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3)
< ‘정정 선자라 부르게 해 주겠다.’는 건 뭔 소리? >
‘선자가 불개미의 존재를 모른다!’
건우의 머리가 빠르게 판단을 내렸다.
‘그 말은 선자가 전에 말했던 것처럼 계속해서 나를 살피고 있었던 것은 아니란 소리겠지.’
“어째서 말이 없느냐?”
연꽃 선자가 주춤거리는 건우를 보며 말했다.
건우는 빠르게 결단을 내려야 했다.
“금제를 뚫은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라면 제게 특별한 방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건우는 그렇게 말을 하며 소매에서 불개미 한 무리를 꺼내 허공에 띄웠다.
붉은 운무 덩어리 하나가 건우의 가슴 앞에 두둥실 떴다.
“으응? 설마 그것은? 앙천적의(殃天赤蟻)! 앙천적의가 맞구나!”
유정정이 깜짝 놀라 고함을 질렀다.
“이것의 이름이 앙천적의(殃天赤蟻)입니까?”
“너는 그것의 정체도 모르면서 부리고 있었단 말이냐? 아니 도대체 어찌 앙천적의를 부릴 수 있다는 말이더냐? 어찌 그런 위험한 짓을 해!”
유정정이 건우를 보며 크게 화를 냈다.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이 불개미가 그리 위험한 것입니까?”
건우는 영문을 모르는 표정으로 유정정에게 물었다.
이럴 때에 불개미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알 수 있다면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멍청하긴! 잘 듣거라. 이것들은 앙천적의라 부르는 괴수다. 내가 알기로 이것의 어미는 태령기의 괴수로 때마다 자식들을 녹슨 열쇠 모양의 해금시(解禁匙)로 만들어 세상에 내보낸다.”
“저도 이전 경매에서 해금시를 얻었습니다. 거기서 나온 것이 바로 이 불개미들이었습니다.”
“앙천적의의 모(母)가 해금시를 세상에 내보내는 것은 먹이가 될 금제를 쉽게 얻기 위해서다.”
“금제를 쉽게 얻는다니 그건 무슨 말씀입니까?”
“에잉, 생각을 해 보아라. 앙천적의의 모(母)는 먹이로 엄청난 금제가 필요하다. 그런데 제 멋대로 금제를 갉아먹고 다니면 어찌 되겠느냐? 볼 것도 없이 공적이 되어서 토벌을 당할 것이다.”
“아, 알겠습니다. 그러니 해금시를 내보내서 금제를 없애는 책임에서 벗어난다는 말씀이군요? 자신은 그저 도구를 만들었을 뿐이니, 책임은 그것을 사용한 이가 져야 한다는.”
“옳다. 그래서 앙천적의에 대해서 아는 이들도 앙천적의의 모(母)에게 따지는 일이 별로 없다. 물론 따질 수 있는 이도 그리 많지는 않지만.”
“그렇습니까? 하긴, 태령기의 괴수라면 만만치 않기도 하겠습니다.”
“아니, 아니지.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지 않으냐!”
유정정이 갑자기 고함을 지르며 화를 냈다.
건우는 유정정의 온전치 못한 정신이 또 발작을 일으키는 것이 아닌가 하여 잔뜩 긴장했다.
“지금 네가 얼마나 위험한 짓을 하고 있는지 아느냐? 앙천적의의 모(母)는 그 새끼들을 무척이나 아낀다. 그런데 네가 그것을 빼앗아 부리고 있다면······. 아니, 아니구나. 이것들은 태령기 앙천적의의 새끼들이 아니야. 그렇다면 또 다른 모(母)가 있다는 이야긴데?”
유정정이 말과 함께 건우를 노려봤다.
건우는 아공간에 숨겨 놓은 화의모를 떠올리며 얼굴 표정이 굳었다.
“맞느냐? 이것들의 모(母), 그것을 네가 부리는 것이?”
유정정이 건우를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다.
건우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제가 이 불개미, 아니 앙천적의의 여왕을 부리고 있습니다.”
“하아, 괴이한 일이다. 지금껏 앙천적의의 모(母)를 영수로 삼았다는 소리는 듣지 못했다. 그런데 네가 그 어려운 일을 했단 말이냐?”
“네, 제가 그 어려운 일을······.”
“시끄럽다. 어디서 꼬박꼬박 말대답이냐?!”
“죄, 죄송합니다. 유 선자님.”
“하아, 무지가 죄겠지. 무지가.”
‘그 말은 내가 그렇게 멍청하다는 소립니까!’
건우가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하는 항변을 토하는 중에 유정정은 잔뜩 아미를 찌푸리고 고민에 빠져 있었다.
얼마 후 그녀가 다시 건우를 보았다.
“듣거라. 원래 앙천적의는 한 계에 두 무리가 살지 못한다. 본능적으로 서로를 용납하지 못하는 것이지. 게다가 앙천적의 끼리는 같은 계에서는 절대 서로의 존재를 감추지 못한다. 본능적으로 서로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습니까? 제가 기르는 화의모는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았습니다만.”
“그건 네가 뭔가 재주가 있다는 것이겠지. 태령기를 넘은 앙천적의의 모(母)가 지금껏 너를 그냥 둔 것을 보면.”
“저, 그것이······.”
“되었다. 나도 알아차리지 못할 수단이라면 네 비장의 수법일 터인데, 그것을 굳이 캐물을 생각은 없느니.”
“······.”
“하여간 조심해야 할 것이다. 이곳 고태의 공간이 워낙 은밀하게 숨겨져 있고, 거기에 네 재주가 더해져 앙천적의의 모(母)가 새로운 경쟁자의 출현을 놓치고 있는 것 같지만 그게 완전하지는 않을 터이니.”
“위험하겠습니까?”
건우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걸 말이라고 하느냐? 너라면 너의 천적을 키우는 놈을 보면 그냥 두겠느냐? 어리석기는!”
“죄송합니다. 선자님.”
“유 선자라 부르라지 않았느냐!”
“네, 유 선자님.”
“아무튼 이곳 고태의 공간은 원래 내 도움이 없었다면 감히 들어올 생각도 못 했을 곳이고, 이곳에서 배운 것도 적잖을 터이니 내가 이 옥대를 취한 것에 악감(惡感)을 가지지 말 것이니라.”
“이, 이를 말씀이겠습니까. 저는 절대 불만이 없습니다.”
“그래, 그래야지. 그런데 네 경지 말이다.”
유정정은 앙천적의에 대한 이야기를 대충 마무리하자 다시 건우의 경지에 대해서 말을 꺼냈다.
“네, 유 선자님.”
“내가 이전에는 조금 정신이 없고, 상태가 안정되지 못하여 제대로 살피지 못했다만, 지금 보니 조금 이상하구나.”
“네? 이상하다니요?”
“괴이해. 의념도 강력하고, 크기도 커서 나쁘지 않다고 착각했느니. 하지만 지금 보니 사상누각(沙上樓閣)이나 다름이 없어 보이는구나.”
“아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그럼 제 수련이 잘못되었다는 말씀입니까?”
“으음. 솔직히 말하거라. 너! 도대체 어찌 경지를 올린 것이냐? 이전에 내가 너를 봤을 때에 네가 입령기 완경이기는 했다만 성령기에 오를 준비는 전혀 되어 있지 않았는데?”
“저 그것이······.”
건우는 잠시 갈등했지만 진극멸기에 대한 이야기를 숨기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미 유 선자는 격죽상인으로부터 자신을 구해 낼 때, 자신이 영기와 혼돈기, 극멸기를 함께 가지고 있음을 알아보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진극멸기를 이용해서 경지를 끌어 올리는 것에 대해서 알린다고 해도 문제는 아닐 것이다.
“말해 보아라.”
“제가 빠르게 경지를 올린 것은 진극멸기를 이용하는 방법을 썼기 때문입니다.”
“진극멸기를 이용했다고?”
“그렇습니다.”
“네가 그걸 어디서 얻었단 말이냐? 그것도 성령기에 오를 정도면 엄청난 진극멸기가 필요했을 터인데!”
유정정이 깜짝 놀라며 건우를 추궁했다.
“그건 제가 수미 세계에 오기 전에 인계에 있을 때, 그곳에서 멸계전을 경험하며······.”
건우는 이전에 거쳤던 인계에서 진행된 멸계전의 특별한 상황과 그 덕분에 엄청난 진극멸기를 모았던 멸계 수사들의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그들의 멸기함분을 빼앗았던 것까지.
“그러니까 그렇게 모은 진극멸기를 통해서 빠르게 경지를 올렸다?”
“그렇습니다.”
“호호호홋, 너는 무척이나 재미있는 아이구나. 내 멸계 수사들이 진극멸기를 이용하여 경지를 올린다는 이야기는 들었다만 그 방법으로 영기 수련 수사의 경지까지 올릴 수 있을 줄은 몰랐구나. 하지만 흐으으음.”
“네? 어찌 그러십니까?”
“모르겠다. 모르겠어. 아직도 내 정신이 온전치 못한 모양이구나. 생각이 이어지지를 않아. 흥!”
유정정은 갑자기 콧방귀를 뀌며 몸을 돌렸다.
“어, 어찌 그러십니까 유 선자님.”
“몰라! 어쨌거나 이제는 너도 성령기에 올랐으니 네 앞가림 정도는 하겠지. 이제부터 나는 이 옥대를 수습하고 내게 생긴 문제를 해결하려 폐관을 할 것이야.”
“폐관을 하신다고요?”
“그래, 그러니 당분간은 네게 문제가 생겨도 내가 돕거나 하지는 못할 거다.”
“제가 어찌 여기서 더 도움을 바라겠습니까?”
“시끄럽다! 아까도 이야기하지 않았느냐! 앙천적의의 모(母)가 너를 노릴 것인데 어찌 걱정이 되지 않는단 말이냐? 네가 태령기의 괴수를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으냐?”
“그, 그렇군요.”
“이제 이곳 고태의 공간도 무너질 것인데, 그리되면 앙천적의의 모가 네가 부리는 앙천적의의 존재감을 뚜렷이 느끼게 될 터! 그렇게 되면 어찌 될 것 같으냐?”
“어떻게든 제 앙천적의를 숨겨야겠군요.”
“지금의 나도 네가 부리는 앙천적의의 모(母)를 찾지 못하는 것을 보면 네게 특별한 방법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네가 부리는 모든 앙천적의를 그렇게 숨겨야 할 것이고, 될 수 있으면 밖으로 드러내지 말아야 할 것이다.”
“알겠습니다. 그리 하겠습니다.”
아공간에 대해서 꼬치꼬치 캐묻지 않은 유정정의 배려가 너무 고마운 건우였다.
“흥! 나는 이제 돌아갈 것이다. 그리고 혹시라도 네가 태령기가 된다면······.”
“네?”
“정정 선자라 부르는 것을 허락하겠다! 흥!”
“서, 선자 님, 아니 유 선자님!”
건우가 급히 유정정을 불렀지만 그때는 이미 그녀의 모습이 사라진 후였다.
“이게 뭔 소리래?”
- 그, 지구식 표현으로 청신호 뭐 그런 건가요?“
“청신호는 또 뭐야?”
- 그린 라이트?
“시끄러! 아무튼 이해할 수 없는 분이야.”
- 정신이 오락가락하잖아요.
“으음. 그나저나 기가 막히네.”
- 네? 뭐가요?“
“봐라. 이걸!”
건우가 신경질을 내며 유정정이 남겨 주고 간 고태의 공간낭에 의념을 불어 넣었다.
그러자 텅 비어 있는 공간낭의 내부가 드러났다.
- 와! 깔끔하네요. 있는 거라곤 저급한 재료들뿐이고요.
“아주 알뜰하게도 긁어서 쓴 거지.”
- 천겁을 피해 숨는 건데, 뒤를 생각할 여유가 있었겠어요? 쓸 수 있는 건 다 썼겠죠.
“그래. 그래서 이번에는 별 수입이 없는 거지.”
- 그래도 오는 길에 수만 개의 괴뢰심을 얻었잖아요. 그것도 화신기 급의 괴뢰심이요.
“그것도 재활용하면 격이 조금 떨어지잖아. 아슬아슬하게 화신기 급으로 유지하는 정도가 최선일걸? 좀 과하게 상한 것들은 그것도 안 될 테고.”
- 그래도 그게 어디에요? 그것들을 처분하면 충분히 이번 승경에서 소모한 것들을 벌충할 수 있을걸요?
“그게 되면 좋겠다만.”
건우는 내심 기대를 하면서도 고태의 텅 빈 공간낭에 입맛이 쓰게 느껴졌다.
***
“이제 바다라면 신물이 올라오는 거 같다. 어째 좋은 기억이 없는 거 같아.”
- 여긴 어딜까요?
“수미세계가 구산팔해(九山八海)로 이루어졌다 하는데, 이렇게 망망대해만 보고 여기가 어딘지 어떻게 알겠어?”
- 그래도 함해는 아닌 거죠?
“아, 맞다.”
루야의 말에 건우는 곧바로 바닷물에 의념을 불어 넣어 확인했다.
“여덟 번째 바다는 아니네. 함해(鹹海)였으면 짠물이었을 텐데, 여긴 담수야.”
수미 세계 여덟 개의 바다는 첫 번째 바다인 수미해(須彌海)부터 일곱 번째 바다인 상이해(象耳海)까지는 모두 담수로 되어 있다고 했다.
따지고 보면 바다가 아니라 호수라 해야겠지만 워낙 넓으니 모두 바다라 불러 함해까지 더해서 팔해(八海)라 칭했다.
- 결국 여기가 함해가 아니면 섬부주(贍部洲)로 돌아가긴 어렵겠네요?
섬부주는 남염부제(南閻浮提)의 다른 이름이다.
건우가 수미 세계에 도착한 후로 경험한 모든 것은 바로 그 남염부제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런데 남염부제는 구산팔해 중에 마지막 여덟 번째 바다인 함해에 있는 네 개의 큰 섬 중에 하나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그 남염부제조차도 일부만 경험했을 뿐이라, 막상 어딘지도 모를 바다 위에 떠 있으려니 수미 세계의 광활함이 새삼 절실히 느껴지는 순간이다.
“이대로 있을 수는 없으니 일단 움직이기는 해야겠지. 그나마 바다가 잔잔해서 다행이긴 하다만.”
쿠구구구궁! 번쩍! 콰르르르릉!
건우의 말을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이 아득히 먼 곳에서 검은 점이 생겨나며 천둥과 번개가 치기 시작했다.
- 말이 씨가 된 거 같은데요? 이제 어떻게 하실 거예요?
루야가 물었다.
“태풍이 몰려올 모양이니, 반대쪽으로 도망을 가야 하지 않겠냐? 마침 태풍이 내가 가야 할 방향을 정해주는 셈이구나.”
- 그런데 부양도로 되겠어요? 기세를 보아하니 태풍이 심상치 않은데요?
“뭐 급할 것이야 있겠냐? 안 되면 아공간에서 쉬면되는 거지.”
건우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출도령패를 던져 부양도를 꺼냈다.
하지만 얼마 가지도 못해 태풍에 따라잡히자 둔술까지 펼쳐 도망치려 했지만 결국 떨치지 못하고 아공간으로 몸을 피해야 했다.
그런데 그렇게 아공간에서 태풍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데 십여 년이 흘러도 태풍이 잦아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 하늘과 바다가 모두 미친 거 같아요. 아무리 건우 님이라도 저 밖에서는 오래 버티지 못하겠죠? 천지 영기가 저렇게 거치니.
“휴우, 이렇게 되면 어쩔 수 없이 반대쪽 영계로 가야 할 거 같다. 수련을 하려고 해도 자원이 부족하니 시간만 보내고 있을 수는 없지.”
아공간에서 수련을 할 수는 있지만 단순 영기 운공으로는 수련 성과를 보기 어렵다.
수사의 수련에서는 수련 자원인 영석이나 영단 등이 필수적이다.
오로지 순수한 수련으로만 경지를 끌어 올리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봐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건우는 성령기 승경에서 대부분의 자원을 소비했기에 남은 것이 거의 없었다.
아공간에서 태풍이 잠잠해지기를 기다리느니 반대편 영계로 넘어가서 고태의 괴뢰심이라도 처분해서 수련 자원을 마련하는 것이 나을 듯했다.
건우는 곧바로 상급 영석 100개를 소비하여 반대편 영계로 넘어갔다.
< ‘정정 선자라 부르게 해 주겠다.’는 건 뭔 소리?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