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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선의 검령이 나타났다 >
“함께 비승에 도전했던 동도를 이렇게 만나게 되니 감회가 새롭군.”
“어르신께서 악연이라 타박하지 않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건우와 조예령은 객관의 별채 전실에 마주 앉았다.
탁자에는 향이 은은한 영초차가 놓여졌다.
“비승에 성공하고 또 이어서 입령기 승경까지 했으니 축하할 일이지. 인계에서 있었던 일이야 굳이 마음에 담아둘 것이 뭐가 있겠느냐.”
“······.”
“그런데 너는 혹시 함께 비승 통로를 열었던 다른 유산주들에 대해서 아는 바가 있느냐?”
건우는 문득 과거의 인연이 궁금하여 그렇게 물었다.
“직접 만나지는 못했지만 열두 명의 유산주 중에서 어르신 이외에도 홍애지에 오른 이가 몇 명 더 있습니다.”
“그 중에 내가 아는 것은 궁선의 유산을 이은 예예 뿐이다. 그 외에 다른 누가 더 있더냐?”
“괴뢰선의 유산을 이은 종(種) 선생이 있습니다. 그리고 약선의 유산을 얻었던 소량진(召粮振), 마선의 밑으로 들어간 조호(趙壺)까지 셋이 더 있습니다.”
“으음? 일을 도모했던 학겸은 어찌 되었느냐? 그가 십이비선의 비승통로를 여는데 앞장섰는데 그 이름이 없구나.”
건우는 다른 이들은 몰라도 진법을 직접 구축했던 학겸이라면 어떻게든 영계 비승에 성공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이름이 없다니.
“제가 기억하기로도 그는 분명 비승통로에서도 저보다 앞에 있었습니다. 당연히 비승에 성공했을 터인데, 어떤 소식도 전해들은 바가 없습니다.”
“머리가 좋은 놈이니 제 앞가림은 하겠지. 어쨌거나 그래도 제법 많은 수가 비승에 성공했으니 다행이구나. 그 때, 의외의 방해만 없었다면 모두가 비승에 성공할 수도 있었을 터인데 아쉬운 일이지.”
사실을 따지자면 그 방해의 원인이 건우 자신인데도 말하는 것이 뻔뻔하기 이를 데 없었다.
하지만 조예령이 그런 사실을 알 것도 아니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런데 어르신께서는 그 때, 비승로에 들지 못하셨지요. 그런 상황에서 공간이 뒤흔들렸는데, 어찌 다른 인계로 가셨던 것입니까?”
조예령이 문득 건우의 행적에 관심을 보였다.
이미 건우가 멸계전을 통해서 영계에 올랐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말이다.
그 정도로 만은사나 황금상단의 정보력이 뛰어나다는 이야기도 될 것이다.
“내가 멸계전에서 어찌 활약했는지야 너도 이미 알 것이니 굳이 내 얼굴에 금칠을 할 생각은 없다. 이제는 내 의뢰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자꾸나.”
“아! 네, 어르신. 알겠습니다.”
조예령은 건우가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마땅찮게 여긴다는 것을 알고는 곧바로 고개를 숙였다.
“나는 1만 개의 괴뢰심을 가지고 있다.”
“괴뢰심을 1만 개나요?”
“그것들 모두는 화신기 초기 이상의 괴뢰를 만들 수 있는 것들이다.”
“화신가 초기 이상의 괴뢰심이 1만 개라니···!”
“수가 많아 작은 성에서는 처리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이곳 혁개성까지 오게 된 것이지. 어떠냐 너는 이 거래를 제대로 해 낼 능력이 있느냐?”
건우가 조예령에게 은근히 기세를 뿜어 압박하며 물었다.
감히 거짓을 고하면 가만히 두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물론입니다. 혁개성 만은사의 힘만으로도 가능하지만 거기에 황금상단까지 함께한다면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냐?”
너무도 흔쾌한 대답이라 건우는 조금 맥이 빠졌다.
제법 큰 재산이라 여긴 1만 개의 괴뢰심이 별 것 아닌 취급을 받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만큼 자신의 재산이 빈약하다는 의미가 아니겠는가.
“물론입니다. 어렵지 않은 일입니다. 그런데 경매로 하자면 시간이 조금 필요합니다. 30년 후에 혁개성 대경매가 있습니다. 거기에서 처리하는 것이 가장 값을 좋게 받을 수 있는 방법이 될 것입니다.”
“30년 후?”
“그렇습니다. 혁개성 대경매는 매 200년마다 한 번씩 열리는 정기 경매입니다. 이때는 혁개성에 머무는 수사의 수가 평소의 세 배는 되지요.”
“그렇구나. 그럼 그 기회를 노리는 것이 좋겠지. 30년이야 못 기다릴 시간도 아니고.”
“급하신 것이 아니면 대경매가 최고의 선택이지요. 게다가 그 대경매에는 어르신의 관심을 끌만한 것들도 많이 나올 것입니다.”
“그렇겠지. 기대가 되는구나. 자, 그건 그거고. 이제 계약에 대해서 자세히 이야기를 해 보자꾸나. 조건을 봐야 결정을 하지 않겠느냐.”
과거의 연은 연이고, 거래는 거래인 것.
건우는 조예령과 경매 의뢰에 대한 조건을 조율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조예령이 가지고 온 계약 내용은 건우가 보기에도 합당한 내용들이었고, 조예령은 그 중에서도 몇 가지는 건우에게 유리한 쪽으로 변경해 주었다.
성장 속도가 빠른 건우와 좋은 관계를 맺어 두려는 의도라 했다.
그렇게 계약을 마치고 조예령이 돌아가자 건우는 할 일이 없어졌다.
가진 것이 없으니 혁개성에 넘치는 수련 자원들이 모두 그림의 떡일 뿐이다.
‘어쩔 수 없지. 십여 년 혁개성 주변을 돌면서 사냥을 하거나 채집을 하거나 해야겠군.’
결국 건우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뿐이었다.
* * *
“누구냐?”
혁개성에서 멀리 떨어진 늪지.
입령기 수사들도 위험하다 하여 금지로 여기는 그곳에 건우가 있었다.
건우는 마침 성령기 급의 교룡 하나를 사냥하고 그 사체와 알을 챙기고 돌아서는 중이었다.
그런데 멀리서 기세를 뿜으며 곧바로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성령기 수사를 맞이한 것이다.
멀리서부터 기세를 뿜어 존재감을 드러냈으니 기습을 하려거나 하는 것은 아닐 터였다.
다만 그 기세가 은연중에 건우를 압박하는 느낌이니 자연스럽게 말이 거칠게 나왔다.
“으음. 어찌 벌써 성령기가 되었지?”
그런데 건우 앞으로 날아온 수사는 대답도 없이 도리어 이상하다는 듯이 혼잣말을 했다.
그는 안색이 몹시 창백했지만 얼굴은 잘 생긴 미남이었다.
“너는 건우라는 놈이 맞느냐? 어찌 벌써 성령기가 되었지? 아니면 네가 건우라는 놈을 죽이고 그 검을 취한 것이냐? 아니지, 아무리 봐도 네 모습은 건우라는 놈의 것과 다르지 않다.”
그는 혼잣말을 하더니 건우를 노려보며 뭔가 정리되지 않은 말로 횡설수설했다.
하지만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전혀 알아듣지 못할 정도는 또 아니었다.
“나 말고 또 다른 건우가 있다면 동명이인이겠지. 하지만 이 검의 주인을 따지는 것을 보니 네가 찾는 건우는 내가 분명하다. 이 검은 오래 전부터 내 것이었으니.”
건우가 손에 들고 있던 삼백육십성광검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검은 조금 전에 늪지 교룡을 사냥하며 꺼내 들었었다.
“네 것이라고? 어디서 그런 거짓을 입에 담느냐? 그 검은 검선 어르신의 것이다!”
창백한 안색의 낯선 수사가 건우에게 고함을 질렀다.
“검선?”
건우는 낯선 수사의 입에서 뜻밖의 이름을 듣게 되자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렇다. 그 검은 검선 어르신의 것이니, 너는 당장 그 검을 이리 내어 놓아라.”
건우의 반응에 낯선 수사는 막무가내로 삼백육십성광검을 요구했다.
“으음. 이 검을 내어 놓으라고? 하하하.”
건우는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터트렸다.
“검선 어르신께서 오래 전부터 그 검이 홍애지에 나타난 것을 아셨다. 그래서 회수하려 했으나 네가 번번이 종적을 감추어 어르신을 번거롭게 했다. 하지만 이제 나를 만났으니 너는 당장 검을 내어 놓아라.”
“쯧, 이 검이 검선과 관계가 있음을 부인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겨우 한 조각의 검편을 주워 그것을 이리 귀하게 만든 것은 오로지 내 힘이었다. 그런데 어찌 이것이 검선의 것이라 할 수 있단 말이냐? 어림도 없는 소리다!”
“뭐라? 네가 감히 검선 어르신의 뜻을 거부하겠다는 것이냐?”
“검선이 아닌 그 누구라도 성광검을 내어줄 생각은 없다. 가지고 가려면 빼앗아 가야 할 것이다.”
“노옴! 네 놈이 기어코 명을 재촉하는구나. 검선 어르신께서 검만 거두어 오면 된다 하셔서 내 측은지심에 네 살 길을 열어주려 했더니!”
차창!
건우의 말에 낯선 수사는 분노를 터트리며 검을 뽑아들었다.
“으음!”
건우는 그가 검을 뽑는 순간 세상이 숨죽이는 것을 느꼈다.
검을 뽑지 않았을 때와 뽑았을 때의 상대는 전혀 다른 존재로 느껴졌다.
“나는 검선 어르신의 제7검령이니라.”
“검령? 듣기는 했지만 보기는 처음이군. 명검에 혼을 불어 넣어 만든다고 들었는데?”
“시끄럽다! 네가 검을 내어 놓지 않겠다면 너는 여기서 죽어야 한다!”
건우가 대화를 유도했지만 검령은 곧바로 공격을 시작했다.
검령이 뽑아든 검은 폭이 좁고 가는 형태였는데 혈조가 없었다.
검령은 찌르기 형태로 건우를 공격했는데 한 번 내지른 찌르기에 건우는 온 몸에 구멍이 나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건우도 만만히 당하고만 있을 사람이 아니었다.
곧바로 건우의 검에서 백팔십 개의 검이 쏟아져 나가 검령의 찌르기를 막기 시작했다.
차자자자자자장! 차자자자장!
건우는 연이어 두 번.
백팔십 개의 검을 쏟아냈다.
중첩된 삼백육십 개의 검을 모두 쏟아낸 것이다.
“노옴! 감히 어르신의 검법을 훔쳤구나!”
검령은 건우의 공격에 눈썹을 꿈틀거렸다.
건우가 성광검을 통해서 익힌 검법이 검선의 것임을 알아본 것이다.
“그렇다면 어디 이것도 받아봐라!”
검령은 다시 건우를 향해 검을 연이어 내뻗었다.
그러자 검령으로부터 수천의 검첨이 건우를 향해 날아왔다.
마치 가로로 쏟아지는 소나기를 맞는 느낌이었다.
“이런!”
건우는 그 모습에 급히 삼백육십성광검을 회수하여 전면에 벽으로 세웠다.
카가가가가가강 카가가강!
검령의 찌르기를 막는 성광검들이 화려한 별빛을 뿜으며 깨져 나갔다.
하지만 그렇게 깨진 검들은 다시 건우가 들고 있는 성광검으로 빨려들어 원형을 복구했다.
그렇게 검령의 찌르기와 건우의 검벽 방어가 한동안 대치했다.
“쳇!”
어느 순간 검령이 뻗었던 검을 회수하고 뒤로 물러났다.
“제법이구나! 검법은 고작 백팔십 검을 배웠을 뿐인데 검벽을 만드는 잔재주로 내 공격을 막아내다니.”
“이제 몸풀기는 끝나지 않았나? 본격적으로 해 봐야지?”
검령의 말에 건우도 삼백육십 개의 검을 모두 하나로 모으며 말했다.
“정말 죽고 싶은 것이냐? 너는 고작 성령기 초기에 불과하고, 나는 중기다. 네가 버틸 수 있을 것 같으냐?”
“길고 짧은 것은 대어 봐야 아는 것이겠지. 그게 아니라면 네가 검을 포기하고 물러나겠느냐?”
“결국 벌주를 마시겠다는 거구나! 그럼 죽여주마!”
건우의 단호한 태도에 검령도 더는 봐주지 않겠다는 듯이 결연히 소리치며 다시 건우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번에는 이전처럼 거리를 두고 공격하는 것이 아니었다.
곧바로 달려들어 직접 검을 나누는 근접전을 벌이려는 것이었다.
이에 건우도 피하지 않고 검령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런 건우의 몸은 황금빛 광채가 번뜩였고, 현묘한 법문이 가득한 갑옷이 그 광채 속에서 떠올랐다.
금강패갑공의 발현이었다.
차자자장! 카드드득!
건우와 검령이 서로 검을 맞대고 힘을 겨루며 얼굴을 마주했다.
그런 중에 검령의 몸에서는 날카로운 예기가 끝없이 건우를 향해 쏟아지고 있었다.
그저 검을 맞대고 치받는 것이 전부가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검령의 공격은 금강패갑공의 이능에 막혀 흡수되거나 흩어지고 있었다.
“이런 잔재주로 나를 어쩔 수 있으리라 생각한 것이냐?”
건우가 검령의 예기를 비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그런 건우의 등 뒤에서 하나의 보주가 두둥실 떠올랐다.
그것은 다름 아닌 성해룡주!
- 루야 등장입니다아!
콰과과과과과! 콰드드드득!
“이, 이건?”
건우의 아공간 일부가 늪지 위에 구현되었다.
원래 늪지였던 곳에 깊은 계곡과 높은 산이 나타나는 모습은 극적이며 또 비현실적이었다.
검령은 아공간의 구현과 동시에 자신의 의념이 강하게 제약받는 것을 느끼고 원래 창백했던 안색이 더욱 창백해졌다.
“자, 어디 버텨봐라!”
카르르르르륵!
건우가 검령과 맞댄 검을 힘차게 밀어붙였다.
< 검선의 검령이 나타났다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