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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우의 선택과 혼돈역 도착 >
첫 번째 단에 있는 것은 영기를 품은 단약이었다.
건우는 처음 보는 단약이지만 의념을 이용해서 단약의 효능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다.
“기다리시는 분들을 위해 여기 올라온 보물들을 간단히 설명을 해 드리겠습니다. 보시는 첫 번째 것은 주상활기단(朱祥活氣團)입니다. 당장 죽을 중상을 입었더라도 숨 한 번 쉴 동안에 완치할 수 있다는 신묘한 요상단입니다. 물론 한 번 쓰면 백 년간은 다시 쓸 수 없다는 제약이 있음을 아시는 분은 아실 것입니다.”
건우는 정치결의 갑작스러운 해설이 더없이 반가웠다.
영단이 효과가 뛰어난 요상단의 일종인 것은 알았지만 같은 것을 백 년 내에는 또 쓸 수 없다는 제약은 몰랐기 때문이다.
‘일단 기억만 해 두자.’
건우의 의념이 다음 단으로 옮아갔다.
거기 놓인 것은 황금빛 법문이 가득 새겨져 있는 부적 하나였다.
건우는 그 부적의 법문을 제대로 파악해 내지 못했다.
그 현묘함을 짧은 시간에 파악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두 번째 것은 무량전송부(無量轉送符)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소유자를 공간이동 시켜 주는 특별한 부적이지요. 다만 거리나 방향은 무작위입니다. 위기 상황을 급하게 벗어나기에는 더없이 좋은 물건이지요. 물론 도착 지점의 안전도 확보해서 적어도 이동 간에 횡액을 당할 일은 없습니다. 일종의 긴급 탈출용으로 하나 정도는 가지고 있어 봄직한 부적이
지요.”
건우는 그 전송부 역시 눈여겨봐 뒀다.
하지만 다음 물건은 따로 볼 필요가 없었다.
이번 경매의 첫 물품으로 나왔던 묵혈오철이었기 때문이다.
“세 번째 묵혈오철은 모두가 잘 아시는 것이니 넘어가겠······.”
“그럴 수는 없지.”
정치결이 건우와 같은 생각으로 묵혈오철에 대한 소개를 넘기려 했지만 이내 그 주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동시에 묵혈오철 옆에 새로운 죽간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묵혈오철을 체화할 수 있게 해 주는 공법이다. 묵혈오철이 태고 영수의 찌꺼기라 할지라도 그것을 체화하면 능히 성령기와 비견할 정도의 몸을 가질 수 있다. 강체술로 그만한 것도 드물 것이다.”
“으음. 좋습니다. 목혈오철과 죽간의 공법을 묶어서 하나로 치겠습니다. 그럼 다음은······.”
정치결은 어차피 결정은 건우의 몫이란 생각인지 뒤늦게 공법을 올린 것을 그냥 넘어갔다.
건우의 시선도 자연스럽게 네 번째 단 위로 향했다.
그곳에는 녹슨 열쇠 하나가 놓여 있었다.
시뻘건 녹이 슬어 금방이라도 부러질 것 같은 열쇠였지만 은은하게 풍기는 기운이 만만치 않았다.
“아, 이것은 해금시(解禁匙)입니다. 그 어떤 금제라도 영계 수준의 것이라면 반드시 뚫어낼 수 있다고 알려진 바로 그 열쇠가 분명합니다. 일회용이지만 쓰기에 따라서는 아주 요긴한 물건이지요.”
‘영계의 금제라면 뭐라도? 정말 그렇다면 저게 태령기 수사의 금제도 뚫어낼 수 있다는 건가?’
정치결의 말에 깜짝 놀라 건우의 눈동자가 잠깐 부풀어 올랐다가 제 모습을 되찾았다.
“마지막 이것은 여러분도 잘 아시는 괴뢰심이로군요. 하지만 단순한 괴뢰심이 아니라 화신기 완경의 괴뢰를 일으켜 세울 수 있는 괴뢰심이라고 합니다. 아, 괴뢰심에 필요 재료들도 함께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정치결은 괴뢰심을 내놓은 수사에게 의념이라도 전달받는 모양인지 그렇게 말을 전했다.
“자, 그럼 선택의 시간입니다. 원하는 물품을 가지고 가시면 경매는 그 물품의 주인이 낙찰받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건우 쪽을 보며 그렇게 말한 정치결은 건우가 있는 밀실과 경매 무대 사이의 공간을 연결해 주었다.
그 순간 제약이 사라져 원하기만 하면 언제든 의념을 이용하여 무대 위의 물건을 끌어 올 수 있게 되었다.
건우는 그것을 알아차린 후, 잠시 고민하다가 하나의 물건을 끌어왔다.
“네, 출품자가 해금시(解禁匙)를 선택했습니다. 이로써 혼돈기 영찬의 낙찰자가 정해졌음을 알립니다.”
건우의 선택에 정치결은 곧바로 경매 종료를 선언했다.
그리고 건우의 앞으로 상급 영석 10만 개가 들어 있는 공간낭을 날려 보냈다.
건우는 해금시와 상급 영석을 곧바로 소매 속으로 넣어 갈무리했다.
“자, 그럼 잠시 휴식을 취한 후에 다음 경매를 이어가겠습니다. 다음 경매는 사흘 후에 이어지겠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휴식을 선언했다.
하지만 그것은 이미 경매 일정에 나와 있는 내용이라 모두가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경매를 절반 진행한 후에 며칠 쉬었다가 다시 후반부 경매를 하기로 처음부터 예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물론 이 사흘의 기간 동안에 경매 참가자들 사이에 작은 교류회가 빈번하게 일어날 것이다.
낙찰받지 못했지만, 미련이 남은 물건을 구하기 위해서 이리저리 발품을 팔고 인맥을 동원하는 이들이 적지 않을 테니까.
“자, 그럼 우리도 잠시 쉬십시다. 뜻하지 않은 상황으로 긴장을 했더니 심신이 피곤합니다.”
휴식이 선언되자 건우는 민운도와 조여지를 보며 그렇게 말하곤 곧바로 자신의 거처로 돌아왔다.
그리고 사흘 동안 방문을 사절하고 연화경과 해금시를 살피며 시간을 보냈다.
***
“어째 건우 수사께서는 큰 재물을 얻고도 경매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으시는 것 같더니 드디어 마음에 드는 것을 찾으신 것입니까?”
사흘간의 휴식 후에 경매가 시작되었는데 200여 개의 물품이 지나갈 동안 별 관심을 보이지 않던 건우가 입찰 경쟁에 뛰어들자 민운도가 오랜만에 입을 열었다.
민운도와 조여지는 그동안 조용히 경매에 나온 물품들을 살피고, 그 정보를 얻는 데에 집중하던 중이었다.
“제가 진혈에 관심이 좀 있습니다. 그런데 마침 희귀한 진혈이 나왔으니 욕심이 생기는군요. 1만4천 개.”
건우는 말끝에 상급 영석 1만4천 개를 불렀다.
지금 경매 무대에 올라와 있는 것은 날짐승 영수 중에서도 이름이 높은 봉의 진혈이었다.
수도계에는 여러 종류의 봉(鳳)과 황(凰)이 있는데 그중에 이름이 높고 널리 알려진 것들은 대부분 선계에 있는 신수라고 봐야 한다.
하지만 봉과 황의 종류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그 피를 이은 후손이 많다는 말과 같다.
그래서 선계와 영계에는 봉황의 후손인 반신수들이 두루 퍼져 있는데 이번 경매에 나온 것은 수미 세계에 살았던 봉의 진혈이었다.
“태령기 급의 반신수가 수명이 다하며 남겼다는 진혈이라니 더욱 가지고 싶지 뭡니까.”
건우는 다른 입찰자들이 서로 번갈아 호가를 높이는 것을 지켜보며 중얼거렸다.
그는 과거 반신수의 새끼가 태어나자마자 영체기 수사를 쪼아 먹는 것을 눈앞에서 본 적이 있었다.
그 모습이 충격적이어서 그런지 그 기억은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봉의 진혈이란 물품 소개를 듣자마자 가지고 싶다는 욕망이 일어난 것은 그 기억의 영향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2만 개!”
호가 경쟁을 지켜보던 건우가 한 번에 3천 개 가까이 호가를 높였다.
순간 경쟁자들이 조용해졌다.
그리고 정치결 대행수는 건우의 호가에 눈빛을 반짝거렸다.
건우가 그 경매품에 큰 관심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는 뜻이다.
하지만 정치결은 굳이 바람잡이를 이용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봉의 진혈이지만 수미 세계에서 끝내 선계에 오르지 못하고 죽은 놈의 것이다.
그것도 자연사 한 봉의 사체를 뒤늦게 발견하여 뽑은 진혈이라 그 기운이 많이 쇠했다는 감정 결과도 있었다.
영석 2만 개면 굳이 낙찰가를 끌어 올리지 않아도 만족할만한 금액이었다.
“2만 5천 개로 하지.”
그때, 누군가 묵직한 음성으로 5천 개의 영석을 더 불렀다.
정치결은 그가 누군지 단번에 알아봤다.
육백 개 가까운 물품의 경매를 진행했다.
그만하면 경매 참가자의 면면을 익히기에도 충분한 시간이었다.
지금 호가를 끌어 올린 이는 사혈궁 소속의 성령기 후기 수사로 첫 경매에서 묵혈오철을 낙찰받았던 이였다.
정치결은 그 사혈궁 수사가 건우가 있는 밀실을 엿봤을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운승대선에 설치된 금제나 술법들은 매우 고명한 수준이지만 성령기 후기의 수사가 마음먹고 뚫자고 하면 못할 것도 없을 것이다.
굳이 그런 짓을 할 이유가 없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사혈궁의 수사는 혼돈기 영찬의 주인을 끝내 확인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금제를 뚫고 건우를 확인한 이들이 사혈궁 수사만은 아닐 것이다.
‘사혈궁 수사가 건우 수사에게 감정을 가진 모양이군. 건우 수사의 경매 낙찰을 방해하겠다는 의도가 뻔히 보이네.’
정치결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그 생각을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2만5천 개! 2만5천 개가 나왔습니다. 더 없으시면 세 번의 호가 후에 낙찰자를 결정하겠습니다.”
정치결은 건우 쪽으로 시선을 주며 눈빛으로 의향을 물었다.
건우는 그 눈빛에 잠시 고민을 하다가 다시 호가를 올렸다.
“3만 개.”
“아, 3만 개 나왔습니다. 3만 개, 그 이상······.”
“4만.”
정치결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다시 호가가 올랐다.
건우는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이 호가가 자신에 대한 견제임을 알아차린 것이다.
그리고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상급 영석 4만 개 이상을 주고 봉의 진혈을 구하는 것은 과해도 너무 과했다.
“봉의 진혈이 귀하기는 하지만 상급 영석 4만 개의 가치는 절대 없습니다. 달리 진혈을 특별하게 쓸 재주가 있더라도 영석 4만 개면 훨씬 더 나은 봉의 진혈을 구할 수 있을 겁니다.”
“저도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봉의 진혈이라지만 과합니다. 게다가 죽은 지 오래된 사체에서 추출한 것이라 질도 떨어진다 하지 않았습니까.”
민운도와 조여지도 물러날 것을 권했다.
건우는 그들의 말이 아니라도 이미 봉의 진혈에 대한 관심이 줄어든 상태였다.
정치결은 표정만으로도 건우의 뜻을 알았는지, 빠르게 경매 과정을 진행했다.
그렇게 봉의 진혈은 사혈궁의 수사에게 상급 영석 4만 개에 낙찰이 되었다.
이후로 몇 번 건우가 경매에 참가했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건우는 하나의 물품도 낙찰을 받지 못했는데, 의외로 사혈궁의 수사는 이후로 건우의 경매에 끼어들지 않았다.
그럼에도 건우가 낙찰받은 물품이 없는 것은 생각보다 입찰 경쟁이 심했기 때문이다.
“후우, 이제부턴 우리가 끼어들 수준이 아닌 모양입니다. 경매 시작가가 영석 5만 개를 넘으니 몇 번 호가를 하지 않아도 10만 개는 훌쩍 넘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건우는 경매 입찰을 포기하고 의자에 등을 기대고 느긋한 자세를 취했다.
“성령기 중기 이상의 어르신들이 다투는 상황에 저희 같은 입령기 초기는 언감생심이지요.”
“그래도 귀한 물건들이 나오는 만큼 견문을 크게 넓힐 수 있으니 좋은 일입니다. 이 모두가 건우 수사의 덕분입니다.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조여지가 손을 모아 내밀며 인사를 했다.
건우는 겸연쩍은 표정으로 손사래를 쳤다.
“이미 두 분에게 그만한 대가를 받지 않았습니까. 두 분은 정당한 값을 치르고 이 자리에 앉으신 것이니 더는 그런 인사를 하지 마십시오.”
“그리 정색을 하시니 말은 하지 않겠지만 우리 마음이 그렇다는 것만은 알아주십시오.”
“서로가 호의를 가지고 도울 수 있다면 좋지 않겠습니까.”
건우의 거부에도 둘은 그렇게 여지를 남기며 쉽게 물러나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건우와 친해지려는 태도가 분명했는데 그 모습에 내심 쓴웃음이 나는 건우였다.
‘나에게 뜯어 먹을 것이 좀 있어 보이나? 뭐, 그리 밉상은 아니니 당분간은 어울려 주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건우는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경매 무대에 집중했다.
그리고 상급 영석 수십만 개를 호가하는 몇 개의 물품 경매를 마지막으로 운승대선의 영급 경매가 끝을 맺었다.
건우는 이 경매에서 혼돈기 영찬을 내어주고 연화경과 해금시, 십만 개의 상급 영석을 얻었다.
그리고 비공식적이지만 멸계전을 경험한 타계(他界) 수사로서의 존재감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경매가 끝난 후, 거처에서 한 걸음도 밖으로 나가지 않고 칩거를 선택한 건우는 운승대선이 혼돈역에 도착할 때까지 외부 접촉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기간 동안 건우는 연화경(蓮花鏡)에 대한 연구로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쿵쿵쿵!
“이보시오 건우 수사. 운승대선이 멈췄소이다. 어서 밖으로 나오시오!”
목적지에 도착하자 민운도가 들뜬 목소리로 건우를 불렀다.
< 건우의 선택과 혼돈역 도착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