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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지성(壕池城) 전투 : 격안관화(隔岸觀火) >
호지성 쪽의 수사 하나와 그를 공격하는 세 명의 수사.
그들이 어느 정도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이야기는 그만큼 호지성 쪽 수사의 능력이 뛰어나단 이야기다.
건우는 의념을 넓게 펼쳐 네 수사의 싸움에 집중했다.
하지만 의념이 그들의 전투 영역에 닿는 순간 건우는 일이 쉽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네 수사들의 권능에 의념이 여지없이 흩어져 버렸던 것이다.
‘네 수사들의 의념이 생각보다 강력하다. 작정하고 내 의념을 집중하지 않으면 뚫고 들어갈 수가 없겠어.’
건우는 어쩔 수 없이 의념을 뒤로 물려 거리를 두고 그들의 싸움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의념을 전투영역에 억지로 밀어 넣는 것은 그 자체로 참전과 같은 효과를 불러왔다.
저들은 의념을 바탕으로 권능을 사용하고 있는데, 권능이란 의념으로 원하는 현상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거기에 억지로 건우의 의념이 끼어든다?
그것은 곧 나도 너희의 싸움에 끼어보자라는 의미가 될 것이다.
“성벽을 넘어라!”
“방어 금제를 파괴해!”
“밀어 붙여! 힘을 내라!”
네 명의 수사들이 호지성 상공에서 태풍의 눈같은 권능 싸움을 벌이는 동안 호지성 성벽에서는 공성전이 치열하게 펼쳐지는 중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공격 측에서 성벽의 한 쪽을 뚫고 성벽을 넘는 모습이 보였다.
다름 아닌 뱀족 수사인 기장우가 이끄는 무리였다.
그들은 겉보기엔 다양한 종족들이 뒤섞여 소속감이 없어 보였지만 의외로 단결력이 뛰어나 보였다.
한꺼번에 수 백 명의 수사들이 일제히 삼십 장 높이의 호지성 성벽을 넘었다.
하지만 호지성 쪽도 만만치 않았다.
곧바로 돌파당한 성벽의 좌우 망루에서 푸른빛이 번지더니 뚫린 방어벽을 복원했다.
“젠장! 망루를 쳐라!”
“망루를 파괴해 해!”
콰르르르르릉! 치이이이잉!
성벽을 넘었던 수사들이 다급하게 양쪽으로 갈라져 망루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사방에서 호지성의 수사들이 몰려드는 상황이니 망루를 해결하지 못하면 성벽을 넘은 수사들은 고립되어 몰살을 당할 판이었다.
“망루에 숨겨 놓은 수가 있었단 말이냐! 모두 집중해라. 동료를 구해야 한다!”
그 모습에 밖에 있던 뱀족 수사 기장우가 고함을 지르며 수하들을 독려하는 한 편, 한쪽 망루를 향해 날아갔다.
기장우는 망루를 향해 날아가며 양쪽 손에 녹색 안개 덩어리를 만들더니 그것을 다시 창 모양으로 연성해 냈다.
“가랏!”
후우우웅! 쉬이잉!
기장우가 한꺼번에 두 개의 창을 망루로 내던졌다.
꽈릉! 퍼엉!
날아간 두 개의 창 중에 하나는 번뜩이며 나타난 성벽의 보호막에 막혀 굉음을 내며 폭발했다.
하지만 약간의 차이를 두고 같은 지점에 도달한 두 번째 창은 약해진 보호막을 뚫고 안쪽으로 파고든 후에 폭발을 일으켰다.
겉보기엔 공격이 막혀 버린 것 같은 형상.
“크하하하, 어디 맛 좀 봐라!”
그런데 그것을 본 기장우가 광소를 터트리며 곧바로 허공에 주저앉아 양손을 내밀며 의념을 집중했다.
그러자 폭발을 일으켜 흩어졌던 녹색 안개가 다시 모이더니 기장우의 뜻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성벽의 보호막에 막혀 들어가지 못한 안개들은 다시 기장우의 소매 속으로 돌아왔고, 보호막 안쪽의 안개들은 망루를 향해 날아가 퍼졌다.
“크아악!”
“고(蠱)! 고(蠱)다. 숨을 멈춰라! 영기로 몸을 보호해라!”
“아아악! 피, 피부로 파고든다!”
“사, 살려 줘!”
기장우의 녹색 안개는 엄청난 위력을 보였다.
녹색 안개를 접한 호지성의 수사들이 너나없이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을 치다가 쓰러졌다.
그리고 다른 수사들은 급하게 녹색 안개를 피해 몸을 날렸다.
“끄으으으윽!”
“키이이이이!”
“크륵, 크르르륵!”
그런데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몸부림치다 쓰러졌던 수사들이 다시 몸을 일으켰다.
기장우는 연이어 의념을 집중하며 수인을 맺고 고에 중독된 수사들을 통제했다.
그 수사들은 기장우의 뜻에 따라 곧바로 망루 안으로 뛰어들었다.
쿠르르릉! 콰과광!
그리고 잠시 후, 망루 안에서 엄청난 폭발이 일어나며 망루가 허물어졌다.
망루 안으로 들어갔던 중독자들이 폭발한 것이다.
그것이 조금 전에 기장우가 쓴 고의 효과였다.
잠시 대상의 정신을 지배하고 그 지배가 끝나기 전에 영기를 폭주시키는 것.
당연히 복원되었던 호지성의 성벽 보호막 일부가 다시 뚫려 버렸고, 고립되었던 수사들도 활로를 찾을 수 있었다.
“기 수사께서 도움을 주셨네.”
“이러니 우리는 별로 한 일이 없는 것 같잖아.”
“우리가 성벽을 제일 먼저 넘었잖아. 그 정도면 전공으로 충분하지.”
“그래도 망루까지 넘어뜨렸으면 금성첨화 아냐?”
“조금 전까지만 해도 죽을 뻔한 놈이 욕심은.”
“전공에 따라서 배당이 달라지는데 당연하지. 쩝, 아쉽네.”
“아쉽다고만 하지 말고, 반대쪽으로 가자고. 저 쪽에 힘을 보태면 망루를 넘어뜨릴 수 있을 거 같은데.”
“그러세. 놀아서 뭐 하겠나.”
기장우의 도움으로 포위를 풀게 된 수사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다른 쪽 망루를 향해 날아갔다.
벌써 다시 뚫린 성벽을 넘어 수 많은 수사들이 몰려드는 상황이었다.
우드드드드득! 콰르르르릉!
그 때, 호지성의 성벽 한 쪽에서 또 다른 변화가 일어났다.
목령족이 공격하던 성벽이 굉음과 함께 무너진 것이다.
성벽이 무너진 이유는 성벽 아래에서 자라난 거대한 넝쿨 식물 때문이었다.
두께가 수십 장에 이르는 엄청난 넝쿨이 땅에서부터 자라나 성벽 사이를 파고들며 성벽에 새겨진 온갖 금제와 술식을 허물었다.
그리고 그와 거의 동시에 또 다른 쪽에서 공해찬이 이끄는 남명문도 성벽을 뚫어냈다.
그들은 수백 명의 문도가 어울려 진법을 구축하고, 그 진법에서 물로 된 용을 만들어 냈다.
물로 이루어진 용은 크게 입을 벌려 천지영기를 빨아들이더니 이내 엄청난 물줄기를 뿜어냈는데, 호지성의 보호 금제도 그 힘을 감당하지 못했다.
심지어 그 물줄기는 성벽 보호막을 뚫고도 한참을 날아가 호지성 안쪽의 웅장한 건물 몇 개를 꿰뚫었다.
“우와아아앙! 남명문 만세!”
“만세!”
“공격해라! 호지성을 점령해라!”
그 모습에 남명문의 문도들이 기세를 올리며 호지성의 성벽을 넘기 시작했다.
그렇게 세 곳의 성벽이 뚫렸다.
이는 더 이상 성벽에서의 방어가 의미가 없다는 이야기였다.
건우가 보니 상공에 있던 호지성주가 어떻게든 아래쪽에 도움을 주려 애썼지만 상대하는 세 수사의 방해로 매번 실패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한 눈을 파느라 호지성주의 상황도 점차 불리해지고 있었다.
아무래도 세 명을 한꺼번에 감당하기엔 호지성주의 힘이 부족해 보였다.
“고약하구나. 떠돌이 도적떼를 끌어들이다니.”
호지성주가 남명문의 수사와 목령족의 수사를 번갈아 쳐다보며 혀를 찼다.
그러자 조인족 수사가 그를 비웃었다.
“도적떼? 과동채(鍋銅寨) 수사께선 말을 함부로 하십니다. 일전에 나에게 사람을 보내어 협상을 하자고 했던 것은 까맣게 잊으셨나 봅니다.”
“하하하. 과 수사도 상황이 다급하니 제 얼굴에 먹칠을 하는 겁니까?”
“우리 모두가 과 수사가 조 수사에게 줄을 대려 한 것을 아는 마당에, 이제와서 도둑떼 운운이라니요.”
조인족 수사에 이어서 남명문 수사와 목령족 수사도 과동채라는 호지성주를 연이어 비웃었다.
“일찌기 오래도록 너희 둘과 내가 서로 싸워왔지만 지금껏 외부 세력을 끌어들인 일은 없었다. 그런데 너희가 저 도적떼를 끌어 들이니, 나는 그저 저들에게 끼어들지 말 것을 요구했을 뿐이다. 이것이 어찌 내 얼굴에 먹칠을 하는 일이란 말이냐?”
그런 셋의 반응에 과동채는 얼굴을 붉히며 고함을 질렀다.
그의 얼굴이 붉어진 것은 분노 때문이기도 했지만 점점 강해지는 세 수사의 압박을 견디느라 그런 것도 있었다.
“과 수사와 우리 남명문, 그리고 목령일족이 솥의 세 다리처럼 지낸 것이 오래 된 것은 사실이지요. 하지만 이번에 과 수사가 크게 욕심을 부린 것은 사실이 아닙니까.”
“맞는 말입니다. 우리 셋이 서로 적당히 어울려 살았는데 갑자기 호지성 전체를 과 수사께서 독점하려 하시다니요.”
과동채의 말에 남명문 수사와 목령족 수사가 연이어 그를 꾸짖었다.
이번 전쟁의 시작이 과동채가 욕심을 부렸기 때문이란 주장이다.
“내가 언제 호지성을 독점하고자 했단 말이냐. 나는 그저 대세를 따르려 했을 뿐이다.”
“대세를 따른다는 것이 남몰래 홀로 선문(禪門)의 영패를 받는 것이었단 말입니까?”
“선문의 영패를 받으면 우리들이 과 수사의 뜻을 거역치 못할 것을 알고 비밀리에 일을 추진한 것을 우리가 모를 것 같습니까?”
과동채가 변명을 했지만 두 수사는 전혀 이해해 줄 생각이 없는 듯 했다.
“하하하하. 우리 셋 중에 그나마 경지가 가장 높은 내가 앞장서는 것이 뭐가 문제란 말이냐. 어차피 선문에서는 호지성의 관리를 누가 맡게 되어도 상관하지 않는다 했다. 그런 중에 내가 대표의 자리를 욕심낸 것이 뭐가 그리 잘못이란 말이냐? 오냐, 내 호지성을 너희에게 내어주마. 어디 남은 너희끼리 선문의 영패를 두고 어떤 결정을 내리는지 두고 보겠
다.”
어차피 패색이 짙은 싸움.
과동채는 패배를 인정하고 물러나기로 했다.
하지만 그는 물러나면서도 이후로 남명문과 목령족 사이가 틀어질 것을 장담했다.
선문의 영패를 가진다면 적어도 호지성에선 누구도 그를 거역하지 못할 터.
그것을 남명문이나 목령족이나 상대에게 양보할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 쉽게 떠나실 수 있으실 것 같습니까?”
“오늘 과 수사를 놓친다면 후환이 무궁할 텐데, 어찌 그냥 두고 볼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과동채는 싸움에서 발을 빼는 것도 쉽지 않았다.
세 명의 수사들이 그에게 퇴로를 내어주지 않았던 것이다.
“멍청한 것들! 너희는 선문이 무슨 이유로 호지성의 대표를 선발하는지 알기나 하느냐?”
세 수사가 그의 도주를 격렬하게 막아서자 과동채가 인상을 찌푸리며 고함을 질렀다.
하지만 세 수사는 대꾸하지 않고 여전히 그를 제압하는 데에만 정신을 집중했다.
그 때문에 과동채의 상황이 더욱 나빠졌다.
그의 의념은 빠르게 소진되고 권능이 미치는 범위도 그만큼 줄어들고 있었다.
“멸계전! 멸계전이 시작되었단 말이다! 그 때문에 선문에서 수사들의 힘을 하나로 모으려 하는 것이다!”
과동채가 다급하게 고함을 질렀다.
멀리서 상황을 지켜보던 건우도 과동채의 말에 움찔 놀랐다.
선문이란 단체가 멸계전에 대한 대비를 시작했다는 말이 아닌가.
“조 수사! 어찌?”
“조 수사 약속을 어기려는 겁니까?”
그 때였다.
과동채의 고함소리 직후에 조인족인 조 수사가 권능의 발현을 멈췄다.
과동채에 대한 공격을 중지한 것이다.
그에 남명문 수사와 목령족 수사가 다급하게 조인족 수사를 나무랐다.
“우리가 오랜 세월을 떠돌았지만 그럼에도 명맥을 유지한 것은 약속을 어기지 않는 신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조인족 수사가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지금 행동은 뭐란 말입니까?”
“어서 대답을 해 보십시오.”
벌써 과동채는 위기를 벗어나 언제든 몸을 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든 후였다.
당연히 남명문 수사와 목령족 수사가 화를 낼 만 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우리 매신전귀(賣身戰鬼)들도 한 가지 경우에는 계약을 다시 조정할 수 있습니다.”
“계약 조정?”
“그게 무슨 말입니까?”
“우리의 존재 이유는 멸계전을 대비하기 위한 전투 집단입니다. 오랜 세월 멸계전을 예비하며 명맥을 이어온 것입니다. 이런 차에 멸계전이 시작되었다는 소리를 들었으니 그 진위를 확인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다고 다 잡은 적을 놓아준다는 말입니까?”
“그럴 것 같으면 과 수사를 잡은 후에 확인해도 될 일이 아닙니까.”
조 수사의 말에 남명문 수사와 목령족 수사가 거친 항의를 멈추지 않았다.
“이미 말씀드린 대로 우리 매신전귀는 멸계전을 위해 존재합니다. 그렇다면 저기 과 수사 역시 멸계전에 도움이 될 전력이 아닙니까. 멸계전이 시작된 이상 우리들은 더 이상 사적인 분쟁에 관여하지 않는 것이 옳지요.”
조인족 수사가 그렇게 말을 할 때, 호지성으로 들어갔던 매신전귀들이 전투를 멈추고 성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조인족 수사가 수하들에게 명령을 내렸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 우습게 되었습니다 그려?”
그 모습에 과동채가 슬슬 기세를 피워 올리며 남명문 수사와 목령족 수사를 압박했다.
아울러 호지성 내부에서도 남명문과 목령족이 조금씩 밀리는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매신전귀라 하는 이들이 빠지면서 호지성의 전력이 남명문과 목령족을 앞서기 시작한 것이다.
“일단 수하들을 물리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피해가 커질 겁니다.”
그 모습에 조인족 수사가 남명문 수사와 목령족 수사를 향해 충고 아닌 충고를 했다.
“이, 이런!”
“어찌 이런 일이! 뿌드드득!”
그 말에 남명문과 목령족의 수사가 당황하며 조인족 수사를 노려봤다.
그렇게 호지성의 전투가 갑작스럽게 휴전을 맞게 되었다.
“이거 일이 재미있게 돌아가네?”
건우가 그 모습에 눈빛을 반짝였다.
매신전귀라는 세력의 등장은 건우로서도 전혀 생각지 못한 변수였다.
< 호지성(壕池城) 전투 : 격안관화(隔岸觀火)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