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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환장 통수 선협전-214화 (214/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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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지(奧地)를 떠돌다 수사 지준(池濬)을 만나다 >

“어쩌다 보니 또 루야의 말대로 제 목숨 아까운 줄 모르는 놈들이 목숨에 공간낭까지 헌납을 하네. 내가 원래 이런 거 바라는 사람이 아닌데 말이지.”

말은 그렇게 하면서 마지막 마무리를 극멸기로 해서 진극멸기라는 덤까지 챙긴 건우.

그는 진극멸기의 응결로 수사들의 사체가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는 의념을 최대한으로 펼쳐 주변을 살폈다.

하지만 감지 범위 안에 뭔가 특별한 것은 찾을 수 없었다.

“여기가 정확하게 어느 지점인지 알 수가 없군. 호지성에서 가까운 곳인지, 목적지였던 성에서 가까운 곳인지.”

말은 그렇게 하지만 아마도 호지성에서 가깝지 않을까 추측하고 있었다.

그래야 건우를 처리한 수사들이 호지성으로 돌아가기 쉬웠을 테니.

게다가 이 주변의 지형을 보아하니 근래 몇 십년, 혹은 몇 백 년 사이에 큰 전투가 몇 번은 있었던 흔적이 있었다.

아마도 이번에 건우를 잡으려 했던 비슷한 방법으로 이곳으로 끌려와 죽은 이들이 한 둘은 아닌 모양이었다.

“그 놈들이 여기서 얼마나 많은 수사를 죽였는가 하는 것은 나하고 상관없는 일이지만, 나를 노렸다는 것은 죽을 이유로 충분하지. 그나저나 과동채, 그 놈은 당장 어찌하기엔 부담이 크네. 좋아, 그 놈에 대해서는 일단 살생부에 이름을 적어 두는 것으로 하자. 나중에 기회가 되면······.”

말을 흐리는 건우의 눈빛에서 사나운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하지만 그건 나중 일, 지금은 전송진을 이용할 수 있는 성을 찾는 것이 우선이었다.

건우가 허공에 출도령패를 던져 부양도를 불러냈다.

그리고 이전처럼 다시 부양도에 올라 괴뢰들에게 운용을 맡기고 칩거에 들어갔다.

*   *   *

메에에에! 메에에엥!

아홉 개의 짧은 꼬리에 네 개의 귀를 지닌 양이 등에 난 두 개의 눈을 까뒤집고 흰자위를 드러내며 울부짖었다.

하지만 이미 괴수 박이(??)는 온 몸에 상처가 가득하고 영기를 거의 잃어 힘을 쓰지 못했다.

“화신기 완경에 이르도록 아직 영성을 얻지 못하고 금수의 탈을 벗지 못한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상대를 알아 볼 눈치는 있어야지. 쯧.”

건우는 쓰러진 괴수를 쳐다보며 잠시 고민을 했다.

물론 괴수를 살려줄 것인지를 고민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금강패갑공으로 처리를 할 것인지 나타결공법의 극멸기를 쓸 것인지를 고민하는 것일 뿐이다.

하지만 그 고민은 길지 않았다.

지금은 금강패갑공의 성취를 올릴 수 있으면 그 쪽을 택하는 것이 좋았다.

어차피 지금 진극멸기를 얻어봐야 쓸 곳도 없었다.

나타결공법은 화신기 완경에서 성장이 멈췄으니 그 이상이 되기 전까지는 진극멸기를 쓸 곳이 없는 것이다.

“이리 오너라!”

건우가 금강패갑공을 끌어 올려 괴수를 향해 그 기운을 움직였다.

그러자 건우의 몸에서 청금색 불가살의 허상이 모습을 드러냈다.

곰의 몸에 코끼리를 닮은 머리를 한 불가살은 긴 코를 치켜 세우며 괴수 박이(??)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긴 코를 괴수에게로 향하고 길게 빨아들였는데, 그와 함께 괴수의 몸이 한 가닥 기운으로 녹아내리며 코로 빨려들었다.

이미 저항할 힘이 없었던 괴수가 천적인 불가살 앞에서 한 점의 기운도 쓰지 못하고 먹이가 된 것이다.

“으음. 제법 강한 기운이군.”

건우는 금강패갑공에 쌓이는 괴수의 기운을 느끼며 중얼거렸다.

그와 함께 금강패갑공의 성취가 약간 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입령기의 문을 두드리기엔 아직도 많이 부족한 수준.

‘그래도 괴수와 영수를 흡수하여 금강패갑공의 경지를 끌어 올릴 수 있으니 다행이지. 그저 공법 운용으로 천지 영기를 흡수하여 경지를 올리려 했으면 한 세월이었을 텐데.’

건우는 그런 생각을 하며 훌쩍 둔술을 펼쳐 부양도의 누각 안으로 돌아왔다.

부양도에서는 여러 괴뢰들이 훼손된 부분을 수리하느라 분주했다.

이번 싸움은 비행중인 부양도를 괴수가 먼저 공격해서 일어난 일이었다.

물론 먼저 공격하지 않았어도 화신기 이상의 괴수가 건우의 감각에 잡혔으면 당연히 사냥이 시작되었겠지만 이번에는 괴수의 은신 능력이 뛰어나 선공을 받았다.

건우가 부양도의 누각에서 수련에 힘쓰느라 주변 경계를 부양도의 진식과 괴뢰들에게 맡겨둔 탓에 감지 능력이 떨어진 탓이었다.

“그나저나 이제는 금강패갑공에 흡수시킬 법기나 법보도 떨어졌군. 모으는 데는 오래 걸려도 쓰는덴 금방이네.”

건우에게 쓸모가 있는 법기나 법보 몇 가지를 빼고는 이번에 과동채가 보낸 수사들의 물건까지 모두 금강패갑공에 흡수시켰다.

덕분에 금강패갑공과 동화된 천라패갑방패의 수준이 화신기 완경까지 도달했다.

이제 금강패갑공이 입령기의 벽을 뚫는 것만 남았다.

하지만 법기나 법보를 흡수해서 금강패갑공의 성취를 올리긴 어려웠다.

그러자면 법보 수준이 아니라 영기 수준 이상의 기물을 흡수시켜야 할 것이다.

대신에 영수나 괴수를 흡수하는 것은 어쩐 일인지 티끌을 쌓아 태산을 만드는 방식도 가능해 보였다.

꾸준히 영수나 괴수를 흡수하면 금강패갑공의 성취가 입령기로 들어설 수 있을 것 같다는 뜻이다.

‘정말 티끌을 모아 태산을 쌓는 격이란 게 문제라면 문제지.’

효율이 떨어진다고 할까.

먹는 것에 비해서 쌓이는 것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느낌이 있었다.

‘그래도 이게 벽을 자연스럽게 뚫을 수 있는 방법이라는 점에서는 나쁘지 않아. 게다가 기물의 흡수로 한계까지 성장한 후에 영수나 괴수를 흡수해서 벽을 뚫는 방식이니까 이만한 지름길도 없지.’

건우는 몸 안에 들어온 괴수 박이(??)의 기운을 정제하기 위해 금강패갑공을 운용했다.

그리고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가 부양도의 비행 경로에서 새로운 괴수나 영수를 감지하면 뛰쳐나가 사냥을 벌였다.

그리고 때론 그 사냥이 몇 달 동안 이어질 때도 있었다.

괴수나 영수의 능력이 생각보다 뛰어난 경우에도 시간이 걸렸고, 때론 불리함을 느끼고 도망가는 놈들을 쫓느라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건우의 행로는 전송진의 목적지였던 성과는 크게 멀어지게 되었다.

*   *   *

“반갑습니다. 이런 오지(奧地)에서 도우(道友)을 만나니 기쁘기 한량없습니다.”

“나 역시 이런 황량한 곳에서 누군가를 만나게 되리라곤 생각지 못했습니다. 건우라 합니다.”

“이런, 나는 지준(池濬)라 합니다.”

건우의 인사에 수수한 남빛 도복을 걸친 수사가 마주 공수하며 인사를 했다.

그는 건우의 부양도로 직접 찾아온 수사였는데, 벌써 5년을 비행하는 중에 건우가 처음으로 만난 말이 통하는 수도계 존재였다.

“아, 원래 지준 수사였습니다 그려. 반갑습니다. 다시 인사를 드리지요. 건우라 하는 산수입니다.”

“오오, 소속이 없으시단 말입니까? 그런데도 화신기 완경이라니 놀랍습니다.”

“하하하. 화신기 완경이 무에 그리 대단하겠습니까. 처처에 몸을 숨긴 고계 수사들이 넘쳐나는 수도계가 아닙니까.”

“무슨 그런 말씀을. 제가 다른 것은 몰라도 수사의 나이 정도는 알아볼 재주가 있습니다. 보아하니 고작해야 1만 년도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화신기 완경이 아닙니까. 놀랄 일이지요.”

“음, 그런 것도 알아볼 방법이 있습니까?”

건우는 수사의 나이를 언급하는 것은 오랜만에 듣는지라 놀란 표정으로 되물었다.

“하하. 제가 속한 도문이 좀 그렇습니다. 영환 계열의 술법을 많이 익히다보니 영혼의 나이를 가늠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되었지요.”

“아, 영혼을 보고 나이를 가늠한다는 말이군요? 그럴 수도 있다니 새롭게 개안을 했습니다. 하하하.”

건우는 지준 수사의 말에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며 놀라움을 감추지 않았다.

“어쨌거나 대단하십니다. 건우 수사 같은 이가 일컬어 하늘이 낸 재목이 아니겠습니까.”

지준이 연이어 건우를 추켜세웠다.

하지만 그런 말을 듣는다고 우쭐거리거나 자제심을 잃을 건우는 아니었다.

도리어 칭찬이 과하면 자연스럽게 상대를 경계하게 되는 성향을 지닌 것이 건우였다.

“만나서 반갑기는 합니다만, 지준 수사께서는 어쩐 일로 제 비행 법보를 방문하셨는지요?”

지준이 먼저 찾아온 것이 사실이니 그 용건을 물어보는 것은 당연했다.

그저 인사를 하고 가볍게 교류를 하자는 것일 수도 있지만.

“하하하. 이거 눈치가 없었습니다. 사실 낯선 수사들이 서로 마주치는 것이 기꺼울 수만은 없는데 말입니다. 너무 오랜만에 수도계 도우를 만나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건우의 말에 지준이 다시 한 번 손을 모아 허리를 숙이며 사과를 했다.

건우는 같은 모습으로 인사를 받았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그럼 변죽을 올리지 않고 딱 잘라 용건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건우 수사.”

“네, 그게 좋겠습니다.”

“제가 사실 이곳에 온 이유는 동동(??)이라는 괴수를 잡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그 괴수가 생각보다 강력하여 홀로 제압하기가 어렵습니다.”

“그 말씀은 사냥에 도움을 달라는 말씀입니까?”

“그렇습니다. 그 동동이란 괴수는 돼지 모양을 하고 있는데 온 몸에 여러 구슬을 매달고 있습니다.”

“구슬이 달린 돼지라니 기괴하군요.”

“사실 핵심은 그 구슬입니다. 그 구슬은 그 괴수가 일생을 살며 모은 정기를 담은 것입니다.”

“정기라 함은······.”

“구슬마다 각각 다른 속성의 기운이 담겨 있는데, 그 기운이 순수하기 이를 데 없지요.”

“보물이군요?”

“게다가 그 구슬은 괴수의 경지에 따라 담긴 기운의 양이 다릅니다.”

“지준 수사께서 제압을 하지 못했다면 그 동동이란 괴수가 화신기는 넘었다는 말이겠군요?”

“그렇습니다. 입령기 급의 괴수입니다.”

“허어, 그런 놈을 잘도 잡을 생각을 하셨습니다 그려?”

“길게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 놈을 잡으면 구슬의 절반을 내어 드리겠습니다.”

“구슬의 절반이라······. 그런데 동동의 보물이 그것 이외에는 없습니까?”

“사체가 아주 가치가 없지는 않겠지만 구슬 하나에도 미치지 못하지요. 동동은 구슬이 전부라 보시면 됩니다.”

“으음. 견문이 짧아 동동이란 괴수를 알지 못합니다만, 그렇다면 공평하게 반으로 나누는 김에 그 동동의 사체는 제게 주심이 어떻습니까?”

금강패갑공으로 기운을 흡수하면 사체가 사라진다.

그러니 미리 양해를 구해 두는 것이 좋을 듯 하여 하는 말이었다.

“그리 원하시면 그렇게 하는 것으로 하지요. 제가 부탁을 드리는 입장에서 사소한 손해야 감수하겠습니다.”

건우의 말이 뜻밖이었는지 표정이 약간 굳었지만 곧바로 표정으로 고치며 건우의 요구를 수용하는 지준이었다.

그렇게 건우는 동동이란 괴수를 사냥하기 위해 잠시 지준 수사와 동행하게 되었다.

‘만남이 의도적인 것은 아닌 듯 하지만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를 삶을 놈일 수도 있으니 그 점은 잊지 말아야지.’

물론 건우는 지준의 안내로 동동을 추적하면서 한시도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그렇게 지준의 뒤를 따른 지 한 달이 지날 무렵, 드디어 건우의 감각에 괴수 동동의 기척이 들어왔다.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모양이군요.”

건우가 부양도를 멈추고 지준을 보며 말했다.

“동동의 기척을 느끼셨습니까?”

지준이 눈빛에 이채를 반짝이며 물었다.

그는 동동의 몸에 걸어 놓은 술법이 있어서 그 위치를 특정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없다면 아직 이곳에서 동동의 기척을 감지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자신보다 먼저 동동의 기척을 알아차리다니.

지준은 건우라는 수사에 대한 평가를 이전보다 훨씬 높게 끌어올렸다.

“제가 익힌 공법이 영수나 괴수의 기척에 민감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저 쪽에서 강력한 괴수의 기운이 느껴지는군요.”

“옳습니다. 바로 그 방향 오백 여 리 떨어진 곳에 동동 그 놈이 있습니다.”

“그렇군요. 제가 잘 찾아 낸 모양입니다.”

건우는 지준의 말에 밝게 웃으며 말했다.

“자, 그러면 이제부터 그 돼지 놈을 어떻게 잡을지 계획을 다시 한 번 점검해 보십시다.”

그런 건우를 보며 지준 역시 적극적으로 동동 사냥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며칠 후, 지준과 건우는 각각 반대 방향에서 동동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동동 사냥이 시작된 것이다.

< 오지(奧地)를 떠돌다 수사 지준(池濬)을 만나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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