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238화 (238/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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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걸 말이라고 해? 역시 수사 인성 >

“일이 그렇게 되었다는 말입니까?”

“도대체 건우 수사는 어디에 있었기에 그리 소식이 깜깜합니까?”

“보시는 것처럼 운이 좋아 크게 진전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수련에만 몰두하느라 바깥 상황은 알 수가 없었지요.”

“하긴 놀랍기는 합니다. 고작 300년 만에 입령기 완경에 오르시다니.”

“운이 좋았다지 않습니까.”

“뭐라 하셔도 부러운 것은 사실이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형 수사?”

“이를 말이겠습니까. 건우 수사께서 이리 앞서 가실 줄은 정말 상상도 못했습니다. 호지성에서 처음 봤을 때에는 화신기에 불과했는데, 이제는 우리가 감히 쳐다보기 어려운 곳에 이르렀군요.”

공평부의 채근에 침묵을 지키던 형오래가 진정 부러운 표정으로 건우를 보며 말했다.

“그런 공치사는 그만두고, 이곳 상황이나 조금 더 자세히 말을 해 주십시오.”

하지만 건우는 자신을 추켜세우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보다는 파견대 본부의 변화를 조금 더 자세히 듣고 싶었다.

“180년 정도 전이었지요. 이곳에서 중앙 방면으로 제법 떨어진 곳에서 멸계 수사들과 조우를 했습니다.”

“아, 그 때 멸계 수사를 만났군요. 그럼 당연히 전투가 벌어졌겠습니다? 공 수사? 그럼 혹시 그 자리에 공 수사도 있었습니까?”

“하하하. 운이 좋았지요. 마침 그 탐색대에 저와 형 수사도 있었습니다.”

“그렇군요. 표정을 보니 당연히 그 전투에서는 승리를 거둔 모양입니다?”

“그렇게 되었지요. 멸계 놈들의 수는 우리보다 약간 적었는데 경지는 비슷했지요. 그런 상황이라 어찌어찌 승리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가 문제였지요.”

공평부의 말을 중간에서 형오래가 끊었다.

건우가 형오래를 보며 눈빛을 빛냈다.

그가 정말 듣고 싶었던 내용이 나올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멸계 놈들을 소탕하고 돌아왔는데, 이후에 놈들이 곧바로 여기까지 들이친 것입니다.”

“우리가 놈들에 대한 보고를 마치고 몇 달이 되지 않아서 놈들이 여기까지 쳐들어 왔지요. 그것도 엄청난 전력을 이끌고 말입니다.”

“이전에 이무기를 잡다가 부상을 당한 어르신 두 분만 건재했다면 어떻게든 해 볼 수 있었을 텐데, 두 분의 상태가 좋지 않아서 전력 차이가 심하게 났습니다.”

“원래라면 멸계 놈들에게 그리 밀릴 정도는 아니었는데 말입니다.”

“그래서 어찌 되었습니까?”

건우가 다음 이야기를 재촉했다.

“금제와 진법을 두르고 방어에 급급할 뿐이었지요. 사실 그 외에 무슨 수가 있었겠습니까? 성령기 완경의 두 어르신이 전력에서 빠진 마당에.”

“신기하군요. 그 말은 멸계 놈들의 전력이 원래 우리 전력과 비슷했다는 이야기가 아닙니까.”

건우는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어 그렇게 물었다.

“누가 그렇게 조절하지는 않았을 테니 기이한 우연이라고 할 밖에요. 어쨌거나 방어에만 힘을 쓰니 어찌어찌 버틸 수는 있었지요. 그래봐야 패배를 늦추는 것밖에 안 되는 일이란 것은 분명했지만 말입니다.”

“그래서요? 그 태령기의 어르신은 도대체 언제 오신 거랍니까?”

건우가 결국 조바심을 이기지 못하고 물었다.

그가 파견대 본부로 돌아왔을 때, 본부의 최상급자가 되어 있던 태령기의 수사.

건우가 가장 궁금한 것은 바로 그에 대한 것이었다.

“싸움이 시작되고 3년 정도 지났을 때였지요. 격죽상인(擊竹上人)께서 여섯 명의 제자 수사들을 이끌고 나타나신 것이요.”

“그렇군요. 당연히 태령기 고인께서 오셨으니 싸움은 간단히 끝이 났겠습니다.”

“이를 말이겠습니까. 더구나 그 분의 제자들 역시 성령기 중기에서 후기의 수사들이 아니겠습니까. 멸계 놈들은 순식간에 쓸려 나갔지요.”

“격죽상인께서 의념을 넓게 펼쳐 멸계 놈들을 찍어 누르시니 어떤 놈들도 옴짝달싹하지 못하고 목이 떨어졌습니다.”

“그 후로 격죽상인께서 이곳을 다스리게 된 것입니까?”

“그렇지요. 아울러서 상이산맥에서 온 파견대와도 왕래를 하게 되었고 말입니다.”

“그렇군요.”

건우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는 살짝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비록 상인께서 조금 강압적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상식을 벗어나는 분은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멸계전을 앞두고 모두가 대승적인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시긴 하지만 그렇다고 불합리한 일을 벌이시진 않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건우는 그렇게 대답을 했지만 지금 본부의 상황이 못마땅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어디 얽매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건우였는데, 격죽상인이 파견대를 맡으면서 이전보다 팍팍해진 상태였다.

자율 보다는 계획에 따른 강제가 더 많아졌다는 이야기다.

‘이러면 그냥 도맹을 벗어나는 것이 좋지 않나?’

수미 세계가 멸계전에서 승리해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건우도 수미 세계의 멸계전에 일말의 책임감 같은 것을 가지고 있기는 했다.

대천 세계에서의 그의 삶은 바로 수미 세계를 삼킨 겨자씨에서 시작이 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수미 세계를 겨자씨에 넣은 정체 모를 노야(老爺)로부터 적잖은 도움을 받은 것도 있고.

‘그렇다고 꼭 여기에 얽매일 필요는 없지. 여차하면 다른 쪽 영계로 가서 선계 등선을 시도해도 되니까.’

물론 수미 세계의 상징이 아공간에 남아 있는 것을 생각하면 건우 자신과 수미 세계 사이의 연은 쉽게 끊어질 수 없는 것이 분명했다.

그럼에도 건우는 격죽상인이 주도권을 가진 파견대 활동에 회의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런 중에도 시간은 흘렀고, 건우는 파견대의 경의당 소속으로 연단이나 영초 재배 따위를 지휘하며 개인 수련에 힘썼다.

*   *   *

“건우 수사는 나오시오!”

건우가 경의당에 있는 자신의 거처에서 연단 작업을 하고 있을 때, 누군가 그를 찾아왔다.

건우는 문득 불길한 느낌을 들어 곧바로 소매를 휘둘렀다.

그러자 거처에 나와 있던 모든 것들이 아공간과 공간낭에 나뉘어 수납되었다.

“누가 무슨 일로 나를 찾았습니까?”

건우가 거처인 전각 밖으로 나서며 물었다.

전각 앞에는 입령기 중기와 후기 수사 넷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건우는 그들이 단순히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 온 것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그럴 것이면 수사가 넷이나 올 일이 없었을 것이다.

“지금 어르신들께서 건우 수사를 부르시오.”

네 수사들 중에 가장 경지가 높은 입령기 후기의 수사가 대표로 방문 목적을 전했다.

“어르신들이라니 누구를 말하는 것이냐?”

건우가 그 수사를 보며 물었다.

그런데 평소 입령기라면 초기나 중기라도 존중해 주던 태도를 바꾸어 하대를 하고 있었다.

“상인 어르신을 비롯한 다섯 분의 전주 어르신들입니다.”

상인은 격죽상인을 말하는 것이고, 다섯 전주라면 도맹의 5대 세력에서 대표로 파견한 성령기 완경의 수사들을 말하는 것이다.

즉, 이곳 파견대의 수뇌부 모두가 건우를 기다리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 분들께서 나를? 이유가 뭐냐?”

“그건 가 보면 아실 일이 아닙니까. 설마 어르신들의 부름을 거부하겠다는 것은 아니겠지요?”

건우의 물음에 네 수사를 대표하는 입령기 후기 수사가 살짝 비꼬는 어조로 건우를 자극했다.

건우는 그 수사의 태도로 자신에게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짐작했다.

하지만 곧바로 반발하거나 하는 행동은 보이지 않았다.

‘입령기 완경을 확실하게 제압하기엔 이들 넷으로 부족하지. 그럼에도 이들만 보낸 것은 일종의 시험이자 덫이다. 무슨 이유로 이러는지 모르겠군.’

건우는 내심 의문을 가졌지만 오래 생각할 여유는 없었다.

선택은 둘 중에 하나였다.

이대로 부름에 응하느냐 아니면 반발해서 도망을 가느냐.

“어디로 가지? 본청 대전에 계신가?”

건우는 결국 정면으로 상황에 맞서 보기로 했다.

일을 이렇게 꾸몄다면 격죽상인이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고, 그렇다면 뛰어봐야 부처님 손바닥 안의 손오공 신세일 뿐이다.

태령기의 격죽상인이 나서는 순간 건우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고 봐야 했다.

“따르시지요.”

정확히 어디란 말은 하지 않고 네 수사가 건우를 안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도착한 곳은 역시나 파견대 본부의 본청 대전이었다.

그곳에는 제일 상석의 태사의에 격죽상인이 있었고, 그 앞에 5대 세력의 대표인 전주들과 격죽상인의 제자들이 좌우로 나뉘어 도열해 있었다.

‘저 자가 격죽?’

건우가 대전 입구에서 격죽상인을 바라보았다.

이름만 들었지 보기는 처음이었다.

“네가 건우라는 아이구나.”

격죽상인이 감정이 담기지 않은 투명한 눈으로 건우를 보며 말했다.

몸통에 푸른 대나무를 가득 수놓은 학창의(鶴?衣)를 입은 격죽상인은 사십대 정도의 미려한 외관을 남성 지닌 수사였다.

그런데 피부에 푸른빛이 감돌고 귀가 뾰족하고 긴 모습을 하고 있었다.

건우는 문득 수미 세계의 여러 종족들 중에 하나를 떠올렸다.

‘듣던대로 역시 수라(修羅)족이군.’

수미 세계의 여러 종족 중에서도 가장 세력이 강한 종족들 중에 하나인 수라족, 격죽상인은 바로 그 수라족이었다.

“건우가 격죽상인을 뵙습니다.”

아는 척을 해 오는데 인사를 하지 않을 수 없어서 건우가 공손하게 손을 보아 허리를 숙였다.

“이리 앞으로 오너라.”

격죽상인이 건우에게 손짓을 했다.

그러자 공간이 일그러지며 건우가 순식간에 격죽상인의 앞으로 이동되었다.

건우는 깜짝 놀란 눈으로 격죽상인을 바라봤다.

“역시!”

그런 건우를 보며 격죽상인이 탄성을 터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영문을 알 수 없는 행동이라 건우는 가만히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인 상태로 기다릴 뿐이었다.

“제법이구나. 담이 커!”

그런 건우를 보며 격죽상인이 말했다.

“무슨 말씀이신지······.”

건우가 고개를 들며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수미 세계의 출신이 아니라지?”

격죽상인이 건우를 보며 물었다.

“그렇습니다.”

“다른 계, 그것도 인계에서 멸계전을 경험하고 이후 우연히 이곳 수미 세계로 왔다고?”

“그렇습니다.”

“하하하, 그놈 참. 이런 상황에서, 감히 내 앞에서 거짓을 고해?”

우르르르릉!

“커억!”

격죽상인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고는 다시 화를 냈다.

그 순간 건우는 아득한 천애 낭떠러지에서 추락하는 느낌을 받았고, 피가 역류해 토혈을 했다.

하지만 입밖으로 나온 피는 격죽상인의 기운 때문인지 순식간에 증발해 사라졌다.

“어찌 이러시는 것입니까?”

건우가 억울한 표정으로 물었다.

“네 놈이 멸계의 첩자임은 이미 드러났다. 어디서 끝까지 스승님을 희롱하려 드느냐?”

그때, 격죽상인의 제자 중에 하나가 버럭 고함을 질렀다.

성령기 중기의 그 제자는 격죽의 제자들 중에 막내였다.

“무슨 말씀입니까? 제가 멸계의 첩자라니요?”

“우리는 몰라도 네가 스승님의 눈까지 속일 수 있을 거 같았더냐? 스승님. 저 놈에게 극멸기가 있는 것이 분명하지요?”

그 제자는 건우에게 눈을 부라리더니 격죽상인에게 확인하듯 물었다.

그것은 건우가 멸계 첩자라는 증거를 격죽상인의 입으로 알리기 위한 수작이었다.

“너는 조용히 있거라!”

“네, 네. 스승님.”

격죽상인이 그 제자에게 일침을 가하고는 건우를 내려봤다.

“네게서 영기와 혼돈기, 극멸기 모두가 느껴진다. 그리고 그것이 특별한 공법에 의한 것임도 알아보았다. 그런데도 네가 아직 멸계의 첩자가 아니라 주장할 것이냐?”

“상인 어르신, 제가 극멸기를 품은 것은 말씀하신 것처럼 특별한 공법을 익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어찌 제가 멸계의 첩자란 증거가 된단 말입니까. 저는 이전 인계에 있을 때에 멸계전을 경험하며 이런 공법을 익혔을 뿐입니다.”

“하하하. 그럴듯하다. 하지만 내가 그것을 어찌 믿느냐? 네가 멸계전에서 승리하고 영계로 편입된 이후, 우연히 이곳 수미로 왔다고? 그게 너는 쉽게 믿어지느냐?”

격죽상인은 그렇게 묻고는 건우가 뭐라 답을 하려 하자 다시 말을 이었다.

“차라리 그보다는 멸계와 우리 수미 사이에 통로가 생기자 멸계에서 심혈을 기울여 투입시킨 첩자라고 보는 것이 옳지 않겠느냐? 너는 어찌 생각하느냐?”

“······. 울컥!”

건우는 격죽상인의 말에 기가 막혀 대꾸를 하지 못하다가 다시 피를 토했다.

여전히 벼랑에서 추락하는 듯한 충격이 연이어 가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이 생각해도 격죽상인의 말이 더 설득력이 있게 들려 답답하기만 했다.

“정황이 제게 불리한 것은 인정하겠습니다. 하지만 정황으로 사실을 단정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잠시 후 건우가 겨우겨우 굳은 표정으로 격죽상인을 올려보며 호소하듯 말했다.

“흐음. 그래서 네가 첩자가 아니라고?”

“그렇습니다. 어르신.”

“그러면 그만 죽으면 되겠구나.”

“네?! 그게 무슨······.”

“고작 입령기 하나가 죽고 사는 것이 뭐가 중요하단 말이냐? 네가 첩자라면 그래도 뭔가 알아볼 것이라도 있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깔끔하게 너를 죽이는 것이 편치 않겠느냐?”

“!!!”

건우는 격죽상인의 말에 큰 충격을 받아 눈만 크게 부릅떴다.

< 그걸 말이라고 해? 역시 수사 인성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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