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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하는 건 통수가 아니다 >
“목우, 주인님의 부름을 받아 왔습니다.”
유매의 부름에 목우가 금세 모습을 드러냈다.
괴뢰인 목우는 유매의 소매 속 공간에 들어 있었던 것이다.
“익히라 했던 공법은 모두 익혔겠지?”
유매가 목우를 보며 확인하듯 물었다.
“네, 주인님. 새로 마련해주신 혼원석 흡수 공법은 온전히 익혀 몸에 새겨 놓았습니다.”
“그래, 잘 했다. 그러면 이제 새로운 혼원석을 흡수하는데도 속도가 붙겠구나. 하하하.”
유매는 목우의 대답에 기뻐하며 크게 웃었다.
그는 길우몽과의 거래에서 혼원석을 흡수하는 새로운 수련 공법을 얻은 후, 그것을 멸계에 맞게 수정하여 목우에게 주었다.
목우는 그 수련 공법을 익히고, 그것을 괴뢰의 몸과 혼원석으로 이루어진 괴뢰심에 새겨 넣었다.
이전에 익혔던 수련 공법을 갈아치우는 과정까지 목우가 수행하도록 한 것이다.
하지만 아직 새로운 혼원석의 흡수는 시작하지 않은 상태.
이제 유매가 목우의 몸으로 옮겨 간 후, 준비해 놓은 혼원석을 흡수하면 경지의 한계가 입령기를 넘어 성령기까지는 넘볼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서 평생의 짐이었던 유매매도 떼어 놓을 수 있을 것이고.
“어서 준비를 하거라.”
유매가 목우를 보며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목우는 곧바로 유매의 앞에 마주보며 가부좌를 틀었다.
유매는 그런 목우의 머리에 손을 올리고 진언을 외우기 시작했다.
웅얼거리는 진언이 점점 커질수록 목우의 눈에서는 총기가 사라지고 어느 순간 가슴에서 빛이 나더니 목우의 괴뢰심이 뽑혀 나왔다.
유매는 그 괴뢰심을 다른 손으로 잡고 다시 의념을 불어넣으며 극멸기를 운용했다.
파스스스스스스.
한 순간 괴뢰심에 들어 있던 목우의 영체가 흔적도 없이 소멸해 버렸다.
목우는 짧은 비명도 남기지 못하고 세상에서 사라진 것이다.
다음 순간 유매의 두 눈이 검게 변하며 번개가 튀어 나왔다.
그리고 그 번개는 목우의 괴뢰심을 관통하며 파고들었고, 이후 괴뢰심은 곧바로 목우의 가슴으로 다시 들어갔다.
“으으음.”
괴뢰심을 다시 받아들인 목우가 낮은 신음과 함께 눈빛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끄응, 몸이 무겁군.”
목우가 앓는 소리를 하며 인상을 썼다.
그리고 눈앞에 있는 유매의 모습을 세세히 살폈다.
“휴우, 결국 이렇게 내 몸을 버리고 괴뢰가 되었구나. 저 빌어먹을 유매매만 아니었다면 이럴 일도 없었을 것을!”
태어날 때부터 등이 맞붙었던 두 사람이었다.
처음 수련을 할 때부터 오누이가 함께 힘을 모아 공법을 익히고, 서로의 의념과 영기를 소통했다.
시작이 그랬기 때문에 어느 순간부터는 서로 떨어질 수가 없는 관계가 되고 말았다.
일정 경지에 오른 후에는 신통력으로 둘의 몸을 떼어 내는 것이 가능해졌지만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둘이 나눠지는 순간 그동안 쌓은 경지가 무너질 상황이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함께 하다가 어느 순간 유매가 유매매를 공격하여 주도권을 빼앗았다.
매번 의견이 갈리고 서로의 주장을 내세우며 싸우는 것에 진절머리가 난 유매의 기습이었다.
이후로 유매매는 대부분의 시간을 잠들어 있어야 했다.
유매는 그것조차 마음에 들지 않아 결국 유매매와 완전히 결별하기로 마음을 먹고 목우를 만들어 키웠던 것이다.
혼원석을 이용해서 수련 한계를 넓힐 수 있는 공법을 얻은 후로 괴뢰에 영혼을 옮기는 수법을 가다듬고 가다듬었는데 드디어 오늘 그 결실을 보았다.
“유매매, 깨어났으면 나를 봐라.”
목우의 몸으로 옮겨간 유매가 유매매를 불렀다.
스르르르릉!
그러자 정자의 바닥이 회전하며 유매매가 전면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가슴이 움푹 파인 커다란 상처는 전혀 회복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유매매는 나른한 눈빛으로 목우를 바라봤다.
“호호호, 이제 뭐라고 불러야 하는 거야? 유매제는 아니고, 유매목우라고 부를까?”
유매매가 입가에 흐르는 피를 닦을 생각도 하지 않고 유매를 보며 비아냥거렸다.
“나는 유매제가 아니다. 그리고 이제 너도 유매매가 아니게 되겠지. 이 세상에 유매는 오직 나만 남게 될 것이다.”
유매는 기식이 엄엄한 유매매를 차가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유매매는 별 상관없다는 듯이 다시 나른한 표정을 지었다.
“어차피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올 거라고 생각했지. 우리 둘은 원래부터 어울리지 않았어. 일찌감치 서로 헤어졌어야 해. 그랬으면 이런 일도 없었겠지.”
“맞다. 그나마 둘이 함께 있는 것이 살아남는데 유리하고, 수련에도 도움이 되었던 것이 문제지. 그게 아니었다면 벌써 서로 갈라섰어야 했다.”
“호호호. 그래도 너 혼자였다면 지금의 너는 없었겠지. 멸계의 어느 산골짝에서 썩어가고 있을 확률이 높지 않아? 호호호.”
“그래서 네 공도 있으니 살려달라는 거냐?”
유매매의 웃음에 유매가 그렇게 물었다.
그 순간 유매매의 눈빛이 사납게 변했다.
“그 말, 정말로 나를 죽이겠다는 소리네?”
유매매는 매섭게 유매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그녀의 몸 상태는 유매를 상대할 처지가 되지 못했다.
적어도 수 십 년은 정양을 해야 회복이 될 정도로 부상이 심한 상태였다.
지금도 격한 감정의 요동으로 입으로 넘어오는 피의 양이 급격히 늘고 있었다.
“후환은 남기지 말아야지.”
유매는 단호하게 말했다.
지금 그가 옮겨 온 괴뢰 목우의 경지는 고작 화신기 초기에 불과했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유매매의 상태는 영체기도 제대로 상대하기 어려울 정도.
그것은 한 몸이었던 유매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이었다.
분지 안에는 목우보다 경지가 높은 화신기 중기 이상의 수하들이 가득하지만 그들은 유매의 금제 때문에 어떤 저항도 할 수 없는 상태로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다.
그러니 유매가 유매매를 처리하는 것은 아무 문제될 것이 없었다.
“이제 너를 처리하고 나는 본계로 돌아가면 그만이다. 그곳에서 새로운 혼원석과 함께 진극멸기를 흡수하면 입령기를 넘어 성령기에 이를 수도 있겠지. 하하핫.”
유매는 보장된 미래를 생각하며 즐거운 듯이 웃었다.
“다행이네.”
그 때, 유매매가 들릴 듯 말 듯 중얼거렸다.
하지만 유매는 그 소리를 분명히 들었다.
“다행이라고? 그게 무슨 소리지?”
유매가 의아한 눈빛으로 유매매를 보며 물었다.
다행이라는 말은 지금 유매매의 입에서 절대로 나올 수 없는 말이었다.
유매는 뭔가 서늘한 불안감이 등골을 스치는 것을 느꼈다.
“내가 너를 죽이는데 어떤 거리낌도 없다는 거. 그게 다행이라고. 혹시라도 너를 죽이는 것이 나중에 작은 심마라도 될까 걱정했는데 그럴 일은 없겠어. 너는 죽어 마땅한 새끼니까!”
유매매가 고개를 번쩍 치켜들고 유매를 노려보며 고함을 질렀다.
하지만 그런 유매매의 기운은 너무도 미약하여 유매에게 전혀 위협이 되지 못했다.
“뭐 하자는 거지. 그런 허장성세로 뭔가를 해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거냐? 하하핫, 고상한 유매매도 끝이 다가오니 구차해지는구나.”
유매가 피를 토하는 유매매를 크게 비웃었다.
푸욱!
“커억!”
그런데 그 순간이었다.
드높은 하늘에서 내리꽂힌 검 한 자루가 유매의 정수리에 손잡이만 남기고 틀어박혔다.
그 검은 정수리를 지나 목을 뚫고 가슴의 괴뢰심에 닿아 있었다.
‘이, 이게?’
유매는 손가락 하나도 까딱하지 못하는 상태로 유매매를 보며 눈빛으로 질문을 던졌다.
“고마워요. 선태 수사.”
하지만 유매매는 굳어 버린 듯 멈춰 서 있는 유매에겐 눈길을 주지 않고 그의 등 뒤,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휘익!
그러자 유매의 등 뒤에서 황금빛 광채를 머금은 단약 하나가 날아와 유매매의 입 속으로 들어갔다.
유매매는 단약을 삼키고 곧바로 눈을 감고 운기요양에 들어갔다.
미약하던 극멸기가 급격히 기세를 부풀리며 유매매의 몸을 치유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유매의 관심은 눈앞에 있는 유매매가 아니라, 등 뒤에 있는 선태 수사였다.
그는 괴뢰심에 닿아 있는 검 때문에 의념을 펼쳐 뒤를 살필 엄두도 내지 못하고, 본능적으로 눈동자를 돌려 뒤를 보려 애썼다.
하지만 검 끝이 괴뢰심에 닿아 손끝 하나도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이라 그 바람을 이룰 수는 없었다.
“유매 수사. 오랜만입니다.”
하지만 대신에 선태 수사 길우몽이 천천히 그의 앞으로 날아내렸다.
그리고 동시에 괴뢰심에 닿은 검의 기운이 미약하게 느슨해지며 약간의 여유를 만들어 주었다.
“이,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선태 수사께서 어찌 이곳에?”
유매는 태연을 가장하며 길우몽에게 물었다.
“아시지 않습니까. 제가 거륙하마(巨戮蝦?) 광광(廣狂)을 쫓은 것은 오래 전부터입니다.”
“그, 그렇군요. 그런데 어찌 저를?”
거륙하마 따위야 유매에겐 전혀 상관이 없는 일이다.
지금 중요한 것은 그를 제압하고 있는 길우몽의 검이었다.
“하하, 그것 참 뻔뻔도 하십니다. 유매 수사께서 고중무, 광광과 더불어 인계 수사들을 끌어들여 저를 도모한 것을 잊으셨습니까?”
길우몽이 느긋한 음성으로 그렇게 유매를 추궁했지만 듣는 유매의 입장에서는 등골이 서늘할 이야기였다.
길우몽이 그 모든 것을 알고 있다면 자신은 죽은 목숨이라 봐야 했다.
“그, 그게 아닙니다. 선태 수사. 어찌 들으셨는지 모르지만 그건 거짓말입니다. 저는 고중무와 광광의 논의에 끼지 않았습니다. 믿어 주십시오.”
유매는 다급하게 길우몽에게 변명을 했다.
길우몽은 그런 유매를 덤덤한 눈빛으로 지그시 바라봤다.
“그것 참, 원래 수사들의 낯짝이 두껍기는 하지만 유매 수사는 그 중에서도 탁월한 것 같습니다. 내가 이미 유매매 수사와 이리저리 소통을 했을 것을 짐작하지 못한단 말입니까?”
“그, 그런······.”
길우몽의 말에 유매가 말문이 막힌 듯 입을 벙끗거리기만 했다.
뭔가 변명을 하기는 해야 하는데, 유매매가 모든 것을 털어 놓았다면 어떤 말도 소용이 없는 상황임을 알아차린 것이다.
“흐으음.”
그 때, 운기요상을 하던 유매매가 길게 숨을 내뱉으며 눈을 떴다.
길우몽이 슬쩍 몸을 틀어 그런 유매매를 돌아봤다.
“감사합니다 선태 수사. 수사께서 제 부탁을 들어주셨습니다.”
유매매가 앉은 자리에서 깊게 읍을 하며 인사를 했다.
길우몽은 슬쩍 소매를 내치며 몸을 돌렸다.
“그렇게 인사를 할 것은 없습니다. 나와 의논한 것을 제대로 지키기만 하면 될 일입니다. 유매매 수사와 나는 서로 거래를 한 것에 불과하지 않습니까.”
그러면서 냉정한 목소리로 거래 관계를 부각시켰다.
하지만 막상 그런 길우몽을 바라보는 유매매의 눈빛에는 복잡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
“그렇게 말씀을 하셔도 이 미천한 목숨이 길 수사님 덕분에 살아난 것은 천지법칙이 아는 일입니다. 이 은혜는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거래일 뿐입니다. 유매매 수사께서는 약속만 지켜주시면 될 일입니다. 제가 여기 유매를 제압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고 말입니다.”
목우의 몸으로 옮겨간 유매의 경지는 고작해야 화신기 초기에 불과했다.
그런 유매를 제압하는 것이 어렵지 않은 일임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게다가 지금 이 순간 유매의 수하들은 상황을 지켜보기만 할 뿐, 개입하지 않고 있었다.
그것은 유매와 유매매가 그들의 금제에 대한 권한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서로 상충되는 명령을 받으면 그에 대해서는 관여하지 않도록 되어 있었다.
“기, 길 수사. 내 모든 잘못을 인정하겠소. 그러니 제발 목숨만은 살려 주시오.”
그 때, 길우몽과 유매매의 대화를 듣고 있던 유매가 눈치도 없이 끼어들었다.
길우몽은 슬쩍 유매를 쳐다보곤 다시 유매매에게 시선을 던졌다.
어찌하면 좋을지 결정을 유매매에게 묻는 눈빛이었다.
“저는 유매매란 이름이 정말 싫습니다. 그렇다고 이름이 없이 살 수는 없으니 앞으로는 유매란 이름으로 살고 싶군요.”
유매로 살고 싶다면 당연히 원래 유매는 사라져야 한다.
길우몽이 슬쩍 손을 뻗어 유매의 정수리에 박혀 있는 검을 가리켰다.
“기, 길 수사!”
콰득!
유매가 다급하게 길우몽을 불렀지만 다음 순간 그의 가슴에서 괴뢰심이 뽑혀져 나왔다.
길우몽이 그 괴뢰심을 잡았다.
= 길 수사! 내, 내가 숨겨 놓은 보물이 많이 있습니다. 그것들을 모두 길 수사에게······.
파스스스스슷!
잡고 있는 괴뢰심에서 유매의 의념이 전해져 왔지만 길우몽은 무심하게 괴뢰심 안에 있는 유매의 영체를 파괴했다.
유매는 영체가 파괴되는 순간 천지 법칙에 따라서 윤회를 하게 될 터였다.
그런데 그 때, 가만히 앉아 있던 유매매가 손을 뻗었다.
그녀의 손에는 기괴하게 뒤틀린 검은 나무뿌리가 들려 있었는데, 그 뿌리가 유매의 영혼을 빨아들였다.
길우몽은 멀뚱하게 그런 유매매를 바라봤다.
“호호호홋, 쉽게 윤회에 들게 할 수는 없지요. 완전히 소멸을 시킬지 아니면 오랜 후에 저와 함께 윤회를 하게 할지는 두고보면서 결정을 하려 합니다.”
유매매는 그렇게 말을 하고는 다시 한 번 읍을 하며 송구한 표정을 지었다.
“뭐, 내가 간섭할 일은 아니군.”
그 모습에 길우몽은 관심을 두지 않겠다는 듯이 덤덤한 태도를 보였다.
“그보다는 이제 우리의 거래를 마무리 하는 것이 좋겠군.”
< 내가 하는 건 통수가 아니다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