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231화 (231/499)

(230)

< 호지성의 세 수사를 만나다 >

낮은 산과 듬성한 관목들.

운승대선이 멈춘 곳은 황량한 들판이었다.

“이런 곳에 혼돈역의 입구가 있단 말입니까?”

조여지가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거친 황무지 위에 수 만 명의 수사들이 제각각 흩어져 있었다.

그런 중에 경지가 높은 수사들일수록 높은 곳에 떠 있고, 저계수사들은 땅을 밟고 있었다.

건우 일행은 입령기 초기로 중간 정도에 위치해 있었지만 그 위에 있는 수사는 전체의 1할도 되지 않았다.

“혼돈역이라는 것이 멸계전이 벌어지는 곳에서만 나타나는 특별한 공간이지 않습니까. 극멸기와 영기가 서로 충돌하며 만들어낸 공간이니 말입니다.”

“멸계전이 없는 곳에서도 혼돈역이라 부르는 곳이 있지만 그곳은 따지자면 미개척 위험지역 정도지요.”

건우와 민운도가 번갈아가며 조여지의 말에 대답했다.

“제가 혼돈역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데 건우 수사께서 저의 안계(眼界)를 좀 넓혀 주시겠습니까?”

조여지가 건우에게 혼돈역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부탁했다.

“그럼 간단히 제가 아는 것을 말씀드리지요. 혼돈역이 어찌 생기는지는 조금 전에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혼돈역이 생성되는 시점과 그 이후의 차이는 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차이라니요?”

“혼돈역이 만들어질 때에 근처에 있다면 쉽게 그것을 알아차릴 수 있고, 입구를 찾는 것도 쉽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그 입구가 점차 모습을 감추지요. 그래서 오래된 혼돈역의 경우엔 가까이 가지 않으면 혼돈역의 입구를 발견하기 어렵습니다.”

“그렇군요. 그럼 입구는 하나밖에 없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것은 경우에 따라 다릅니다. 어떤 혼돈역은 입구가 여럿인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쪽에 입구가 있듯 멸계 쪽에도 반드시 입구가 있을 것입니다.”

“그렇군요.”

“그리고 혼돈역의 입구는 거리의 제약을 받지 않고 떨어져 있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그 말씀은 다른 입구가 남염부제가 아닌 구산팔해의 다른 곳에 있을 수도 있다는 말씀입니까?”

“그렇지요. 그러니 쓰기에 따라서는 어떤 전송진보다 효과적인 활용이 가능하지요.”

“건우 수사, 그건 또 무슨 말씀입니까?”

“그러니까 혼돈역을 전송진처럼 쓴다는······. 아, 알겠습니다. 혼돈역의 다른 입구를 이용하면 우리 남염부제에서 지쌍이나 첨목, 선견 등으로도 쉽게 갈 수 있다는 이야기군요.”

민운도 보다 조여지가 먼저 건우의 말을 알아들었다.

“운에 따른 것이긴 하겠지만 그런 식의 활용도 생각해 봄직 하다는 말이지요. 자, 저기 입구를 개방한 모양입니다. 들어갈 준비를 하지요.”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 운승대선의 부금상련 수사들이 한쪽 허공에 진법을 설치하여 혼돈역 입구를 열었다.

허공에 거대한 구멍이 뚫렸는데, 그 너머로 녹음이 짙은 다른 공간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자, 다들 움직여라!”

가장 경지가 높은 성령기 후기의 수사들이 앞장서서 둔술을 펼쳐 혼돈역으로 건너갔다.

제일 위쪽에 있던 고계 수사들부터 차례로 혼돈역으로 넘어가다가 드디어 건우 일행의 순서가 되었다.

건우와 민운도, 조여지도 머뭇거리지 않고 혼돈역을 향해 둔술을 펼쳤다.

이미 혼돈역 입구 너머에는 먼저 건너간 수사들이 자리를 잡고 주변을 경계하는 중이었다.

“으윽, 이게 무슨?”

“아아아,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천지 영기가 기이합니다.”

그런데 혼돈역으로 넘어오자마자 민운도와 조여지가 몸을 부르르 떨며 신음소리를 냈다.

그것은 다른 수사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건우를 제외한 대부분의 수사들이 혼돈역으로 들어오자마자 몸을 떨었다.

“극멸기 때문입니다. 혼돈역에는 영기와 극멸기, 혼돈기가 공존합니다. 혼돈기가 중간자 역할을 하며 영기와 극멸기의 상쇄 작용을 막아주고 있지요. 물론 한계가 있어서 정도 이상의 영기와 극멸기가 만난 상쇄 작용까진 막아주지 못합니다만.”

“지금 이 기분 나쁜 느낌이 극멸기 때문이란 말이군요?”

“그렇습니다. 민 수사. 하지만 딱히 몸에 이상이 생기는 것은 아니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몸에 문제는 없는 것 같지만 묘하게 거슬리는 느낌입니다.”

조여지도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다들, 파견대 본부로 이동한다. 의념을 펼쳐보면 위치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본부에서 각자의 임무를 찾아가도록.”

그때, 부금상련을 이끄는 성령기 후기의 수사가 지시를 내렸다.

건우는 알지 못했지만 그가 바로 운승대선을 운영하는 행상단의 단주였다.

그의 지시에 따라서 모두가 부지런히 둔술을 펼쳤다.

건우 역시 의념을 펼쳐 칠십여 리 떨어진 곳에 파견대의 본부가 있는 것을 파악하고 둔술을 펼쳤다.

입령기 수준에서 칠십 리 정도는 둔술 한 번으로도 이동할 수 있는 거리라, 다음 순간 건우는 파견대 본부의 정문 앞에 서 있었다.

본부에는 강력한 금제와 진법들이 중첩되어 있어서 곧바로 안쪽까지 둔술로 뚫고 들어가지 않은 것이다.

“어서 오십시오. 선배님.”

건우가 도착한 후, 곧바로 조여지와 민운도가 건우의 옆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자 세 사람을 향해 화신기 중기의 수사가 다가와 허리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그리고 옥간을 내밀었다.

건우는 옥간을 받아 의념을 불어 넣어 내용을 확인했다.

“음, 여기 경의당(庚醫黨) 지부가 있으니 우리는 그리로 가면 되겠군.”

그리고 곧바로 자신들이 속할 곳을 찾아냈다.

파견대에서 건우 일행이 할 일은 단약을 만드는 연단이니 당연히 경의당으로 가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우리가 경의당을 책임지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를 어찌하지요?”

민운도도 옥간을 확인했는지 그렇게 물었다.

“따질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적당히 일을 분담하면 그만이고, 중요한 결정이 필요한 일이 있으면 그것은 서로 의논하면 될 일이 아닙니까.”

건우는 굳이 권력 다툼을 하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경의당의 일을 적극적으로 할 생각도 없었다.

그저 할 만큼만 하고 나머지는 될 수 있으면 밖으로 나가서 움직일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제 나타결공법도 입령기에 이르렀고, 쌍두단미영원의 진혈도 충분히 힘을 갖춘 상태였다.

진극멸기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으니 틈을 봐서 몸을 뺄 생각이었다.

“건우 수사의 의향이 그렇다면 먼저 일을 분담하는 것부터 의논을 하십시다.”

“민 수사, 예서 이럴 것이 아니라 안으로 들어가서 경의당으로 갑시다. 가면서 이야기를 해도 되지 않겠습니까.”

민운도의 말에 조여지가 안쪽으로 들어갈 것을 권했다.

어차피 진법과 금제가 가득한 안쪽에서는 둔술을 마음껏 펼치기도 어려울 것이니 비행으로 이동하자면 시간이 좀 걸릴 것이다.

그 사이에 옥간에 있는 내용을 바탕으로 서로가 할 일을 분배하자는 이야기였다.

***

‘운이 좋다고 해야 하나?’

- 그러게요. 외부 탐색을 책임지게 되었으니 밖으로 돌아다니기 좋고, 우연한 사고로 실종되기도 좋겠네요.

루야의 대꾸에 건우가 피식 웃었다.

루야가 정확하게 자신의 계획을 짚어 냈기 때문이다.

파견대 경의당 지부에 주어진 임무 중에 현장까지 따라가야 하는 임무가 있었다.

파견대는 혼돈역의 입구에서부터 차근차근 영역을 넓히며 탐색을 벌이는 중이었다.

그런 중에 발견되는 영초, 영약, 영수, 괴수, 특이 광물이나 수련 자원들을 거두어들이기도 했다.

건우는 그런 활동 중에서 1차적으로 영단을 만드는데 쓰일 재료들을 감정하고 실험하는 임무를 맡았다.

채집 과정에서 변질되거나 혹은 망실되는 경우를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 현장으로 파견되는 전문가 역할인 셈이다.

당연히 위험한 곳으로 돌아다니는 일이라 민운도나 조여지는 달가워하지 않는 일이었다.

이에 건우가 나서서 본부의 귀찮은 일들을 그들에게 맡기는 대신에 외부로 나가는 일을 전담하기로 했다.

당연히 위험을 자초한 건우에게 민운도와 조여지는 미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며 고마워했다.

건우는 원하는 것을 얻으면서 둘에게 적당히 빚을 지워 준 셈이 되었다.

‘얼마간 상황을 보다가 빠져나가서 진극멸기를 흡수해야지. 그러자면 사건이 좀 있어야 할 텐데 말이지.’

건우는 그런 생각을 하며 출발 장소로 향했다.

건우 일행을 포함한 2차 파견대가 도착한 후, 처음으로 외부 탐색을 나서는 날이었다.

이에 건우 역시 경의당을 대표해서 화신기 수사 둘과, 영체기 다섯을 이끌고 본부의 정문 앞으로 가는 중이었다.

“네 놈이 어찌 여기에 있단 말이냐!”

“과동채··· 수사?”

그런데 그곳에 도착하자 대뜸 건우에게 ‘놈’ 운운하는 과동채를 만나게 될 것은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그것 참, 그 사이에 입령기에 오르셨습니다 그려?”

“그러게 말입니다. 얼마 되지 도 않았는데 놀랄 일입니다.”

“아, 형 수사, 공 수사. 오랜만입니다.”

호지성(壕池城)에서 인연이 있었던 과동채와 형오래, 공평부가 모두 함께 있었다.

당연히 건우를 보는 과동채의 눈빛은 그리 좋지 않았다.

“과 수사. 이렇게 또 뵙게 되었습니다. 잊었던 옛 생각이 새록새록 되살아나는군요.”

건우가 형오래와 공평부를 아는 척한 후에 다시 과동채를 보며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 말에 과동채의 표정 역시 딱딱하게 굳었다

.

건우를 해치기 위해서 부하들을 보냈던 일이 있으니 둘은 이미 불구대천의 원수나 다름이 없는 사이인 것이다.

그런 중에 건우가 전혀 물러날 기색이 없이 과동채를 도발하니 과동채도 물러날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놈, 명줄이 길구나. 하지만 그게 얼마나 갈지는 두고 보자꾸나.”

과동채는 건우에게 그렇게 경고를 하고는 훌쩍 몸을 날려 앞쪽으로 나섰다.

그리고 소매에서 배틀 북 모양의 비행 법보를 꺼내 허공에 던져 부풀리고 말했다.

“자, 모두 모인 것 같으니 이제 출발을 하겠다. 모두 배에 올라라.”

‘저 놈이 탐색 책임자였어? 끙, 귀찮겠네.’

그 모습에 건우가 혀를 차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런 건우 곁으로 형오래와 공평부가 다가왔다.

“사별삼일 즉당 괄목상대(士別三日 卽當 括目相對)라! 건우 수사의 성장이 다시 봐도 놀랍습니다. 이 공평부 몇 번을 눈을 비비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것 참, 그 사이 건우 수사가 우리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습니다 그려. 이전에 섭섭한 것이 있었더라도 잊어 주십시오.”

공평부와 형오래는 건우의 성취를 두고 그렇게 농이 섞인 인사를 던졌다.

“운이 닿아 이룬 성취일 뿐입니다. 그런데 어찌 세 분이 이곳에 계십니까?”

건우는 형오래, 공평부와 어울리는 동시에 따라온 수하들에게 비행 법기에 오르도록 의념을 전했다.

그리고 셋도 나란히 허공을 걸어 비행 법보의 선수 부분에 내려섰다.

“일이 그렇게 되었습니다. 건우 수사가 떠난 후에 매신전귀단에서 다시 건우 수사를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이미 떠난 건우 수사를 어디서 찾겠습니까? 게다가 남염부제의 도맹이 결성되면서 호지성의 책임자인 우리 셋 모두가 차출이 되고 말았지요.”

“그럼 호지성에는 입령기 수사가 없지 않습니까?”

건우가 조금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호지성의 전력이 크게 떨어졌으니 혹시 모를 사태에 대처하기 어려울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그런 세세한 것까지 도맹에서 고려해 주지는 않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과 수사가 유독 건우 수사에 대해서 좋지 못한 감정을 드러내곤 했습니다. 모두가 건우 수사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요.”

형오래가 과동채의 지난 행태를 건우에게 넌지시 알렸다.

그도 이미 건우와 과동채 사이에 좋지 않은 일이 있음을 짐작한 듯했다.

“부하들을 보내서 전송진 이동간에 저를 납치하여 죽이려 했었습니다. 그 일로 저 역시 과 수사에게 이를 갈고 있던 참이지요. 마침 이리 만났으니 언제고 사달이 나도 날 것입니다.”

건우는 숨기지 않고 자신의 속을 드러냈다.

입령기 중기의 과동채라 하더라도 두려울 것은 없었다.

다만 형오래와 공평부가 과동채의 편을 든다면 곤란할 것이다.

그래서 지난날 과동채가 자신을 죽이려 했던 일을 둘에게 알리기로 한 것이다.

“그런 일이!”

“으음. 이거 참, 곳곳에 위험이 산재한 상황에서 서로 힘을 모아도 모자랄 판에······.”

형오래는 과장되게 놀란 기색을 보이고, 공평부는 앞으로의 일을 걱정했다.

“저도 선후를 아는 사람입니다. 사적인 원한 관계보다는 공적인 상황을 먼저 고려할 것이니 크게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 걱정보다는 저 과 수사를 걱정하는 것이 먼저가 아닐까 싶습니다.”

건우의 시선이 조타륜(操舵輪)을 잡고 서 있는 과동채를 향했다.

그는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건우를 노려보고 있다가 셋의 시선을 받자 얼굴을 붉히며 고함을 질렀다.

“모두 자리를 잡거라! 출발하겠다!”

< 호지성의 세 수사를 만나다 > 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