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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혈 흡수가 왜 이리 어려워? >
- 무명공으로 금강불가살의 진혈을 흡수하실 건가요?
건우가 아공간의 중앙에 자리를 잡고 앉자 루야가 나타나 물었다.
“너는 혼원석 흡수나 하라니까 왜 자꾸 나와?”
- 그게 금방 되는 일도 아닌데, 거기에만 집중하면서 또 몇 십 년을 보낼 수는 없잖아요. 그냥 천천히 할래요.
“폐관은 못하겠다는 거네?”
- 제 관심은 항상 건우님에게 있다고요. 솔직히 혼원석 흡수한다면서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건 답답해서 못하겠어요.
“뭐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지. 알았다. 하지만 나는 지금부터 진혈을 흡수할 거다. 그게 얼마나 걸릴지는 나도 모르고.”
- 알았어요. 그런데 괜찮아요? 밖에 있는 입령기 수사들이 건우님을 찾지 않을까요?
“당분간은 괜찮을 거야. 호지성과 남명문, 목령 일족이 서로 관계가 껄끄러운 상태라 그걸 풀어내는데 시간이 좀 걸릴 테니까.”
- 그렇게 죽자고 싸웠으니 당연하겠죠. 그런데 선문이란 곳에선 소식이 없데요?
“매신전귀단에서도 힘을 실어 준다고 했으니까 호지성은 과동채와 형오래, 공평부 이 셋이 공동 대표를 맡겠지. 그게 결정이 나야 나도 전송진을 쓸 수 있을 테고.”
아직은 과동채가 호지성을 손에 쥐고 있는 형국이라 전송진 사용을 허락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니 공식적으로 선문의 이름으로 공동 대표가 들어선 후에라야 전송진을 쓸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건우도 그 시간을 이용해서 진혈 흡수를 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 아무튼 그들이 건우 님을 찾을 일은 당분간 없다는 거죠?
“찾으려 해도 못 찾겠지. 금강불가살의 진혈 흡수를 위해서 수련을 할 거라고 이야기도 해 뒀으니까 굳이 찾으려 하지도 않을 거고.”
- 그 과동채 수사는 다르지 않을까요?
루야도 과동채가 건우에게 해코지를 할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호지성에서 멀찍이 떨어진 곳으로 왔잖아. 게다가 이렇게 아공간으로 숨었으니 과동채가 직접 나서도 나를 찾지는 못할 거다. 아공간을 여닫는 모습을 눈앞에서 보지 않고서야 닫힌 아공간을 어떻게 찾겠어?”
- 그래도 조심하세요. 입령기 정도 되는 수사가 작정하고 아공간을 공격하려 한다면 전혀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닐 거예요.
“나도 알아. 화신기 수사들의 충돌만으로도 아공간이 뒤흔들리는 것을 겪었으니까. 하지만 정말 다급하면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지.”
- 방법이 있어요? 뭔데요?
“뭐긴, 그냥 반대쪽 영계로 넘어가는 거지. 그럼 아공간 자체도 그 쪽으로 넘어가니까 이쪽에서 무슨 짓을 해도 영향을 받지 않게 되잖아.”
- 아, 그건 그러네요. 하지만 수미산의 상징을 통해서 계를 넘나드는 것이 공짜는 아니잖아요.
“상급 영석 백 개를 써야 하는 일이니 부담이 크긴 하지. 한 번은 공짜로 이동을 시켜주더니 두 번째 부터는 영석이 필요할 줄은 몰랐지.”
건우가 수미세계와 반대쪽 영계를 자유롭게 오가지 못하는 이유가 그것이었다.
상급 영석 백 개.
중급 영석 1만 개, 하급 영석 백 만 개, 최하급 영석으로는 1억 개라는 막대한 자원을 소비해야 이동이 가능하다.
“쯧, 생각해보니 영석을 좀 구하긴 해야겠군. 이전에 여러 수사들에게서 챙긴 공간낭을 정리하고 쓰지 않는 법기와 법보들을 팔아치워야겠다.”
- 호지성에서요?
“아니, 이번에 금강불가살의 진혈을 흡수한 후에는 곧바로 증장성을 향해 떠날 거다. 큰 물에서 놀아야지.”
건우는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는 형오래에게 받은 옥함을 꺼냈다.
그리고 그 안에서 금강불가살의 진혈이 들어있는 청옥병을 꺼내 들었다.
황금색의 진혈이 영롱한 빛을 내며 불규칙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도 생기가 맥동하는구나.”
- 괜찮을까요? 건우 님 몸에 있는 진혈들이 금강불가살의 진혈에 반응을 보이는데요?
“나도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모르겠다. 이 금강불가살이 원래 영수와 괴수를 잡아먹던 놈이라 했으니 어쩌면 내가 지닌 진혈을 먹어치울 지도 모르지.”
- 그럼 곤란하지 않을까요?
“하지만 무명공과 성해룡결공법과, 나타결공법, 유잠공을 동시에 운용한다면 공법에 쓰이는 진혈을 이 불가살의 진혈이 어쩌진 못할 것이다. 공법의 힘이 불가살의 진혈을 막아줄 것이라 믿어야지.”
- 잘 되었으면 좋겠네요. 조심하세요.
“알았다. 정 안 될 것 같으면 금강불가살의 진혈을 포기할 수도 있으니 걱정하지 마라.”
무명공은 매우 안정적인 공법이다.
그래서 정말 다급한 경우라면 공법의 운용을 중도에 그만 둘 수도 있었다.
그렇게 되면 공법에 쓰던 진혈을 포기해야 하지만 그 정도 손해로 위기를 넘길 수 있다면 큰 문제는 아니었다.
낭비한 진혈이 아깝긴 할 테지만.
‘그런 일은 없도록 해야지.’
건우는 그렇게 각오를 다지며 청옥병의 뚜껑을 열었다.
퐁!
그와 동시에 무명공을 일으켜 옥병에서 흘러나오는 금강불가살의 진혈 기운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 힘 내세요.
루야가 무명공 운용을 시작한 건우를 바라보며 두 손을 모으고 성공과 안전을 기원했다.
* * *
성해룡의 갑각 피부, 삼두육비의 몸체, 일곱 빛깔의 영롱한 광채.
가부좌를 하고 앉은 건우의 몸은 그렇게 변해 있었다.
그것은 성해룡결공법과 나타결공법, 유잠공을 한꺼번에 운용한 모습이었다.
‘이거 쉽지 않네. 그래도 공법 세 가지를 동시에 운용하니 상승효과가 있군.’
무명공까지 더하면 네 가지의 공법을 한꺼번에 운용하는 상태였다.
그의 의념이 다른 수사들에 비해서 월등히 강하지 못했다면 흉내도 내지 못했을 일이다.
그런데 막상 공법을 한꺼번에 운용해 보니 장점이 꽤나 컸다.
서로 충돌하지 않게 조금씩 자제하여 펼친 공법인데, 셋이 더해지니 어느 하나를 극성으로 펼친 것보다 훨씬 강력했다.
‘이것도 연습을 좀 해 둬야겠군. 나쁘지 않아.’
건우는 그런 생각을 하며 금강불가살의 진혈을 조금씩 빨아들였다.
금강불가살의 진혈은 건우의 몸으로 들어와 무명공과 더해진 후 기묘한 변화를 일으키고 있었다.
무명공으로 진혈을 흡수할 때면 항상 같은 과정을 거친다.
이제 진혈이 무명공과 반응하며 새로운 공법을 만들어 낼 것이다.
‘으음. 함께 펼치고 있는 다른 공법들이 무명공에 나쁜 영향을 주지는 않았으면 좋겠는데.’
금강불가살의 성질을 고려해서 몸 안의 진혈을 지키기 위해 선택한 방법이지만 불안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그 불안감은 곧바로 현실이 되어 나타나기 시작했다.
무명공과 더해져서 새로운 공법을 만들어 내야 할 금강불가살의 진혈이 꿈틀거리며 무명공을 끌고 날뛰기 시작한 것이다.
“크윽!”
미친 망아지처럼 날뛰는 금강불가살의 진혈.
그것이 제일 먼저 성해룡의 진혈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역시!’
예상했던 대로 포식성을 드러내는 금강불가살의 진혈이다.
건우는 급히 성해룡결공법의 힘을 내세워 금강불가살의 진혈을 막아섰다.
금강불가살의 진혈 기운은 성해룡결공법의 힘 앞에서 몇 번이나 튕겨지고 달려들기를 거듭했다.
하지만 결국 지금의 힘으로는 성해룡결공법을 넘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듯, 방향을 돌려 이번에는 쌍두단미영원의 진혈을 노렸다.
‘어딜?!’
하지만 이번에도 건우는 나타결공법의 기운으로 금강불가살의 진혈을 막아섰다.
쿠우궁! 으르르릉! 콰과과곽!
“크으윽!”
하지만 이번에는 반드시 먹고 말겠다는 듯이 악착같이 달려드는 금강불가살의 맹공에 건우도 이마에 땀이 날 정도로 힘겨운 싸움을 벌였다.
그만큼 금강불가살 진혈의 포식성은 흉폭하고 끈질겼다.
‘휴우, 어떻게 막기는 했는데, 칠채선호접의 유잠공은 아무래도 불안하네.’
결국 다시 목표를 바꾸는 금강불가살의 진혈.
제일 급이 떨어져 보이는 칠채선호접의 진혈을 향해 득달같이 달려들고 있었다.
건우도 그냥은 내어 줄 수는 없는 상황이라 급하게 칠채선호접의 유잠공을 일으켜 금강불가살 진혈의 공격을 막았다.
하지만 유잠공은 원래가 다양한 변화를 중심으로 하는 공법이라 집중력이 떨어지는 면이 있었다.
게다가 유잠공은 화신기 중기에서 공법의 성장이 멈췄다.
그것도 화신기 초기 수준을 억지로 중기까지 끌어 올린 것이었다.
그런 유잠공으로 화신기 완경의 성해룡결공법과 나타결공법이 어렵게 막아낸 금강불가살의 진혈을 감당하기는 어려웠다.
‘이거 먹히는데?’
결국 칠채선호접의 진혈이 조금씩 금강불가살에게 흡수되기 시작했다.
건우는 어쩔 수 없이 칠채선호접의 진혈을 금강불가살의 먹이로 내어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칠채선호접의 진혈이 먹히자, 유잠공이 건우의 몸에서 사라졌다.
당연히 가부좌를 하고 있는 건우의 몸에서 칠채의 광채가 사라졌다.
그렇게 유잠공을 잃었지만 상황이 진정될 것이니 다행이라 생각한 건우.
그런데 칠채선호접의 진혈을 흡수한 금강불가살의 진혈이 갑자기 힘을 내서 다시 쌍두단미영원의 진혈을 향해 내달렸다.
‘이, 이런! 이 놈이?’
먹이를 먹고 힘을 키운 녀석이 이제 다른 먹이를 노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 힘은 이전보다 훨씬 강해진 상태.
건우는 이번 금강불가살 진혈의 공격을 나타결공법이 막아내지 못할 수도 있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이러면 곤란한데? 쌍두단미영원의 진혈까지 먹어치우면 그 때는 성해룡의 진혈도 지키기 어렵다. 그 말은 나타결공법과 성해룡결공법의 공법을 잃게 된다는 이야기다.
‘성해룡결공법이 없으면 성해룡주를 이용한 아공간 구현을 쓸 수 없다. 거기다가 나타결공법이 없으면 극멸기를 이용하지 못하고. 이 둘은 어떻게든 지켜야 한다.’
건우의 마음이 다급해졌다.
하지만 당장 뾰족한 수가 없었다.
몸 안에서 일어나는 공법상의 다툼이었다.
이것은 외부의 힘을 빌려서 어쩔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러면 금강불가살의 진혈을 포기해야 하나?’
건우가 아쉬움에 어금니를 깨물었다.
그 때, 금강불가살의 진혈이 막 쌍두단미영원의 진혈을 따라잡았다.
건우가 나타결공법을 극성으로 끌어 올리고 그 기운으로 앞을 막아섰지만 오래 버틸 수 있는 상황이 못되었다.
‘이런 젠장!’
건우가 안타까운 마음에 버럭 성질을 냈다.
그 순간 기적같은 일이 벌어졌다.
금강불가살의 진혈을 막아서던 나타결공법의 기운 앞에 금빛의 삿갓방패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어엇? 천라패갑방패?’
건우가 깜짝 놀랐다.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게 또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천라패갑방패는 본명법보.
즉 건우의 영혼과 이어져 있는 특별한 기물이었다.
그래서 의념으로 자유롭게 다룰 수 있고, 본래 물질인 것을 의념공간에 넣어 놓을 수도 있는 특별함을 지녔다.
본명 법보란 원래 그런 것이다.
그러니 건우의 몸 속, 실제 공간이 아닌 관념의 공간에 본명법보가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이상할 일은 아닌 것이다.
물론 건우가 의식하지 않은 상태, 그 무의식에서 본명법보가 움직인 것은 예상치 못한 일이지만, 건우의 안타까운 마음이 본명법보에 영향을 끼쳤다면 아주 안 될 일도 아니다.
‘약하다!’
하지만 천라패갑방패는 약했다.
이전에 폐수고(幣收庫)의 전투에서 소양 선자와 설국왕 역락의 공격을 막다가 크게 상했던 천라패갑방패였다.
그 후, 그것을 제대로 복구하지도 못한 상태라 천라패갑방패의 상태는 좋지 않았다.
‘어쨌건 막아본다.’
하지만 지금 금강불가살의 진혈과 천라패갑방패의 싸움은 물질적인 것이라기보다는 관념적인 면이 강했다.
그러니 본명법보에 자신의 의념을 불어넣어 강화하는 것이 가능한 상황.
건우는 다시 한 번 각오를 다지며 천라패갑방패에 의념을 불어 넣어 금강불가살의 진혈을 막아섰다.
콰르르르릉! 콰과과광! 쾅쾅쾅!
미친 듯이 들이박는 금강불가살 진혈의 돌진.
천라패갑방패는 굳건히 그 앞을 막아섰다.
물론 매번 공격을 받을 때마다 금빛 조각이 떨어져 나갈 정도로 상했지만 그것은 다시 건우의 의념으로 복구가 되었다.
실체를 복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 뜻과 개념, 의지를 복구하는 것이라 가능한 현상이었다.
그렇게 막아서는 천라패갑방패와 공격하는 금강불가살의 대치가 오래도록 이어졌다.
칠채선호접의 진혈을 먹어치운 금강불가살 진혈의 힘과 끈질김이 그만큼 강했기 때문이다.
끝없이 이어질 것 같은 싸움, 그런데 어느 순간 조금씩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 시작은 무명공이었다.
금강불가살의 진혈과 어우러져 새로운 공법을 만들어야 할 무명공이 지금껏 진혈에 끌려다니다가 이제야 조금씩 그 효과를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이를테면 금강불가살의 진혈에 대한 해석이 끝난 셈이라 할까.
‘으음? 이건 또 의왼데?’
그런데 그 상황에서 결국 금강불가살의 진혈이 공격 방식을 바꾸었다.
금강불가살의 진혈은 천라패갑방패의 근원이 삿갓조개라는 괴수임을 알아차리고 그것을 먹어치우려 달려든 것이다.
원래 고계 영수와 괴수를 먹이로 삼던 녀석이니 삿갓조개 따위야 눈길도 안 줄 놈이지만 어쨌건 삿갓조개를 못 먹을 것도 아니었다.
불가살의 먹이 범위 안에 삿갓조개를 포함할 수는 있었으니.
‘이거 이러다가 본명법보를 잃게 되는 건 아닐까?’
건우는 선택의 기로에 섰다.
여기서 천라패갑방패를 치우면 금강불가살의 진혈이 쌍두단미영원의 진혈을 먹어치우고 결국 성해룡의 진혈까지 닿을 것이다.
천라패갑방패와 두 진혈을 지키려면 여기서 무명공의 운용을 포기하고 금강불가살의 진혈을 토해 내야 한다.
어떻게 할 것인가.
건우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 진혈 흡수가 왜 이리 어려워?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