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237화 (237/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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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앙천적의(殃天赤蟻:하늘의 재앙 붉은 개미) >

‘경지를 알아볼 수 없는 수사였다.’

건우가 겨우 정신을 추스르고 아공간의 루야에게 말을 걸었다.

- 무슨 이유로 봉인이 되어 있었는지 궁금하네요.

‘말하는 것으로 봐서는 스스로 봉인을 시켰다는 것 같지?’

- 네, 저도 그렇게 들었어요.

‘그럼 뭐, 대충 예상할 수 있는 이유가 있기는 하지.’

-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고요?

루야는 짐작이 되지 않는 듯이 놀라며 되물었다.

‘그래, 전에도 그런 이야기를 듣지 않았어? 수미 세계가 멸계전을 미루고 봉인이 되었다고. 그래서 멸망을 늦추기는 했지만 대신에 고계 수사들에겐 큰 문제가 생겼지.’

- 아, 그랬죠. 고계 수사들의 선계로 갈 방법이 없어졌다고 했죠?

‘그런데 천겁은 여전히 유지가 되었다잖아. 결국 선계에 오르지 못하니 천겁을 버티고 버티다가 어느 순간엔 결국 죽음을 맞을 수밖에 없었고.’

수미 세계의 멸계전이 미뤄지면서 생긴 가장 큰 부작용이 바로 그것이었을 것이다.

수미 세계가 겨자씨 안에 들어 있는 동안에 선계로 오를 능력이 있음에도 길이 막혀 천겁에 죽은 수사가 적지 않을 테니 그 억울함이 오죽했을까.

- 그러니까 건우 님 말씀은 연화경의 선자가 그 천겁을 피해서 스스로를 봉인한 것이 아닐까 하시는 거네요?

‘그렇지. 지금껏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고, 또 얼마나 많은 고계 수사들이 죽었겠어? 그런 이들 중에서 어떻게든 죽음을 미루려 애쓴 이들이 한 둘이 아니겠지.’

- 증장성에 있을 때에도 그런 이야긴 많이 들었죠. 이쪽 수미 세계에서는 고계 수사들의 유산이 자주 발견 된다고 말이죠.

루야가 아는 척을 했다.

그녀의 말처럼 건우가 증장성에 머물며 수미 세계에 대해서 알아본 바에 따르면 고계 수사들의 유산이 온전한 모습으로 발견되는 경우가 더러 있다고 했었다.

그리고 그런 경우 대부분은 천겁을 피해 스스로 금제를 걸거나 봉인했던 이들이 실패하면서 만들어진 것들이라 했다.

사실 이번 연화경의 선자 같은 경우엔 그런 시도를 했던 많은 수사들 중에서 성공을 거둔 드문 예 중에 하나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게 정말이라면 연화경의 선자는 굉장한 수사겠지. 자그마치 천겁을 피해서 몸을 숨길 능력을 가졌다는 이야기니까.’

어지간한 방법으로는 절대 천지 법칙의 눈을 피할 수 없다.

그런데 그걸 성공했다면 그것은 그녀가 그만한 능력을 지녔다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 그런 수사에게 빚을 지웠으니 잘 된 일이네요. 은혜를 갚는다 했잖아요.

루야가 축하한다는 듯이 밝은 목소리를 전했다.

하지만 건우는 그 말에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건 모르는 일이지. 조금 전에 그저 눈빛을 마주친 것만으로 심신이 제압되어 버렸다. 그런 수사가 딴 마음을 품는다면 끔찍한 상황이 되겠지. 저항조차 할 수 없을 거 같다.’

- 설마 그러겠어요? 건우 님을 좋게 본 것 같던데요.

‘사람 마음이란 것이 때로는 짧은 순간에 수십 번씩 바뀌기도 하는 거다. 게다가 우리끼리 이야기지만 그 여자, 조금 맛이 간 상태였잖아.’

- 맛이 간······. 풋, 좀 그렇게 보이긴 했어요. 높은 수련을 쌓은 고계 수사가 정신이 온전치 못하게 된 것이 이해가 안 되기는 하지만요.

‘그건 천지 법칙의 벌을 받은 것이라니 그건 그럴 수 있다고 치지만, 덕분에 내가 제 정신이 아닌 수사의 관심을 받게 되었다는 것이 문제지. 그냥 서로 인연이 없었으면 모르지만, 일단 연을 맺었는데 상대가 언제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광녀란 말이지.’

건우는 생각만으로도 머리가 복잡한 듯 고개를 흔들었다.

그렇게 인상을 쓰던 건우는 어느 순간 눈을 크게 뜨며 의념을 끌어 올렸다.

그가 의념을 끌어 올린 것은 아공간 한 곳에서 특별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뭐지? 개미들이 이상한데?’

해금시를 이루던 붉은 개미들이 문제였다.

옥함에 넣어 아공간으로 옮기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 개미들은 옥함을 뚫고 밖으로 나왔었다.

하지만 옥함 밖은 고작해야 한 평도 안 되는 작은 공간만 있을 뿐이라 개미들이 갈 곳이 없었다.

그런 상황이 되자 개미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빠져나갈 곳을 찾았다.

하지만 개미들은 건우의 의념으로 격리된 아공간에서 빠져나갈 길을 찾지 못했다.

격리된 아공간은 그 자체로 완전히 분리된 공간이라 다른 통로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통로를 찾지 못하자 개미들은 한 곳에 뭉쳐서 조용히 있었다.

그것은 연화경의 수사가 떠나고 난 후에도 여전히 그랬는데, 루야와 대화를 하는 사이에 변화가 생긴 것이다.

- 모두 3천 7백 마리네요.

루야가 붉은 개미의 숫자를 헤아려 일러주었다.

‘그래, 그런데 그중에 한 마리가 변이를 일으키고 있다.’

건우가 놀란 것은 그런 이유였다.

모두가 찍어 낸 것처럼 똑 같았던 개미들이었다.

그런데 아공간에 격리되고 통로를 찾지 못한 이후, 한곳에 뭉쳐 있는 개미들 중에 하나의 모습이 바뀌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모든 개미들이 뭉쳐 만든 경단 같은 덩어리의 가장 안쪽에 있는 한 마리의 변화였다.

사실 겉으로 보이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건우의 의념공간에서 벌어지는 일이라 원한다면 경단처럼 뭉쳐있더라도 안쪽에 있는 개미들까지 하나하나까지 살필 수 있기에 알 수 있는 일이었다.

- 신기하네요.

루야 역시 건우의 허락으로 아공간에 대한 장악력을 공유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상황을 함께 지켜보는 중이었다.

‘다른 개체들과 다르게 배가 생겼군.’

해금시의 개미들은 머리에 가슴이 달린 꼴을 하고 있었다.

정확하게는 일반 개미에서 배 부분이 없는 상태로 등에 날개 한 쌍이 붙어 있는 모습인 것이다.

그런데 건우의 말처럼 동일하게 생긴 3천7백 개체들 중 하나가 머리, 가슴만 있던 몸에 커다란 배가 만들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 제가 잘못 보는 것이 아니라면 저 개미는 여왕개미처럼 보이는데요? 배가 유난히 크잖아요.

시간이 흘러 변이를 멈춘 특별한 개미는 확실히 루야의 말과 같았다.

머리와 가슴에 비해서 배는 수십 배는 더 커 보였다.

‘확실히 이제는 여왕개미라고 봐도 되겠네. 저게 알을 까거나 혹은 새끼 개미를 만들어 낸다면 더 확실하겠지.’

건우가 그렇게 말을 할 때, 마치 그것이 예언이라도 된다는 듯이 변이된 개미의 배에서 붉은색의 알이 하나 나왔다.

- 여왕개미 맞는 거 같은데요?

그것을 본 루야가 떨떠름한 기색으로 말했고, 건우도 고개를 끄덕였다.

‘해금시를 이루던 개미들을 잡아 뒀더니 여왕개미가 만들어졌다?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되는 걸까?’

그리고 건우는 갑작스러운 개미의 변화를 이해하지 못해 고개를 갸웃거렸다.

- 이제 토벌대 본부로 돌아가실 거잖아요. 천천히 가면서 개미들이나 연구해 보시는 것이 어때요?

그런 건우에게 루야가 본부 복귀를 권했다.

‘전에는 성령기 도전을 하라고 그렇게 조르더니? 왜 갑자기 본부로 돌아가래?’

건우가 의아한 기색으로 물었다.

- 건우 님, 그 연화경 때문에 200년이나 허송세월 했잖아요. 지금 가도 늦었다고 질책이 떨어질 걸요? 그 때와는 사정이 전혀 다르다고요.

루야가 건우의 착오를 지적했고, 건우의 인상이 와락 찌푸려졌다.

연화경의 금제 때문에 보낸 시간을 이제야 떠올린 것이다.

건우는 그 즉시 산 밑에 만들었던 수련 동부를 정리하고 부양도를 띄웠다.

‘지금 수준에서 부양도는 한참 모자라는 비행법보지만 어쩔 수 없지.’

부양도 보다는 연속으로 둔술을 펼쳐 이동하는 것이 더 빠를 것이다.

하지만 그러자면 아공간의 붉은 개미들을 살피는데 지장이 생길 수밖에 없다.

둔술이라는 것이 의념으로 이동 범위를 살피지 않으면 사고가 생길 수밖에 없는 이동 방법이다.

그러니 둔술로 장거리 이동을 하기 위해서는 의념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이동을 하면서 아공간의 붉은 개미까지 자세히 살피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결국 느리더라도 부양도를 타고 이동하며 붉은 개미를 살피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한 것이다.

‘잘 되면 어떤 금제든 처리할 수 있는 최강의 패를 손에 넣을 수 있다. 그런데 파견대 복귀 따위가 좀 늦어지는 것이 무슨 문제라고.’

파견대 본부를 떠난 지 300년이 지났다.

그 사이에 입령기 초기 경지를 완경의 경지까지 끌어 올렸다.

이만하면 본부에 가서도 충분히 할 말은 있을 터였다.

100년 만에 이 경지에 올랐다고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지금 상황이 더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니 늦어진 복귀에 대한 부담이 많이 줄어든 건우였다.

그렇게 부양도는 느릿느릿 파견대 본부를 향해 날아갔다.

***

“으음? 내 아이들이 사라졌다고?”

마치 탑처럼 솟은 십만 리 높이의 뾰족하고 거대한 산.

산의 주인인 붉은 나삼(羅衫)의 여성 수사는 침대에서 구르다가 문득 아미를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그녀의 머리에는 두 개의 더듬이가 나 있었는데 어느 순간 그것이 수백 장의 길이로 늘어났다.

그리고 그 더듬이를 통해서 방금 느껴졌던 자신의 아이들의 향을 급히 더듬어 봤지만 순식간에 사라져 어디에서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게 무슨 일이지? 죽은 것도 아닌데 완벽하게 사라지다니?”

그녀는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 가능성을 헤아려 보았지만 떠오르는 것은 불길한 예상밖에 없었다.

“일반 금제라면 아이들이 어떻게든 뚫고 나왔겠지. 아이들이 죽지도 않았는데 내 이목에서 사라졌다면 다른 계로 이동을 한 경우거나 혹은 아주 강력한 금제에 갇혀서 뚫고 나오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경우뿐이겠지.”

죽지는 않았다.

자신의 아이들은 죽이는 것도 굉장히 어렵지만 죽으면 독특한 향을 남겨 자신이 모를 수가 없다.

결국 갇혔거나 다른 계로 이동이 되었거나 둘 중에 하나일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금제나 봉인에 갇혔다고 해도 그것이 자신이 아이들을 찾지 못하게 할 정도 강력하기는 쉽지 않다.

“다른 계로 갔을 가능성이 높겠군. 그러면 멸계로 갔을까?”

지금 수미 세계가 멸계전을 벌이는 중이니 그럴 가능성이 없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다행이기는 하지. 어차피 나와 다시 마주칠 일이 없다면야 문제가 아니니까. 하지만 만약 다시 나와 만나게 되면······.”

생각하기는 싫지만 정말 그런 일이 벌어지면 둘 중에 하나는 죽게 될 것이다.

당연히 죽는 쪽이 자신은 절대 아닐 것이고.

태령기 후기에 이른 앙천적의(殃天赤蟻)인 자신을 어떤 앙천적의가 이길 수 있단 말인가.

그러니 마주치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자신과 연결이 끊어진 아이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새로운 여왕을 탄생시킬 것이고, 그 후에는 그 여왕의 아이가 될 것이다.

같은 종의 여왕을 본능적으로 적대하는 앙천적의의 천성을 생각하면 새로운 여왕의 탄생은 절대 반길 수 없는 일이었다.

“다시 마주치는 일이 없기를······. 어쨌거나 내가 낳은 아이를 내가 죽이는 것은 괴로운 일이니.”

앙천적의의 여왕은 그나마 남은 모성애를 떠올리며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다시 침대에 몸을 눕혔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침대에 누워 이불에 휘감긴 그녀의 하체는 침대를 뚫고 아래쪽으로 연결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방의 아래층에는 그녀의 본체인 거대한 여왕 앙천적의가 드넓은 공동을 차지하고 자리해 있었다.

이 순간 수 천 장에 이르는 거대한 몸을 지닌 그 앙천적의의 여왕은 잠든 듯이 움직임이 없었다.

침대에 있는 젊은 여성 수사는 잠들어 있는 본체가 정신의 일부를 깨워 만들어낸 허상이었던 것이다.

본체는 벌써 오래전에 먹은 것을 지금까지도 모두 소화하지 못해서 잠에서 깨어나지 않고 있었다.

그 때문에 사라진 아이들을 찾아 나서지 못한 것이었다.

그 또한 건우로선 운이 좋았다 할 일이었다.

“드디어 도착했다!”

그리고 건우의 부양도는 7년의 비행 끝에 도맹의 파견대 본부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 앙천적의(殃天赤蟻:하늘의 재앙 붉은 개미)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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