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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환장 통수 선협전-222화 (222/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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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숭이 재롱은 끝났다 >

원용문(猿龍門)은 고작 수 백 년도 되지 않은 신생 수도 문파로 두 명의 문주가 함께 창건한 문파였다.

처음부터 두 문주가 화신기 중기의 경지를 가지고 수도 문파를 열었기에 그 기세가 남달랐다.

당시 수도계는 영계 편입으로 들떠 있을 때였고, 새로 나타난 그들을 기존 영계의 수사로 여겼기에 개파에 이름을 올리려는 수사들이 많았다.

이후로도 용랑과 혈원이라는 두 문주는 수련 성취가 빠르게 올랐고, 그에 따라서 몰려드는 문하생도 급격히 늘었다.

그렇게 원용문은 나름 건실한 수도 문파로 세력이 커져 이제는 상급 거대 문파인 고현종의 하위 문파로 선정될 거라는 소리까지 나돌고 있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원용문의 성장은 다시 가속이 붙을 것이라 예상되었다.

그런 원용문의 문주전 깊은 곳, 등받이가 긴 태사의(太師椅)에 혈원이 비스듬히 앉아서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 놈이 이쪽으로 넘어온 것이 2년이 되었으니 이쯤이면 도착할 때도 되지 않았나? 도대체 어디에서 수미 세계로 넘어갔는지 모르니 답답하군. 그것만 알았어도 놈이 나올 곳에 함정을 팔 수 있었을 텐데.’

건우가 혈원과 용랑을 먼저 세상에 내보내고 이후에 뒷정리를 하고 수미세계로 넘어가는 바람에 혈원은 건우가 어디서 수미세계로 넘어갔는지 몰랐다.

그래서 복귀하는 곳에 함정을 파 놓을 수가 없었던 것이고, 그것이 못내 안타까운 혈원이었다.

‘하지만 어차피 놈의 경지는 화신기 완경 이상을 넘지 못했을 터. 그렇다면 놈이 이곳에 들어오기만 하면 어떤 경우에도 살아남을 수 없다.’

입령기에 올랐지만 절대 방심하지 않는 혈원이었다.

원래부터 주인이었던 그 놈은 한 단계 경지가 높은 수사를 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능력을 지닌 놈이었다.

물론 화신기였을 때는 입령기를 엿본 수사들과 겨우 맞설 정도였을 뿐이지만 그 조차도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혈원 자신은 절대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만큼 놈은 몇 번이고 다시 확인해도 모자랄 놈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더라도 화신기 완경 놈이 입령기를 상대할 수는 없지. 내가 입령에 오르고 보니 그것은 너무도 명확하다. 놈이 진염결을 익히고, 유혼결을 익히고, 의념 공간을 현실로 불러낸다고 해도 내가 지지는 않을 것이다.’

혈원은 어떤 경우에도 건우와 싸워서 이길 자신이 있었다.

‘키키키, 그런데 놈이 여기까지 들어오면? 그건 더 볼 것도 없지.’

자신이 있더라도 더욱 완벽하게 하기 위해서 혈원은 원용문 전체에 수많은 금제와 진법, 봉인 술법을 깔아두었다.

그 모든 것이 숨겨져 있지만 혈원이 마음을 먹기만 하면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내가 나설 필요 없이 놈을 잡기에 충분하다. 아무렴.’

화신기 완경 따위!

혈원은 도무지 어떤 상상을 해도 자신이 진다는 쪽으로는 생각이 이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왜 이렇게 늦는 걸까? 설마 놈이 용랑을 찾아간 것은 아니겠지?’

혈원은 용랑의 생사를 알지 못했다.

입령기 승경 과정에서 용랑을 습격하여 큰 부상을 입혔다.

그런데 마지막에 용랑이 혈원의 손을 벗어나 도주하고 말았다.

당시에는 용랑의 경지가 미세하게 혈원보다 높았기에 용랑이 도망가는 것을 막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혈원은 용랑이 죽었을 가능성이 더 높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만큼 당시 용랑의 상태는 좋지 못했다.

‘그래도 죽음을 확인하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리는군. 혹시라도 그 놈이 용랑을 만난다면 절대 나를 찾아오지 않을 텐데, 그게 문제군.’

이미 혈원은 건우의 영혼 금제를 완전히 풀어냈다.

무명공의 후반부를 익히면서 혈모원의 진혈이 진화했다.

그 덕분에 혈원은 건우가 걸어 놓은 영혼 금제를 벗어날 가능성을 보게 되었고, 결국 성공했다.

‘나는 분혼이다. 내 영혼은 반쪽에 불과하고, 다른 반의 영혼은 이미 윤회에 들어 나와는 인연이 다했다.’

어느 순간 알게 된 사실이었다.

오래 전에 혈원의 본체였던 혈모원 우두머리가 수명을 다하고 윤회에 들었다.

하지만 그 때는 어차피 건우의 권속으로 묶여 있을 때라서 크게 연연하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입령기에 오르면서 화신체를 진화시키다보니 문제가 생겼다.

혈원은 자신의 영혼이 온전치 못하기 때문에 성령기, 태령기로 갈수록 승경의 가능성이 급격히 낮아질 것임을 알았다.

게다가 그렇게 가면 선계로의 등선은 절대 불가능할 것 같았다.

그로부터 건우에 대한 적개심과 분노가 자라기 시작했다.

어차피 자신의 주인이었던 놈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도 마땅치 않았는데, 그 놈 때문에 자신이 반쪽짜리가 되었다는 분노까지 더해졌다.

어차피 건우를 배신하기로 마음먹은 순간 같은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는 관계가 되었지만 드넓은 대천 세계에서 서로 마주치지 않고 살 방법은 많았다.

그럼에도 혈원은 함정을 파고 건우를 제거하기로 마음먹었는데, 그것은 자신의 영혼이 반쪽이 된 원인이 건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우끼끼에게 분혼을 받은 것이 건우였으니 혈원의 생각이 아주 틀리진 않았다.

하지만 당시에 죽일 것을 살려준 것이나, 지금의 혈원이 있기까지 건우의 배려와 도움이 있었음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어려운 생각이기도 했다.

‘죽인다. 놈을 죽이고 어떻게든 불완전한 내 영혼을 온전하게 만들 방법을 찾아 보리라. 수도계에 불가능한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혈원은 다시 한 번 건우에 대한 살의를 끌어 올렸다.

그 때였다.

혈원은 멀리서 다가오는 건우의 기척을 알아차렸다.

그것은 혈원이 가식으로 맺어 놓은 의식 연결의 효과였다.

“왔구나!”

혈원이 기뻐하며 잇몸까지 드러내고 웃었다.

혈원이 느끼는 건우의 경지는 화신기 완경.

그리고 지금 혈원이 드러내고 있는 경지는 화신기 후기.

‘나를 아직 자신의 권속으로 알고 있을 테니, 아무 의심 없이 이곳으로 들어오겠지.’

혈원은 건우의 부름을 예상하며 대기했다.

그러자 어김없이 혈원의 머릿속으로 건우의 의념이 전해졌다.

‘혈원, 내가 왔다.’

“주인님, 오셨습니까. 이 혈원 오매불망 주인님께서 오시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건우의 의념에 혈원이 간절한 목소리를 가장하며 대답했다.

그런 혈원의 육성은 의외로 원용문의 제자들에겐 들리지 않고 건우에게만 전해졌다.

그 순간 둔광이 터지며 건우가 혈원이 있는 대전에 모습을 드러냈다.

“주인님!”

혈원은 곧바로 허리를 숙이며 건우에게 인사를 했다.

건우는 그런 혈원의 뒤통수를 내려다보다가 성큼성큼 걸어서 혈원이 앉아 있던 태사의에 올라 앉았다.

그 자리가 대전에서 가장 상석이니 자연스러운 행동이었다.

그리고 그 모습에 혈원은 비릿한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고개를 번쩍 든 혈원이 큰 목소리로 외쳤다.

“열려라(開)!”

우우우우웅!

쿠구구구구궁! 우우우우웅!

“어엇? 이게 뭐냐? 혈원!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것이냐? 왜 이런 금제와 결계를?!”

순간 건우가 놀란 표정으로 혈원을 보며 소리쳤다.

그런 건우는 태사의를 벗어나지 못하고 버둥거리고 모습이었다.

“키키키킥, 드디어 잡았구나!”

혈원이 그 모습에 절로 어깨춤을 추며 경박하게 날뛰었다.

그런데 그런 혈원의 몸에서 심상치 않은 기세가 뿜어지며 검붉은 혈기가 피어 올랐다.

동시에 혈원의 덩치가 점차 커지며 흉악한 거원(巨猿)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아, 아니? 이, 입령기라니!”

그 모습에 태사의에 잡혀 있던 건우가 깜짝 놀라며 부르짖었다.

3장 정도로 커진 혈원의 얼굴 모습은 무척 흉하기 짝이 없었다.

아래위로 솟은 송곳니나 귀 밑에서 귀 밑까지 찢어진 입은 물론이고 얼굴 전체를 덮은 철사같은 털들도 사나워 보였다.

“키키키키. 어떠냐? 이런 나를 보니 심장이 덜컥이지 않느냐?”

“영혼 금제를 풀었구나!”

“갈(喝)! 감히 화신기 따위가 입령기 어르신을 봤으면 냉큼 엎어질 것이지 어디서 말대꾸를 한다는 말이냐!”

건우의 말에 혈원이 크게 고함을 질렀다.

그 소리에 건우가 울컥 붉은 피를 토했다.

“커억!”

피를 토하는 건우를 보며 혈원이 손을 저었다.

그러자 건우가 앉은 태사의가 허공을 날아 대전의 중앙에 내려 앉았다.

혈원은 원래 태사의가 있었던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대전 중앙에 놓인 건우를 붉은 눈으로 노려봤다.

“내가 너를 어찌할 것 같으냐?”

묻는 혈원의 얼굴에 조롱과 희열의 빛이 뒤섞여 있었다.

“어찌 이러는 것이냐? 내가 너에게 섭섭하게 한 것이 없었을 터인데?”

건우가 그런 혈원을 보며 기진한 음성으로 물었다.

“뭐? 섭섭하게 한 것이 없어? 내가 너 때문에 반쪽짜리 영혼이 되어 수련 경지의 상승이 어려워졌는데? 게다가 네가 감히 나를 종으로 부리지 않았더냐. 수도계에서 처지가 극변하면 뒤에 일어날 일이야 굳이 따질 것이 있겠느냐.”

“설마 나를 제압해서 권속으로 부리겠다는 것이냐?”

“키키키키. 귀찮다. 나는 그럴 생각이 없다. 너는 내가 보기에도 재주가 있는 놈이라 이후에 어떤 일을 벌일지 모르는 놈이다. 너와 나 사이의 신세 극변은 한 번으로 족하지 않겠느냐?”

“죽이겠다는 말이구나.”

“그냥 죽이기만 하겠느냐, 너는 윤회의 기회조차 없을 것이다. 키키키키.”

혈원은 할 말을 다했다는 듯이 건우를 향해 손가락을 내밀었다.

그러자 원용문에 준비되어 있던 모든 금제와 봉인, 살진들이 일제히 건우를 노리고 작동하기 시작했다.

화신기 완경이라도 한 순간에 핏물이 되어 버릴 위력이 건우를 향해 쏟아졌다.

콰과과과과과과!

“키이이익! 뭐? 뭐냐?”

하지만 그 순간 건우의 몸에서 터져 나온 강력한 영기 파동이 대전 전체를 뒤흔들었다.

그리고 동시에 원용문 전체에 건우의 아공간이 구현되었다.

“어떻게! 어떻게 입령기를!”

혈원은 곧바로 건우가 입령기 경지에 올랐음을 알아봤다.

혈원 역시 입령기라 건우가 드러낸 기운을 모를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같은 입령기란 사실은 혈원에게 절망을 선사했다.

혈원은 건우를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같은 경지라면 무슨 수를 써도 건우를 이길 수 없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항상 한 단계 높은 경지의 적들과 맞서서 승리하던 건우가 아니던가.

화신기와 입령기의 차이는 극복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지금의 혈원 자신과 건우는 경지의 차이가 없었다.

“이리 오너라!”

건우가 혈원을 향해 말하며 손가락으로 대전의 바닥을 가리켰다.

혈원은 태사의가 있던 층계참에 올라앉은 상태로 그런 건우를 바라보았다.

“거역하는 것이냐?!”

건우가 눈썹을 꿈틀거리며 손을 저어 삼백육십성광검을 꺼내 들었다.

그는 검을 오른 손으로 들어 대전 바닥을 찍고 왼손으로는 뭔가를 움켜쥐는 흉내를 내었다.

그러자 혈원은 보이지 않는 거대한 손에 붙잡힌 작은 원숭이 꼴이 되어 건우의 앞으로 끌려갔다.

혈원이 본능적으로 의념과 영기를 끌어 올려 대항했지만 곧바로 맥없이 꺾이고 말았다.

애초에 유혼결을 익히고 아공간을 지닌 건우 앞에서 의념 싸움이란 할 것이 못 되었다.

그나마 혈원이 의욕이라도 있으면 모를까.

건우에 대해서 너무 잘 안다는 것이 독이 되어 혈원을 실혼케 했다.

넋이 나간 혈원은 감히 건우와 싸울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상태가 된 것이다.

“참으로 알 수가 없는 일이다. 내가 너에게 이런 대우를 받을 줄은 몰랐구나. 혹여 네가 나보다 높은 경지에 올라 영혼 금제를 풀었다 하더라도 그 동안의 일에 감사하며 후사를 해도 모자라지 않겠느냐?”

건우가 태사의에 앉은 상태로 대전 바닥에 주저앉은 혈원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혈원은 그런 건우를 보며 조금씩 눈빛에 힘이 들기 시작했다.

“그 무슨 얼토당토않은 소리냐. 나를 종으로 부린 것만으로 너와 나는 불구대천의 원수다. 그 뿐이냐? 내 반쪽 영혼은 죽어 윤회에 들었다. 그로 인해 나는 살아 있는 동안 내 영혼을 온전하게 만들 가능성이 없어졌다. 네 놈도 알겠지만 영혼이 부실하면 더 놓은 경지에 오르는 것이 그만큼 어려워진다. 너는 내가 등선을 할 길을 막아버린 것이다.”

“후우. 어리석은 놈.”

건우는 혈원의 항변에 길게 한숨을 쉬었다.

모두가 제 기준에 맞추어 상황을 해석한 것이 아닌가.

하지만 다시 건우가 혈원을 쳐다볼 때, 그의 눈빛은 담담하게 변해 있었다.

“그래, 어차피 역천의 길을 걷는 수사의 몸. 네가 너를 중심으로 세상을 판단하는 것을 잘못이라 할 수는 없겠지. 그리고 너를 반쪽 영혼으로 만든 것이 나였던 것도 사실이고.”

“당연하지!”

건우의 인정에 혈원이 기세를 높였다.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겠느냐.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그런 것이지.”

혈원의 돌변한 반응에도 건우는 무덤덤한 어조를 이어갔다.

그리고 무심히 삼백육심성광검을 들어 혈원을 가리켰다.

그러자 원용문을 뒤덮고 있던 아공간 전체의 의념이 혈원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 원숭이 재롱은 끝났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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