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2)
< 아, 내가 이런 사람이 아닌데 >
그런 중에 건우는 경의당에 속한 수사들을 뒤로 물려 계곡 밖으로 빠져 나갔다.
그렇게 건우가 빠지자 과동채와 형오래, 공평부만 남게 되었다.
물론 화신기와 영체기 수사들이 많이 있기는 하지만 입령기 중기 이상의 영수를 상대하는데 그들이 큰 도움을 줄 수는 없을 것이다.
“이제 어찌 하시겠습니까? 이대로 저 영수를 잡아 보실 요량이십니까?”
형오래가 과동채를 보며 물었다.
“형 수사 생각은 어떠냐? 건우 놈의 말처럼 이대로 물러남이 옳겠느냐?”
그러자 과동채가 형오래를 보며 되물었다.
형오래는 즉답을 피하며 공평부의 눈치를 보았다.
형오래가 찬성해도 공평부가 반대하면 의미가 없다는 뜻이었다.
자연스럽게 과동채 역시 공평부에게 시선을 던졌다.
“뭘 그렇게 보시는 겁니까? 건우 수사의 말처럼 과 수사께서 저 영수의 수준을 입령기 중기로 보셨다면 망설일 것이 있습니까? 같은 입령기 중기라면 영수가 어찌 수사의 상대가 되겠습니까. 그러니 과 수사께서 알아서 하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 말은 공 수사께서는 과 수사와 함께 영수 사냥을 하지 않겠다는 말씀입니까?”
공평부의 말에 형오래가 기분이 상한 표정으로 추궁하듯 물었다.
“솔직히 나는 저 영수가 입령기 중기인지 후기인지 가늠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행동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지요.”
“그래서 뭐냐? 함께 하겠다는 것이냐, 빠지겠다는 것이냐?”
두루뭉술한 공평부의 태도에 화가 난 표정으로 과동채가 결단을 촉구했다.
공평부는 잠시 밖으로 통하는 계곡 통로를 보다가 결연한 눈빛을 띠었다.
“함께 하겠습니다. 지금껏 살아오며 위험을 각오하지 않으면 얻는 것도 적다는 것을 어찌 모르겠습니까. 저 영수를 사냥할 수 있다면 얻는 것이 굉장할 것이고, 그를 바탕으로 승경도 바라볼 수 있겠지요.”
결국 공평부까지 영수의 사냥에 손을 보태기로 결정한 것이다.
“자, 그럼 각자 할 수 있는 최선의 준비를 해 보자. 저 놈이 깨어나기 전에 준비를 마칠 수 있다면 싸움도 쉽게 끝낼 수 있을 것이다.”
“이를 말이겠습니까. 하지 않으면 모를까 하기로 했으면 최선을 다해야지요.”
“이 형오래 역시 같은 마음이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과동채의 말에 공평부와 형오래가 각오를 다지며 제각각 공격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공평부는 물로 만들어진 원반을 발밑에 소환해서 올라탔고, 형오래는 민들레 씨앗같이 생긴 우산을 꺼내 들었다.
마지막으로 과동채는 허공에 가부좌를 하고 앉아서 수인을 맺으며 술법진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가 뿌린 영기가 허공에 반투명하게 스며들며 기묘한 법칙 문자와 문양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런 문자와 문양은 계속해서 허공으로 녹아들었는데, 보이지는 않아도 중첩되어 쌓이며 기운이 강해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스르르르륵! 꽈르르르릉!
“어엇, 놈이 눈을 뜨고 일어납니다.”
그렇게 세 수사가 공격 준비를 할 때에 문득 뒤쪽에 있던 수사들 중에 화신기 수사 하나가 영수의 변화를 일깨웠다.
머리를 배 쪽으로 파묻고 잠을 자던 영수가 고개를 들어 수사들이 있는 쪽으로 보고 있었다.
그리고 침입자의 존재를 확신한 듯 스르륵 몸을 띄우며 네 다리로 땅을 딛고 섰다.
꽈르르르르릉!
그런데 특이하게도 영수의 울음소리는 천둥소리를 닮아 있었다.
게다가 머리에 난 두 개의 은색 용뿔에서는 작은 번개들이 튀고 있었는데, 뿔에서 튀어나온 번개가 공기 중에 녹아들 때마다 계곡 위에 먹구름이 짙어지고 있었다.
“으음. 천둥소리를 내며 우는 영수가 있었던가?”
그 모습에 과동채가 짧은 신음 소리를 냈다.
천겁과 승경 시험, 비승 시험 등에서 자주 등장하는 천겁뢰 덕분에 수도계에서는 천둥과 번개를 두려워했다.
물론 뇌전 계열의 공법을 익히려는 수사들이 많은 것으로도 천둥 번개의 강력함과 위험성을 알 수 있다.
두려워하면서도 정작 그 힘을 가지고자 하는 심리라 할까.
“천둥과 번개라니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공평부가 불안한 표정으로 과동채를 보며 말했다.
“위험하지 않은 도전이 어디 있다는 말이냐? 용의 피를 이은 것들은 대부분 천둥과 번개를 조금씩이라도 다룬다. 구름을 타고 다니는 것들이니 당연하지. 저 놈의 머리가 용의 머리를 하고 있으니 천둥 번개를 다루는 것이 놀랄 일은 아니다.”
과동채는 혹시라도 공평부나 형오래가 사냥에서 빠지겠다고 하지 않을까 걱정하며 길게 사설을 늘어놓았다.
그리고 그 덕분인지 형오래나 공평부는 우산과 수륜을 더욱 강하게 만들 뿐, 도망가자는 소리를 하지는 않았다.
대신 그들은 화신기 이하의 수사들에게 의념을 보내어 계속 밖으로 벗어나게 했다.
“왜 아이들을 내 보내는 것이냐?”
그 모습에 과동채가 불쾌한 표정으로 물었다.
의논도 없이 아랫것들을 움직인 것에 기분이 상한 것이다.
“아랫것들이야 싸움에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있어봐야 귀찮기만 할 것 같아서 물렸습니다.”
“게다가 이리 해 주어야 인심을 얻지 않겠습니까. 이전 탐사에서 아이들이 적잖이 죽어서 뒷말이 많은 것도 사실이고요.”
“끄응!”
공평부와 형오래가 그리 말하니 과동채도 할 말이 없는 듯 신음소리만 냈다.
하지만 곧 정색을 하며 용머리의 영수를 쳐다보았다.
“자, 그건 그거고. 이제 시작을 해 보자꾸나. 이렇게 셋이 제대로 뜻을 모으는 것은 참으로 오랜만이구나.”
과동채가 그렇게 말하며 먼저 용머리 영수를 향해 공격을 시작했다.
과동채가 만든 술법진에서 제일 먼저 영수를 향해 날아간 것은 빙(氷) 속성의 공격이었다.
이에 공평부 역시 수(水)속성을 품은 수십 개의 창을 만들어 용머리 영수를 향해 날려 보냈다.
콰드드드득!
그 순간 영수의 발밑에서 넝쿨들이 자라나 그 발목을 휘어감으며 빠르게 부풀어 올랐다.
용머리의 영수는 형오래의 공격에 움직임의 제약이 생기자 곧바로 머리를 숙이며 용의 뿔에서 은색의 뇌전을 뿜어냈다.
파지지지지직! 피시시시시시!
강력한 뇌전의 힘이 용머리 영수와 수사들 사이를 장악하며 과동채와 공평부의 공격을 가볍게 흩어 놓았다.
뇌전이 얼음과 물의 기운을 산산조각 내 버린 것이다.
“뇌전의 힘이 강하군! 하지만 오래 쓸 수는 없을 것이다.”
과동채가 그 모습을 보고도 여유로운 표정으로 다시 얼음 조각이 가득 담긴 돌개바람을 만들어 내며 중얼거렸다.
그가 만든 돌개바람은 맹렬하게 회전하며 용머리 영수를 향해 다가갔다.
꽈르르르릉! 투두둑! 투둑!
용머리 영수는 그것을 보고 발을 굴러 형오래의 넝쿨들을 뜯어내며 다시 머리를 숙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전처럼 뇌전을 뿜어내는 것이 아니라 곧바로 앞으로 내달아 과동채의 돌개바람을 들이받았다.
꽈릉! 두두두두! 퍼버버버벙!
“아, 아니. 저 놈이?!”
돌개바람을 들이받아 터트리고 곧바로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용머리 영수의 모습에 과동채가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촤좌좌좌좍! 퍼버벙! 퍼벙! 펑!
하지만 다행히도 용머리 영수의 돌진은 공평부가 만든 일곱 겹의 수벽에 막혀 멈췄다.
꽈르르릉! 꽈릉! 꽈릉!
물로 된 벽에 막혀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자 용머리 영수가 거칠게 머리를 휘저으며 분노를 드러냈다.
우르르르르릉!
그러자 계곡 위에 몰려든 먹구름에서 불길한 뇌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위험합니다. 감당하기 어려운 기운입니다.”
그 모습에 형오래가 깜짝 놀라며 소리쳤다.
“과 수사. 저 놈이 수작을 부렸습니다. 뿔에서 뿜은 뇌전이나 돌진 따위가 문제가 아닙니다. 저걸 보십시오. 저 구름이 품은 힘을!”
공평부 역시 먹구름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에 혼비백산한 표정으로 소리를 질렀다.
그 때는 과동채 역시 핼쓱해진 얼굴로 머리 위의 먹구름을 쳐다보는 중이었다.
“이 일을 어쩝니까? 저 영수가 진정 입령기 중기가 맞기는 한 것입니까?”
형오래가 새파랗게 질린 낯빛으로 과동채에게 따지듯이 물었다.
그 역시 용머리 영수의 경지를 가늠하지 못하여 혼란한 상태였다.
“기이하군. 분명히 입령기 중기, 그 이상은 아니라 보았는데······.”
과동채는 자신의 판단이 정말 잘못된 것인가 의심하며 눈알을 굴렸다.
번쩍! 콰과광! 번쩍! 콰과광!
“으윽!!”
“공격이 시작되었습니다 과 수사! 무얼하십니까!”
결국 먹구름에서 은색의 번개가 내려찍히기 시작했다.
형오래는 홀씨 우산으로 번개를 막았고, 공평부는 수막을 일으켜 자신을 지켰다.
그런데 하필 과동채에겐 번개가 떨어지지 않아 두 수사와 처지가 비교되었다.
꽈르릉! 두두두두두두!
대신에 머리를 숙이고 뿔을 내민 용머리 영수가 과동채를 향해 달려드는 중이라 곧 처지가 달라질 것으로 보였다.
“흐음!”
하지만 과동채도 수도계에서 닳고 닳은 자, 녹록한 이가 아니었다.
그가 빠르게 수인을 맺으며 손을 바쁘게 밖으로 내치자 모습을 감추고 있던 술법진이 모습을 드러냈다.
첩첩이 쌓인 술법진은 영기를 머금고 곳곳에서 빛을 뿜었고, 거기에 과동채의 강력한 의념이 일정 공간을 장악했다.
투화화화황!
과동채의 의념이 깃든 방어술법이 용머리 괴수의 박치기에 굉음을 내며 뒤흔들렸다.
영기를 머금었던 법문과 문양들이 산산조각 나서 허공에 흩날렸고, 과동채의 입에서 한 줄기 피가 흘러내렸다.
“쿨럭! 소, 속았구나!”
과동채가 중얼거리며 등 뒤를 돌아봤다.
그곳에 언제 나타난 것인지 건우가 성광검의 손잡이를 잡고 서 있었다.
그런데 그 성광검은 과동채의 등을 뚫고 심장을 찌른 상태였다.
“요행히 내가 과 수사 보다는 빨랐습니다 그려.”
“이, 이 노옴!”
“어차피 과 수사 역시 나를 어찌 할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까. 시기와 장소를 가늠하고 있었겠지요. 저 역시 그랬을 뿐입니다.”
쿠국! 파시시식!
“커어어억! 네, 네가 이러고도 무사할 것 같으냐?”
건우가 다시 검을 찌르며 검 끝에서 파괴적인 기운을 뿜어 과동채의 심장을 가루로 만들자 과동채가 비명을 지르며 소리쳤다.
하지만 건우는 태연한 얼굴로 그 말을 받았다.
“무슨 문제랍니까. 아랫것들은 싸움이 시작되면서 모두 물러나고 없고, 저기 형 수사와 공 수사는 굳이 이 일을 크게 키우지 않을 것인데 말입니다.”
건우는 그렇게 말을 하며 형오래와 공평부를 바라봤다.
그들은 용머리 영수와 겨루느라 건우와 과동채의 싸움에 끼어들 여유가 없어 보였다.
“이제 그만 미련을 버리시지요. 윤회에 들어 다음 생을 기약하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겉으로는 조용해 보였지만 건우는 사정을 두지 않고 과동채의 몸속을 공격하고 있었고, 과동채 역시 격렬하게 저항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기습이 이루어졌을 때부터 싸움의 결과는 결정이 되어 있었다.
심장을 잃고 몸에 검이 박혀 있는 과동채, 거기다가 이곳 계곡 바닥에는 건우가 숨겨 놓은 금제진법까지 있었다.
과동채가 건우의 접근을 알아차리지 못한 것도 그 금제진법 때문이었다.
과동채 등을 불러오라며 아랫것들을 내보낸 후에 건우가 금제진을 깔아 숨겨 놓았던 것이다.
“내, 내가 이리 쉽게 갈 것 같으냐아!”
이미 대세가 기울었지만 그렇다고 포기하기엔 입령기 중기까지 살아온 세월이 아깝다.
과동채는 내부의 영기를 폭주시켜 건우와 함께 죽을 각오를 했다.
그 기운은 건우로서도 절대 가볍게 볼 수 없을 정도로 강력했다.
하지만 과동채는 마지막 수를 쓰지 못했다.
꽈르릉! 번쩍!
“크아아아악!”
계곡 위의 먹구름에서 한 줄기 강력한 은색 뇌전이 터져 나와 과동채의 정수리로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그런 과동채의 정수리에는 건우의 삼백육심 성광검 중에 하나가 새끼손가락 크기로 돋아나 있었다.
“새꺄, 피뢰침이다!”
< 아, 내가 이런 사람이 아닌데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