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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은 마무리와 큰 마무리 >
길우몽의 말에 유매매는 곧바로 소매 속에서 몇 개의 공간낭을 꺼냈다.
그리고 그것들을 넘겨주며 길우몽을 보며 말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길우몽은 뒷짐을 지고 고개를 끄덕였고, 유매매는 두 손을 무릎 위에 올리고 눈을 감았다.
우두두두두둑! 우두두둑! 우둑!
“으음.”
잠시 후, 영혼이 빠져나가 껍데기가 되었던 유매의 몸에서 뒤틀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서서히 쪼그라들기 시작했다.
길우몽은 유매의 몸이 유매매에게로 흡수되는 것을 가만히 지켜봤다.
유매매는 유매의 몸을 완전히 빨아들이고는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휘리릭!
그리고 유매매가 소매를 휘젖자 등에 붙어 있던 유매의 잔재가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호호호호호호호.”
유매매가 제자리에서 두 팔을 벌리고 맴을 돌았다.
유려한 선을 그리며 춤을 추는 유매매의 몸.
길우몽도 잠시 그 아름다움에 눈길을 빼앗길 정도였다.
“감사해요. 태어나 처음으로 이렇게 홀가분히 움직여 봤네요. 등 뒤에 그 놈이 없이 오로지 나 하나! 이런 느낌은 정말··· 정말···.”
유매매는 말을 끝맺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깊이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진정시키는 유매매를 길우몽은 조용히 지켜보았다.
“하아, 기다려 주셔서 고맙습니다. 일단 이걸 받으세요.”
얼마 후, 유매매가 마음을 추스르고 가슴 앞에 두 손으로 수인을 맺으며 뭔가를 만들어 냈다.
그것은 두 손을 엮어서 만든 기묘한 수인이었다.
수인은 유매매의 손을 떠나서 길우몽을 향해 미끄러지듯 다가왔다.
길우몽은 소매를 휘둘러 그 수인을 눈앞에 멈추었다.
“멸기함분(滅氣含盆)이로군.”
그는 그것이 무엇인지 한 눈에 알아봤다.
유매가 이곳 인계로 넘어와 지금껏 모은 진극멸기가 담긴 멸기함분이었다.
“원래는 저와 그 놈이 함께 관리하던 것이지만 이제는 제 것이 되어 제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약속대로 그것을 드리겠습니다.”
길우몽은 고개를 끄덕이고 의념을 불러 일으켜 선태 멸기함분을 불러냈다.
“삼켜라!”
그리고 선태 멸기함분에게 수인 멸기함분을 흡수하도록 명했다.
유매매는 매미 허물 같이 생긴 멸기함분이 수인을 앞발로 잡아 갉아 먹는 것을 가만히 지켜봤다.
그런 중에 길우몽이 다시 손바닥을 뒤집어 뭔가를 꺼내 유매매에게 날렸다.
유매매는 전혀 머뭇거림 없이 날아오는 것을 받아들었다.
작고 검은 종발.
그 안에 회오리치는 진극멸기의 모습이 보였다.
“어쩌다 얻은 것이다. 네가 준 것에 비하면 약소할 것이나 본계로 돌아가서 입령에 도전하기에는 부족하지 않을 것이다.”
길우몽은 유매의 멸기함분을 받은 대신에 조금 급이 떨어지는 것을 유매매에게 내어 준 것이다.
“가, 감사합니다. 이리 배려를 해 주시니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잠시 기다려라!”
유매매가 인사를 할 때, 길우몽은 그렇게 말을 하고는 이전에 받은 공간낭들을 하나하나 살피기 시작했다.
그가 찾고자 하는 물품이 있는지 확인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어느 공간낭을 확인하던 중 길우몽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뭔가를 꺼내들었다.
“아아, 그 놈이 준비했던 혼원석이로군요.”
유매매가 그것을 알아보고 말했다.
“좋군. 생각보다 훨씬 급이 높은 혼원석이야.”
길우몽이 흡족한 듯이 얼굴가득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그런 그의 머릿속에는 루야의 환호성이 들려오고 있었다.
- 저, 저요. 저 주실 거죠? 맞죠?!
길우몽은 그런 루야의 의념을 깔끔하게 무시하고 다시 유매매를 바라봤다.
그리고 소매에서 뭔가를 꺼내 다시 유매매에게 전했다.
“네가 본계로 돌아가면 약속대로 그것을 안전한 곳에 설치해라. 이후 그 일을 깨끗하게 잊어야 할 것이다.”
“당연히 그렇게 하겠습니다. 영혼을 걸고 한 약속인데 어찌 어기겠습니까.”
“그럼 되었다. 나는 별 것 아닌 수고로 광광과 유매의 재물을 모두 얻었으니 그것으로 만족한다.”
“저는 덕분에 구명을 받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으니 그저 감읍할 따름입니다.”
“쯧, 과한 인사는 도리어 예가 아니라 했다. 그만하면 되었으니 더는 말을 하지 마라.”
“네, 길 수사님.”
“너도 이제는 유매의 몸을 흡수하여 어느 정도 몸을 추스른 것이니 네 일은 알아서 할 수 있겠지.”
“······.”
“내 볼 일은 마쳤으니 이만 가 보마.”
“그냥 이리 가시렵니까?”
“무에 더 남은 것이 있더냐?”
“아니, 그건 아닙니다만.”
“연이 닿으면 본계에서 다시 보지 않겠느냐. 하지만 그러기는 쉽지 않을 게다.”
“그, 그렇습니까?”
“혹여 네 귀에 내 이름이 들어가면 또 모르지. 그 때는 어쩌면 네가 나를 도와 줄 일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제가 어찌 길 수사를 도울 주제가 되겠습니까. 하지만 기회가 있다면 당연히 그리 하겠습니다.”
“수련의 길은 길고 길다. 언제 어찌 다시 볼 일이 있을지 모르지만 멸계에서도 흔치 않은 선연이라 생각하고 이후에라도 서로 악심은 품지 말도록 하자꾸나. 그럼.”
스스슥!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길우몽이 흑금색의 둔광을 남기고 모습을 감췄다.
그렇게 사라진 길우몽은 계곡 분지에서 십여 리 떨어진 곳에 기다리고 있던 선태 괴수의 머리위에 모습을 드러냈다.
“진인사대천명이라. 이제 내 할 일은 다 했으니 하늘의 뜻을 기다리는 수밖에.”
길우몽은 선태 괴수의 머리 위에서 한참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고개를 바로하고 툭툭 선태 괴수의 머리를 찼다.
그러자 선태 괴수는 곧바로 다시 땅 밑으로 몸을 감추고 기척을 숨겼다.
그렇게 길우몽이 사라진 그 때, 유매매는 소매 안으로 옥으로 된 정자를 거둬들였다.
서로 등이 붙어 있는 까닭에 움직임이 자유롭지 않아서 항상 정자에 앉은 상태로 지내야 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길우몽이 떠난 자리에 공간낭 몇 개가 놓여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것들을 불러들여 속을 확인했다.
제법 많은 재물이 그 안에 남아 있었다.
길우몽이 모두 털어가지는 않고 적잖은 양을 남겨준 것이다.
“가, 감축 드립니다.”
“감축 드립니다.”
“감축······.”
그런 유매매 앞으로 수십의 화신기 수사들이 몰려와 허리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유매매는 그런 수하들을 무시하고 곧바로 광광이 만들던 진법으로 향했다.
“진법에 문제는 없겠지?”
“전투로 약간의 손상이 있지만 곧 바로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얼마나 걸리겠느냐?”
“사흘 정도면 될 것 같습니다.”
“알았다. 서두르되 빈틈이 없어야 할 것이다.”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나를 부를 때에는 길매(吉妹)라 불러라.”
“아, 알겠습니다. 길매님.”
‘어찌 이어진 인연인지, 길 수사님 다시 뵐 수 있기를······.’
스스로 길매가 된 그녀의 시선이 먼 하늘을 더듬었다.
* * *
“갔던 일은 어찌 되었나요?”
“말들이 많기는 했지만 기세가 이미 우리에게 넘어온 상황에서 저들이 어쩌겠소. 대대적으로 멸계 토벌을 하기로 했소.”
“잘 되었군요. 그런데 종관 수사께서는 괜찮습니까?”
“뭐가 말입니까 예예 수사.”
“종관 수사는 평소 중립적인 입장이 아니었습니까. 천겁이 없는 지금 상태를 유지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여기고 있었을 텐데요?”
“무슨 말을! 나는 오래 전부터 멸계 토벌을 주장하던 사람이오.”
“후훗, 그렇다고 해 두지요.”
“그렇다고 해 두는 것이 아니라 그런 것이오.”
예예 앞에서 종관은 항상 어린아이처럼 고집을 피우곤 했다.
그는 예예를 만난 후로 어떻게든 그녀에게 호감을 얻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거대 각궁에서 탄생한 영족인 예예는 종관에겐 더 없는 천생배필이었다.
거칠고 황량한 수도계에서 반려를 만나 해로(偕老)하는 것은 극히 찾아보기 드문 복연이다.
쌍수 수련을 한다고 해도 한 쪽이 주가 되고 한 쪽이 종이 되어 결국에는 파경을 맞이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종관은 예예를 본 순간 그녀가 하늘이 정해 준 배필임을 알아보았다.
문제가 있다면 종관은 예예를 천생 배필로 봤지만 예예는 종관을 그리 보지 않은 것이 문제.
예예는 종관을 꺼려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크게 애정을 느끼지도 않는 듯 했다.
그것이 종관의 애를 더욱 닳게 만드는 것이기도 했고.
“그래서 구체적으로 어찌 하기로 한 것입니까?”
“아랫것들이야 이전처럼 멸계 수사들을 토벌하면 될 일이고, 우리들은 멸계와 인계의 연결점을 찾아 끊어야지요.”
“그렇게 되면 멸계에서 더 이상은 우리 인계로 넘어올 방법이 없어지는 것이겠군요.”
“그리고 멸계와의 연결을 끊는 순간, 자연스럽게 우리 계가 영계와 연결되어 벽이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 계 자체가 영계에 속하게 되고, 천지 영기가 농밀해 지겠지요. 당연히 천겁도 되살아 날 테고요.”
“그것은 걱정이 없습니다. 천겁은 곧바로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적어도 삼천 년, 그 이후에 차례로 천겁을 맞이하게 될 테고, 운이 좋다면 몇 만 년 동안 천겁을 받지 않은 이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결국 언젠가는 천겁을 마주하게 되겠지요. 대천겁도 물론이고요.”
“그야 수도계에 몸을 담은 수사로선 피할 수 없는 일이지요. 그렇다고 지금처럼 고작 화신기 완경으로 끝인 생을 살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입령기도 가고, 성령기도 하고, 태령기에도 올라야지요.”
“호호호호. 성령기에 태령기라니 꿈이 호방하시네요.”
“이 종관이 그것을 못 이룰 것 같습니까? 그리고 예예 수사가 곁에서 함께 해 준다면 선계 비승도 꿈만은 아니지 않겠습니까.”
“선계 비승이라······. 생각해 보지요.”
“저, 정말입니까?”
종관은 오랜 시간 동안 처음으로 나온 예예의 긍정적인 대답에 화들짝 놀라 되물었다.
하지만 예예는 옅은 웃음만 보일 뿐, 다시는 말이 없었다.
그리고 그 몇 년 후, 인계의 수사들이 대대적으로 멸계 수사 토벌을 시작했다.
그 때는 이미 멸계 수사들도 일이 그렇게 될 것을 짐작하고 있었고, 이미 신분을 감추고 사라진 이들이 허다했다.
멸계 수사들은 극멸기를 감추고 범인이나 저계 수사인 척 떠돌며 신분을 감췄다.
물론 아무리 그래도 극멸기를 완전히 감추지 못해서 곳곳에서 정체가 드러나 죽임을 당하는 멸계 수사가 줄을 이었다.
“자, 저기가 멸계전의 시작이 된 바로 그 곳입니다. 저곳에 멸계와 우리 인계를 이어주는 선천진법이 있을 것입니다.”
원래 멸계의 영역 깊은 곳이었던 동성(東城)산맥의 중심.
그곳에 삼백여 명의 수사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일곱 개의 대륙에서 추리고 추린 실력자들로 멸계전의 시작과 끝인 선천진법을 찾아온 이들이었다.
선천진법은 누군가 억지로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천지 법칙의 작용으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진법이었다.
원래 인계가 영계로 올라서기 위해서는 멸계전의 시험을 치러야 하는데, 그 시험은 천지 법칙이 자연스럽게 주관했다.
때가 되면 천지 법칙이 인계와 멸계를 이어주는 진법을 만들고, 그를 통해서 멸계의 일부를 인계와 연결시킨다.
그것이 멸계전의 시작이고 그 시험을 이겨내야 인계가 영계에 편입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자, 드디어 우리가 영계 주민이 될 때가 왔습니다. 다들 들어가 선천진법을 허물고 멸계와의 끈을 끊어 냅시다.”
“그럽시다. 들어갑시다.”
“다들 가십시다.”
일곱 대륙을 대표하는 수사들이 목소리를 높이며 다른 수사들을 이끌었다.
지금껏 ‘보신주의자’ 노릇을 하던 이들이 시류가 바뀌자 앞장서서 멸계전의 승리에 숟가락을 꽂은 것이다.
그것을 못마땅하게 보는 이들도 많았지만 많은 이들이 ‘보신주의자’였던 까닭에 토벌을 주장했던 이들이 지금은 오히려 세가 약한 상황이었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조금씩 밀려나 주도권을 빼앗길 수밖에 없었다.
“호호호, 일단 가죠. 도대체 인계가 영계에 편입되면 어떤 변화가 생길지 궁금하기 짝이 없네요.”
혀를 차는 종관 옆에서 예예가 비웃음을 가득 담은 얼굴로 말했다.
종관은 굳은 얼굴로 예예와 함께 다른 수사들의 뒤를 따랐다.
위험은 없을 것이다.
이번 일은 그저 승리를 확인하는 행위에 불과한 것이니.
“어째 뒷골이 쎄 한데?”
그리고 그런 수사들 속에 원래 모습을 한 건우가 턱을 쓰다듬으며 주위 수사들에 떠밀려 선천진법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 작은 마무리와 큰 마무리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