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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대체 왜들 이래? >
“자, 천오백 개의 호가가 나왔습니다. 더 없습니까? 세 번 호가하고 더 없으면 낙찰을 결정하겠습니다.”
정치결이 생각보다 높아진 가격에 활짝 웃는 표정으로 서둘러 경매를 진행했다.
하지만 사실 그의 표정은 꾸며진 것일 뿐, 그 속은 복잡했다.
- 어떻게 합니까?
그에게 바람잡이 중에 하나가 물어왔다.
원래 부금상련에서도 이 경매물에 특이점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들이 낙찰받을 계획을 세워두고 있었다.
바람잡이는 평소 경매 가격을 올리는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상련에서 원하는 물건을 낙찰받는 일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갑자기 방해꾼이 등장한 꼴이다.
갑자기 호가가 급등하여 바람잡이가 운용할 금액을 넘어버려 정치결에게 물은 것이다.
- 천육백 개로 호가를 해 봐!
정치결이 곧바로 바람잡이에게 명령을 내렸다.
“첫 번째! 천오백. 두 번째! 천오백. 세······.”
“상급 영석 천육백 개.”
그리고 계속 세 번의 호가를 하던 중에 극적으로 바람잡이가 천육백 개를 불렀다.
“아, 천육백 개! 천육백 개가 나왔습니다.”
정치결은 놀란 표정을 연기하며 어조를 높였다.
그리고 슬쩍 건우의 눈치를 살폈다.
그는 건우가 천오백 개를 부른 것이 마지막 응찰이라고 봤다.
크게 가격을 올려서 물건을 확보하려는 회심의 한 수.
하지만 거기서 더 높은 가격이 나왔으니 다시 응찰을 하지는 않으리란 계산을 했다.
그런데.
“천팔백 개.”
다시 망설임 없이 천팔백 개의 호가가 나왔다.
정치결은 움찔했다.
여기서 더 부를 것인가?
아니면 포기할 것인가?
- 어찌합니까?
다시 바람잡이의 문의가 들어왔다.
- 끄응, 포기한다. 네가 우리 상련의 사람임을 아는 이들도 있을 텐데, 굳이 우리가 이것에 관심이 있음을 드러낼 필요는 없겠지. 일단 판매를 한 뒤에 다시 구매를 하는 쪽으로 한다.
정치결은 일단 한발 물러나기로 했다.
뭔가 연구해 볼 가치가 있는 거울이지만 그렇다고 가치가 급등한 것은 아니다.
상급 영석 이천 개는 정치결이 생각하기에 거울값으로 조금 과한 면이 있었다.
그렇게 연화경은 건우에게 낙찰이 되었고, 정치결은 물품을 들고 건우 일행이 있는 밀실로 들어와 물품과 대금을 교환했다.
그렇게 거래가 진행될 때였다.
갑자기 경매장에서 큰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 거울, 상급 영석 이천오백 개에 내가 사겠다.”
“아니다. 내가 삼천 개에 사겠다.”
“무슨 소리냐! 내가 사겠다. 상급 영석 오천 개!”
갑자기 세 명의 수사들이 목소리를 높여 연화경 경매에 뛰어들었다.
건우에게 대금을 받고 물건을 건네던 정치결이 움찔 몸을 떨며 경매 무대를 잠시 바라봤다.
하지만 그는 곧 건우에게 연화경을 넘겨주고 무대로 넘어갔다.
“이 무슨 소란이란 말입니까. 지금 우리 부금상련을 무시하는 것입니까!”
그리고 곧바로 참가자들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
“경매는 끝났고, 물건은 주인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끝난 경매를 물리려 하다니! 이는 우리 상련을 무시하는 것이 분명하겠지요?”
정치결의 몸에서 검붉은 기류가 거칠게 피어올랐다.
그러자 소란스럽던 경매장이 일순 조용해졌다.
“뒤늦게 어떤 가치를 발견했는지 모르지만, 이미 끝난 일입니다. 그러니 미련을 버리십시오. 그리고 아시겠지만 경매 참가자에 대한 정보는 일절 제공하지 않습니다. 그럼 다음 경매로 넘어가겠습니다.”
정치결은 단호한 태도로 상황을 종결시켰다.
그리고 다시 경매를 진행했다.
‘워! 역시 힘은 있고 볼 일이야!’
건우가 내심 부금상련의 힘에 감탄했다.
아무리 성령기의 경지라도 정치결에게 부금상련이란 뒷배가 없었다면 저런 언행을 보이진 못했을 것이다.
이곳 경매장엔 그보다 높거나 비슷한 경지의 수사가 한 둘이 아닐 테니까.
“이게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그게 뭐라고 갑자기 상급 영석 오천 개를 부르지요?”
건우가 상황을 지켜보고 있을 때, 조여지가 놀란 표정으로 건우를 보며 물었다.
그녀의 시선은 건우가 들고 있는 연화경에 꽂혀 있었다.
“그건 나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그저 이 살아 있는 연꽃을 연구해 볼 가치가 있겠다 싶어서 이것을 샀을 뿐입니다.”
건우가 얼마쯤 속을 감추고 대답했다.
“연꽃을요? 아! 그렇군요. 그 연화경이 얼마나 오래된 것인지 모른다 했으니 연꽃의 수령이 굉장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연꽃을 본래 모습으로 되돌릴 수 있다면 엄청난 연단 재료가 될 수도 있겠군요.”
건우의 말에 민운도가 즉시 연단 수사로서의 감을 발휘했다.
그의 말처럼 오래된 연꽃이라면 귀한 연단 재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조여지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수만 년은 훨씬 더 되었을 연화경이니 그 오랜 세월을 품은 연화라면 과연 굉장한 영단을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도박이기도 하지요.”
건우가 조여지의 얼버무리는 뒷 말을 받았다.
“그렇지요. 그 연꽃을 거울에서 떼어 내어 원래 모습으로 되돌렸을 때, 그 사이의 세월을 간직하고 있을 확률이 그리 높지는 않을 테니 말입니다.”
민운도가 건우의 말을 받았다.
그의 말처럼 막상 연꽃을 분리해서 원래로 되돌렸는데, 처음 거울을 만들 때의 모습으로 돌아간다면 헛되게 영석을 낭비한 것이 될 것이다.
“그야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보물을 얻으려면 그 정도 위험은 감수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고작 영석 아닙니까. 재물이야 어떻게든 다시 모을 수 있지만 이런 기회는 자주 오는 것이 아니지요.”
“하긴 그것도 그렇습니다.”
“시간만 있으면 영석이야 모을 수 있지요. 우리 재주가 그리 떨어지는 것은 아니니 말입니다.”
연단 능력으로 도맹에 차출된 그들이었다.
영단을 만들어 판다면 영석을 모으는 것이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지요. 게다가 우리에겐 아주 많은 시간이 있지 않습니까.”
“시간이요?”
“무슨······.”
“하하하. 멸계전이 시작되었으니 이제 천겁이 없습니다. 멸계전이 언제 끝날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제가 이전에 있었던 인계가 멸계전을 끝내고 영계로 올라오는데 백 만년이 넘게 걸렸습니다. 뭐 의도적으로 멸계전을 질질 끈 때문이기도 하지만요.”
“아, 그렇군요. 특별한 일이 없다면 이제 천겁으로 죽을 일은 없겠지요.”
“뻔히 아는 것인데도 일깨워 주시기 전까지는 까맣게 잊고 있었습니다 그려. 하하하하.”
건우의 말에 조여지와 민운도가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도 무대에서 진행되는 경매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드디어 삼백 번째의 경매가 시작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건우가 출품한 영찬(影讚)이었다.
“자, 삼백 번째, 이번 경매품은 아주 특별한 것입니다.”
정치결이 손짓을 해서 물품대를 소환했다.
그러자 뚜껑 열린 옥함에 들어 있는 흑은색의 영찬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것은 혼돈력을 품고 있는 영찬입니다.”
“혼돈력? 그런 것이 벌써 나왔다고? 아니, 그게 아니지. 혼돈력만 품은 영찬이잖아!”
“어찌 된 것이지? 혼돈력이라면 영기와 극멸기를 함께 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혼돈역의 괴수 중에 영기와 혼돈력, 극멸기를 함께 다루는 경우, 그것을 죽이면 영체에 세 기운이 응결되어 혼돈역 영찬이 만들어지지. 그리고 그 과정에 간섭을 하면 영기를 품은 영찬을 만들 수 있다. 혹 멸계 수사라면 극멸기를 품은 영찬을 만들겠지. 하지만 혼돈기만 품은 영찬은 기이하군.”
“아니지. 영기를 품은 영찬이나 극멸기를 품은 영찬이라도 영기와 혼돈기가 섞여 들어가기 마련이다. 그런데 저것은 오로지 혼돈기만 품은 영찬이 아닌가. 저런 것이 어찌 만들어졌지?”
“그게 중요한가? 벌써 혼돈역에서 저런 것이 나왔다면 우리가 모르는 혼돈역이 있다는 말이 아닌가. 이래서야 우리가 지금 혼돈역으로 가는 보람이 없게 되는 것이지.”
경매 참가자들 중에 제법 식견이 있는 이들이 이리저리 떠들고 있는데 이번엔 정치결도 그들의 말을 끊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후, 정치결이 웃으며 손을 들었다.
“자자, 그만하면 대충 이 물건에 대한 정보는 전달이 된 듯 합니다. 다만 여기서 제가 따로 드릴 정보가 있는데, 이것은 사실 우리 수미 세계가 아닌 다른 계에서 넘어 온 것입니다.”
“다른 계? 그럼 그곳에서도 멸계전이 있었다는 이야긴데?”
“멸계전이 벌어지는 계에서 하필 우리 수미 세계로 넘왔다니, 우연도 그런 우연이 있단 말인가. 놀랍군.”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멸계전에서 승리하고 영계로 오른 계에서 우리 세계로 넘어왔다는 화신기 아이가 있다고 했던가?”
“올커니, 그럼 저것은 바로 그 아이의 것이겠군.”
“오래 소식이 없기에 죽은 줄로 알았는데, 잘 살아 있었던 모양이군. 게다가 영급 경매에 물건이 나왔으니 화신기 아이가 입령기는 되었다는 말이겠고?”
“재미있군. 저 물건도 그 아이도.”
건우는 문득 재미있겠다는 말이 들리자 어깨를 움찔했다.
그 목소리에 담긴 기운이 능히 입령기는 훌쩍 넘은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자, 그럼 경매를 시작하겠습니다. 저희 부금상련의 감정 결과를 보면 이 영찬은 영기 수준의 법구를 만드는데 주재료로 쓸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 재료 기준에 맞춰서 경매 시작가는······.”
“상급 영석 1만 개.”
정치결이 시작가를 말하기도 전이었다.
입찰자 중에 누군가가 상급 영석 1만 개를 불렀다.
“무슨, 2만 개.”
“2만5천 개.”
“4만 개.”
그리고 정치결이 끼어들 틈도 없이 경매의 호가가 치솟아 올랐다.
그 상황에 정치결도 잠시 경매 진행에서 한 걸음 물러났다.
호가가 알아서 오르는데 끼어들어 채찍질을 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고작 영기 수준의 법구를 만들 수 있는 영찬에 과한 호가가 나오는 것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드는 정치결이었다.
“상급 영석 10만 개! 이보다 더 부르는 이가 있다면 내가 포기하지.”
그때였다.
정치결도 움찔할 정도의 기세를 담은 목소리가 경매장을 떨어 울렸다.
정치결은 그 목소리의 주인이 자신의 상관인 행상단 단주임을 알아차렸다.
‘상단주께서? 도대체 이 물건이 무엇이기에 이런······.’
경매 물품에 대한 감정은 운승대선에 상주하는 행상단의 감정사들이 진행한다.
지금 상황을 보면 그 감정사들이 밝히지 못한 뭔가가 이 영찬에 있다는 소리였다.
당장 경매에 뛰어든 이들만 보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
그 모두가 적어도 성령기 이상의 수사들이고, 성령기 완경에서 태령기 승경을 앞둔 이들은 모두가 경매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설마, 이것이 태령기 승경과 연관이 있다는 말인가?’
정치결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 눈을 껌뻑거렸다.
그리고 맹렬하게 뇌를 회전시켰다.
그리고 얼마 후, 정말로 혼돈기만 품은 영찬이라면 승경에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는 판단을 내릴 수 있었다.
멸계전으로 천겁은 멈췄지만 승경 시험은 여전히 존재했다.
그런데 그 승경 시험의 천겁뢰를 막을 방도가 있다면?
‘혼돈기를 이용해서 승경 시험의 천겁뢰를 막을 방도가 있을 수도······.’
확실치는 않지만 가능성 있는 방법 몇 가지가 정치결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단순히 법구를 만드는 용도가 아니라, 특정한 용도의 법구, 그러니까 천겁뢰를 막는 용으로 만들면 효과가 좋을 수도 있겠어. 그것도 승경 과정만 버틸 정도로 압축하면 그 위력을 령보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을지도······.’
정치결은 결국 경매가 격화된 이유를 어느 정도 짐작해 냈다.
그것은 상단주가 경매에 참가한 것을 보고 겨우 유추해 낸 것이었지만 사실에 근접한 것이기도 했다.
“나도 십만 개는 낼 수 있는데, 예서 고작 몇백 개, 몇천 개 호가를 올리는 것은 치졸해 보이는군. 그래서 제안하지. 상급 영석 십만 개에, 각자 보물을 더하기로 하지. 그리고 판매자가 그중에 마음에 드는 보물을 선택하게 하는 것이 어떤가?”
십만 개의 호가가 나온 이후, 잠시 조용해진 상황에서 누군가가 새로운 제안을 했다.
십만 개의 상급 영석을 내어놓고, 거기에 더해서 쓸만한 물건을 내놓자는 것.
호가 경쟁이 과열되니 이쯤에서 다른 방법으로 경매를 끝내자는 제안인 셈이다.
정치결은 그런 이야기가 나오자 무대의 중앙으로 걸음을 옮겼다.
“경매 진행을 맡은 이 정치결이 조금 전에 나온 경매 방법을 채택하기로 하겠습니다. 이의가 있으신 분은 지금 말씀을 해 주십시오.”
그는 낙찰 호가는 충분히 올랐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여기서 고계 수사들 사이에 갈등이 생기면 막상 혼돈역 파견 활동에 지장이 있을 수도 있음을 고려했다.
이쯤에서 적당히 경매 낙찰을 결정하는 방법으로 지금 나온 것이 나쁘지 않았다.
영찬 출품자에게 어떤 귀물을 내어놓을지는 각자 알아서 할 일이고, 또 그중에 어떤 것을 택할지는 출품자의 마음이다.
어떤 결과가 나와도 낙찰 경쟁을 하던 수사들 사이에 앙금이 남을 일은 거의 없었다.
앙금이 생긴다면 자신이 내놓은 보물을 선택하지 않은 출품자에게 생기겠지.
그런 계산 끝에 나온 진행이었고, 누구도 반대하지 않아서 곧바로 십만 개의 영석을 내놓을 의향이 있는 다섯 명의 수사가 보물 하나씩을 경매 무대로 날려 보냈다.
정치결은 다섯 개의 단을 소환하여 그 보물들을 올려놓았다.
그리고 건우 쪽을 보며 말했다.
“자, 이중에 마음에 드는 것을 선택하면 경매가 끝납니다. 잠시 시간을 줄 터이니 신중하게 선택하십시오.”
경지가 높음에도 정치결은 건우에게 공대를 했다.
그가 건우가 있는 밀실로 왔다면 하대를 했겠지만 지금은 무대 위에 있으니 공인으로서의 태도를 취한 것이다.
건우는 그의 말을 듣고 공손하게 읍을 해 보이고는 다섯 개의 보물을 살피기 시작했다.
< 도대체 왜들 이래?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