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239화 (239/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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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둥! 예상도 못한 뒷배의 등장 >

“자, 이런데도 이실직고 하지 않겠느냐? 바른 대로 말을 하거라. 네 놈은 멸계에서 들어온 첩자가 분명하렸다?”

“사형, 그걸 굳이 물어봐서 무얼한답니까. 저 놈이 멸계에서 힘을 숨기고 온 놈이 아니라면 어찌 고작 몇 백 년 사이에 화신기에서 입령기 완경까지 오를 수가 있었겠습니까.”

“옳습니다. 마땅히 저 놈에게 추혼술을 펼쳐서 멸계 놈들의 수작을 밝혀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멸계 놈들이 그런 것을 대비하지 않고 저 놈을 보냈을 턱이 없지 않습니까. 자칫 추혼술을 펼쳤다가 저 놈이 덜컥 죽어버리기라도 한다면 얻는 것이 없을 것입니다.”

“다들 조용히 해라. 스승님께서 계시는데 뭐가 걱정이란 말이냐?”

첩자가 아니라면 죽이는 것이 좋겠다는 격죽상인의 말 이후에 그 제자들이 중구난방으로 떠들기 시작했다.

그런 중에 가장 격죽상인과 가까이 있던 제자가 나머지 제자들을 진정시켰다.

그렇게 대전이 다시 조용해지자 격죽상인이 건우를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어떠냐? 이제 사실을 이야기하겠느냐?”

건우는 그 물음에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아직까지는 여유가 있었다.

당장이라도 마음만 먹는다면 아공간으로 들어갈 수 있을 듯 했다.

그 직후 곧바로 수미산 상징을 통해서 다른 쪽 영계로 넘어가면 아무리 태령기의 격죽상인이라도 건우를 찾지 못할 것이다.

물론 이후로는 다시 수미 세계로 오는 것이 어려워 질 수도 있고, 건우가 들어간 아공간을 격죽상인이 빠르게 파악하여 허물어 버릴 수도 있다.

그런 위험이 있기는 해도 어쨌거나 아직 시도해 볼 방법은 남아 있고, 그 시도는 지금 당장이 아니라도 할 수 있으니 조금 미뤄도 될 듯 했다.

건우가 고민 끝에 입을 열었다.

“실로 웃음이 날 일입니다. 제가 듣기로 상인께서는 정도를 걷는다 했는데, 귀찮다는 이유로 후배를 이리 죽이려 하시다니요.”

“그 말은 네가 멸계의 첩자임을 토설하지 않겠다는 소리구나?”

“아닌 것을 그렇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닙니까.”

“이러나저러나 죽기는 마찬가지란 생각을 한 모양이구나. 더구나 첩자로 죽는 것보다는 그냥 죽는 것이 그나마 윤회라도 할 수 있다는 계산도 선 모양이고.”

격죽상인은 건우의 반응에 의외라는 표정을 잠시 떠올렸다가 또 제 나름 이해를 했다는 듯이 말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왕 죽을 바에야 그런 것이 무슨 상관이겠습니까만, 울컥! 제가 스스로 첩자가 아니라 주장하는 것은 오명을 쓰고 죽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크음.”

“네 말대로 어차피 죽을 것이라면 그 따위 오명 따위가 무슨 상관이란 말이냐?”

“별 것 있겠습니까. 그것이 조금이라도 스스로에게 떳떳하기 때문이지요. 쿨럭! 쿨럭! 구차하게 살 길을 도모해 볼 수도 있겠지만 고작 입령기 주제에 성령기와 태령기 앞에서 수가 통하겠습니까? 쿠에엑!”

건우는 말을 하는 도중에도 몇 번이나 각혈을 했다.

격죽상인의 가벼운 한 수가 여전히 건우를 괴롭히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비굴한 태도는 보이지 않으려 애쓰는 건우였다.

“하하. 그것 참, 혀가 제법 긴 놈이구나. 하지만 고작 그런 말로 내 호기심을 오래 잡아 둘 수는 없다. 잔재주는 통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격죽상인은 애써 노력하는 건우의 모습에도 별로 감흥이 없다는 듯이 심드렁한 태도를 보였다.

그것은 건우를 처음 대했을 때보다 흥미가 훨씬 떨어진 듯 보이는 모습이었다.

건우는 격죽상인이 언제든 자신의 숨통을 끊을 수도 있겠다는 불안감을 느꼈다.

격죽상인의 입장에서 본다면 건우는 건우가 볼 때의 영체기 수사보다 하찮을 것이다.

건우 역시 성단기나 영체기 수준의 수사를 대할 때에 깊이 고민하지 않을 것이고,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면 번거로움을 피하기 위해 살육을 벌일 수도 있었다.

‘내가 그런데 저 격죽을 탓할 것이 뭐가 있을까. 단지 어울리지 않는 상대를 일찍 만나 더러운 꼴을 당하는 것일 뿐이지.’

건우는 그런 생각을 하며 격죽상인을 쳐다봤다.

그 눈빛에는 격죽상인에 대한 불손함이 가득 담겨 있었다.

자신을 죽이려는 상대를 좋게 바라볼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 어차피 네 입으로 순순히 실토할 일은 없겠지. 멸계에서 심혈을 기울여 보낸 놈일 테니 오죽할까. 하지만 내가 네 놈에게 숨겨져 있는 수작을 밝혀내지 못할 거라곤 생각하지 말거라. 자, 어디 네가 얼마나 대단한지 한 번 보자꾸나.”

더는 건우와 말싸움을 하고 싶지 않은지 격죽상인이 건우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푸른빛이 감도는 손을 건우에게 향하는 순간 건우는 온 몸의 피가 뽑혀 나가는 느낌에 진저리를 쳤다.

그리고 실제로 격죽상인의 한 수에 건우의 영기가 딱딱하게 굳어 버렸다.

실제로 영기가 굳었다기보다는 건우의 의념과 영기의 연결이 완벽하게 끊어진 것이다.

“크으으으윽!”

건우는 온 몸이 개미떼에게 물어뜯기는 듯한 고통에 신음을 토했다.

영체기 이후로 수사들의 몸은 물질적인 것이라기 보다는 기(氣)의 응결에 가까웠다.

그리고 그런 몸은 수사의 정신, 곧 의념과 연결되어 하나의 개체를 완성한다.

그런데 격죽상인이 그 몸을 형성한 기와 건우의 의념 사이를 끊어 버린 것이다.

그런 상황이니 건우의 영체가 결집력을 잃고 흩어지는 것은 당연하고 거기서 오는 고통은 일반적인 육체의 고통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이었다.

비유하자면 극도의 고통을 세포의 숫자만큼 곱해서 느끼는 상태라고 할까.

“네 몸뚱이 따위야 어디에 쓰겠느냐. 필요한 것은 영혼 뿐이다. 육체를 태워 버리고 영혼만 빼 내어 그 기억을 읽으면 뭔가 알 수 있겠지. 설마 멸계 놈들이 네 영혼에 따로 수작을 부렸으면 그도 어쩔 수 없는 일이고.”

격죽상인은 건우의 육신과 영혼을 갈라놓은 후, 육신의 기운을 따로 뽑아다가 손바닥 위에서 하나의 단을 만들고 있었다.

건우는 자신의 몸이 흩어져 격죽상인의 손에서 영단으로 변해가는 것을 지켜보며 이를 갈았다.

하지만 당장 복수할 힘이 없으니 이제는 마지막 남은 방법으로 이 난관을 벗어나는 것이 최선일 듯싶었다.

‘두고 봐라. 반드시 복수를 하고 말 테다.’

건우는 비명을 지르면서도 마지막으로 격죽상인을 노려봤다.

그리고 아공간을 열려 했다.

대전 전체에 갑작스런 사태가 벌어져 격죽상인의 행사가 멈추지 않았다면 분명 그렇게 했을 것이다.

쩌저저저저적!

만약 대전에 벌어진 상황을 소리로 표현하면 이와 같지 않았을까?

격죽상인과 그의 제자들, 그리고 도맹의 5대 세력에서 나온 파견대 대표들.

그들이 한순간 얼어붙은 듯이 멈췄다.

“크윽! 이, 이게 무슨?”

그 속에서 자유로운 것은 건우밖에 없었다.

격죽상인의 수작질도 멈춰서 고통까지 씻은 듯이 사라진 상태였다.

건우는 영문을 몰라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런데 그런 중에 다시 대전의 멈춤 상태가 풀리기 시작했다.

“이, 이게 무슨? 어느 고인이십니까!”

격죽상인이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대전 중앙을 보며 말했다.

그러자 그 자리에 은빛 점이 하나 나타나더니 점점 영역을 넓혀 어느 순간 지름 5장 크기의 연못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연못의 중앙에는 아담한 정자 크기의 연꽃이 봉우리를 오므리고 있었는데, 온전히 모습을 드러낸 것과 동시에 서광이 뿜어지며 꽃잎이 활짝 열렸다.

“흐응, 이게 무슨 일인지 누가 설명을 좀 해 줄래?”

그리고 그 안에서 연화경의 연꽃 선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여전히 꽃턱 위에 가부좌를 하고 앉아 있었는데 얼굴 표정에 살얼음이 낀 듯 했다.

“고, 고인께서는······.”

격죽상인이 떨리는 목소리로 연꽃 선자에게 말을 걸었다.

“아이야, 네가 나에게 고해야 할 것은 무슨 이유로 내 아이를 괴롭히고 있었는지 이유를 밝히는 것이다. 목숨을 부지하고 싶다면 반드시 마땅한 이유가 있어야 할 것이고.”

연꽃 선자는 격죽상인의 체면 따위를 고려하지 않았다.

태령기 경지에 있는 격죽상인이 그런 선자의 말에 이마 한가득 땀이 흘러나왔다.

“저 아이가 고인의 아이라고 하심은······.”

“너 말이 많구나? 누가 너한테 질문을 허락했지?”

우르르르릉! 스화화홧!

“크으으으윽! 어, 어르신 자비를!”

연꽃 선자는 자신의 질문에 답을 하지 않고 질문을 던지는 격죽상인을 향해 노여움을 드러냈다.

그녀가 인상을 쓰자 한줄기 서광이 날아가 격죽상인을 관통했다.

그것은 단지 상서로운 빛에 불과했는데 격죽상인은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엎어지며 연꽃 선자에게 자비를 간청했다.

“흥! 다시 물으마, 저 아이를 저리 다룬 이유가 무엇이냐?”

연꽃 선자는 괴로워하는 격죽상인을 잠시 노려보다가 서광을 줄이고 다시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자 격죽상인이 조심스럽게 건우를 불러온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니까 저 아이가 멸계의 밀정이 아닌가 의심하여 일을 벌였다?”

“그, 그렇습니다.”

“쟤, 멸계 밀정 아닌데?”

“네?”

“아니라고. 멸계 밀정.”

“······.”

“왜? 못 믿어? 고작 태령기 초기 따위가 내 말을 믿지 못하겠다고 시위하는 거야?”

연꽃 선자가 잠시 말문이 막힌 듯한 격죽상인을 향해 아미를 치켜세우며 물었다.

“아, 아닙니다. 어찌 제가 고인의 판단을 의심하겠습니까. 절대 아닙니다.”

“응, 그래. 그럼 네가 잘못했다는 것도 알겠네?”

“그, 그렇습니다. 후배가 재주가 부족하여 진위를 파악치 못했습니다.”

“그래, 그런 자세는 나쁘지 않아. 잘못을 했으면 그렇게 인정을 해야지. 괜히 미적거렸으면 그냥 목을 따 버렸을 텐데. 다행이네, 아니 아깝기도 하고. 아무튼, 거기 건우 아이야.”

줄곧 격죽과 대화를 하며 건우 쪽으로 관심을 주지 않던 연꽃 선자가 드디어 건우를 불렀다.

“네, 선자님.”

건우가 비틀거리며 연꽃 선자를 향해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흐응, 아주 애를 못쓰게 만들었네. 야!”

“네, 어르신.”

연꽃 선자의 부름에 격죽상인이 냉큼 고개를 들며 대답했다.

선자가 부를 사람이 자신 이외에는 없음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린 것이다.

이미 성령기의 제자들과 5대 세력 대표들은 바닥에 엎드려 고개도 들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얘, 어쩔 거야? 얘, 축난 거 봐, 이걸 어떻게 할 거냐고!”

연꽃 선자가 격죽상인을 향해 쌍심지가 돋은 표정으로 소리를 질렀다.

그녀의 손가락이 초췌한 모습으로 몸을 가누지 못하는 건우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 모습에 격죽상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지금 상황에서 저리 비틀거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괘씸한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마음만 먹으면 단정한 자세를 유지하는 것 따위야 무에 그리 어려울까.

자신이 조금 놈의 심신에 충격을 줬다지만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바락바락 저항하던 놈이 아닌가.

그런데 태령기 완경의 선배 고인이 나타나자 의도적으로 비틀거리는 모습을 보이다니.

“후배가 잘못하여 저리된 것이니 당연히 보상을 해 주어야지요.”

하지만 격죽상인은 속내를 겉으로 드러내지 못했다.

도리어 품속에서 갖가지 요상단이 들어 있는 상자를 꺼내어 곧바로 건우에게 밀어 보냈다.

“그 안에 주상활기단과 그에 버금가는 요상단이 제법 들어 있으니 몸을 회복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 또한 네 것이니 네게 돌려주마.”

그는 상자를 받아드는 건우에게 그렇게 말을 하더니 건우의 몸을 분해하여 만들던 영단까지 되돌려 주었다.

그런데 그 영단을 뒤따라 옥간 하나가 더해졌다.

“옥간에 그 영단의 비방이 들어 있으니 영단을 완성하고자 하면 애를 써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격죽상인은 못내 아까운 표정을 속으로 감추며 영단과 옥간을 건우에게 넘겼다.

사실 그 영단은 오랜 세월 격죽상인이 조금씩 완성해 오던 것이었다.

따지자면 이번에 더해진 건우의 기운은 천에 하나도 되지 못하는 것인데, 연꽃 선자 때문에 건우에게 내어준 것이다.

게다가 옥간은 그 영단을 완성하는 데 꼭 필요한 것으로 완성 순간에 사용할 마지막 재료였다.

그것이 없으면 영단을 다시 만드는 것도 불가능하니 이제 격죽이 다시 같은 영단을 만들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야 했다.

연꽃 선자도 그 사정을 알아차렸는지 격죽을 보는 눈빛이 살짝 누그러졌다.

“저 아이, 멸계 첩자 아니니까 그렇게 알아. 다시 같은 문제로 쟤 괴롭히지 말고. 알았어?”

연꽃 선자가 금방이라도 죽일 듯이 뿜어내던 기세를 갈무리하고 확인하듯 다시 물었다.

“무, 물론입니다. 절대 그럴 일은 없을 것입니다. 제가 책임지고 그 사실을 알리겠습니다.”

“그래, 괜한 이야기 나오지 않도록 해. 저 어린 것을 왜 괴롭히고 그래?”

“알겠습니다. 어르신.”

“흥, 자, 그럼 아이야. 너는 잠시 나와 이야기를 좀 하자꾸나.”

그렇게 격죽과의 이야기를 마무리한 연꽃 선자가 갑자기 그렇게 말을 하고는 소매를 휘둘러 건우를 연못 위로 끌어당겼다.

그리고 다음 순간 연못과 연꽃이 대전에서 씻은 듯이 모습을 감췄다.

“허어어.”

털썩!

격죽상인이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비틀비틀 태사의로 가서 맥없이 주저앉았다.

연꽃 선자에게 받은 충격이 커서 심신을 가누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쯧, 이 나약한 것을 어찌하지? 불안해서 안 되겠네.”

그 시간, 연꽃 선자는 건우를 아래위로 훑어보며 중얼거리고 있었다.

< 두둥! 예상도 못한 뒷배의 등장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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