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220화 (220/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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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우의 입령기 승경(昇境) >

“이러면 잠시 속일 수 있을까?”

건우가 괴뢰 하나를 앞에 두고 고심어린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의 눈앞에 있는 괴뢰는 건우를 대신할 괴뢰였다.

그가 거처를 떠나 모습을 감춘 것을 외부에 알리지 않기 위해서 만들어 낸 특별한 개체인 것이다.

- 건우 님의 영기 파동과 존재감을 덧씌워 놓았으니 어지간해서는 밖에서 알기 어려울 거예요.

루야가 괜찮을 거라고 건우의 걱정을 덜어 주었다.

“그래, 억지로 금제를 뚫고 들어와 확인하지 않는 이상에야 알기 어렵겠지. 게다가 입령기 후기 이상의 수사 중에는 나에 대해서 아는 이가 없으니 이 괴뢰와 내가 다르다는 것을 확인할 길이 없을 테고.”

- 그 정도 경지라면 여기 건우 님 대신에 있는 것이 괴뢰란 사실을 알아차릴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요? 굳이 건우 님을 모르더라도 건우 님이 괴뢰가 아니란 사실 정도는 알 텐데요?

“아, 모르겠다. 그냥 여기서 승급을 해 버릴까?”

건우는 잠시 그런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흔들었다.

화신기 완경에서 입령기에 오르는 것은 엄청난 이벤트다.

그리고 그런 일이 벌어지면 근처에 있는 많은 수사들이 몰려들어 천지 영기의 조화에 한 발 걸치려 한다.

승급과정에서 건우가 흡수해야 할 천지영기를 어떻게든 훔쳐 가려는 이들이 넘쳐날 것이다.

물론 그 양이 그리 많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손해는 손해, 그리고 그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이미 입령기 이상에 오른 이들이 건우의 승격을 방해하려 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통 화신기 이상이 되면 승급을 할 때에 남모르는 곳에 엄청난 금제를 만들고 안전을 확보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그렇게 하다가 실패해서 후일 후배들의 기연이 되는 수사들도 적지 않지만.

어쨌건 그래서 건우는 오련맹이 있는 양약성을 벗어나 한적한 곳에서 입령기 승급을 하고 올 생각을 한 것이었다.

- 아공간에서 승급을 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요.

그 때, 루야가 아쉬운 듯이 건우에게 의념을 전했다.

이전까지는 아공간에서의 승급이 가능했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건우는 아공간에서 승급을 해 볼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수미세계가 봉인에서 풀려나 겨자씨를 벗어난 순간부터 그게 불가능해졌다.

이제 건우의 아공간에 수미세계가 존재하지 않게 된 것이다.

이전에 수미세계가 아공간에 들어 있을 때에는 승급이건 뭐건 천지 법칙에 제약을 받지 않았다.

아공간에 영계 하나가 들어 있으니 어지간한 승급 따위는 천지 법칙도 인정해 줄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수미세계가 사라진 상황, 당연히 아공간에 입령기 승급을 뒷받침 해 줄 정도의 뿌리가 없게 된 것이다.

그러니 건우의 승급 시도에 걸림돌이 생긴 것이고, 그것을 풀기 위해서 남몰래 오련맹을 잠시 떠나려는 것이었다.

“맹의 규칙을 조금 어겼다고 지들이 어쩌겠어? 어차피 객경장로의 신분인데. 만약 입령기에 오르게 되면 그 때는 도리어 나를 붙잡지 못해서 안달을 할 걸.”

건우는 생각을 편하게 가지기로 했다.

안 되면 그냥 원래 계획대로 증장성으로 가면 그만이었다.

오련맹에 이름을 올리고 적당히 상부상조하는 것이 나쁘지는 않지만 꼭 절실한 것도 아니었다.

오련맹에 속해서 얻는 득보다 실이 클 것 같다면 둥지를 옮기면 될 일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잠시 장로원의 거처를 비우는 것도 그리 큰 문제는 아닐 듯 싶었다.

“마음 가는 대로 가고, 오는 거지. 그것도 못할 거면 그게 어디 수련자라 할 수 있나.”

건우는 피식 웃으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다음 순간 청금색의 둔광만 남긴 채, 건우의 모습은 동부의 전실에서 씻은 듯이 사라졌다.

그 후, 다시 수십 년의 시간이 흘렀다.

*   *   *

양약성 북쪽의 미개척지.

원래 화신기 끝자락의 괴수가 살던 작은 분지의 영천복지(靈泉福地)에 상서로운 서기가 비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서기는 곧이어 엄청난 천겁뢰를 동반했으니 이는 어느 수사가 승경에 도전하는 현상이 분명했다.

수사란 항시 역천의 길을 걷는 존재라는 꼬리표를 뗄 수가 없다.

애초에 천지 법칙의 기본인 주어진 수명을 거스르는 것이 수사의 기본이다.

불로불사의 신선이 되기 위한 끝없는 수련, 그리고 그 성과로 이루어지는 경지의 상승.

하지만 천지법칙이 보기에 이것은 항상 역천의 행위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경지를 끌어 올리는 과정에는 반드시 천지 법칙의 시험이 있기 마련이고, 이는 경지가 높을수록 위험할 수밖에 없다.

화신기 완경에서 입령기로 오르는 승경의 과정 역시 그 천지 법칙의 시험은 피할 수 없는 것.

번쩍! 번쩍! 번쩍!

우르르르르르릉!

꽈과과과과광!

샛노란 번개가 서광을 가르며 지상으로 내리 꽂혔다.

그 기세가 너무도 험악하여 주위 수 만 리의 생명들이 모두 숨을 죽이고 꼼짝도 하지 못했다.

기세만으로 수만의 생령을 주눅들게 만드는 천겁뢰!

그 세 가닥이 곧바로 지면을 뚫고 지하로 내리쳤다.

천겁뢰는 그 사이에 설치된 수많은 금제와 술법, 진식을 무시했다.

천겁뢰의 목적은 오로지 화신체를 진화시켜 입령에 오르려는 수사를 치는 것 뿐이었다.

‘이겨 낸다!’

하지만 승경을 시도하는 수사, 건우 역시 그 정도는 각오한 바.

금강패갑공을 극성으로 끌어 올리고 삿갓조개 형상의 방패를 겹겹이 띄워 천겁로의 행로를 막아섰다.

콰과과과과광! 콰르르르릉!

세 가닥의 천겁뢰가 건우의 방어에 막혀 엄청난 천지 영기를 뿌리며 산지사방으로 찢어져 흩날렸다.

건우의 패갑을 뚫지 못하고 막힌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건우의 화신체는 아직 진화를 완성하지 못한 상태고, 천지 법칙은 일정 간격을 두고 더욱 강력한 천겁뢰를 뿌릴 것이다.

‘이래서 승급에 시간이 오래 걸리면 실패할 확률이 높아지는 것이지. 천지 법칙의 방해는 시간이 지날수록 강해지니까.’

건우는 세 가닥의 천겁뢰를 가볍게 막아낸 후, 어느 정도 마음의 여유를 얻었다.

앞으로 몇 번은 더 막아낼 자신이 생겼던 것이다.

그리고 그 전에 화신체의 진화를 완성하고 입령기에 오를 자신도 있었다.

금혈승승단(金血昇昇團)을 일곱 알이나 먹으면서 모든 준비를 마친 후였기에 낼 수 있는 자신감이었다.

‘몇 번이나 갔던 길, 이제는 금혈승승단의 도움 없이도 충분히 재현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곧 입령기 승경의 완성이지.’

건우는 부지런히 화신체를 진화시켰다.

천지 영기를 더욱 잘 느끼고 운용할 수 있는 화신체의 완성.

그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의념의 증폭.

건우는 다시 정신을 집중했다.

그 후, 미개척지의 영천복지 상공에서는 일정 간격을 두고 다섯 가닥의 천겁뢰, 일곱 가닥의 천겁뢰가 떨어져 내렸다.

그럼에도 복지를 비추는 서광이 가시지 않고 여전히 계속되는 것이 건우의 승경 시도가 이어짐을 알려주었다.

그런 중에 다시 하늘이 심상치 않은 빛을 머금더니 보랏빛의 구름을 층층이 끌어 모으기 시작했다.

그 보랏빛 구름에도 불구하고 분지에 쏟아지는 서광은 여전했지만 구름의 등장은 불길하기만 했다.

일, 삼, 오, 칠.

지금껏 건우에게 떨어진 천겁뢰의 숫자였다.

그리고 이번에는 아홉 가닥의 천겁뢰가 떨어지는 것이 수순일진데, 보랏빛 구름의 등장은 이전과 다른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 역시 천지 법칙이 승경을 시도하는 수사에게 내리는 시험의 전형적인 수순.

천겁이 다섯 번째에 대천겁을 내리는 것처럼 승경 시험에서도 다섯 번째에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천겁뢰를 떨어뜨리는 것이다.

우르르르르르르 우르르르르.

보랏빛 구름이 두껍게 쌓인 후, 그 안에서 낮고 은은하면서도 항거하기 힘든 기세의 우레 소리가 흘러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소리는 점차 강렬해지더니 보랏빛 구름 안에 샛노란 뇌전들이 가득 피어올랐다.

보기만 해도 소름이 돋는 모습이었다.

우르르르릉! 버번쩍!

그리고 어느 순간 보랏빛 구름 안에서 고이고 고인 뇌전이 갈 곳을 찾아 번쩍거리기 시작했다.

이제 곧 지상을 향해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위력을 가지고 내리치리라!

스화화화화홧!

바로 그 순간이었다.

지금껏 분지를 비추던 서광이 일점으로 모여들며 강렬한 빛을 내더니 분지의 금제와 진법들이 모두 허물어지고 그 안에서 가부좌를 한 건우가 두둥실 서광의 길을 따라 떠올라 왔다.

그리고 잔뜩 웅크리고 있던 보랏빛 구름 속의 뇌전은 그 힘을 축적시킨 보람도 없이 허무하게 흩어져 버렸다.

우르르르르릉 스스스스슷!

샤라라라라라라 샤아아아아!

보랏빛 구름이 사라진 하늘.

그 위에서 칠채 서광이 꽃잎처럼 흩날리며 내려와 허공에 뜬 건우의 몸을 감싸고 돌았다.

그리고 그 순간 세상의 모든 천지 영기가 건우를 중심으로 몰려드는 것 같은 현상이 벌어졌다.

적어도 건우의 의념이 미치는 범위 안에 있는 천지영기는 모두 몰려든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아아아아!’

화신기 완경의 벽을 넘어 오롯한 입령기에 드는 순간.

역천을 이루고 천지 법칙을 뛰어넘으며 느끼는 법열.

건우는 그 황홀경에 저도 모르게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꼈다.

데에에에에엥!

그 순간이었다.

어디선가 거대한 범종 소리가 울리며 흩어지는 건우의 정신을 끌어 모았다.

‘아!’

짧은 순간 건우는 법열의 황홀경에서 정신을 차렸다.

법열은 지극한 쾌감이며 동시에 그 혼미한 정신 속에서 더 높은 경지를 보여주는 방식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은 뜬구름 잡는 식의 눈가림.

지금은 그런 뜬구름보다 직접 손에 잡을 수 있는 것을 노리는 것이 옳다.

건우의 정신이 날카로운 날을 세우고 천지 법칙과 천지 영기의 변화를 살피기 시작했다.

우우우우우웅!

그리고 최대한 자신의 몸으로 밀려든 천지 영기를 잡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다.

입령기의 승경과 동시에 찾아온 법열, 그 황홀감에 무방비하게 퍼져 있던 자신을 날카롭게 벼려냈다.

그러자 곧바로 천지 법칙과 천지 영기가 반응했다.

법열은 더욱 강화 되었고 건우의 몸에서 천지 영기가 빠져 나가는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아울러 승경을 시험하기 위해 드러났던 천지 법칙의 오묘한 흐름 역시 하늘 너머로 모습을 감추려 했다.

건우는 그 모두를 냉정한 눈으로 세세히 살폈다.

‘좀 더 많은 것을 훔친다!’

천지 법칙의 한 자락이라도 더!

천지 영기의 한 올이라도 더!

건우는 하늘에서 쏟아지는 서광이 모두 사라질 때까지 눈도 깜빡이지 않고 정신을 집중했다.

그렇게 이레의 시간이 흐르고 드디어 건우의 입령기 승경 과정이 모두 끝났다.

- 정말 축하드려요.

건우가 허공에서 가부좌를 풀고 몸을 일으키자 루야의 의념이 머릿속에 전해졌다.

‘이젠 네 차례지. 혼원석 흡수를 서둘러.’

- 알았어요. 저도 열심히 노력할 게요.

‘그나저나 맹주 경합이 이제 40년 정도 남았나?’

건우가 오련맹에 든 것이 벌써 260년이 흘렀다는 이야기다.

처음 100년은 잡다한 업무에 시달렸고, 그 후 100년은 폐관을 선언하고 입령기의 기반을 다졌다.

그리고 다시 60년은 이곳 미개척지에 와서 입령기 승경을 준비하고 실행했으며 결국 성공을 이루어냈다.

- 지금 돌아가도 충분히 여유가 있겠네요.

루야가 대답했다.

“아니지. 올 때에는 화신기 완경으로 왔지만 지금은 입령기야. 돌아갈 때는 몇 년 걸리지 않겠지.”

- 아, 그렇군요.

“그런데 그게 문제가 아닌 것 같아. 수미산 상징의 반대편 세상에서 혈원이 나를 부르고 있어.”

- 혈원이요?

루야는 뜻밖의 말에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

“그래, 게다가 용랑이는 기식이 엄엄하군.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 같은 상태야.”

입령기가 되면서 이전보다 조금 더 정확하게 느껴지는 권속들의 상태였다.

이전에는 정신을 집중해야 권속들과 희미하게 연결이 되었었는데 입령기가 되자 안개가 걷힌 듯이 뚜렷하게 저 쪽 세상의 권속들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 중에 혈원이 건우를 부르고 있었다.

정말 급한 일이 있을 때에만 부르라고 했던 전신부를 이용해서.

“일단 양약성 가까운 곳으로 간 후에, 저 쪽 세상에 다녀오는 것이 좋겠군.”

미개척지에서 다른 세상을 오고가는 것보다는 그게 나을 것 같았다.

- 혈원이나 용랑의 일이 급하지는 않은가요?

“용랑의 상태를 보아하니 하루 이틀의 문제가 아닌 거 같다. 몇 년은 된 것 같으니 당장 상황이 급변하지 않는 이상에야 조금 늦어도 괜찮겠지.”

건우는 그렇게 말을 하고는 한쪽 방향을 보고 둔술을 펼쳤다.

번쩍!

청금색의 둔광만 남기고 모습을 감춘 건우는 그곳에서 수십 만리나 떨어진 곳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렇게 둔술을 이용해서 양약성으로 복귀를 시작한 건우였다.

< 건우의 입령기 승경(昇境)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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