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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승대선(雲乘大船) 경매에 돌을 하나 던지다 >
“영기 수준의 법보도 없고, 수련 자원이나 재료도 대단할 것은 없어 보입니다. 그래도 필요한 수사가 있다면 영석을 주고 구할 정도는 되겠습니다.”
두 수사가 내어놓은 것을 보고 건우가 내린 결론은 그랬다.
그리고 그런 그의 말에 두 수사도 별반 이견은 없어 보였다.
어차피 가진 것이 부족해서 건우에게 온 것이 아닌가.
“하지만 나 역시 그리 대단한 것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따지자면 입령기에 오른 시기를 보더라도 내가 두 분 보다는 훨씬 늦지 않았습니까.”
“입령기가 되자마자 오련맹의 맹주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정말이었습니까?”
“그냥 소문인 줄로 알았는데 아니었던 모양이군요?”
건우의 말에 민운도와 조여지가 낙심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며 물었다.
이렇게 되면 경매에 참가하더라도 뒤쪽의 구석진 자리나 차지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물론 입령기 수사가 좌석이 먼 곳에 있다고 경매에 나온 물품을 제대로 살피지 못할 일은 없지 않은가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경매 물품을 눈으로 살피는 것이 아니라 의념을 뿌려 살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해가 될 일이다.
앞쪽에서 많은 수사들의 의념이 경매 물품에 집중되면 당연히 뒤에 있는 이들은 의념들 때문에 얻는 정보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경매에 참가하려는 큰 이유가 견문을 넓히자는 것인데, 그렇게 되면 목적을 제대로 달성하기가 어려워진다.
사실상 경매에서 좋은 가격에 물건을 파는 것보다는 그 견문을 쌓는 것이 더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민운도와 조여지로선 건우의 말에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꼭 등급이 높은 물건이라야 관심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요. 저는 이것을 경매에 내놔 볼까 합니다.”
건우는 그런 둘의 표정에 피식 웃으며 소매에서 뭔가를 꺼냈다.
실상은 소매 안쪽에 작은 아공간 입구를 열고 아공간에 보관해 두고 잊고 있었던 물건을 꺼낸 것이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영찬(靈璨)인듯한데 담고 있는 기운이 기묘하기 짝이 없습니다.”
“저도 이런 기운은 처음입니다. 묘하군요.”
민운도와 조여지는 건우가 꺼내놓은 영찬의 정체를 알아내지 못해선지 기이한 눈빛으로 건우를 보았다.
“우리가 가는 곳이 혼돈역이라 하지 않았습니까? 이것은 그 혼돈역에서만 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혼돈역에서 나온 것이란 말입니까?”
“어찌 건우 수사께서 혼돈역 물건을 가지고 계실 수가 있단 말입니까?”
건우의 말에 민운도와 조여지의 기세가 날카로워졌다.
전혀 예상 밖의 상황을 맞아하자 자연스럽게 건우를 경계하게 된 것이다.
“으음. 그리 놀라실 일은 아닙니다. 이것은 제가 인계에 있을 때에 멸계전을 겪으며 그곳의 혼돈역에서 구한 것입니다.”
“인계에서 멸계전을 겪었다고 했습니까?”
“그게 무슨 말입니까. 그럼 건우 수사는 이곳 수미세계가 아닌 다른 계에서 왔다는 이야깁니까?”
“조수사!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어찌 다른 계에서······.”
조여지가 상황을 제대로 짚어 냈지만 민운도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런 중에 건우가 혼돈기가 가득한 영찬을 들어 손 안에서 돌리며 둘의 시선을 끌었다.
“민 수사, 무에 그리 호들갑을 떨고 그러십니까. 수미 세계가 봉인에서 풀리고 오래지 않아서 제가 우연히 이 세상으로 넘어오게 되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하필 저는 인계에서 멸계전을 경험했던 것이고요.”
“그런 우연을 믿으란 말입니까?”
“믿지 않으면 어쩌시겠습니까? 제 손에 이리 증거가 있는데 말입니다. 설마 제가 어디 다른 혼돈역을 발견하여 그곳에서 이런 것을 구해 왔겠습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 확률이 건우 수사가 다른 계에서 넘어왔다는 것만큼 낮을 거 같네요.”
“으으음.”
“그냥 믿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제가 두 분에게 이런 일로 거짓을 늘어놔서 얻을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게다가 이런 물건을 경매에 내어 놓으면 당연히 출처를 밝히고 제 말의 진위를 따지려는 어르신들이 있으실 텐데, 제가 아무리 간이 부었어도 이런 일로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건우는 귀찮음을 감수하고 두 수사를 설득하려 애썼다.
괜한 일로 소란을 만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좋습니다. 수사의 말을 믿기로 하지요. 그런데 영찬의 수준을 보아하니 화신기의 극에 이른 괴수의 것으로 보입니다만.”
잠시 후, 민운도가 먼저 생각을 정리하며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태연하게 말했다.
그리고 조여지 역시 의심이나 걱정의 기색을 지운 눈빛으로 건우를 보기 시작했다.
“옳습니다. 두 개의 머리를 지닌 영원(? ?)의 영체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당연히 이 영찬은 다른 일반적인 영찬, 그러니까 영기가 극도로 응축되어 만들어진다는 그것들과는 크게 다릅니다.”
“어떻게 다르다는 거지요?”
조여지가 물었다.
“혼돈역에서만 만들어지는 특이한 영찬입니다. 혼돈역에서 영체를 지닌 괴수가 죽을 때에 영기와 극멸기, 혼돈기가 영체에 응결되어 영찬을 만드는 일이 있는데 그것을 혼돈역 영찬이라 합니다. 이것도 그에 속하는 것이지요.”
“일반적인 것과는 전혀 다르다는 뜻입니까?”
“이 정도면 영기 수준의 법보를 만드는 바탕이 될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게 정말입니까? 아무리 특별한 영찬이라도 고작 화신기 괴수의 것인데 그것으로 영기 수준의 법보를 만든다구요. 저는 지금껏 그런 이야기는 듣지도 보지도 못했습니다.”
민운도가 영기(靈機) 수준의 법보를 만들 수 있다는 건우의 말에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
건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혼돈역에서 만들어지는 영찬은 영체를 바탕으로 합니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영찬과는 다르다니까요.”
“놀랍군요.”
“게다가 이건 또 더 특별한 영찬이기도 합니다.”
“특별하다고요?”
“대부분의 영찬은 영기와 혼돈기, 극멸기가 뒤섞여 있습니다. 혼돈역 영찬의 특징이지요.”
“하지만 이 영찬에는 영기가 없는 것 같습니다만.”
“맞습니다 조 수사. 그래서 특별하다는 것이지요. 이 영찬은 영기와 극멸기가 없이 혼돈기만 가득한 영찬입니다.”
“어째 조금 전에 이야기하신 혼돈역 영찬이 만들어지는 과정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만.”
“제가 듣기에도 그렇습니다. 설명을 해 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민운도와 조여지가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건우를 보며 말했다.
“별 것 아닙니다.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이 영찬의 주인이 두 개의 머리를 지닌 영원이었는데, 한쪽 머리는 영기, 다른 머리는 극멸기를 다루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뒤섞어 쓰는 재주도 있었지요. 그래선지 이 영원이 죽을 때에 영기, 극멸기, 혼돈기가 각각 담긴 영찬 세 개를 만들어 냈던 것입니다. 그중에 혼돈기를 품은 것을 제가 취한 것이고요.”
그가 이 영찬을 슬쩍했다는 이야기까진 할 필요가 없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들고 있는 영찬에 대한 신뢰를 높이는 것 뿐이었다.
“그렇군요. 생각해보니 건우 수사의 그 영찬은 정말 특별한 경매물이 될 것 같습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그 희귀도를 따지자면 이 세상에 오직 하나 밖에 없는 것이 아닙니까.”
“게다가 혼돈역을 알아보기 위해서 출발한 토벌대로선 더없이 귀한 연구 재료가 되겠군요.”
민운도와 조여지가 감탄을 감추지 못하며 말했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경매장 좌석의 앞자리에 앉은 자신들의 모습이 떠오르고 있었다.
건우는 둘의 반응에 살짝 웃고는 다시 영찬을 소매에 갈무리했다.
“자, 그럼 이제 계산을 해 보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리고 두 수사를 보며 말했다.
“계산이라니요?”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두 수사가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설마 아무 대가도 없이 저와 함께 경매 좌석의 앞자리를 차지하실 생각이셨습니까? 그건 아니겠지요? 염치라는 것이 있는데 말입니다.”
“그, 그야 물론이지요. 적당한 예물과 함께 감사 인사를 드리려 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조 수사?”
“무, 물론이지요. 다만 좌석의 위치가 정해지지 않았으니 합당한 대가를 정하지 못한 것입니다. 거, 건우 수사께서는 걱정하지 마시지요. 실망시키지 않을 겁니다.”
“하하하. 뭐, 거창한 것을 바라지는 않습니다. 그저 적절한 인사는 오가는 것이 좋겠다 싶어서 드린 말씀이지요.”
건우는 활짝 웃으며 그렇게 말했고, 민운도와 조여지는 건우 모르게 주먹 쥔 손을 파르르 떨었다.
***
운승대선의 갑판 위 정원들 중에 한 곳, 아늑한 정자에 두 명의 수사가 있었다.
한 명의 수사는 정자에 다탁을 놓고 앉아 있고, 다른 수사는 정자 밖에 손을 모으고 서 있었다.
“혼돈기를 머금은 영찬이라고?”
정자 안의 수사가 찻잔을 들어 입술을 축이며 물었다.
그는 부금상련에서 파견대의 총괄로 나온 이였다.
“그렇습니다.”
정자 밖에 시립해 있던 수사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그는 상계의 체계를 따르는 부금상련에서 정자 안에 있는 상단주를 보좌하는 부하 직원으로 대행수 정도의 지위에 있는 이였다.
“그런 물건이 어찌 나왔지?”
“아무래도 매신전귀단에서 이야기하던 그 아이가 운승대선에 타고 있는 모양입니다.”
대행수는 이미 건우에 대해서 파악해 둔 모양인지 거침없이 답을 내 놓았다.
“그것 참, 어찌 일이 그렇게 되었지?”
“호지성에서 떠났던 아이가 양약성의 연단 문파의 수장 경합에서 이겼는데 하필 그 아이를 경의당에 차출을 했던 모양입니다.”
“그러니까 호지성을 떠날 때에는 화신기였던 아이가 양약성에 이르러서는 입령기가 되었다?”
“그렇게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들은 어렵지 않게 건우의 상황을 정리해 냈다.
그만큼 추측을 뒷받침할 제대로 된 정보를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수련 자질이 어떤지 기대가 되는 아이로군.”
“들어온 이야기로는 고작 몇 만 년도 살지 않은 아이라 합니다.”
“재미있군. 그래서 그 영찬은 어찌 되었지?”
잠시 건우에게 관심을 보이던 상단주는 다시 경매 물품인 영찬으로 화제를 돌렸다.
“이미 경매에 물품으로 정보가 흘러나간 터라 손을 댈 수는 없을 듯합니다.”
대행수가 송구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러자 대뜸 상단주의 호통이 터져 나왔다.
“누가 그걸 모르나! 경매 순서가 어찌 되는가를 물은 게 아니냐! 설마 내가 상거래와 관계된 부금상련의 규칙을 어기기라도 할 거 같으냐?”
“아, 아닙니다. 그 영찬의 경매 순서는 중간 정도에 들어 있습니다.”
상급자의 복심을 잘못 읽은 대행수가 진땀을 흘리며 대답했다.
“그것으로 경매의 중간 분위기를 띄우겠다는 게로군? 그래 다른 쪽에서는 어쩌고들 있더냐?”
다행히 상단주도 대행수를 계속 질책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상단주의 질문은 곧바로 경매가에 영향을 미칠 세력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는지로 이어졌다.
“선문은 호기심을 보이는 정도고, 매신전귀단은 특별한 관심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들의 관심은 도리어 출품자인 건우 수사에게 쏠려 있습니다.”
“사혈궁은?”
“그들은 워낙 폐쇄적이라 분위기를 알기 어렵지만 선문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럼 남은 것은 만세전인데, 거기는?”
“그게 좀 이상합니다. 만세전에서 혼돈기 영찬에 크게 흥분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음? 만세전이?”
부하의 보고를 받은 상단주의 표정에 놀란 기색이 스쳤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렇습니다.”
“그들이 흥분한 이유가 그 건우라는 수사 때문이 아니고? 증장성의 나진 수사께서 그 어린 아이에게 관심을 보였다고 들었는데?”
“그건 아닙니다. 나진 님과 상관없이 운승대선의 만세전 수사들이 모두 혼돈기 영찬에 큰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이유가 있을 텐데?”
“그것까지는 알아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저 반드시 그 혼돈기 영찬을 손에 넣겠다는 목표를 세운 듯이 보입니다.”
“으음, 어디까지 끌어 올릴 수 있을꼬?”
만세전 수사들이 영찬을 어디에 쓸지는 따로 알아보면 될 일.
당장은 그들이 얼마나 그 영찬을 원하느냐 하는 것이 중요했다.
간절히 원할수록 경매가를 높일 수 있을 테니까.
“서로 감정이 상할 정도까지도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대행수는 경매 바람잡이에서 가장 높은 단계인 ‘감정이 상할’ 정도까지 할 수 있다는 대답을 내 놓았다.
“그러니까 그만큼 만세전에서 그 영찬을 원한다는 이야기지?”
“그렇습니다. 그리고 사실 상련 내부에서도······.”
“우리는 왜?”
“출품자인 건우 수사가 제출한 내용에 따르면 그 영찬으로 영기급의 법기를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법기를 만드는 놈들이 환장을 하고 달려들겠군?”
“그럴 것 같습니다.”
“그럼 억지로 값을 끌어 올릴 이유는 없겠어. 자연스럽게 경쟁이 이루어질 테니까.”
“그럼 바람잡이는 쓰지 않는 것으로 할까요?”
“적정선을 그어 놓고 그 이하라면 쓰긴 써야지. 만세전에서 절대 물러나지 않을 거라면 제법 값을 올릴 수 있을 테니까.”
“알겠습니다. 그럼 그리 준비를 해 두겠습니다.”
“그렇다고 감정이 상할 정도까지 유도하진 말아. 기준만 넘으면 다음은 자연스럽게 경쟁하도록 두란 소리야. 그래야 서로 물어뜯고 싸워도 앙금이 남지 않아. 서로 필요에 의해서 최선을 다하는 거니까.”
상단주는 이익을 추구함에 있어서 말썽이 생기는 것은 피하는 성향이었다.
그것을 잘 알고 있는 대행수도 상단주의 지시에 거부감을 보이지 않았다.
“네, 알겠습니다. 상단주님. 그럼 이만 가 보겠습니다.”
대행수는 상단주의 손짓에서 허락을 뜻을 읽고 공손히 인사를 올린 후 정자를 떠났다.
“이번 경매는 재미있겠어. 고작 입령기와 성령기들이 모인 곳에서 생각지 못한 귀물들이 나왔으니 소란도 좀 있을 거 같고. 허허허.”
그 후, 홀로 남은 상단주는 다시 찻잔을 들어 목을 축이며 호기심 가득한 눈빛을 반짝거렸다.
그리고 한 달 후 대선의 상갑판에서 드디어 부금상련이 주관하는 ‘운승대선 영급 경매’가 시작되었다.
< 운승대선(雲乘大船) 경매에 돌을 하나 던지다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