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247화 (247/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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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 어때? 살 길을 열어줄 수 있는데? >

“이노옴!”

검령은 자신의 의념이 건우의 의념에 짓눌리는 것을 느끼며 분노를 터트렸다.

성령기 중기인 자신이 초기에게 밀리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검령은 이미 건우의 의념 공간에 들어와 있는 상태였다.

검령의 의념도 강력하고 또 거대했지만 그것은 검령의 심상 속에서 밖으로 끌어내야 하는 것이다.

당연히 심상 속의 힘을 모두 현실로 끌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자신의 심상 속에서 의념을 다루는 것은 거의 권능에 가까울 정도의 힘을 내지만, 밖으로 끌어내면 이런저런 천지법칙의 제약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건우의 아공간 현실 구현은 그런 제약을 거의 무시할 수 있는 수단이었다.

이러니 아공간이 구현된 공간에서는 성령기 중기의 검령도 건우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더구나 건우는 유혼결(幼魂結)로 의념의 강도를 두 배나 높였고, 진염결(盡念結)을 익히고 수미의 반영 세계를 아공간화 하면서 의념의 영역을 넓혔다.

그런 까닭에 의념의 강력함이나 크기 어느 것도 검령에게 부족하지 않을 건우였는데 아공간 현실 구현까지 했으니 검령을 압도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했다.

“크으으윽!”

결국 오래지 않아 검령이 짓눌린 신음소리를 내며 비틀거렸다.

“어찌 이럴 수가 있느냐? 이건 도대체 뭐지?”

검령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주위를 둘러보며 물었다.

늪지 위에 아공간 현실 구현으로 나타난 산과 계곡은 허상이 아니었다.

게다가 그 공간에서 건우의 의념은 너무도 강력했다.

당연히 의념이 강하니 같은 공격이라도 위력이 다르게 나타났다.

검령은 자신이 건우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포기하는 건가?”

건우가 칼끝을 지면으로 내리는 검령을 보며 물었다.

“무슨 수법인지 알 수가 없군. 어떻게 경지도 낮은 네가 나보다 강한 의념을 가질 수 있는 것이지? 게다가 이미 이동 술법조차 막혀 버린 상황이니 내가 뭘 할 수 있단 말이냐.”

대답하는 검령의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원래 검에서 태어난 검령은 계산적인 면이 있었는데 이번 경우도 승산이 없다고 생각하자 곧바로 저항을 멈춰 버린 것이다.

“그럼 이제 죽어도 미련은 없겠지? 이 싸움은 네가 자초한 것이니.”

아무리 저항을 포기했다고 해도 건우가 검령을 살려줄 이유는 없었다.

일면식도 없는 놈이 찾아와서 자신의 검을 요구하더니 거부한다고 목숨을 노린 놈이다.

살육을 즐기지 않는 건우라지만 검령은 죽어 마땅한 놈이었다.

다만 마음에 걸리는 것은 이 검령이라는 놈이 검선의 부하라는 사실인데, 지금 상황을 보면 어차피 검선과 좋은 관계가 되기는 어려워 진 듯 보였다.

“자, 잠깐!”

건우가 독한 마음으로 검령을 처리하려 마음먹었을 때였다.

검령이 다급하게 건우를 불렀다.

“뭐냐?”

“잠시 내 말을 들어다오.”

“······말 ···해라.”

건우는 검령이 시간을 벌어 지금 상황을 모면하려 수작을 부리는 것이 아닌가 의심했지만, 딱히 그런 정황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이왕 검선 때문에 마음의 부담이 있는 상황이니 검령의 말을 들어나 보자는 생각으로 대화를 받아들인 것이다.

“나를 죽이면 검선께서 반드시 너를 찾아오실 것이다.”

“음? 그게 뭐? 너를 놓아주면 뭐가 달라지나?”

검령을 살려주면 죽이는 것보다는 나을지 모른다.

하지만 검령을 살려줬다고 검선이 자신에게 호감을 보이며 태도를 바꿀 것 같지는 않았다.

자신이라도 자신이 태령기 경지라면 말을 듣지 않은 성령기 초기 수사 따위는 힘으로 눌러 죽이는 쪽을 할 것 같았다.

그러니 그것이 겁나서 검령을 죽이지 않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미 그 정도 각오는 하고 검령을 죽이겠다고 결심한 것이 아닌가.

“아니다. 내가 죽는 것은 네가 가지고 있는 검을 찾는 것보다 훨씬 큰 문제다. 내가 죽으면 검선께선 반드시 곧바로 너를 찾아오실 것이다. 태령기 검선 어르신이 작정하고 너를 쫓으면 네가 숨을 곳이 있을 거 같으냐?”

“이야, 이건 뭐, 태령기 뒷배가 있으면 그렇게 배 째라고 할 수도 있는 거냐? 뒷배 없는 놈은 서러워서 살 수가 있나.”

수미 세계라면 유정정이라는 엄청난 뒷배가 있지만 여기는 혈혈단신인 건우였다.

몇몇 인연들이 있다고 해도 태령기 수사와의 마찰에 도움을 줄 이는 없을 것이다.

“내 입으로 할 말은 아니지만, 나는 검선 어르신께 무척 중요한 존재다. 네가 가지고 있는 검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하지.”

“아까부터 검을 두고 말하는데, 무슨 소린지 알아듣지를 못하겠군.”

“으음. 나는 검선 어르신이 소유한 검들 중에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뛰어난 검이다.”

“그래, 네가 일곱 번째 검령이라 했으니 뭐 그렇다고 치자. 그런데?”

“이런 내가 죽게 되면 검선 어르신이 무척 곤란한 상황이 될 것이다.”

“너를 죽인다고 검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 않나? 내가 여기서 너를 죽이면 검에 깃든 혼은 사라지겠지만 검은 그대로 남을 것 같은데? 아주 뛰어난 명검 한 자루를 얻게 되는 거지.”

“검선 어르신의 분노를 어찌 감당하려는 것이냐? 네가 나를 죽이고 내 몸체를 취한다는 것은 스스로 화를 부르는 것일 뿐이다. 검선께서는 반드시 나를 되찾으려 하실 것이니.”

“쯧, 그럼 너를 죽이고 네 본체를 파괴하면 될 일이 아니냐. 그리고 검선이 두렵다면 내가 지닌 이 검도 어디 숨기거나 없애버리면 되겠지. 그 뒤에야 이 넓고 넓은 영계에서 내 한 몸 숨길 곳이 없을까.”

건우는 최악의 경우에는 그런 선택도 가능하다는 뜻을 숨기지 않았다.

검령도 건우가 정말 그렇게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러다가 다시 건우를 보며 말을 시작했다.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검선 어르신의 처지가 곤궁하다. 그 때문에 네가 지닌 검까지 취하려 하시는 것이고.”

“무슨 소리지?”

“천겁이 문제다.”

“천겁?”

“검선 어르신께서는 천겁을 앞두고 계신다. 그것도 일반적인 천겁이 아니라 대천겁이다.”

“그게 어쨌다는 거지?”

영체기 이상의 수사들은 일정 기간마다 천겁을 맞아야 한다.

천겁은 역천의 길을 걷는 수사들에게 내리는 천지영기의 형벌이다.

종족이나 경지에 따라서 그 천겁의 주기는 각기 다르지만 선계에 올라 신선의 경지에 오르지 못하는 이상 천겁을 받지 않는 수사는 없다.

어떻게든 천겁을 미루거나 혹은 건너뛸 방법들은 있지만 아주 완전히 천겁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것이 수도계의 법칙이다.

당연히 검선이라도 천겁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 혹시 검을 이용해서 대천겁을 막을 수단을 강구하는 것이냐? 그래서 내 검도 탐을 내는 것이고?”

“그렇다. 네 검이 있다면 몇 푼이라도 대천겁을 견딜 확률이 높아지겠지.”

“그런데 그 중에 너는 훨씬 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검이란 말이지? 그래서 네가 없으면 검선이 대천겁에서 화를 당할 확률이 높아지는 것이고?”

“그렇다. 그러니 검선께서 너를 잡아 죽이려 하실 것이 분명하지.”

“으음. 그건 좀 곤란한데?”

건우는 턱을 쓰다듬으며 그렇게 말했지만 입은 웃고 있었다.

검령은 그런 건우의 표정에 의문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건우가 웃을 일이 뭐가 있다는 말인가.

“나쁘지 않아. 검선이 대천겁에 죽을 때까지만 피해 다니면 된다는 이야기잖아. 안 그래?”

“그, 그런······.”

건우의 말에 검령이 당혹한 표정을 지었다.

생각지도 못한 발상이지만 또 그것이 너무도 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검선이 대천겁에 죽을 때까지만 피해 다닌다는 것은 생각보다 성공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방법이었다.

“그러다가 검선께서 대천겁을 무사히 넘기시면 어쩌려는 것이냐? 그걸 감당할 수 있겠느냐?”

검령이 어떻게든 건우의 생각을 돌려 보려는 마음에 그렇게 엄포를 놓으며 물었다.

“그것까지 따질 필요가 있나? 그건 그때 닥쳐서 생각해 볼 문제지. 어차피 지금은 단지 너를 죽이는 것뿐인데? 나머지는 모두 예상에 불과하지 않나.”

“그게 무슨······.”

“태령기의 검선이 무섭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그게 내가 너를 살려줘야 할 이유는 되지 않는다는 소리다.”

“······.”

건우의 말에 검령은 할 말을 잃은 듯이 입을 다물고 말았다.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진 검령은 그저 건우를 쳐다보며 가만히 서서 처분을 기다릴 뿐이었다.

“하지만 너를 살려서 내 이익이 커질 방법이 있다면 굳이 너를 죽일 이유는 없겠지.”

“그런 방법이 있다는 말이냐?”

“검선의 대천겁이 얼마나 남았지?”

“그건 말할 수 없다.”

검령은 검선에게 해가 될 중요한 정보는 숨기려 했다.

이미 대천겁이라는 패를 보여준 마당에 남은 시일까지 알려줄 수는 없다는 각오가 분명하게 보였다.

“내게 200년 정도의 시간을 준다면 어떻게든 검선이 대천겁을 넘길 방법을 만들어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런 검령을 보며 건우가 말했다.

그러자 검령이 말도 안 된다는 듯이 얼굴 표정에 ‘어이없음’이 떠올랐다.

“네깟 것이 태령기 검선 어르신도 3할의 가능성도 보지 못하는 대천겁을 무사히 넘길 방법을 만든다고?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 거냐?!”

검령은 건우를 보며 화를 감추지 않았다.

어설픈 수작으로 검선의 화를 늦춰 보려는 것이라 오해한 것이다.

“멸계전!”

그런 검령을 향해 건우가 말했다.

“뭐?”

검령은 건우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멸계전이 막 시작된 영계를 알고 있다. 그리고 그곳으로 갈 수 있는 방법도 마련할 수 있을 것 같고.”

“그, 그 무슨 얼토당토않은······.”

검령은 믿기 어렵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눈빛 깊은 곳에서는 반짝이는 기대를 드러냈다.

건우의 말이 정말이라면 대천겁으로 죽음을 앞둔 수사들에겐 더 없이 좋은 기회가 될 것이었다.

하지만 한 인계에서 다른 인계로 넘어가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인데 하물며 영계에서 다른 영계로 가는 것이 가능할까?

검령은 계와 계 사이를 오가는 것이 절대 쉬운 일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 일은 어쩌다가 우연하게 일어나는 일이지 의도적으로 벌일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적어도 검령이 알기로 영계와 영계를 원하는 대로 오간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당장은 나 혼자만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시간을 주면 한 사람 정도는 어떻게든 그곳으로 데리고 갈 방법을 찾을 수 있겠지.”

“그게 정말이냐? 네가 다른 영계, 그러니까 멸계전이 벌어지는 영계로 갈 수 있다고?”

“왜? 거짓말 같으냐?”

“그, 그건······. 사실일 수도 있겠구나.”

검령은 잠시 고민하다 그렇게 말했다.

그 이유는.

“네가 가진 검이 때때로 종적을 감추곤 했지. 그럼 그 때마다 다른 영계로 갔던 것이냐?”

“아니, 그건 아니다. 검을 감추는 것이야 내 특별한 재주지. 물론 다른 영계로 간 경우도 있겠지만.”

“으음.”

건우의 말에 검령이 신음소리를 냈다.

건우가 검령의 함정을 피했기 때문이다.

검선은 때때로 검의 느낌이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곤 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일이 때로는 너무 빈번하게 일어나곤 했기에 그 사이에 다른 계로 갔다 왔다고 하기는 어려웠다.

검령은 그런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건우를 시험했던 것인데 건우가 그 함정을 가볍게 넘긴 것이다.

“어때? 시간이 되겠어?”

“200년이면 된다는 거냐?”

“장담할 수는 없는데 가능할 것 같기는 해. 내가 딱히 그 쪽으로 연구를 해 보지 않았는데, 해 봄직한 연구란 생각도 들고.”

“성공하면 천겁을 앞둔 수많은 수사들이 네게 달려오겠군.”

“꼭 천겁만의 문제는 아니지. 멸계전에서 승리하기만 하면 곧바로 선계로 올라갈 수 있다는 것도 크지 않나? 선계로의 등선이 쉽지 않으니 말이야.”

“그것도 그렇겠군.”

“그래서 이 정도면 검선도 혹하지 않을까? 솔직히 검선이 대천겁을 앞뒀다는 것을 생각하면 여기서 너를 죽여도 상관은 없을 거 같지만, 그보다는 거래를 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아서 기회를 주려는 거야.”

“고, 고맙다.”

“그러니 가서 이야기를 잘 해봐. 대신 내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홍애지를 떠날 수 있다는 사실은 명심하고.”

여차하면 검선이 죽을 때까지 홍애지를 떠나 있을 수도 있다는 협박이다.

검령도 그 말을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후, 건우는 검령과 몇 가지 약속을 하고 그를 놓아주었다.

검령은 곧바로 검선에게 돌아갔고, 건우는 혁개성으로 돌아와 대경매를 준비했다.

< 이건 어때? 살 길을 열어줄 수 있는데?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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