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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환장 통수 선협전-208화 (208/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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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자리 차지하고 끼어보자 >

건우는 의념을 움직여 부양도를 호지성 상공으로 이동시키기 시작했다.

이제 곧 호지성 상공에서 4자 회담이 진행될 텐데, 거기에 건우도 한 발 걸쳐 보려는 것이다.

고작 화신기 완경에 불과한 건우로선 자격 미달이 분명하지만, 그럼에도 건우는 입령기 한 명 정도는 어떻게든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게다가 자신은 다른 계의 출신이라는 큰 무기가 있었다.

그러니 자신이 저들의 이야기에 끼어들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뭐냐? 무슨 일로 다가오는 것이냐?”

부양도의 접근에 가장 먼저 반응을 보인 것은 남명문의 수사였다.

“어르신들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고 있기에 잠시 견문을 넓혀 볼까 하고 왔습니다.”

건우가 부양도의 상공에 몸을 띄우고 선 상태로 네 명의 수사를 향해 일일이 손을 모아 인사를 했다.

“감히 화신기 완경 따위가 낄 자리가 아니란 것을 알 텐데?”

남명문의 수사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건우를 노려보았다.

그가 딛고 선 발판이 출렁이며 날카로운 예기를 건우에게 쏘아냈다.

그저 심기가 불편한 것을 드러낸 것만으로 건우를 위협하는 공세가 펼쳐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그저 가벼운 인사치례에 불과한 것이라 부양도의 방어 금제를 뚫지는 못했다.

건우는 손바닥을 뒤집어 출렁거리는 부양도의 방어 금제를 안정시키며 남명문의 수사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성격도 급하십니다. 후배가 비록 화신기에 불과하지만 이 자리에는 끼어들 자격이 충분하니 연유나 들어보시지요.”

“자격이 충분하다고? 네가 무슨 자격을 가졌다는 말이냐?”

건우의 말에 목령족 수사가 관심을 보였다.

건우는 그런 목령족 수사에게 살짝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곧바로 조인족 수사와 눈을 맞추었다.

“어르신께서 제일 관심이 있으실 이야깁니다. 제가 이곳 수미세계의 출신이 아니라 다른 세계에서 넘어왔다는 사실 말입니다.”

“뭐? 뭐라? 다른 세상 출신이라고?”

건우의 말에 조인족 수사는 물론이고 다른 세 수사들 역시 깜짝 놀란 듯이 기세가 흔들거렸다.

건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것이 전부가 아니지요. 저는 얼마 전까지 멸계전을 치른 인계에 속해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행히 그 인계가 멸계전에 승리하여 영계에 속하게 되는 것을 직접 경험했지요.”

“멸계전의 경험자? 그것도 계의 승격을 겪었다고?”

“비록 인계의 멸계전이라 하더라도 배울 것이 없지는 않을 것입니다.”

“옳습니다. 멸계전이나 멸계에 대한 기록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니 하위 계에서의 전쟁이라고 해도 참고할 것은 있겠지요.”

“그나저나 정말이었습니다. 우리 수미세계가 봉인에서 풀렸다는 것이 말입니다. 저렇게 다른 계에서 이동한 자가 있다니 놀라운 일입니다.”

건우의 말에 네 수사들이 저마다 떠들며 분주해졌다.

건우는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지금은 네가 낄 때가 아니다. 아직 우리들의 일은 결판이 나지 않았어.”

하지만 그런 소란도 잠시, 호지성의 성주 과동채가 나서며 기세를 뿜어냈다.

매신전귀의 이탈로 승기를 되찾은 호지성주 과동채는 이참에 남명문과 목령족을 굴복시키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그 모습에 매신전귀의 조인족 수사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고 그것은 건우 역시 마찬가지였다.

과동채라는 호지성주는 아무래도 분위기 파악이 느리고 욕심이 과한 듯 보였다.

“그 말씀은 이 싸움을 계속하시겠다는 뜻입니까?”

매신전귀의 수장인 조인족이 과동채를 보며 확인하듯 물었다.

“지금 상황에서 기세를 타지 않으면 이후의 후환이 얼마나 클지 뻔히 보이는데 당연한 일이 아닌가. 게다가 선문에서 정한 시일도 그리 많이 남지 않았으니 어떻게든 호지성의 대표를 정해야 하기도 하고.”

과동채가 은근히 조인족 수사의 눈치를 살피며 선문의 이름을 내세워 자신의 주장에 힘을 실으려 했다.

“조금 전에는 우리 둘에게 맡기고 물러난다 하지 않았나?”

“그런데 조 수사가 빠지니 이제 말을 바꾸다니 뻔뻔하기 짝이 없군.”

남명문의 수사와 목령족 수사가 과동채를 비웃었다.

“기회가 생겼을 때 그것을 잡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부끄러운 일이지. 내가 여기서 물러나면 이후로 호지성의 영역에 내 자리가 없을 것인데?”

과동채는 확실히 뻔뻔했다.

건우는 그 모습에 자신이 그들의 언쟁에 끼어들 것인지 말 것인지를 잠시 고민했다.

누구의 편을 들더라도 결국 한 쪽을 적으로 두게 되는 상황이 될 것 같아 망설여진 것이다.

“과 어르신께서는 잠시 진정하고 다시 생각을 해 보시지요.”

하지만 결국 건우가 한 마디 거들고 말았다.

“무엇을 다시 생각하라는 것이냐? 네가 끼어들 자리가 아니라 하지 않았더냐!”

과동채가 불쾌감을 감추지 않고 질책하듯 말했다.

“이전에 저기 조 어르신께서 말씀하시기를 과 어른신과 이쪽 두 분의 싸움에서 물러난 것은 과 수사가 멸계전에서 좋은 전력이 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따지자면 이쪽 두 분의 어르신께서도 역시 멸계전의 좋은 전력이 아닙니까. 과 어르신께서 이쪽 두 어른을 해하게 되면 조 어르신께서 곤란할 것입니다.”

“으음. 조 수사가 다시 끼어들 수 있다는 말이더냐?”

“그거야 조 어르신께서 결정하실 문제지만, 이전에 제가 들은 말이 틀리지 않다면 가만히 두고 보시진 않으시겠지요. 아울러서 저 아래에서 벌어지는 싸움에서도 피해가 늘어날 것이니, 그 또한 조 어르신께서 꺼려하실 일이고 말입니다.”

건우는 그렇게 말을 하고는 부드러운 눈빛으로 과동채를 바라봤다.

적어도 자신은 과동채에게 적대감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란 것을 보여주기 위한 행동이었다.

물론 기울어진 싸움을 말리는 상황이니 남명문과 목령족의 수사들도 건우를 싫어할 이유는 없었다.

“으으음.”

과동채는 슬쩍 조인족 수사의 눈치를 살폈다.

건우의 말처럼 조인족 수사가 다시 전투에 끼어들게 되면 승산은 없다고 봐야 했다.

“차라리 선문에 주청을 드려서 호지성의 대표를 세 분이 함께 맡는 것이 어떻습니까? 그 정도의 융통성이야 있지 않겠습니까?”

건우가 다시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선문의 명을 거역하란 말이냐?”

과동채가 눈을 부라렸다.

“상황을 설명하고 뜻을 여쭙는 것이 어찌 명을 거역하는 것이겠습니까. 선문이란 곳이 그렇게 답답한 곳입니까?”

건우는 다른 계에서 와서 이쪽 상황은 잘 모르겠다는 듯이 과동채에게 되물었다.

과동채는 건우의 말에 생각이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역시 충분히 가능한 일인데, 그걸 혼자 먹으려고 욕심을 부렸을 가능성이 크군.’

이리 간단한 해결책을 두고 세력전을 벌인 것은 결국 과동채의 욕심 때문인 듯 했다.

“그게 좋을 것 같군. 혹여 선문에서 어렵다는 말이 나오더라도 우리 매신전귀의 이름으로 협조를 구하면 일이 그리 어렵지도 않을 것이고.”

그 때, 조인족 수사가 앞으로 나서며 건우의 제안에 힘을 실어 주었다.

결국 과동채도 양보하고 물러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당연히 건우를 보는 과동채의 눈빛이 좋지는 않았다.

하지만 과동채 역시 건우 덕분에 최악의 상황은 피하고 어느 정도의 보상은 얻은 셈이니, 도리어 건우에게 고마워해야 할 상황이었다.

‘눈빛이 좋지 않네. 경지는 높지만 속은 밴댕이 소갈딱지네.’

건우는 그런 생각을 하며 조인족 수사에게 시선을 돌렸다.

조인족 수사는 실력에서는 호지성주에 미치지 못하지만 영향력으로 치면 네 수사들 중에서 제일 커 보였다.

게다가 과동채가 매우 조심스럽게 대하는 선문이란 곳에 협조를 구할 수 있을 정도로 매신전귀란 세력의 힘도 강한 듯 했다.

“그럼 이쯤에서 싸움을 멈추고, 호지성의 대표 문제는 선문의 결정을 기다려보는 것이 좋을 듯 한데, 다들 동의하십니까?”

결국 매신전귀의 조인족 수사가 그렇게 중재안을 내놓았고, 과동채를 비롯한 세 수사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형세를 보면 공성전을 벌이기 전이나 별반 다름이 없는 모양이 되었는데, 서로 간에 피의 앙금만 쌓은 꼴이 되었다.

“그렇게 약속을 했다면 이제부터는 저 후배의 이야기를 좀 들어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만.”

그리고 조인족 수사는 곧바로 건우를 가리켰다.

그는 무엇보다 수미세계의 봉인이 풀린 것과 멸계전이 시작 된 것에 관심이 많아 보였다.

‘매신전귀란 이들이 애초에 멸계전을 대비하여 조직된 단체라니 당연한 일이겠지.’

건우도 이미 조인족 수사의 말을 들은 바가 있어서 그렇게 짐작했다.

“뭐든 말씀만 하십시오. 후배가 성심성의껏 대답해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적극적으로 협조적인 자세를 보이고 허리를 숙였다.

물론 정보만 내어주고 얻는 것은 없이 물러날 생각은 절대 없었다.

공손한 태도야 부드러운 관계를 위한 기름칠일 뿐, 손익 계산은 분명하게 할 각오를 버리지 않은 것이다.

*   *   *

“극멸기에 대한 이야기는 들은 바가 있지만 진극멸기를 통해서 쉽게 경지를 상승시킨다는 것은 알지 못했군. 그렇다면 결국 멸계 수사란 놈들이 멸계전에 적극적으로 뛰어들 것은 자명하군.”

조월(鳥越)이 멸계전에 대한 건우의 이야기를 듣고는 어두운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게다가 극멸기라는 것이 영기와 서로 상쇄되는 기운이란 것도 다시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지금껏 우리들의 싸움에서는 영기가 사라지는 일이 없었지요. 멸계 놈들과의 싸움에서는 영기 자체가 소멸한다고 봐야 하니 술법이나 공법의 운용과 유지에 각별한 노력이 필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우리 수준에서야 영기의 양과 질보다는 의념이 더 중요하지 않습니까. 그리 생각하면 멸계 놈들과의 싸움에서도 역시 의념 대결이 주를 이루지 않겠습니까?”

“그것도 권능의 상성에 따라 다른 문제지요. 또 의념으로 권능을 펼친다 하더라도 그 바탕이 천지 영기를 이용한 것이니 극멸기와의 상쇄 현상은 고민을 좀 해 봐야 할 문제입니다.”

“으음. 일단 극멸기 앞에서 진법이나 금제 따위가 쉽게 무력화 될 수 있다는 것도 따져봐야 할 일입니다. 극멸기를 이용해서 영기를 소멸시킬 수 있다면 어지간한 진법이나 금제는 쉽게 뚫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아니겠습니까.”

“그건 여기 있는 후배가 방법을 가지고 있지 않겠습니까? 설마 멸계전을 벌이는 동안에 그에 대한 대책을 못했겠습니까.”

한동안 저들끼리 떠들며 건우를 꿔다 놓은 보릿자루로 만들던 이들이 다시 건우에게 시선을 모았다.

“비록 인계의 것이기는 하지만 나름의 방책들이 있기는 합니다.”

“그렇지!”

“당연히 그럴 줄 알았지. 그 정도는 했겠지.”

건우의 말에 남명문의 공평부(孔萍浮)와 과동채가 옳다며 맞장구를 쳤다.

목령족의 형오래(荊梧萊)와 조인족 조월 역시 눈빛을 빛냈다.

“그래서? 무슨 방법을 썼다는 거냐?”

과동채가 성격 급하게 그 방법을 물어왔다.

그러자 건우가 정색을 하며 말했다.

“설마 공법상의 비전을 지금 여기서 털어 놓으라는 말씀입니까?”

건우의 말에 네 수사의 눈빛이 사나워졌다.

“지금 멸계전을 대비하기 위해 뜻을 모으는 자리에서 사적인 이익을 따지는 것이냐?”

과동채가 고함을 질렀다.

“그러하면 멸계전을 대비하기 위해서 제 수련에 필요한 것을 과 어르신께서 대가없이 얼마쯤 도와주시렵니까?”

그런 과동채에게 건우가 조심스러운 낯빛을 가장하며 물었다.

당연히 과동채의 입이 파리잡아먹은 두꺼비 입처럼 닫혀 열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 한 자리 차지하고 끼어보자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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