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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단 흥정을 붙여보니 판이 커졌다 >
분위기는 싸늘했다.
매신전귀의 조월 수사 조차도 건우를 보는 눈빛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건우는 뚝심 있게 입을 다물고 수사들의 말을 기다렸다.
그런 중에 과동채는 건우를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하필이면 그가 나서서 건우에게 비법을 물었다가 염치없는 사람이 되고 말았지 않은가.
“으음. 듣기에 거북하기는 하지만 또 일리가 없는 말도 아니지. 우리가 저 아이를 핍박하여 원하는 것을 얻어 낼 수는 있겠지만 두고두고 부끄러운 일이 될 것이야.”
제일 먼저 입을 열어 건우의 뜻을 수긍한 것은 의외로 남명문의 공평부였다.
“끄응, 어린 후배의 주머니를 욕심낸 꼴이 되었군. 이거 참, 낯 뜨거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대의를 위해 희생하거나 혹은 손해를 감수하는 것은 스스로 자청해야 할 일이지 강요할 일은 아니지. 내가 잠시 멸계전이란 사안에 눈이 어두워졌던 모양이군.”
그리고 마지막으로 목령족의 형오래와 조인족 조월이 번갈아 자신들의 실수를 인정했다.
하지만 과동채는 끝까지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려버렸다.
하지만 다른 세 수사들은 그런 과동채를 외면했다.
그리고 조월이 대표로 건우를 보며 물었다.
“그래, 네가 말한 그 비전이란 것의 대가로 원하는 것이 있겠지? 그게 무엇이냐. 원하는 것을 말해 보아라.”
“사실 제가 비전을 알려드리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제가 아는 것을 말씀드리면 곧 그것이 이 수미세계 전체로 퍼질 수도 있겠지요.”
“으음. 그는 그렇다. 다른 곳은 몰라도 우리 매신전귀단에는 모두 전파를 해야겠지. 그리고 그 뒤로 또 우리 단과 연관이 있는 곳으로 그 내용이 퍼질 것이고.”
조월은 건우의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일이 그렇게 흘러갈 것은 깊이 따져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이었던 것이다.
“후배도 그런 사실을 이미 짐작했기에 조금 욕심을 부린 것입니다. 제가 알려드린 비전이 그리 널리 퍼질 텐데, 소소한 보상 정도는 받아도 되지 않을까 했지요.”
“너는 그리 변명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이미 네게 합당한 보상을 줄 생각을 하고 있으니.”
건우의 말에 형오래가 단호한 음성으로 말했다.
건우는 괜한 겉치레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임을 직감했다.
그래서 곧바로 고개를 들고 네 명의 수사들과 눈을 맞추며 당당하게 말했다.
“후배의 경지가 화신기 완경이니 당연히 입령의 경지를 갈망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후배가 가진 공법으로 입령기에 오르기엔 요원하니 가르침을 얻고 싶습니다.”
건우의 말에 네 명의 수사는 저마다 나름의 생각을 담은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런 중에도 과동채는 그저 이해했다는 느낌일 뿐 건우에게 뭔가 도움을 줄 생각은 전혀 없어 보였다.
“으음. 보아하니 너는 영수나 괴수의 진혈을 이용하는 공법을 익힌 듯 하구나.”
건우의 당돌한 요구에 수사들이 생각에 잠겨 있는 가운데 먼저 입을 연 것은 남명문의 공평부였다.
건우는 그가 자신의 주력 공법을 알아본 것에 놀라 살짝 눈이 커졌다.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네 몸에서 서로 다른 진혈의 기운이 느껴지는데, 그것이 너의 경지와 이어져 있으니 당연히 알아볼 수 있는 일이다. 특히나 우리 남명문의 공법 중에 진혈에 예민해 지는 종류도 있느니.”
공평부는 대수롭지 않은 듯이 건우의 궁금증을 풀어 주었다.
“그리 보자면 따로 입령기의 공법을 일러주는 것보다는 경지를 끌어올릴 수 있는 진혈을 주는 쪽이 더 나을 수도 있겠습니다.”
이번에는 형오래가 건우에게 진혈을 주는 것이 어떠냐는 의견을 내었다.
“입령기 이상의 진혈이 그리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게다가 저 녀석의 성향을 보아하니 탁하고 더러운 것은 또 맞지 않는 듯 하고 말입니다.”
조월은 진혈을 주자는 말에 살짝 거부감을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조인족의 진혈도 건우의 수련에 사용될 수 있는 종류였던 것이다.
물론 고대에 태고 신수로부터 갈라져 나온 이래로 무수히 많은 피가 뒤섞인 상태라 그리 좋은 수련 자원은 되지 못하겠지만.
“그렇다고 지금와서 저 아이가 새로운 수련 공법을 기초부터 익히는 것도 우스운 일이 아닙니까.”
“하지만 진혈을 이용하는 것은 한계가 명확합니다. 쉽게 구할 수 있는 진혈로는 입령기에 오르기 어렵고, 어렵게 구하더라도 입령기가 고작일 뿐, 성령기나 태령기를 바라볼 수 있는 진혈은 거의 없습니다.”
형오래와 공평부는 진혈을 이용한 수련에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는 듯 했다.
특히 공평부는 진혈 수련의 한계를 꼭 집어 거론했다.
“저 아이의 수련 방향까지 우리가 걱정할 필요가 있나? 어쨌거나 저 아이가 입령기에 오를 수 있는 진혈을 원한다면 그것을 가진 이가 내어 놓으면 그 뿐이지.”
그 때, 가만히 듣고 있던 과동채가 슬쩍 입을 열었다.
그러자 나머지 세 수사가 일제히 그를 바라봤다.
“혹여 과 수사가 그런 진혈을 가지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어디 한 보여 주시지요.”
“그게 아니라면 과 수사는 입으로만 공덕을 쌓고 재물은 우리들 중에 누군가가 내 놓길 바라는 것입니까?”
세 수사의 반응은 날카로운 바가 있었다.
은연중에 세 수사가 과동채를 몰아붙이는 형국이었다.
“이거 왜 이러십니까? 말이 그렇다는 것이지, 내가 언제 진혈을 가지고 있다고 했습니까?”
하지만 과동채는 세 수사의 압박에도 전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뻔뻔한 태도를 고수했다.
“그럼 과 수사께선 이만 자리를 비워 주시지요. 우리끼리 의논해서 저 후배에게 줄 보상을 마련해 볼 것이니.”
결국 공평부가 불쾌한 표정을 숨기지 않고 과동채를 이 의논에서 제외할 뜻을 밝혔다.
그러자 형오래와 조월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좋을 듯 합니다. 이번 일은 우리 셋과 건우 후배 사이의 거래로 하는 것이 좋겠군요.”
“좋습니다. 나중에야 어찌 되거나 멸계의 극멸기로부터 금제나 진법을 보호할 수 있는 비전은 일단 우리가 관리하는 쪽으로 하지요.”
“아니,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나를 제외하겠다고?!”
이를 듣고 있던 과동채가 버럭 화를 내며 소리를 질렀다.
“그럼 과 수사께서도 건우 후배에게 줄 보상에 한 손 거들 의향이 있으십니까? 그저 말 뿐이면 곤란하니 일단 무얼 내어 놓으실지 들어나 볼까요?”
“그렇습니다. 과 수사는 워낙 염치가 없는 분이니 말만 믿을 수가 없지요.”
“조금 과한 면이 있기는 하지만 과 수사의 지난 행각이 있으니 감수를 해야 할 듯 하군요.”
형오래와 공평부가 몰아붙이고 조월이 동의하며 과동채에게 먼저 뭔가를 내어 놓으라 압박했다.
과동채가 눈을 데구륵 굴리며 고민스런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눈치를 살폈다.
그러더니 슬쩍 수사들의 눈을 피하고 시간을 끌었다.
하지만 그런 과동채의 모습에 세 수사가 한꺼번에 건우를 보았다.
“후배의 비행 법보가 괜찮아 보이니, 그곳에서 이야기를 함이 어떤가?”
“비록 인계에서 왔다고 하지만 다른 계에서 왔으니 뭔가 신기한 것이 있을 법도 하군.”
“이참에 우리 넷이 작은 교류회를 열어 보는 것이 어떤가? 그 중에 후배가 마음에 드는 것이 있다면 굳이 진혈이 아니어도 보상으로 택해도 좋지 않겠나.”
세 수사는 과동채를 따돌리고 따로 자리를 마련하자고 의논을 마친 모양이었다.
건우는 슬쩍 과동채의 눈치를 보며 몸을 일으켰다.
“그럼 그렇게 하시지요. 비록 영계의 수준에는 크게 모자라겠지만 어쩌면 이곳에서 찾기 어려운 뭔가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 멸계 수사들이 진극멸기를 모으는 멸기함분은 보신 적이 있으신지 모르겠습니다. 제게 하급이기는 하지만 멸기함분이 하나 있으니 그것을 한 번 보시겠습니까?”
하지만 건우는 과동채의 눈치를 오래 살피지 않았다.
그보다는 이쪽 세 수사의 환심을 사는 쪽이 훨씬 이익이 될 것이라 판단한 것이다.
게다가 건우는 이곳 호지성에 오래 머물 생각이 없었다.
전송진을 이용할 수 있다면 최대한 빠르게 이곳 남염부제의 중앙에 있는 증장성으로 갈 게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러니 과동채에게 크게 연연할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호지성의 대표를 세 수사가 공동으로 맡기로 했으니 이후에 전송진 이용이 막힐 일도 없을 것이고.
“자, 잠깐. 조 수사 어찌 나만 빼고 간다는 것인가? 교류회라면 나도 낄 자격이 있지 않겠나.”
그 때, 과동채가 급히 조월을 불러 세웠다.
형오래나 공평부에게 말을 하기는 염치도 없고 체면도 구기는 것 같으니 조월을 부른 것 같았다.
“나는 저 어린놈의 비전은 굳이 듣지 않아도 상관없네. 대신에 교류회는 함께 해도 되지 않겠나?”
슬쩍 형오래와 공평부의 눈치를 살피면서도 할 말은 하고 마는 과동채.
건우는 그 모습에 과동채가 생각보다도 훨씬 더 뻔뻔한 자임을 느낄 수 있었다.
“구차하기가 이를 데가 없군.”
“후배 앞에서 내 얼굴이 다 뜨거워지는데 본인은 아무렇지도 않단 말인가?”
형오래와 공평부가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서도 굳이 과동채의 교류회 참석을 막거나 하지는 않았다.
수사들의 교류회는 소수로 이루어지지만 사람이 많고 물건이 다양할수록 좋은 평가를 받는다.
그런 의미에서 과동채의 교류회 참석은 굳이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과동채도 조월을 불러 그런 말을 하기까지 보이지 않는 갈등이 있었을 것이다.
체면이 크게 깎이는 것은 물론이고 저도 사람이면 얼굴이 어찌 뜨겁지 않았을까.
형오래와 공평부는 그런 생각을 하며 과동채의 참가를 굳이 따지지 않고 받아들였다.
‘와, 대단한 철면피다.’
물론 건우는 과동채가 부끄러움 따위를 느낄 일은 없었을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 * *
조월은 과동채의 교류회 참가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 보다 먼저 건우와 비전 거래를 한다는 이유로 교류회를 사흘 뒤로 미루었다.
과동채는 불만스러운 표정이었지만 끝까지 건우에게 비전의 보상을 주지는 않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건우는 과동채를 제외한 세 수사를 부양도의 누각 7층으로 초대하여 그곳에서 극멸기를 막는 기본적인 비전을 공개했다.
세 수사는 건우가 내보인 비전을 확인하고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건우가 제시한 비전이라는 것은 자그마치 백만 년을 멸계와 싸우면서 만들어진 것이라 그 심오함이 남달랐던 것이다.
그것은 입령기 수준의 수사들이 보기에도 만만치 않은 깊이가 느껴지는 비전이었다.
“하하하, 이런. 이건 생각보다 훨씬 대단하지 않은가.”
“그렇습니다.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수법입니다.”
“건우 후배가 있었다는 인계의 수준이 남다른 곳이었거나 뛰어난 인물이 있었던 것이 분명하군.”
건우가 자세히 이야기를 하지 않아서 멸계전을 백만 년이 넘도록 끌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조월 등은 연신 감탄을 감추지 못했다.
건우는 그들의 반응을 지켜보며 생각보다 큰 보상을 얻을 수 있을 거란 기대를 품었다.
“이런 것이라면 입령기를 바라볼 수 있는 정도의 진혈로는 교환이 어렵지 않겠습니까?”
“솔직히 그보다는 훨씬 가치가있겠지요.”
“옳습니다. 이 비전이라면 멸계전을 대비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마땅히 대등한 가치로 보상을 줘야 하겠지요.”
“그렇다면 잠재력이 큰 진혈을 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남명문의 창고에 진혈이 몇 있기는 하지만 부족한 것들 뿐이라······.”
“우리 매신전귀단의 본단에 연통을 넣어 볼 수는 있겠지만 아시는 것처럼 우리는 진혈을 쓰는 것에 조심스러운 면이 있어서 장담하긴 어렵습니다.”
공평부와 조월은 건우의 비전에 큰 점수를 주면서도 그에 맞는 진혈은 내놓기 어렵다는 처지를 밝혔다.
그러자 목령족의 형오래가 생각이 많은 얼굴로 잠자코 있다가 입을 열었다.
“우리 일족에게 오래 전부터 전해오는 진혈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이면 후배가 내어 놓은 비전의 대가로 부족하지는 않을 듯 합니다. 하지만······.”
형오래가 말을 하다말고 공평부와 조월의 표정을 살폈다.
그러자 조월이 먼저 웃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어찌 목령 일족만 손해를 보라고 하겠습니까. 부족하지 않도록 제 주머니를 열겠습니다.”
“나도 마땅히 그렇게 하겠습니다. 형 수사가 섭섭하지 않게 대가를 치르지요. 저와 조월 수사가 어찌 나몰라라 하겠습니까.”
조월과 공평부가 형오래의 처지를 짐작하고 그렇게 나서자 형오래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리고 형오래는 곧바로 수양미를 불러 목령족의 보물을 가지고 오게 했다.
그로부터 하루 후, 수양미가 옥함 하나를 가지고 와서 형오래에게 전했다.
< 일단 흥정을 붙여보니 판이 커졌다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