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3)
< 우리 일은 사소한 문제가 되어버렸다 >
휘리리리릭!
- 아아아아악!
건우가 성광검을 휘둘러 과동채의 영체를 흩어 버렸다.
이로서 과동채는 이번 생을 마감하고 윤회로 돌아가게 되었다.
꽈르르릉! 꽈릉! 꽈릉!
“건우 수사! 어서 도와주시오!”
“이 이상 버티기가 어렵소이다!”
그 때, 용머리 영수를 상대하고 있던 형오래와 공평부가 다급하게 건우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건우는 그 소리에 망설이지 않고 곧바로 용머리 영수를 향해 달려들었다.
금강패갑공을 극도로 끌어 올린 건우의 모습은 황금 갑옷을 두른 신장(神將)처럼 보였다.
건우는 영수를 향해 날아가는 중에 덩치를 5장 까지 키워 용머리 영수와 직접 몸을 맞대고 근접전을 벌였다.
용머리 영수는 금강패갑공에서 풍기는 금강불가살의 기운에 짧게 몸을 움찔거렸다.
천적을 마주한 느낌에 본능적으로 위축되는 탓이었다.
당연히 건우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연이어 검을 휘둘러 용머리 영수를 압박했다.
이미 건우는 주변 공간을 의념으로 장악하여 용머리 영수와 의념 장악력을 겨루는 중이었다.
꽈르릉! 휘리릭! 휙휙!
파지지지지지지직!
건우의 공격에 위기감을 느낀 것인지 용머리 영수의 반응이 거칠어졌다.
지금껏 보이지 않던 회색 발톱을 뽑아내어 앞발을 휘두르는데, 그 때마다 혼돈기가 뿜어져 나왔다.
“혼돈기입니다. 건우 수사 조심하십시오.”
공평부가 깜짝 놀라며 건우에게 경고를 해 주었다.
그와 동시에 공평부가 날린 물의 창들이 용머리 영수를 향해 쇄도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공평부의 공격은 용머리 영수의 뿔에서 뿜어진 은색 뇌전에 막혀서 흩어졌다.
뒤이어 녹색의 독기를 뿌리는 넝쿨이 바닥에서 자라나 용머리 영수를 잡아채려 했지만 용머리 영수가 휘두른 꼬리에 갈기갈기 찢겨 나갔다.
“어엇? 극멸기!”
형오래가 자신의 넝쿨을 찢어 놓는 영수의 꼬리에서 극멸기의 기운을 발견하고 기함하는 소리를 질렀다.
카가강! 까강! 까가강!
그 사이 건우는 용머리 영수의 앞발 공격을 성광검으로 받아치며 영수의 움직임을 제약하고 있었다.
‘영기의 뇌전, 혼돈기의 발톱, 극멸기의 꼬리. 이 놈이 세 가지 기운을 자유롭게 쓰는구나.’
건우는 용머리 영수의 기운 운영에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그 모습은 이전 쌍두단미영원보다 훨씬 뛰어나 보였다.
‘그래도 내가 나타결공법을 펼치면 이 놈보다 못하진 않을 테지. 하지만 당장 그럴 필요는 없을 거 같군.’
건우는 공평부나 형오래 앞에서 굳이 나타결공법을 드러낼 생각이 없었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눈앞의 영수를 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과동채의 말이 맞지. 이 놈은 입령기 중기에 불과하다. 그 경지가 모호했던 것은 세 가지 기운을 함께 사용하는 특성 때문이었을 뿐.’
건우는 처음부터 이 영수가 입령기 중기 수준임을 알아봤었다.
그런데도 입령기 후기 운운했던 것은 싸움에서 벗어날 핑계를 만들고 과동채를 긴장시키기 위한 수작이었을 뿐이었다.
‘그래도 시간을 끌어 좋을 것은 없지. 과동채의 죽음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조금 과격한 충돌도 필요하고.’
건우는 용머리 영수에 대한 공세를 끌어 올리며 소매를 털어 흰 색의 피라미드 모양 법보들을 허공에 뿌렸다.
그 법보들은 백옥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는데 곧바로 건우와 용머리 영수를 팔방에서 둘러싸며 영기를 뿜어 서로 연결되었다.
그 수는 모두 아흔한 개로 건우가 그 동안 새로 고안해 낸 구십일결방 법기였다.
“공격이 강력하니 조심들 하십시오.”
순식간에 흰 색의 영기로 연결된 법보들이 잠깐 사이에 눈부신 빛을 뿌렸다.
그 때 건우가 고함을 질러 공평부와 형오래에게 경고를 했다.
푸화화화홧! 쩌저저저정!
꽈릉! 꽈르르르릉!
번쩍! 번쩍! 콰과과과광!
건우의 경고와 함께 백색 피라미드 법보들이 빛의 폭발을 일으켰다.
그 폭발은 섬찟한 냉기를 뿜어내며 건우와 용머리 영수를 휘감았다.
꽈르릉! 꽈릉!
용머리 영수가 새하얗게 굳어가는 몸을 비틀며 울부짖었다.
하지만 그런 중에도 건우의 몸에는 금빛 법문들이 감돌며 법보의 폭발로 생긴 냉기를 흡수하고 있었다.
마치 함께 죽자는 듯이 법보를 폭발시킬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금강패갑공이 가지고 있는 흡수 능력.
그것을 믿고 자폭하듯 법보를 폭발시킨 것이다.
이번에 사용한 아흔한 개의 법보는 처음부터 그런 용도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쩌저저저적! 콰드드득!
하지만 그런 공격을 용머리 영수는 어떻게든 버텨낸 모양이었다.
하얗게 얼어붙은 가죽이 터져 나가는 것을 감수하며 영수가 다시 움직이려 했다.
하지만 이미 동작은 느려지고, 의념은 강한 충격을 받은 상태.
건우는 망설이지 않고 곧바로 성광검을 내질렀다.
지금까지 익힌 검술 공법 중에 가장 강력한 백팔십 검공법!
건우의 성광검에서 백팔십 개의 검이 쏘아져 나가 용머리 영수의 몸을 꿰뚫었다.
처음 백여 개의 검은 어떻게든 막아냈지만 이어진 검들에 결국 몸이 뚫리고 만 것이다.
“차아앗!”
“죽어랏!”
그 때, 폭발의 여파를 간신히 막아낸 공평부와 형오래가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을 올렸다.
공평부의 수창(水槍)이 영수의 목에 틀어박히고, 형오래의 넝쿨이 영수의 몸을 휘감았다.
꽈릉! 꽈르르르릉!
계곡 위의 먹구름이 안타까운 뇌음을 흘렸지만 끝내 번개를 뿌리지는 못했다.
길고 날카로운 회색 발톱도 혼돈기를 잃었고, 채찍같았던 호랑이 꼬리에서도 극멸기가 사라졌다.
“으음.”
건우는 그 순간 용머리 영수의 영체가 몸에서 빠져 나가려는 것을 알아차렸다.
용의 뿔, 그 한쪽 끝이 작게 떨어지더니 한 순간 공간을 열고 사라지려 한 것이다.
하지만 그 시도는 건우가 휘두른 손짓에 막히고 말았다.
뿔은 다시 떠올라 원래의 자리에 달라붙었고, 영체는 몸을 벗어나지 못하고 건우의 의념에 묶였다.
건우가 영체가 묶인 용머리 영수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영수의 몸 안에서 영기와 혼돈기, 극멸기가 서로 뒤엉키더니 영수의 영체로 몰려들었다.
“차앗!”
그 순간 건우가 검을 휘둘러 영수의 뿔 달린 머리와 네 발, 꼬리를 잘라냈다.
“무얼 한 겝니까?”
그런 건우의 행동에 형오래가 곁으로 다가와 물었다.
“영기와 혼돈기, 극멸기가 영수의 영체와 합쳐지면 영찬이 만들어집니다.”
“아, 그건 들었습니다.”
“그런데 영찬이 만들어지면 영수의 몸이 모두 그 영찬에 흡수되어 남는 것이 없어집니다.”
“으음. 그래서 머리와 발, 꼬리를 따로 떼어냈다는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용의 머리, 호랑이의 발과 꼬리가 각각 영기, 혼돈기, 극멸기를 품었으니 쓸모가 많을 것입니다. 그리고 몸통은······.”
건우가 그렇게 설명을 할 때, 영수의 몸통이 쪼그라들며 하나의 보석을 만들어냈다.
영롱한 빛을 머금은 옥은 일곱 광채를 뿌리고 있었다.
“으음. 아쉬움이 아주 없지는 않지만 잘 만들어졌습니다.”
건우가 완성된 영찬을 보며 품평을 했다.
머리와 발, 꼬리까지 포함이 되었다면 더 나은 영찬이 만들어졌겠지만 아쉬움은 없었다.
“자, 두 분께서는 머리, 발, 꼬리 중에 원하는 것을 취하시지요. 영찬은 이후 본부로 돌아가 어르신들의 처분을 기다려야 할 테니, 그 후에 분배를 이야기하기로 하면 될 겝니다.”
“아! 알겠습니다. 머리와 발, 꼬리는 따로 챙기자는 말씀이군요.”
“역시 건우 수사는 영민하십니다. 하하하. 우리가 이것을 챙긴다고 한들, 누가 뭐라 하겠습니까.”
형오래와 공평부가 건우의 말에 반색을 하며 기뻐했다.
그리고 그들은 입을 모아 건우에게 용의 머리를 양보했다.
그리고 둘은 네 개의 발을 각각 둘씩 취하고, 꼬리도 반으로 잘라 공평하게 나눠 가졌다.
그렇게 해서 불만이 생길 여지를 없앤 것이다.
“자, 모두 아시겠지만 과 수사는 영수의 기습에 죽은 것입니다. 의심하는 이들이 없지는 않겠지만 굳이 따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분배가 끝나자 건우가 나서서 과동채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사실이 그런 것을 무에 따로 이야기 할 것이 있겠습니까? 용머리 영수가 그토록 간교할 줄은 몰랐지요. 먹구름에 그리 강력한 뇌전을 숨겼을 줄을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그렇지요. 게다가 당시에 우리 둘은 과 수사보다 먼저 뇌전을 맞아 내상을 입었던 참이라 과 수사를 돕기도 어려웠지요.”
“마침 건우 수사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과 수사 이후에 우리까지 영수에게 당했을 것입니다.”
“건우 수사 덕분에 위기를 넘겼으니 감사한 일이지요. 과 수사의 일은 안타깝지만 이미 지난 일을 어찌하겠습니까.”
공평부와 형오래는 짠 듯이 말을 맞추었다.
건우도 더는 말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세 수사는 과동채의 공간낭을 털어 공평하게 분배를 한 후에 먹구름이 흩어지기 시작한 계곡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밖에 있던 수사들은 과동채의 비극을 전해 듣고 놀랐지만 그나마 세 수사가 무사히 영수를 사냥했다는 말에 기뻐하며 축하의 인사를 해 왔다.
그 후 일행은 의논을 거친 후에 탐사 일정을 그대로 진행하기로 하고, 8년 동안 탐색을 마친 후에 파견대 본부로 돌아갔다.
* * *
“예상보다 빨리 오신 듯 합니다.”
본부로 돌아와 경의당 지부에서 만난 민운도가 활짝 웃는 얼굴로 인사를 해 왔다.
“2년 정도 당겼지요. 예상치 못한 사고가 있기는 했지만 그 후로는 여정이 순조로웠던 덕분입니다.”
“아, 그 이야긴 들었습니다. 탐사를 책임졌던 수사가 이번에 변을 당했다고요?”
“굳이 사냥하지 않아도 될 영수를 자극하더니 결국 그리 되었지요.”
“건우 수사께서 말렸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사냥에 성공하기는 했다지요? 영찬도 하나 얻어 왔고 말입니다.”
민운도는 과동채의 죽음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는 그보다 영찬에 더 흥미를 보였다.
“이런, 저는 기다리지도 않고 회포를 풀고 계셨습니까?”
그 때, 조여지가 문을 열고 들어오며 섭섭한 표정을 지었다.
“하하. 그 무슨 말씀입니까. 그저 인사만 하던 중이었습니다.”
민운도가 그런 조여지에게 손사래를 치며 변명을 했다.
“그 동안 잘 계셨습니까?”
건우가 담담하게 인사를 건넸다.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별 일이야 있었······. 아니군요. 그 사이에 큰 일이 있었으니 어울리지 않는 말이네요.”
“큰 일이라니요? 그렇지 않아도 분위기가 기이하여 궁금하던 참이었습니다.”
조여지의 말에 건우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질문을 던졌다.
탐사에서 돌아온 후 보고를 할 때에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던 것이다.
탐사 책임자가 죽은 사실을 알렸는데도 대충 넘어간 감이 있었다.
“모르시는 모양이군요. 5년 전에 본부에서 이무기 사냥을 나갔었습니다.”
“이무기라면 이전 탐사에서 발견되었다는 그 성령기 괴수 말입니까?”
건우가 깜짝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그런 건우를 보며 조여지가 계속 말을 이었다.
“그렇습니다. 성령기 괴수라 성령기 어르신들이 모여서 사냥을 나섰지요. 그런데 하필 그 괴수가 성령기 완경 급의 괴수였다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설마 누가 죽기라도······.”
“아닙니다. 돌아가신 분은 없습니다. 하지만 두 분이 크게 내상을 입었지요. 그리고 그게 문제가 되었습니다.”
“문제 될 것이 있습니까?”
“하필이면 죽은 이무기가 혼돈기를 다루는 놈이라 영찬이 만들어진 것이 문제지요. 영찬은 하나 밖에 없는데, 탐내는 분은 다섯이나 되니 말입니다.”
“아, 모두가 다른 수도 세력에 속해 있는 분들이니 성령기 완경의 영찬을 두고 갈등이 생겼다는 말이군요.”
“그것 뿐이면 괜찮은데, 부상을 입은 두 분께서 다른 세 분보다 더 적극적으로 사냥에 임했다는 것이 문제지요. 앞에 나서서 애를 썼는데, 지금은 부상 때문에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그건 좋지 않군요. 공을 세웠으면 그에 합당한 대우를 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렇지요.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그에 대해서 말이 서도 다릅니다.”
건우는 조여지의 말에 표정이 굳어졌다.
하지만 속으로는 쾌재를 부르는 중이었다.
‘그래서 과동채의 죽음도 세세히 따지지 않았던 건가? 5대 세력에 속한 것도 아니니, 대수롭지 않게 지나가는 거군.’
건우에겐 나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래도 파견대 전체를 두고 보면 어르신들의 갈등이 빨리 봉합이 되어야 할 텐데 말입니다.”
그러면서도 속과 달리 안타까운 표정으로 걱정을 늘어놓은 건우는 얼마 후 자리를 파하고 자신의 거처로 돌아왔다.
그 후로도 파견대 본부는 뒤숭숭한 분위기가 이어졌고, 5대 세력 간의 갈등이 조금씩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그 때문에 파견대의 외부 활동은 잠정적으로 중단되었는데, 건우와 공평부, 형오래는 용머리 영수의 영찬을 바친 공으로 한동안 자유로운 수련을 허락 받게 되었다.
‘기회가 왔군. 연단 재료 수집을 핑계로 외유를 나가서 진극멸기를 흡수해야겠다.’
건우는 그렇게 핑계를 대고 허락을 얻어 곧바로 파견대 본부를 나섰다.
< 우리 일은 사소한 문제가 되어버렸다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