를 일이었다.
“이번 혁개성 대경매에 그 녀석이 출품한 괴뢰심이 나온다고 했으니 맞겠지.”
종선생은 꺼림칙한 표정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며 대답했다.
“기가 막힌 일이군. 그 때엔 우리보다 조금 모자란 경지였는데 벌써 성령기라니.”
“수련 자질 자체가 다른 녀석이었던 것이지.”
“그나저나 괜찮을까?”
“뭘?”
“너는 길우몽 그 자와 관계가 별로 좋지 않았던 것으로 아는데?”
길우몽과 종선생의 악연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조호는 입가에 웃음기를 매달고 그렇게 물었다.
표정이 좋지 않은 종선생을 대놓고 놀리는 것이다.
“그러는 너는?”
이에 종선생은 슬쩍 대답을 피하며 도리어 조호에게 화살을 돌렸다.
“나? 나야 뭐. 그 녀석과 별다른 접점이 있었나?”
조호와 건우 사이에 특별한 관계가 있지만 그것을 아는 이는 없었다.
조호는 심지어 당사자인 건우도 그가 자신과 어떤 연이 있는지 모를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니 이렇게 딱 잡아뗄 수 있는 것이다.
“그럼 그러면서 굳이 나를 따라나선 이유는 뭔데? 분명 원하는 것이 있으니 따라나선 것일 텐데?”
하지만 눈치가 비상한 종선생은 조호가 뭔가 숨기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크음. 그냥 옛 인연에 기대어 성령기 수사와 좋은 관계를 만들어 보려는 것이지. 별다른 건 없어.”
그럼에도 조호는 끝까지 시치미를 떼었다.
“글쎄, 그게 정말일까?”
이번에는 종선생이 흐릿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곧이어 두 수사는 혁개성의 성문을 향해 날아갔다.
***
“길 어르신, 다시 뵙게 되어 기쁘기 그지없습니다.”
종선생이 두 손을 모아 잡고 건우 앞에 깊이 허리를 숙였다.
“이 조호 역시 길 어르신을 다시 뵈어 기쁘지 한량없습니다.”
그 곁에서 조호 역시 같은 모습으로 건우에게 인사를 했다.
그 둘은 혁개성으로 들어오자마자 만은사 소속의 수사로부터 건우가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다는 연통을 받았다.
듣지 못했다면 모를까 성령기 수사가 자신들을 불렀다는데 모른 척 할 수도 없는 상황.
종선생과 조호는 대책을 세울 여유도 없이 황금상단의 객관 별채로 끌려온 참이었다.
“그래, 이리 다시 보게 되니 나도 반갑구나. 다들 홍애지에서 잘 정착한 모양이구나. 입령기에 오른 것을 축하한다.”
그런 두 수사를 보며 건우가 부드러운 표정으로 덕담을 던졌다.
“고작 입령기에 오른 저희가 어찌 어르신의 축하를 받겠습니까. 그저 어르신의 성취가 놀랍고 경이로울 뿐입니다.”
종선생이 더없이 존경스러운 표정을 꾸미며 건우를 올려 보았다.
그것은 곁에 있는 조호 역시 다를 것이 없었다.
그 역시 험상궂은 얼굴에 어떻게든 좋은 표정을 지으려 애쓰고 있었다.
“호호호. 어르신 이리 두 수사를 보니 이전 생각이 나지 않으십니까?”
그런 두 수사의 모습에 조예령이 짤랑짤랑한 웃음소리를 내며 말했다.
그 말에 두 수사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과거의 일을 되새겨 봐야 좋을 일은 없었기 때문이다.
“이미 지난 일에 연연하지 않는다. 그 때는 각자의 처지에서 나름의 최선을 다했던 것일 뿐이고, 그 때문에 내가 크게 악심을 품은 것도 없다. 그러니 너희 둘은 나를 두려워 하지 않아도 된다.”
그런 두 수사에게 건우가 너그럽게 과거의 일을 덮어 주겠다는 뜻을 전했다.
이에 두 수사는 황공한 표정을 지으며 몇 번이나 건우에게 허리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그런데 듣자니 종가 네가 괴뢰심을 구하기 위해서 왔다고?”
그런 중에 문득 건우가 종선생을 향해 물었다.
종선생이 고개를 번쩍 들어 건우와 눈을 맞추고 다시 읍을 하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저의 스승이신 괴뢰선께서 길 수사님의 괴뢰심을 얻고자 하십니다.”
“그래, 너는 괴뢰선의 휘하에 들었다지?”
“제가 얻은 이 몸이 스승님께서 제련하신 것이라 자연스럽게 그 휘하에 들게 되었습니다.”
“그렇군. 그런데 듣자니 괴뢰선은 아직 태령기에 오르지 못했다던데?”
“그게······. 실상 그렇습니다.”
종선생은 잠시 망설였지만 숨길 수 없는 일임을 알고 있는지 곧바로 이실직고했다.
“괴뢰선이 그 경지에도 용케 지금껏 천겁을 넘은 것은 역시 천겁의 주기가 길기 때문인가?”
종족에 따라서 혹은 수사 개개인에 따라서 천겁의 주기가 다르다.
그런데 유독 괴뢰가 본체인 수사들은 천겁의 주기가 길기로 유명하다.
원래 수명이 긴 종족일수록 천겁 주기가 긴데, 괴뢰는 영족과 함께 무생물 몸체를 지녀 수명을 거론하기 어렵다.
그래서 천지 법칙을 어기는 불로불사의 역천 판정을 약하게 내리는 것이 아닌가 추측하고 있었다.
어쨌건 그 덕분에 괴뢰선은 태령기에 오르지 못했으면서도 아직까지 천겁을 버티며 꿋꿋이 살아 있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저희 같은 괴뢰 수사들은 영족이나 목령족, 용족 등과 더불어 천겁의 주기가 길기로 유명하지요.”
종선생이 순순히 건우의 말을 인정했다.
“그렇구나. 하지만 그만큼 승경이 쉽지 않은 단점도 있으니 천겁 주기가 긴 것을 마냥 부러워할 일은 아니지. 어쨌거나 네가 괴뢰심을 구하러 왔다니 경매에서 좋은 성과가 있기를 바란다.”
“가, 감사합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건우의 말에 종선생이 다시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문득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조호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길 어르신, 이 조호. 어르신께 각별한 용무가 있는데 주위를 물려 독대를 해 주시겠습니까?”
그리고 건우에게 둘 만의 시간을 청했다.
건우가 의아한 표정으로 그런 조호를 바라봤다.
< 혁개성 대경매를 앞두고 과거의 인연들을 만나다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