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219화 (219/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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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혈승승단(金血昇昇團)의 체험판 입령기 >

“건우 장로님.”

“또 무슨 일이냐?”

“약당에서······.”

“또 연단을 부탁한다더냐? 그것 참, 그 놈들은 말만 하면 다 되는 줄 아는 모양이로구나?”

“그것이 선문의 주문인지라 거절을 할 수가 없다고······.”

“아무리 그렇더라도 적당히란 것이 있는 게지. 내가 객경 장로가 된 후로 100년이 되도록 폐관 수련을 한 번도 제대로 못하지 않았느냐. 이래서야 어디 객경장로가 된 보람이 있겠느냐? 에이, 아니다. 내가 너에게 따져 봐야 뭘 하겠느냐. 이참에 원로원에라도 가서 직접 이야기를······.”

“아이고 장로님, 제발 참아주십시오. 만약 그리 되면 저는 그 날로 파맹을 당하고 말 것입니다.”

“네가 왜?”

“그야 장로님을 제대로 보필하지 못했으니 그리 되는 것이 당연하지 않습니까.”

“아이고, 이 놈이 아주 나를 제대로 협박하려 드는구나? 네 놈이 나와 얽힌 정이 그렇게 의미가 있을 듯 싶으냐? 네 놈이 파맹을 당하거나 말거나 내가 상관할 일은 아니지.”

“······.”

건우의 말에 원로원에서 파견한 축기기의 수사가 고개를 깊이 숙였다.

건우는 그 모습에 코웃음을 쳤다.

원로원에서 객경장로인 자신의 동정을 살피기 위해서 파견한 수사였다.

감시라고까지 할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건우를 설득하여 오련맹에 도움이 되도록 만드는 것이 저 파견 수사였다.

그렇다고 건우가 그 수작에 넘어가서 뭔가를 더 해주거나 하는 일은 없었지만 나름 눈치껏 건우의 수발을 들어주는 보답은 해 주는 편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조금 과한 요구를 가지고 온 것이다.

“자, 그러니 네가 결정을 하거라. 내가 원로원에 가서 이 일을 따질까? 아니면 네가 원로원에 내가 거부하더란 말을 전할 테냐?”

“자, 장로님······.”

“더 이상의 양보는 없음이다. 결정을 하거라.”

수행 수사가 불쌍한 표정을 지었지만 건우의 말은 냉담하기만 했다.

결국 수행 수사가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제, 제자가 원로원에 장로님의 뜻을 전하겠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에게 파맹이 떨어질지도 모를 보고를 스스로 하겠다고 자청했다.

건우는 그 모습에 속으로 피식 웃고 말았다.

만약 눈앞의 수사가 쫓겨나게 된다고 한들, 그게 어찌 건우 자신의 탓이겠는가.

잘못을 따지자면 과중한 업무를 억지로 건우에게 밀어 넣으려 한 원로원이 제일 죄가 무거울 것이다.

그런데 결국 그 하수인 역할을 하던 눈앞의 저계 수사만 처벌을 받을 것이다.

오련맹에서 쫓겨나거나 혹은 임무를 바꿔서 다른 곳으로 배치하거나.

“아무튼 나는 이제부터 맹주 경합을 시작할 때까지는 폐관을 할 것인 즉, 그리 알거라.”

건우는 원로원으로 가겠다는 수행 수사에게 그렇게 말을 하고는 손바닥을 흔들어 그 수사를 동부 입구 밖으로 이동시켜버렸다.

굳이 더 대면하며 불편한 시간을 보낼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서로 살갑게 대했던 것이야 그 놈이나 나나, 현실에 불만이 없었기 때문이지. 하지만 그 따위 임무를 던져주면 불만이 안 생기려야 안 생길 수가 없는 거지.”

건우는 그렇게 투덜거리며 부지런히 손바닥을 흔들어 자신의 거처인 동부의 입구부터 금제를 깔기 시작했다.

이미 동부에 가설되어 있던 진법과 금제, 술법 따위들이 건우의 손짓마다 기지개를 켜며 꿈틀거렸다.

그리고 그렇게 준비를 마친 건우는 다시 손바닥을 뒤집어 옥함 하나를 소환했다.

딸깍!

그리고 뚜껑을 열자 그 안에서 열 개의 영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금박을 입고 금색과 혈광이 뒤섞여 휘감기는 단약들은 오래전에 지준이 먹고 건우를 위협했던 바로 그 금혈승승단(金血昇昇團)이었다.

“두 개는 날려 먹었고, 열 개를 만들었지만 정작 제대로 된 것은 네 개 뿐, 나머지 여섯 개는 조금씩 부족한 것들. 초기에 만든 것들이라 어쩔 수가 없지만 아쉽긴 하네.”

동동의 구슬 열두 개로 열두 번의 연단을 시도했는데 성공적인 것은 후반에 만든 네 개 뿐이었다.

“루야가 연단 비법에 따라서 양과 온도, 시간 따위를 정확하게 맞춰 줬음에도 여덟 개나 실패를 한 것은 두고두고 속이 쓰릴 일이군.”

그렇게 말을 하지만 사실 건우의 연단 확률은 매우 높았다.

그리고 한 번 완벽하게 성공한 후에는 거의 실패가 없기도 했다.

이미 한 번 완벽하게 성공한 모든 내용을 루야가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수사들의 기억은 망각을 모르지만 그렇다고 해서 수사가 제대로 감지하지 못한 것까지 기억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 면에서 아공간에서의 작업은 의념 공간에서의 일이라 놓치는 것이 없이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정확한 수치나 계량, 계산에 있어서는 건우보다 루야가 훨씬 나았다.

그래서 연단의 과정을 기록하고 저장하는 것은 건우보다 루야가 더 나았다.

당연히 성공적인 결과가 나왔던 경우를 루야가 기억하게 되면 모든 것을 거기에 맞춰서 반복하려 통제하고 조절한다.

그렇게 해서 건우는 짧은 시간에 오련맹 장로들 중에서 가장 높은 확률의 고위급 연단 수사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 덕분에 원로원에서 너무 많은 일을 건우에게 밀어내는 일이 생기기도 했다.

그래서 조금 전에 수행 수사를 통해 원로원에 일방적으로 폐관 통보를 한 것이 아닌가.

“생각같아서는 아공간에 들어가서 수련을 하고 싶지만 내가 이곳에 없다는 것이 드러나면 문제가 커지겠지. 이곳을 들여다 볼 능력이 있는 수사가 오련맹에서만 열 명은 될 테니 어쩔 수 없이 밖에서 수련을 할 수 밖에.”

건우는 그렇게 자신의 상황을 중얼거리며 옥함에서 금혈승승단 하나를 꺼내어 입에 털어 넣었다.

그리고 곧바로 옥함을 아공간으로 돌려보내고 영단의 기운이 몸에 퍼지기를 기다렸다.

“으으음.”

그리고 얼마 기다리지 않아서 건우는 제 몸 안에서 엄청난 기운의 증폭이 일어나는 것을 느꼈다.

이질적이고 무기질적인 느낌의 기운.

그것은 곧바로 건우의 정수리까지 치솟아 오르더니 뭔가 변화를 일으켰다.

그것은 마치 하늘로부터 엄청난 의념이 밀려 내려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의념이 실체와 되어 정수리로 쏟아져 들어오는 듯한 느낌.

건우는 그것이 입령기 수사들이 느끼는 의념의 농도임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와 함께 화신체가 크게 진보하여 천지영기와의 연계가 훨씬 부드러워 지는 현상도 일어났다.

‘아, 입령기가 되면 이렇게 화신체 자체가 변하게 되는군. 그래서 천지영기를 다루는 것도 훨씬 쉬워 지는 것이었어.’

대충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실제로 경험하는 것은 신세계와 같았다.

천지 영기를 다루는 것이 화신체일 때보다 훨씬 쉬웠다.

건우는 그 감각을 제대로 익히기 위해 조용히 명상에 잠겼다.

그런데 막상 명상에 잠기려니 아공간의 상황이 건우의 집중을 흔들었다.

건우가 일시적으로 입령기의 수준에 이르자 아공간이 크게 확장되며 이전에 만들어 놓았던 균형이 뒤틀리고 있었다.

그 때문에 루야가 난리법석을 피우며 아공간을 안정시키려 애를 쓰는 것이 느껴졌다.

건우는 의념을 움직여 수미산 상징이 있는 아공간 중심과 몇 가지 특별한 구역을 제외한 모든 곳은 자연스럽게 변하게 두도록 의지를 전했다.

그리고 극멸기가 있는 구간이나 특별히 창고 같은 것으로 쓰는 공간의 격리를 강화하고 아공간을 자유롭게 풀어 두었다.

그러자 아공간이 건우의 입령기 수준에 맞춰서 크게 확장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이 건우가 속성별로 나누어 놓았던 구역들이 뒤섞였다.

‘자연스러운 것이 좋다는 건가? 하긴 이미 속성 영근의 의미도 사라지긴 했지.’

건우가 본래 지니고 있었던 8속성의 영근이나 나오금강체술로 이루어냈던 위영근 따위는 이제 그 의미를 상실했다.

화신체가 되면서 육신을 완전히 탈피하고 새로운 종으로 태어나는 수사들이다.

그리고 그렇게 화신체가 되면 특정 속성에 대한 재능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 선택은 오로지 수사의 것일 뿐,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화신체에 정해진 속성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저 오래도록 익혀 온 속성이 익숙하고 편해서 그것을 계속 유지하는 정도일 뿐이다.

그러니 화신기 이상의 수사들이 갖가지 속성의 술법을 자유로이 쓰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나저나 아공간이 이토록 늘어나다니 놀랍군. 입령기가 다르기는 다르군.’

건우는 입령기에서 일어나는 여러 변화를 살펴보며 특히 의념 공간의 변화에 주목했다.

경지가 올라 의념이 강해지는 것이야 당연했지만 아공간으로 그것을 정확하게 지켜볼 수 있어 그 감각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역시 화신체의 성장.

‘입령기의 벽이란 것이 다른 것이 아니었어. 화신체의 역량을 늘리는 것. 그래서 천지영기와의 소통을 더욱 원활하게 하는 것이 중요했군.’

그렇지 못하면 아무리 의념을 크고 강하게 만들어도 결국 천지영기를 다루는 한계가 화신기에 머물 수밖에 없다.

건우는 그것을 정확하게 꿰뚫어 보았다.

우우우우우우웅!

그렇게 입령기의 경지를 파고 들 때였다.

갑작스럽게 하늘과 통하던 정수리의 기운이 줄어드는 느낌과 함께 확장되었던 의식과 성장했던 화신체가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끄으으으윽! 아, 안 돼!”

가부좌를 하고 명상에 잠겼던 건우가 허공에 손을 뻗어 무언가를 움켜쥐려는 행동을 하며 외쳤다.

그리고 팔을 허우적거리며 번쩍 눈을 떴다.

“아, 안······.”

눈을 뜨며 뭔가를 애원하는 듯 하던 건우가 허탈한 표정으로 주변을 살폈다.

짧은 순간 입령기의 경지에서 화신기로 떨어지며 엄청난 좌절감과 허탈감, 공허함, 허기짐 따위를 느낀 그였다.

“끄응, 이게 후유증인가? 이래서는 정말 한동안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겠군. 정신에까지 타격이 커. 입령기에서 화신기로 추락하는 것이 이런 느낌일 줄이야.”

경지가 올라갈 때에는 법열을 느낀다.

사실 수사들은 그 법열에 취해 경지를 올리려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법열의 황홀함은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그런데 금혈승승단의 복용 후유증은 그 법열만큼이나 강렬했다.

문제가 있다면 황홀감이 아니라 경험하기 싫은 부정적인 느낌들이란 것이겠지만.

“잠시 쉬었다가 다시 해야겠군. 아직 나에겐 금혈승승단이 아홉 개나 남았단 말이지.”

처음 먹은 것은 불완전한 금혈승승단이었다.

그 때문에 입령기에 머문 시간도 그리 길지 않았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에도 얻은 것은 많았다.

이제 그것을 되새겨 수습하며 후유증을 이겨낸 후에 다시 도전을 해 볼 참이었다.

“그러다 보면 입령기에 들 확실한 길을 찾을 수 있겠지. 이번 경험만으로도 많은 것을 알 수 있었으니.”

건우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다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 때, 아공간에서는 또 다시 축소되며 뒤엎어진 세상 때문에 곳곳에서 난리법석이 나고 있었다.

이리저리 수습해 보려던 루야도 깔끔하게 포기하고 수미산 상징 아래에 앉아서 아공간을 관망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아공간을 지켜보는 루야에게도 약간의 변화가 보였는데, 건우가 주었던 두 번째 혼원석의 흡수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건우와 루야의 극적인 변화가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을 때, 양약성의 연단 문파들은 선문을 비롯한 여러 거대 문파에서 밀려드는 주문에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

멸계전에 대비하기 위한 거대 세력의 움직임이 본격화 되고 있는 모습이었다.

오련맹의 원로원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지만 이미 폐관을 선언해버린 건우를 불러낼 수는 없었다.

그렇게 건우는 의도치 않게 ‘바쁠 때 유급 휴가 간’ 직원이 되었다.

< 금혈승승단(金血昇昇團)의 체험판 입령기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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