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199화 (199/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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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르기 시작한 수레바퀴는 냅둬도 된다 >

= 결국은 자네 때문에 멸계전이 끝나게 될지도 모르겠군.

무허가 작은 영체의 모습으로 모든 것을 잃었다는 듯이 허무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어차피 이곳의 상황이 비정상적이었다. 고이면 썩기 마련이다. 결국 어떤 형태로든 정화 작용이 일어났을 것이다.”

건우는 이쪽 인계도 언젠가는 지금의 균형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지금 이곳 인계의 영체기와 화신기는 그가 원래 있었던 곳에 비하면 너무 숫자가 많았다.

이것은 천겁이 없이 시간이 오래 흘렀기에 당연한 일이었다.

영계 비승을 하지 않고는 1만 년도 살기 어려운 수사들이 멸계전 기간이란 특혜로 수 십 만 년, 혹은 그 이상의 수명을 누렸다.

당연히 영체기와 화신기 수사들이 쌓이고 쌓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아무리 봐도 자연스럽지 못했다.

과하면 반드시 탈이 나는 법이다.

“따지고 보면 멸계전이란 것도 시간이 흐를수록 인계 수사들에게 유리한 면이 있어. 천겁이 없으니 시간을 끌수록 인계 수사들의 전력이 강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랄까.”

건우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무허 선사의 영체를 노려봤다.

그를 비롯한 ‘보신주의자’들이 아니었다면 멸계전은 이미 오래전에 끝나고 모두가 영계에 올라가 있었을 것이다.

그것을 책하는 것이다.

= 영계 비승이 늦는다고 문제될 것이 있나? 이곳에서 버티면 버틸수록 유리한 것이 아닌가. 우리도 언젠가는 멸계전이 끝날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 그저 최대한 늦춰 볼 생각이었을 뿐.

무허 선사는 건우의 눈빛을 받으며 떳떳하지 못할 것이 없다는 듯이 마주 보는 눈빛에 힘을 주었다.

“그래서 같은 인계 수사들을 죽음으로 몰고 함정에 빠트렸나?”

건우의 음성은 덤덤했지만 그 속에 들어 있는 칼날은 예리했다.

그럼에도 무허 선사의 영체는 건우를 매섭게 노려봤다.

= 허허허헛, 그게 어쨌다는 거냐. 어차피 수도계가 다 그러한 것이 아니었나? 자네는 뭐가 다른가?

건우는 무허 선사의 물음에 침묵으로 답했다.

무허는 멸계전이 시작되기 전의 수도계를 경험했던 수사였다.

그 때의 수도계 분위기는 분명 건우가 이전에 있었던 인계와 같았을 것이다.

끝없이 서로를 경계하며 자신의 이익을 위해 상대를 짓누르는.

그런 세상을 살아본 무허의 입장에서 같은 인계 수사들을 함정에 몰아넣거나, 멸계 수사에게 팔아넘기는 것이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건우는 말없이 손바닥을 저어 무허 선사의 영체를 제압하고 여러 봉인 법부가 붙어 있는 옥함에 밀어 넣었다.

= 이보게, 이미 가져갈 것은 모두 가져가지 않았나. 그러니 제발 우리를 다른 수사들에게 넘기진 말게나. 우리······.

딸깍!

무허 선사의 마지막 말이 끝나기도 전에 옥함의 뚜껑이 닫혔다.

건우는 세 수사의 영체가 들어 있는 옥함을 한꺼번에 새로운 옥함에 넣었다.

그런 식으로 모두 아홉 겹의 상자에 세 수사의 영체가 가두어졌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상자는 아공간에 들어가 한쪽에 격리되었다.

의념 공간에 들어 있으니 언제든 작은 변화만 일어나도 즉시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저들은 이후 멸계 토벌을 주도하는 인계 수사들에게 내어 주면 되겠지.’

영체를 소멸시켜 윤회의 길로 돌려보내는 것이 더 쉬운 일이겠지만 이후에 인계 수사들과의 만남에 기름칠용으로 쓰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생각에 세 수사의 영체를 제압해서 봉인해 둔 것이다.

“자, 그럼 이제 광광이 놈을 잡아야지?”

건우는 일을 마치고 먼 하늘을 쳐다보며 피식 웃었다.

무허와 소양, 역락을 통해서 이번 일을 거륙하마(巨戮蝦?) 광광(廣狂)이 주도했음을 알아냈다.

그 외에도 매신살겸(賣身殺鎌) 고중무와 음양쌍인(陰陽雙人) 유매(瑜媒)도 연관이 있는 듯 하지만 무허 등도 그에 대한 증거는 가지고 있지 않았다.

“뭐, 광광 놈을 족쳐보면 고중무와 유매에 대한 증거도 나오겠지.”

건우는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나타결공법의 극멸기 강체술을 극성으로 끌어 올린 후 발을 굴렸다.

쿠르르르르르릉!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선태 괴수가 솟구쳐 오르며 건우를  제 머리 위에 올려 놓았다.

건우는 사막의 한쪽 방향을 가리키며 선태 괴수를 움직였다.

그런 그는 세 개의 구슬을 한 손에 넣고 굴리고 있었는데, 그것은 무허 등이 폐수고(幣收庫)를 만들 때 사용했던 구슬이었다.

무허 등을 제압하고 그들의 공간낭을 모두 빼앗은 후, 폐수고를 해체하고 회수한 것이다.

영계에선 쓰레기 창고로 쓰는 이것이 인계에서는 상대의 도주를 막는 데는 더없이 좋은 수단이었다.

“광광이 놈을 만나기만 하면······.”

키리리리릭! 키릭! 키릭!

주인의 기분이 좋은 것을 알았는지 선태 괴수가 흥을 내며 사막을 내달렸다.

*   *   *

<선태 수사 길우몽이 거륙하마(巨戮蝦?) 광광(廣狂)을 쫓는다.>

<거륙하마가 선태 수사를 피해 몸을 숨겼다.>

<거륙하마가 본계로 돌아갔다.>

<거짓말이다. 아직 거륙하마의 진법이 완성되지 못했다.>

<매신살겸 고중무가 본계로 돌아갔다.>

<고계 수사들이 모두들 멸계로 돌아가기 위해 진법을 만들고 있다. 상급 기석을 얻기 위한 싸움이 걷잡을 수 없이 퍼지고 있다.>

<선태 수사 길우몽이 녹양 산맥에 모습을 드러냈다.>

거륙하마(巨戮蝦?) 광광(廣狂)은 쉽게 잡히지 않았다.

건우는 쉬지 않고 광광의 뒤를 쫓았지만 광광은 그 때마다 한 발 빠르게 몸을 피했다.

어떻게든 만나기만 하면 끝장을 볼 자신이 있지만, 매번 건우의 걸음이 한 발 늦었다.

그것은 광광의 부하들 때문이었다.

광광 역시 멸계7존이니 8존이니 하는 이름을 달고 있는 이였다.

당연히 그가 부리는 부하들이 해변의 모래알처럼 많았다.

광광은 그들을 부려서 끝없이 건우의 앞을 가로막았다.

광광에게 금제가 걸린 부하들은 죽을 것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건우을 향해 달려들 수밖에 없었다.

콰드드득!

“커어어억!”

삼두육비의 모습을 한 건우가 머리에는 검은 뿔이 나고 피부가 붉은 요괴 수사의 목을 부러뜨렸다.

화신기 중기의 멸계 수사는 목이 부러지자마자 곧바로 영체를 뽑아 도망을 치려했다.

하지만 그 전에 건우의 의념이 주위 공간과 천지영기를 장악했다.

= 커어억!

둔술을 펼친 요괴 수사의 영체가 백여 장도 벗어나지 못하고 영체에서 영기를 토해내며 모습을 드러냈다.

삼두육비의 거인이 그 영체를 향해 손을 내밀어 의념을 투사했다.

요괴 수사의 영체는 그 의념에 붙잡혀 맥없이 끌려왔다.

= 사, 살려주십시오.

붉은 피부를 지닌 요괴 수사의 영체가 곧바로 허공에 납작 엎드리며 목숨을 구걸했다.

“내가 너희 같은 놈들을 잡으면 매번 같은 말을 하는데 그게 뭔지 알아?”

= 모, 모르겠습니다.

“하긴, 몽땅 죽었으니까 모를 만도 하지.”

삼두육비의 거인이 귀찮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작은 한숨을 쉬고는 요괴 영체를 보며 말했다.

“하아, 잘 들어. 내가 필요한 놈은 거륙하마 그 놈이야. 알지?”

= 네, 넵.

“그럼 내가 뭘 원하는지도 알겠네? 너 광광이 놈의 부하잖아.”

= 하지만 어르신, 아시겠지만 저희는 광광 어르신의 금제 때문에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습니다. 혹여 금제를 어기게 되면 윤회에도 들지 못하고 소멸을 하게 됩니다.

요괴 영체가 애처로운 표정을 지으며 건우에게 하소연을 했다.

“결국 네 선택도 다른 놈들과 다르지 않다는 거구나? 소멸은 무섭고 나는 무섭지 않다는.”

삼두육비의 거인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허리춤을 더듬어 뭔가를 꺼냈다.

처음에는 손톱보다 작았던 것이 점점 거인의 손에 맞게 커졌다.

요괴 영체는 슬그머니 눈치를 보며 그 모습을 살피다가 두 눈을 커다랗게 부릎떴다.

= 마, 마귀령패!

정확한 이름은 몰라도 대충 정체는 알아차린 모양.

삼두육비의 거인이 피식 웃었다.

“소멸을 선택할 거냐, 아니면 마귀에게 재물로 팔려갈 테냐!”

그리고 세 개의 머리, 여섯 개의 눈이 일제히 요괴 영체를 노려보며 고함을 질렀다.

= 으으윽!

요괴 영체는 거인의 위협에 신음을 흘렸다.

소멸과 마귀의 재물.

= 어르신, 마귀의 재물로 끌려가면 결국 오랜 세월 고통받다가 소멸하는 것이 아닙니까!

요괴 영체가 억울함에 눈물까지 뿌리며 항의했다.

“그래서 선택의 기회를 주는 것이 아니냐. 여기서 그냥 소멸을 할 것인지 그게 아니면 마귀에게 끌려갈 것인지.”

하지만 삼두육비의 거인은 요괴 영체의 사정 따위는 봐 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 어, 어르신.

“아, 이건 어떠냐? 네가 광광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준다면, 나는 네가 소멸하기 전에 네 영체를 흩어주마.”

= 네?

“거륙하마 그 놈이 걸어 놓은 금제가 강력하기는 하지만 금제가 발동하는 상황에서 네 영체를 흩어 버리면 윤회로 들 가능성은 있다. 그걸 해 주겠다는 이야기다.”

어차피 죽을 것이지만 금제가 발동해서 완전히 소멸하는 것보다는 그래도 윤회에 드는 것이 나았다.

물론 그것 역시 가능성에 기대야 하는 일이지만 요괴 영체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이었다.

물론 상황을 그렇게 설계한 건우도 요괴 영체의 대답이 정해져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 마, 말씀드리겠습니다. 어르신의 선처를 부탁드리겠습니다.

결국 요괴 영체는 건우가 바라던 대답을 내어 놓았다.

“자, 그럼 내가 너를 위해서 최선을 다할 수 있을 법한 뭔가를 말해 보거라.”

건우가 요괴 영체를 지그시 바라봤다.

= 광광 어르신께서 만들고 있는 진법의 위치를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대박이 터졌다.

자연스럽게 삼두육비 거인의 상체가 요괴 수사의 영체를 향해 숙여졌다.

“자세히 말해 보거라.”

그 기세에 요괴 영체가 파르르 몸을 떨었다.

*   *   *

“고약한! 고중무 그 놈이 혼자 도망을 쳐?!”

쿠르르르릉!

거륙하마 광광이 고함을 지르며 탁자를 내리쳤다.

그러자 그의 앞에 시립해 있던 멸계 수사들이 다급히 허리를 숙였다.

지금 광광은 매신살겸 고중무가 본계로 돌아갔다는 소식에 분노를 터트리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것은 고중무의 일일 뿐, 광광과는 연관이 없었다.

“그 놈! 길가 놈이 자신을 노릴까 겁을 먹고 튄 것이 분명해! 일은 함께 꾸며 놓고 제일 먼저 도망을 치다니! 으드드드득!”

다시 한 번 광광이 분노하며 이를 갈았다.

하지만 이미 떠나버린 것은 떠나 버린 것.

지금은 자신의 일이 더 급했다.

“놈이 산맥으로 들어왔단 말이다!”

선태 수사 길우몽은 그의 움직임을 그리 감추지 않았다.

겁도 없이 날뛰면서 행적조차 감추지 않으니 그 자신감이 얼마나 대단한가.

그래서 그런지 화신기 완경의 고계 수사들도 길우몽의 일에는 나서지 않았다.

다퉈봐야 득보다 실이 많을 거라는 계산.

그래서 길우몽이 제 마음대로 활개를 칠 수 있는 것이다.

“다들, 본계로 돌아갈 생각만 하고 있겠지. 이미 이번 멸계전은 확연히 기울었어. 다들 딴 생각만 하고 있으니.”

멸계전에 오래 참가한 수사일수록 경지가 높을 수밖에 없다.

본계보다 훨씬 쉽게 구할 수 있는 진극멸기 덕분에 멸계전에 참가한 수사들의 경지 향상이 빠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 또 오래 된 놈들일수록 화신기 완경 이후로 쌓아둔 진극멸기가 많을 수밖에 없다.

흡수하지도 못하고 멸기함분(滅氣含盆)에 쌓아둔 진극멸기.

이제 전쟁의 승패가 기우는 마당에 그것을 들고 본계로 갈 수 있다니 다들 눈이 돌아갈 수밖에.

“수레바퀴는 이미 구르기 시작했고, 전쟁은 기울었다. 그러니 나 역시 여기서 욕심을 접어야지. 그나마 본계로 돌아갈 방법이 생겼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멸계전의 우두머리 정도 되면 전황을 파악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광광은 이미 오래 전에 인계와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있었다.

차라리 인계 놈들이 전쟁의 균형을 유지해 주는 것을 고맙게 생각해야 할 정도.

그래서 인계 수사들의 암중 세력인 범천(犯天)의 꼭두각시 노릇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아닌가.

“이젠 모두 끝났다. 어서 진법을 완성해라! 내가 본계로 떠나면 너희들에게 걸린 금제도 사라질 것이다. 그걸 안다면 잠시도 태만해선 안 될 것이다!”

거륙하마(巨戮蝦?) 광광(廣狂)이 고함을 지르며 노려보자 부하 수사들이 찔끔하며 허리를 숙였다.

“제기랄! 길가 그 놈이 이곳을 찾기 전에 진법을 완성하고 본계로 떠야 하는데! 제엔자앙!”

우르르르르릉!

광광의 고함소리가 녹양산맥의 한 계곡을 떨어 울렸다.

그리고 그 순간 계곡에서 멀지 않은 곳.

언덕 하나가 허물어지며 매미 허물을 닮은 거대 괴수가 모습을 드러냈고, 그 머리 위에는 삼두육비의 거인이 가부좌를 하고 앉아 있었다.

< 구르기 시작한 수레바퀴는 냅둬도 된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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