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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령기 완경과 연화경의 봉인 해제 >
파견대 본부로부터 멀리 떨어진 혼돈역의 모처(某處).
주위에 영기나 혼돈기, 극멸기의 농도가 짙게 응결되는 곳이 없는 평범한 곳이라 수사들의 관심을 끌 일이 없는 한적한 곳이다.
그곳에 천지의 기운이 요동치며 승경을 막으려는 천지 법칙의 뇌전이 사납게 내리치고 있었다.
번쩍! 꽈르르릉! 번쩍! 꽈광!
샛노란 천겁뢰는 벌써 열여덟 개가 연이어 작은 산을 때리는 중이었다.
그런데도 야트막한 언덕 같은 산은 허물어지지 않고 현묘한 법칙문자와 문양을 번뜩이며 천겁뢰를 잘도 막아내고 있었다.
그렇게 열여덟 개의 번개가 연이어 떨어진 직후, 하늘이 열리고 소름 끼치는 검은 빛이 번개가 때리던 곳으로 쏟아져 내렸다.
그리고 그 검은 기운에 이끌리듯 땅이 벌어지고 그 안에서 가부좌를 한 건우가 모습을 드러냈다.
삼두육비, 세 개의 머리와 여섯 개의 팔을 지닌 거대한 체구의 괴이한 모습은 나타결공법을 극성으로 끌어 올린 모습이었다.
건우는 나타결공법을 이용하여 멸기함분의 진극멸기를 흡수하는 것으로 경지를 끌어 올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검은 빛을 몸으로 받아들이며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진극멸기를 흡수하여 입령기 완경에 이르는 순간이었다.
그가 얼굴을 찌푸리는 것은 진극멸기를 이용하여 승경을 할 때에는 법열이 훨씬 강렬하고 자극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쾌감을 떨쳐내고 천지 법칙의 일면을 읽어 내는 것이 무척 어렵다.
지금도 정신을 집중해서 천지 법칙을 살피는데 방해가 커서 못마땅한 마음이 표정으로 드러난 것이다.
원래 진극멸기를 흡수하여 경지를 올릴 때에는 천지 법칙의 승경 시험도 그리 대단하지 않다.
고작 일반적인 천겁뢰 열여덟 갈래로 입령기 후기에서 완경으로 올라서다니 거저먹기나 다름이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그런지 승경 과정에서 얻는 것도 영기 승경에 비하면 부족한 점이 많았다.
번쩍!
감겨있던 건우의 눈이 떠지며 시퍼런 광망이 쏟아져 나왔다.
“후우우! 이제 입령기 완경이군.”
건우가 길게 숨을 내쉬었다.
어쨌거나 입령기 완경에 오르기는 했다.
이제 극멸기로 입령기 완경에 올랐으니 나타결공법을 이용하여 그 극멸기를 영기로 바꾸고 입령기 완경의 경지를 다독이면 된다.
그 과정을 마무리하면 편법이지만 어쨌거나 영기 수련의 경지도 입령기 완경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입령기 중기가 되는데 20년, 후기가 되는데 30년, 완경이 되는데 50년. 대략 100년만에 입령기 초기가 완경까지 올라섰군. 내가 파견대 본부에 가게 되면 난리가 나겠어. 고작 100년에 완경이 되었으니 놀라지 않으면 그것이 이상할 일이지.”
건우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피식 웃었다.
그리고 허공에 뜬 몸을 밑으로 내려 갈라진 땅 속으로 내려갔다.
건우가 땅 밑으로 사라지자 갈라졌던 땅이 아물어지며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땅 밑, 은밀한 수련 동부의 포단위에 내려앉은 건우가 살짝 한숨을 쉬면서 하던 말을 마무리했다.
“후우, 하지만 한동안은 새로 올라선 경지를 공고히 하는 것이 중요하지. 아직은 사상누각처럼 불안한 상태라 자칫하면 탈이 날 수도 있으니까.”
- 어쨌거나 축하드려요. 드디어 입령기 완경이네요? 그런데 여기서 멈출 건 아니죠?
그 때, 건우의 머릿속에 루야의 의념이 전해졌다.
“그건 봐야지. 100년 넘도록 파견대를 떠나 있었으니 돌아갈 때가 된 거 같기도 하고.”
- 하지만 아직 멸기함분의 진극멸기가 남았잖아요.
“그걸 모두 흡수하면 어찌어찌 성령기까지 노려볼 수는 있겠는데, 아슬아슬 하지.”
- 그래도요. 쌍두단미영원의 진혈은 이미 충분히 준비가 되어 있으니 나타결공법으로 진극멸기만 흡수하면 되는 거잖아요.
루야는 이참에 건우가 성령기까지 경지를 끌어올리길 바라는 모양이었다.
“그건 생각을 좀 해 보자. 일단 지금 상태를 안정시키는 것이 우선이니까. 그 뒤에 다시 고민을 해 보지 뭐.”
- 건우 님이 그렇게 하시겠다면 어쩔 수 없죠. 하지만 저는 건우 님이 성령기를 빠르게 이뤘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말빨이 좀 서죠.
“그것도 그렇긴 하지. 인계에선 머리 위에 아무도 없었는데, 이곳 영계에선 그야말로 쩌리 취급을 당하는 거 같아.”
- 그러니까요. 제가 괜히 이러는 게 아니라고요.
“그래 알았다. 긍정적으로 고려해 보자. 그러니 그 이야기는 그만하고, 이제 이거나 다시 연구를 해 보자.”
건우는 성령기 승경 도전에 대한 이야기는 그만 하기로 했다.
대신에 이전 경매에서 낙찰받았던 연화경을 소환했다.
- 저도 그거 한동안 살펴봤는데 도무지 모르겠던데요? 겉에 위장해 놓은 봉인이나 금제는 대충 걷어낼 수 있겠는데, 그 안에 있는 건 도저히 엄두가 안 나요.
루야가 건우의 손에 들린 연화경을 두고 진저리를 쳤다.
건우는 시간이 날 때마다 연화경을 들여다봤다.
하지만 승경에는 많은 준비가 필요했다.
그래서 연화경 연구에만 몰두할 수가 없었다.
그럴 때면 루야가 연화경을 가져가서 낱낱이 뜯어보곤 했던 것이다.
“이제 나도 완경에 올랐으니까 이전보다는 많은 것을 알아낼 수 있겠지.”
- 헹, 그래요. 저는 아직도 입령기 초기 밖에 못 되었네요. 쳇.
건우의 말에 루야가 심술 난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너도 충분히 빠른 거야. 그러니 그렇게 기죽을 거 없다. 다음 승경도 내가 도와줄 테니까 수련을 게을리 하지 말고. 네가 수련에만 힘쓰면 나보다 경지 상승이 빠를 수도 있을 걸?”
- 그래봐야 혼원석의 한계가 분명하잖아요. 이번 혼원석은 성령기 초기도 간당간당 하다고요.
“걱정하지 마라. 내가 어떻게든 더 큰 혼원석을 구해 줄 테니까.”
- 물론 저는 건우 님을 믿고 있어요. 호호호. 아, 저는 그럼 수련을 하러 가 볼테니 건우 님은 그 거울이나 살펴보세요.
수련을 권하는 건우의 말에 슬쩍 자리를 피해버리는 루야였다.
건우는 그런 루야의 반응을 이미 예상하고 있었기에 피식 웃고 말았다.
그 후 그는 승경 과정에서 허물어진 진법과 술식을 재정비한 후, 연화경을 살피기 시작했다.
* * *
살아있는 연꽃이 손잡이 끝에 달려 있는 거울.
거울의 표면은 잔잔한 물결을 연상시키며 파랑을 일으킨다.
그리고 이 표면을 통하여 원하는 곳의 모습을 살필 수 있는 것이 바로 이 연화경의 능력.
건우 역시 이곳에 와서 연화경을 쓰는데 필요한 진법을 설치하고 때때로 주위를 살피곤 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연화경의 능력이 사라져 버린 상태.
건우가 연화경을 연구하고 파헤치는 과정에서 몇 가지 술식을 걷어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화경이 본래의 기능을 잃었어도 건우는 전혀 아쉽지 않았다.
그 안에서 드러난 수 많은 금제와 술식들은 충분히 건우를 흥분시킬 만 했다.
스스로도 남보다 못하지는 않다고 생각하는 건우의 능력으로도 연화경에서 배울 것이 무척 많았고, 아직도 풀지 못한 수수께끼들이 넘쳐났다.
‘이걸 뭐라고 해야 하지? 이 연화경은 엄청난 크기의 호수를 축소시켜 놓은 것이다. 이 거울의 표면은 사실 지름 5만 리 정도의 진짜 호수였다니, 정말 놀랄일이지.’
건우는 연화경을 이리저리 돌려보며 그 동안 파악된 내용을 정리했다.
‘하지만 이건 정말 모르겠어.’
건우의 시선이 이번에는 손잡이 끝에 달려 있는 연꽃으로 향했다.
봉우리를 오므리고 있는 연꽃은 당장이라도 활짝 피어날 것처럼 생동감이 느껴졌다.
‘거대한 연꽃을 축소시켜 놓은 것은 분명한데, 원래 모습으로 되돌리거나 할 방법은 모르겠단 말이지. 이건 내가 지금껏 본 적이 없는 색다른 방법으로 이루어진 금제야.’
단순히 연꽃 하나를 축소시켜 달아 놓은 것이 아니었다.
건우의 시선이 거울의 둥근 몸체로 향했다.
‘이 호수는 실제로 연꽃을 살리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호수가 연꽃을 살아있게 해 주는 거야.’
지름 5만 리의 호수를 거울처럼 작게 축소한 이유가 고작 연꽃 하나를 살려 놓기 위해서라니.
기가 막힐 노릇이지만 건우가 파악하기론 분명히 그랬다.
당연히 거울 몸체 보다 중요한 것이 연꽃부분이 될 수밖에 없다.
‘손잡이 자루 부분을 끊어 버리면 연꽃에 변화가 생기겠지만, 그건 최후의 수단으로 남겨 둬야겠지. 뭣보다 이 연화경의 금제는 스스로 조금씩 풀리는 중이었지. 그래서 두고 보기로 했던 건데 말이지······.’
건우가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턱을 쓸었다.
그 동안 내색하지 않았지만 건우는 연화경의 금제가 조금씩 풀리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수십 년 전, 연꽃의 꽃잎이 미세하게 벌어지는 것을 발견한 것이 단초가 되었던 일이었다.
‘그런데 십 년 전부터 변화가 멈췄어. 풀리던 금제가 무슨 이윤지 그대로 고정이 되어 버렸지.’
그래도 뭔가 달라지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이번 승경이 끝나도록 지켜만 봤었다.
하지만 여전히 연화경은 변화가 없었다.
‘그래도 금제가 조금이라도 풀리는 것을 확인한 것은 크지. 거기서 이걸 풀어 볼 실마리를 몇 개 얻을 수 있었으니까.’
건우는 그렇게 연화경을 살피며 다시 몇 달을 보냈다.
그리고 그 시간동안 어느 정도 심신을 안정시키자 곧바로 연화경의 봉인을 풀기 시작했다.
‘스스로 풀리던 금제의 움직임이 갑자기 중단된 것은 그리 큰 이유가 아니었어. 이건 마치 엉킨 실과 같아. 실에 작은 매듭 하나가 생겨서 다른 부분들을 끌고 들어가서 엉망을 만든 거지.’
건우는 연화경에 의념을 투사하며 문제가 되는 부분을 찾았다.
그리고 뜻밖에도 그는 영기가 아닌 극멸기를 예리하게 벼려서 그 부분으로 밀어 넣었다.
스르르륵!
건우의 극멸기가 금제의 일부를 깔끔하게 잘라냈다.
‘이런 수는 상상도 못했겠지. 설마 막힌 영기의 흐름을 극멸기를 이용해서 상쇄할 거라고 누가 생각을 했을까.’
자신의 시도가 성공한 것을 확인한 건우의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복잡하게 얽혀 막혀 버린 금제의 흐름을 극멸기를 이용해 상쇄해 버리는 방법.
멸계전이 아니면 접하기 어려운 극멸기를 이용한 편법이었다.
‘하지만 이런 방법으로 금제 자체를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지.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금제 전체를 극멸기로 날려 버려야 하는데, 그건 이 연화경을 파괴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어.’
건우는 극멸기로 막힌 부분을 뚫어 낸 연화경을 살피며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극멸기를 이용해 모든 금제를 지울 수 있다면 좋겠지만 금제가 곧 본체와 이어져 있음을 생각하면 절대 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금제와 함께 그 안에 있는 것들도 모두 날아가 버리고 말 테니까.
‘그래도 다행이네. 막혔던 것을 뚫어 줬더니 금제가 다시 풀리기 시작했어.’
건우가 다시 열흘 가까이 연화경을 살핀 끝에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멈춰 있던 금제 해제가 다시 진행되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 * *
“그것 참. 이런 걸 두고 하얗게 불태웠다고 하나? 이렇게 시간이 걸릴 줄을 알았다면 차라리 성령기 승경에 도전해 봤을 텐데.”
건우가 몹시 수척한 얼굴로 손에 든 연화경을 내려다보며 한탄을 하고 있었다.
그가 입령기 완경에 오른 후, 연화경의 금제를 풀기 시작한 것이 벌써 2백 년 전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연화경에 빠져들어 그 금제를 푸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그 시작은 극멸기를 이용해 금제가 풀리는 흐름을 막고 있는 영기 매듭을 치우는 것이었다.
그렇게 막힌 것을 뚫어주고 자연스럽게 금제가 풀리는 것을 살펴보는데, 어느 순간 다시 한 부분에서 흐름이 막히는 일이 생겼다.
당연히 건우가 나서서 극멸기를 이용해 그 막힌 흐름을 뚫어주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자 다시 비슷한 현상이 벌어졌고, 그 역시 건우가 나서서 해결했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자주 흐름이 막히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리고 그 때가 되어서야 건우는 자신이 극멸기로 잘라낸 금제의 흐름들이 다른 문제를 이끌어 내는 것을 알아차렸다.
하지만 일은 이미 벌여 놓은 상황이고, 그 때는 금제가 자연스럽게 풀리는 것은 기대할 수가 없는 상황이 되어 있었다.
일을 벌였으면 책임을 져야 하는 법.
건우는 그 때부터 금제가 풀리는 것을 살피다가 문제가 생기면 그것을 해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일이 마냥 쉽지만은 않았다.
처음에는 극멸기를 이용해서 막힌 것을 뚫어주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지만 이후에는 여러 복잡한 상황을 고려해서 작업을 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금제 자체가 붕괴될 정도로 상태가 악화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진땀을 흘리며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그렇게 자그마치 2백 년의 시간을 연화경에 붙잡혀 있게 된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는 그냥 두는 것도 불가능해졌지. 금제 해제가 멈추는 것이 아니라 점차 악화되는 쪽으로 변화가 진행되었으니까.”
그래서 잠시도 눈을 떼지 못하고 금제의 변화와 문제점을 찾아야 했다.
“그래도 이제 끝났다. 남은 하나만 처리하면 끝이야.”
건우는 초췌한 안색으로 밝은 웃음을 지었다.
지난 시간의 보상이 눈앞에 있었다.
“뭐, 마지막 남은 금제가 정말 어마무시해서 내 수준에선 어째 볼 수 없다는 것이 문제긴 하지만. 그것도 다 수가 있으니까!”
건우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소매 속에서 뭔가를 꺼내 들었다.
< 입령기 완경과 연화경의 봉인 해제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