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240화 (240/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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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를 도대체 어디에 보낸 거야? >

“구명지은에 감사드립니다. 선자님.”

건우는 연꽃 선자를 향해 두 손을 모으고 정중하게 허리를 숙였다.

“흥!”

연꽃 선자는 그런 건우를 보며 콧방귀를 뀌고 고개를 돌렸다.

건우는 그런 선자의 태도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당황했다.

“도대체 왜! 고작 그런 것들에게······. 어휴, 아니다. 다 네가 모자란 탓인 걸 어떻게 하겠니. 내가 도대체 어쩌다가 이런 녀석에게······.”

선자는 건우를 외면한 상태로 투덜거리며 입을 삐죽였다.

그러다가 다시 고개를 팩 돌려 건우를 노려봤다.

“너!”

“네, 선자님.”

건우가 얼결에 기합 가득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흐응, 내게 바라는 거라도 있니?”

“네? 아, 아닙니다. 선자님. 이번에 목숨을 구해주신 것만으로도 과분한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렇지? 맞아. 생각해 보니까 네가 나를 도왔고, 나도 널 도왔으니까 이제 빚은 없는 거지?”

“물론입니다. 선자님.”

확실히 구명의 은혜를 입었으니 그 전에 어떤 빚을 지웠더라도 이제는 받을 것이 없다고 보는 것이 옳았다.

그렇기에 건우는 연꽃 선자에게 무언가를 더 기대하지 않았다.

그나마 죽을 상황에서 나타나 도움을 준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다.

수사들 사이에서 원수는 잊지 않아도 은혜는 일부러라도 잊는 이들이 어디 한 둘인가.

그렇게 보면 연꽃 선자는 보기 드문 선인(善人)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응, 분명 그런 거야. 아으, 그런데 왜 이렇게 마음이 불편할까? 네가 내 기운을 품고 있어서 그런가?”

“기운이라 하심은 어떤 것을 말씀하시는지요? 전에도 비슷한 말씀을 하셨는데 어리석은 제가 알지를 못합니다.”

“응? 별 거 아니야. 내가 정화의 기운을 지녔는데, 그것을 네가 약간, 아주 약간 품게 되었지. 아마도 봉인이 풀리는 과정에서 그리 된 걸 거야.”

“그렇습니까?”

“그래, 그게 아니면 네가 탈이 난 것을 어찌 알았겠어? 설마 내가 항상 너를 지켜보고 있다거나 그럴 거라고 생각한 거야?”

“아, 아닙니다.”

“그래, 그런 거 아니야. 그냥 네게 문제가 생기면 알 수 있을 정도일 뿐이지.”

“그렇군요.”

“아, 몰라. 일단 구해줬으니까 이걸로 끝! 나머지는 네가 알아서 해.”

“물론입니다. 선자 님께 짐이 될 수는 없지요.”

“그래, 그래야지.”

연꽃 선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손가락을 튕겼는데, 그 순간 건우의 몸이 연꽃이 있는 연못에서 씻은 듯이 사라졌다.

“흐응, 알아서 잘 하겠지. 내가 발등에 떨어진 불만 아니면 좀 거들어 줬을 텐데, 어쩔 수 없지. 원래 고난이 있어야 성장도 하는 법이지.”

연꽃 선자는 건우가 사라진 자리를 바라보며 그렇게 중얼거리다가 다시 양쪽 무릎에 손등을 내리고 눈을 감았다.

태령기의 완경이라지만 워낙 오래 봉인이 되어 있다 보니 몸이나 경지의 상태가 정상이 아니었다.

지금은 그것을 바로잡는 것이 급했다.

건우에게 생긴 문제 때문에 급히 움직이느라 손해를 보았다.

이번 연꽃 선녀의 출행은 건우가 짐작하는 것보다 훨씬 큰 희생이 깔려 있는 셈이었다.

자그마치 태령기 완경의 수사가 요상을 멈추고 움직인 것이니.

***

“여긴 어디야?”

그 시간 건우는 어딘지 모를 절벽에서 주변을 둘러보는 중이었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은 수직으로 위도 아래도 짐작하지 못할 정도로 높았다.

그런 중에 절벽에서 튀어나온 평평한 바위 하나가 있어, 건우가 그 위에 서 있었다.

연꽃 선자의 손짓 한 번에 연못에서 쫓겨나 도착한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휘이이이이이잉!

거칠고 매서운 바람이 절벽을 타고 휘몰아쳤다.

입령기의 수사가 그런 자연 현상에 영향을 받을 일은 없지만, 이곳의 바람은 일반적인 것이 아니었다.

“크으, 싸늘하네. 도대체 여기가 어디기에 불어오는 바람조차 영기를 머금어 기운이 사나울까?”

건우가 바람에 날리는 옷자락을 갈무리하기 위해 팔짱을 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 다른 건 몰라도 한 가지는 확실하죠.

그때, 건우의 머릿속에 루야의 목소리가 전해졌다.

“확실해? 뭐가?”

- 여기가 혼돈역 밖이라는 거요.

“그거야 누가 몰라? 혼돈기도 극멸기도 없는데 당연히 혼돈역은 아니지.”

- 그리고 당연히 이곳이 남염부제가 아닐 가능성도 있겠죠.

“아, 그건 그러네. 어디 보자, 격죽 상인이 이르기를 그 혼돈역이 상이산맥, 마이산맥, 철위산맥, 남염부제에 우화주까지. 이렇게 다섯 지역과 연결이 되어 있다고 했다지?”

건우는 자신이 입령기에 오른 후 파견대 본부로 돌아왔을 때 들었던 정보를 되새기며 말했다.

- 그랬죠. 수미 세계로 통하는 입구는 다섯, 멸계로 통하는 입구가 셋이라고 했죠.

루야가 그런 건우의 말에 내용을 보탰다.

“일단 좀 움직여 봐야겠는데, 어째 평소의 3할 정도 밖에는 힘을 낼 수가 없겠는데? 중력이 서너 배 되는 곳에 온 느낌이야.”

건우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의념을 펼쳐 주변을 탐색했다.

절벽과 바람, 그리고 간혹 느껴지는 영기의 응결.

다행히 위험은 느껴지지 않아서 건우는 긴장을 풀었다.

그러자 문득 연꽃 선자가 떠올랐다.

“아무래도 좀 맛이 간 거 같지? 변덕이 심하고 즉흥적인 거 같아. 악하진 않지만 종잡을 수가 없는 사람이야.”

- 그 선자 말씀이죠?

“그렇지.”

- 하긴 이런 낯선 곳에 건우 님을 던져 놓은 것만 봐도 확실히 정상은 아닌 거 같아요. 아무 설명도 없이.

“나를 좋게 생각하는 건 분명한데, 불안하기도 하지. 언제 돌변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자꾸 드니까.”

- 그래도 어쩔 수 없죠. 솔직히 벗어날 방법도 모르잖아요. 그냥 그 여자가 못된 마음을 품지 않기만 바랄 뿐이죠. 그게 아니면 수미산 상징으로 다른 쪽 영계로 넘어가거나요.

“휴우, 모르겠다.”

- 참, 그렇게 서둘지 마시고 여기서 요상이라도 하고 가세요. 어딘지도 모르는데 부상을 입은 상태로 움직이는 건 현명하지 못한 행동이라구요.

“그래, 그것도 그러네. 여기가 절벽에 붙은 곳이다 보니 무의식적으로 불안한 느낌이 든 모양이네. 그러니 이런 몸으로 안전한 곳을 찾아 움직이겠다는 생각을 했겠지. 뻔히 근처에 위험한 것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도.”

건우는 자신의 머리를 툭툭 치면서 반성을 하고는 등을 돌려 절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괴뢰들을 꺼내서 그 절벽에 구멍을 뚫어 동부를 만들게 했다.

이후 건우는 절벽에 뚫은 임시 거처에서 격죽 상인에게 얻은 요상단을 먹고 운기요상을 하며 몸과 마음을 추슬렀다.

그런 중에도 주상활기단을 취하지 않은 것은 정말 급할 때를 위해 아껴두려는 마음이었다.

그렇게 몇 달의 시간이 흐른 후, 건우는 부양도를 타고 절벽의 동부를 떠났다.

***

“신기한 곳이네. 절벽에서 멀어질 수도 없는데, 위로도 아래로도 끝이 보이지 않다니.”

건우가 부양도의 누각 7층에 앉아서 중얼거렸다.

그가 요상을 마치고 길을 나섰을 때, 갈 곳을 정하지 못해 우선 절벽 위를 먼저 확인하려 했었다.

그런데 아무리 올라가도 절벽의 끝을 발견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반대로 절벽 아래로 내려가려 해도 역시 바닥에 닿지 못했다.

게다가 마지막으로 절벽에서 멀어지려 해도 몇 달 정도 가다보면 다시 절벽이 눈앞에 나타났다.

“생각을 해 봤는데 말이다.”

- 말씀하세요. 무슨 생각을 하셨다는 건데요?

“지금 죽어라 올라가도 끝없는 절벽, 내려가도 끝이 없는 절벽, 거기에 어느 방향으로든 절벽에서 멀어지면 몇 달 후에 다시 절벽을 마주하는 현상을 고려하면······.”

- 그걸 설명할 수 있는 형태가 하나 있기는 하죠.

“응? 너도?

- 네. 아마도.

“구(球)! 구(球)의 내부에 갇혀 있는 거지.”

- 제가 말하려고 했었다고요! 지금 건우 님은 구형의 빈 공간 안에 있는 거죠. 절벽으로 보이는 겉껍질이 얼마나 두꺼운지는 모르지만 안쪽에 계신 거예요.

“그래, 나도 같은 생각이다. 워낙 구가 커서 벽이 절벽으로 느껴지는 것일 뿐이지.”

- 재미있는 것은 건우 님이 어디에 있더라도 항상 위와 아래에 대한 감각은 일정하게 유지가 된다는 거죠.

“어떤 술법인지 굉장한 술법이지. 이런 거대한 공간을 만들고 거기에 감각을 속이는 이런 술법을 대대적으로 걸어 놓았으니.”

- 아무튼, 건우 님과 제 생각이 같다면, 어떻게든 여기서 나가긴 해야겠지요?

“그렇지. 그리고 아무리 넓다고 해도 결국은 한정된 공간! 그렇다면 빈틈없이 살펴서 무슨 비밀이 있는지 알아보기도 해야겠지.”

- 부양도로 몇 달은 가야 반대쪽 벽에 닿는 엄청난 공간인데요? 여길 모두 뒤지시겠다고요?

“생각해보면 연꽃 선자가 나를 여기에 보낸 이유가 있지 않겠어? 그냥 이곳에 가두고 수련이나 하라는 건 아닐 거 같은데?”

- 설마 그 선자가 다 계획이 있어서 건우 님을 이곳에 보냈다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아마도 태령기 완경이거나 그에 가까운 수사일 텐데, 아무 생각없이 나를 여기 보내진 않았겠지.”

-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그 여자, 조금 맛이 간 거 같아서······.

“그 소리 들으니 나도 좀 그렇기는 하다.”

- 뭐, 그래도 건우 님에겐 그 붉은 개미들이 있잖아요. 그 개미들을 어떻게 잘 쓰면 여기서도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요? 여기가 특별하게 만들어진 술법 공간이라면 그 붉은 개미들이 어떻게든 금제를 뚫어 줄 테니까요.

“아! 그럴 수도 있겠네. 워낙 규모의 차이가 심해서 어떨지는 모르겠다만.”

- 아무튼 그 개미들도 잊지 마시라고요.

“물론이지. 어쩌면 정말 회심의 한 수가 될지도 모르는 녀석들인데.”

건우는 오랜만에 활짝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영계 수준의 금제라면 어떤 것이든 해결할 수 있다는 해금시가 바로 그 개미들 아닌가.

- 그런데 여왕개미가 태어난 후로 몇 개의 알을 낳고는 지금까지 동면이라도 하듯이 조용하니 그게 문제긴 하네요.

“일단 내가 그 여왕개미를 길들인 다음에나 뭘 해 볼 수 있겠지. 아니, 이참에 그 일이나 좀 더 해야겠다. 부양도는 절벽을 따라서 계속 움직이게 하고.”

비행 각도만 미세하게 조절해 두면 부양도가 알아서 절벽을 따라 끝없이 비행할 것이다.

그러면 자신은 절벽을 살피면서 여왕개미 길들이기도 겸할 수 있을 테니 좋을 듯 했다.

***

수십만 리의 뾰족하고 높은 토산(土山).

그 깊은 곳에 있는 넓은 침실에서 붉은 나삼의 여인이 눈을 떴다.

“으응? 동족의 향이 느껴지는 것 같은데?”

말을 하면서도 확신은 들지 않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앙천적의의 여왕.

그녀는 곧 더듬이를 수천 장에 이르도록 뻗어내어 희미한 냄새를 쫓았다.

하지만 여전히 확신할 수 없는 미묘한 향만 느껴질 뿐이었다.

“희미해, 하지만 동족의 향이야. 어딘가 여왕이 있어.”

그녀는 눈썹을 찡그리며 중얼거렸다.

그러면서 침대 아래쪽을 잠시 바라보았다.

보이지 않지만 그 아래에 자신의 본체가 잠자고 있었다.

만약 본체가 깨어 있다면 분명히 곧바로 향의 주인을 찾아 뛰쳐나갔을 것이다.

본체가 자신보다 훨씬 본능에 충실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깨울 때가 아니야. 아직은 소화가 먼저지.”

그녀는 잠시 아미를 찌푸리며 고민하다가 고개를 흔들었다.

지금 본체를 깨워봐야 소화만 늦어질 뿐이다.

그리고 향이 이토록 흐리게 느껴지는 것은 그 여왕을 보호하는 힘이 그만큼 강력하다는 뜻일 것이다.

앙천적의의 향을 이렇게까지 차단할 수 있다면 절대 만만히 볼 수 없다.

그러니 이쪽도 최상의 상태로 움직일 필요가 있었다.

“흐음. 그게 아니어도 저 쪽 여왕 역시 나를 죽이려 할 테니, 굳이 내가 나서지 않아도 될 일이지. 맞아.”

따져보면 그것도 맞는 말이다.

그렇게 당장 본체를 깨우지 않아도 될 이유를 만들어낸 나삼 여인은 다시 침대에 몸을 눕히고 뒹굴거리기 시작했다.

< 나를 도대체 어디에 보낸 거야?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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