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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양쌍인(陰陽雙人) 유매(瑜媒)와의 거래 >
“안녕하십니까. 목우(木偶)라합니다.”
“이름이 특이······. 아니군, 너는 괴뢰구나.”
“알아보셨군요. 바로 그렇습니다. 유매 주인님께서 저를 만드셨지요.”
“그렇군. 혼원석이었어! 그걸 썼구나!”
길우몽은 목우라는 수사를 한참 들여다보다가 깜짝 놀라며 소리쳤다.
목우는 혼원석을 사용해서 화신기까지 경지를 끌어 올린 괴뢰였던 것이다.
과거 종선생 이후로 처음보는 혼원석 괴뢰여서 길우몽을 흥분시켰다.
“으음. 아쉽구나. 화신기 초기, 거기서 멈췄어. 혼원석의 기운이 그 이상은 경지를 끌어주지 못했군.”
“정확히 보셨습니다. 길 수사께서도 혼원석에 대해서 아시는 바가 많으신 모양입니다.”
목우는 유매의 심부름과는 상관없지만 혼원석에 대해서는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목우가 지금 이상의 경지에 오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번보다 더 나은 혼원석이 필요한데, 마침 혼원석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를 만났으니 평정을 잃은 것이다.
“오래 된 기록에서 혼원석을 이용한 괴뢰에 대해서 본 적이 있지. 아쉽게도 인계의 기록이라 그 괴뢰가 영계 비승을 한 이후의 기록은 찾을 수 없었지만.”
“인계의 기록···. 그렇군요. 아쉬운 일입니다.”
“그런데 내가 정상적으로 경지를 끌어 올리지 못해서 모자란 부분이 많아. 질문 하나를 해도 될까?”
문득 길우몽이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목우를 보며 물었다.
“제가 답할 수 있는 것이면 뭐든 말씀드리겠습니다.”
목우는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너는 혼원석이 필요하겠지? 화신기 이상의 경지까지 오를 수 있는 것으로 말이야.”
“그야 이를 말이겠습니까. 하지만 혼원석을 구하는 것보다 그것을 연화하는 것이 더 큰 문제이지요.”
“음? 연화가 더 문제라고?”
길우몽이 알고 있는 방식에는 혼원석을 구하는 것이 문제지 연화는 그리 문제가 아니었다.
당장이라도 루야에게 더 큰 혼원석을 구해주면 그것을 흡수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시간이야 오래 걸리겠지만 이미 한 번 했던 일이니 수월하게 해 낼 수 있을 터.
정보집합체였던 루야에게 같은 작업의 반복은 그리 큰 문제가 아닐 테니까.
“한 번 혼원석을 받아들인 후에 다시 다른 혼원석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원래 가지고 있던 경지를 모두 포기해야 합니다. 말 그대로 밑바닥에서 새로 시작해야 하는 것이지요.”
“음? 그래?”
“그렇습니다. 지금껏 이룩한 것에 쌓는 것이 아니라, 모두 허물고 새로 쌓는 것이라 봐야 합니다.”
목우의 방식이 자신이 알고 있는 방식과는 차이가 있음이 확실했다.
기존의 것을 지키고 그 위에 이어서 쌓아 올리는 것과 완전히 새로 쌓아 올리는 것.
각기 상반된 장점과 단점이 명확했다.
“으음. 호기심이 생기지만 그 공법을 빼앗는 것은 좀 곤란하겠군. 유매가 사자로 보낸 너를 핍박할 수는 없으니까.”
길우몽이 아쉬운 듯이 목우를 보며 중얼거렸다.
목우는 그런 길우몽의 말에 어깨 사이로 목을 움츠렸다.
“일단 그 문제는 나중에 생각하고, 본론을 이야기 해 보자꾸나. 그래 유매가 무슨 일로 너를 보냈지?”
길우몽은 지금껏 나누던 사사로운 이야기는 별 것 아니란 듯이 진중한 표정으로 용건을 물었다.
“주인님께서 선태 수사 대인께 진법의 거래를 청하셨습니다.”
“그 진법이라는 것이 멸계 본계로 돌아갈 진법을 말하는 거겠지?”
“그렇습니다.”
“그래서 그 가격은 알고 있고?”
“상급의 기석 200개라 들었습니다. 그리고 거래는 세 차례에 나누어 진법을 확인하며 이어가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 내 거래 방식이 그렇지. 그래서 유매도 그 방식에 따르겠다는 것이겠지?”
“물론입니다. 다만 거래 장소는 유매 주인님께서 다섯 곳을 정할 테니, 그 중에 한 곳을 대인께서 고르시는 방식으로 하자 하셨습니다.”
“좋군. 다섯 곳 모두에 함정을 파기는 어렵겠지. 그리고 잘 준비된 함정이 아니면 나를 잡기는 쉽지 않을 것이고.”
“절대 그럴 일은 없을 거라 맹세 하셨습니다.”
길우몽의 말에 목우가 깊이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길우몽은 그 뒤통수를 내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나야 거래를 할 수 있으면 그만이지. 게다가 이번에 유매와 거래를 하면 내가 필요한 기석은 모두 채워지기도 하니 기꺼운 거래가 되겠어.”
길우몽은 그렇게 유매와의 거래를 허락했다.
그리고 몇 달 후, 길우몽은 유매와 거래를 약속한 작은 산맥에 도착했다.
* * *
“선태 수사라 하더니, 그게 그 유명한 선태 괴수로군.”
선태 괴수의 머리 위에 올라선 상태로 땅 밑에서 솟구치자 유매가 그런 인사말로 길우몽을 반겼다.
유매는 옥으로 만든 둥근 석판 위에 올라 앉아 있었는데, 남녀가 가부좌를 한 상태로 서로 등을 기대고 앉은 모습이었다.
“유매 수사. 이렇게 만나게 되어 반갑군.”
길우몽이 자신을 향해 있는 남성 수사를 보며 인사를 했다.
남성 수사 등 뒤에 있는 여성 수사는 기운이 거의 굳어 있는 듯이 움직임이 없었다.
길우몽은 그 여성 수사가 잠든 것이 아니라 모종의 조취로 봉인된 상태란 사실을 알아차렸다.
하지만 그것은 유매의 일, 그가 관여할 일은 아니었다.
“진법을 모두 확인하자면 며칠은 걸릴 텐데, 어쩔 건가? 따로 작은 동부라도 만들건가?”
유매가 선태 괴수의 머리 위에 올라앉은 길우몽을 보며 물었다.
“그럴 필요가 있나? 이 녀석이 있는데.”
길우몽은 퉁퉁 발을 굴러 선태 괴수의 머리를 쳤다.
선태 괴수는 그 발구름에 몸을 낮춰 땅에 퍼질러 앉았다.
“그렇지. 그 놈의 뱃속에 따로 공간이 있다고 했지? 그럼 그렇게 하는 걸로 하고, 나는 그럼.”
유매는 그렇게 말을 하고는 앉은 자세에서 소매를 휘저었다.
그러자 그가 앉은 둥근 옥석판에서 기둥이 자라, 그 위에 지붕이 얽혔다.
변화가 끝나자 유매는 제법 운치가 넘치는 정자 안에 앉은 모습이 되었다.
녹옥으로 만들어진 정자에 등을 마주하고 앉은 남녀 수사의 모습은 그린 듯이 아름다웠다.
길우몽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손바닥을 뒤집어 옥간 하나를 소환해 유매에게 날려 보냈다.
유매는 그것을 받고는 그 역시 작은 주머니 하나를 길우몽에게 날렸다.
길우몽은 그 안에 상급 기석 일흔 개가 들어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슬쩍 몸을 허공에 띄웠다.
그러자 선태 괴수가 입을 크게 벌려 그가 들어갈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사흘 후까지 진위를 확인해라. 그 후에 다음 부분을 주지.”
“알았다.”
이미 길우몽이 다른 수사들과 몇 번의 거래를 하며 틀이 잡힌 과정이었다.
첫 번째 옥간은 사흘, 다음 옥간은 닷새, 다음 옥간은 또 다시 사흘.
그렇게 열하루 동안에 길우몽의 진법을 확인하여 가능성을 살피는 것이다.
그럴 능력도 없다면 무조건 길우몽을 믿고 진법을 구하거나 아니면 거래를 하지 말아야 한다.
길우몽은 유매의 대답을 듣고 곧바로 선태 괴수의 뱃속으로 들어갔고, 사흘 후에 나와서 두 번째 옥간과 기석 일흔 개를 교환했다.
그리고 다시 닷새 후에 세 번째 옥간과 기석 예순 개를 교환했는데 이 때는 괴수의 뱃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머리에 앉아서 유매의 반응을 기다렸다.
세 번째 옥간을 받고 사흘 째 되는 날, 유매가 눈을 뜨고 길우몽을 바라봤다.
“교묘하구나. 마지막이 없어.”
그의 눈빛이 새파랗게 빛났다.
“그거야 맹약의 문제지. 그 옥간에 보면 맹약으로 마지막 내용의 금제를 풀 수 있도록 되어 있을 텐데?”
“그래, 그건 확인했지. 그래서 교묘하다고 하는 것이다. 외부 발설을 하지 못하도록 맹약을 걸어 놓고, 그것을 이행하지 않으면 진법의 핵심을 알지 못하게 하다니.”
“그 정도는 되어야 나도 장사를 할 수 있는 거지.”
“크흐흐. 그래. 그렇겠지. 하지만 이 방식이 얼마나 오래 갈 수 있을까? 오래지 않아서 어떻게든 금제를 뚫고 진법을 퍼트리는 놈들이 생길 것이다.”
“그런 놈이 있으면 잡아 죽여야지. 그리고 대가를 치르지 않고 내 진법을 이용하는 놈을 보면 당연히 그 목도 따야 하고.”
길우몽이 흉흉한 기세를 뿜어내며 말했다.
혹여라도 딴 생각은 하지 말라는 경고임을 유매도 알아보았다.
하지만 유매는 피식 웃고 말았다.
“다른 놈들 좋은 일을 내가 할 일은 없다. 나도 대가를 치르고 구한 것을 헐값에 풀어 놓을 생각은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런데?”
“지금까지 네게 진법을 구해 간 놈들이 얼마나 되지?”
“으음. 그게 왜 궁금한지 모르지만 대략 열은 넘고 서른은 안 되는 정도지.”
길우몽은 잠시 고민하는 듯 했지만 두루뭉술하게 대충 답을 해 주었다.
유매는 그 정도로도 충분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네 진법은 확실히 가치가 있다. 이 방법을 쓴다면 멸계 본계로 돌아갈 수 있음은 분명하다. 다만 아쉬운 것이 있다면 다섯 명까지 시도할 수 있지만 확실히 넘어갈 수 있는 인원은 하나란 거, 그게 아쉽군.”
“그건 어쩔 수 없다. 멸계에서 이쪽으로 넘어 오는 놈들의 통로를 중간에서 가로채서 거꾸로 이동하는 것이니까. 오는 놈이 하나면 갈 수 있는 이도 한 명, 오는 놈이 다섯이면 갈 수 있는 놈도 다섯인 거다.”
“그건 이젠 나도 알아. 하지만 문제는 내가 한 사람이 아니란 거지! 이러면 거래가 좀 어렵지 않겠나?”
“으음. 확실히 네 상황이 특이한 상황이기는 하군.”
길우몽은 생각지도 못한 유매의 말에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건 네가 알아서 해야 할 일. 진법에는 문제가 없으니 네 상황까진 내가 책임질 일이 아니다.”
그러나 길우몽은 곧바로 얼굴 표정을 바꾸며 발뺌을 했다.
그런 길우몽의 모습에 유매는 눈빛을 스산하게 번뜩였지만 곧 기세를 감추었다.
“그렇게 말을 하면 나도 할 말이 없긴 하지. 진법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니까.”
그리고 곧바로 길우몽의 말을 인정했다.
“그렇지만 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네게 있다고 들었다. 그리고 너도 내가 가진 것에 관심이 있다고 들었고.”
“목우의 이야기냐?”
“그렇다. 혼원석을 이용한 괴뢰 공법에 관심이 있다고 들었는데? 게다가 네게 비슷한 공법이 있다고도 들었고.”
“그렇지. 분명 목우와 그런 이야기를 하긴 했었지. 그런데 유매 네가 그 이야기를 먼저 꺼낼 줄은 몰랐군.”
“목 마른 놈이 우물을 파는 것이지. 그래서 하는 말인데, 서로의 괴뢰 공법을 교환하는 것은 어떠냐?”
“교환? 그저 맞바꾸자고? 그러기엔 내 공법은 너무 귀한 거라······.”
“그런 소릴랑은 하지 말고! 내 공법으로 이미 화신기 괴뢰를 만든 것을 확인하고도 그런 소리를 한다는 말이냐?”
“내가 가진 공법은 혼원석만 받쳐주면 선계에서도 쓸 수 있는 공법이라 했다. 유매 너의 공법이 그 정도가 된다는 것이냐?”
길우몽은 마치 깔보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그러자 유매의 입끝이 슬쩍 치켜 올라갔다.
“내가 가진 공법 역시 혼원석의 문제일 뿐, 경지의 한계는 없다. 물론 경지를 올리는데 필요한 진극멸기라거나 깨달음 같은 것이야 괴뢰의 자질에 따른 문제니 논외로 하고.”
“하긴 허투루 만든 괴뢰에게 아무리 좋은 공법과 혼원석을 준다고 해도 결과가 나오긴 어렵겠지. 아무튼 유매 너의 공법이 그만한 가치가 있다니 다행이구나. 그럼 좋다. 일단 일부를 교환해서 가치를 가늠해 보고 교환을 할만 하면 하도록 하자.”
길우몽은 결국 유매와 괴뢰 공법에 대한 교환 거래를 승낙했다.
그리고 두 수사는 서로 공법의 앞부분을 바꾸어 살폈다.
“끄응. 이건 인계 놈들의 공법이구나.”
“그렇다고 괴뢰가 쓰는데 문제가 될 것은 아니지. 혼원석에만 작용하는 것이라 극멸기와는 상관이 없으니까.”
유매가 앓는 소리를 했지만 길우몽은 전혀 상관없다는 듯이 그리 말을 하고는 유매의 괴뢰 공법을 살피며 흡족한 웃음을 지었다.
그 역시 멸계 공법이라 걱정을 했는데, 살펴보니 극멸기나 영기 따위와는 충돌하지 않는 공법이었다.
영기 수사든 극멸기 수사든 쓰려고 하면 누구나 쓸 수 있다는 이야기니 걱정을 던 것이다.
“좋다! 교환하자. 너는 어떠냐?”
“나도 불만없다. 이 정도면 내 공법과 바꿀만 하다.”
유매와 길우몽은 서로의 공법을 확인하고 흔쾌히 공법 교환을 결정했고, 그 거래는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그렇게 거래를 마치고 길우몽이 떠난 후, 홀로 정자에 앉아 있던 유매가 스산한 눈빛으로 중얼거렸다.
“본계로 돌아가는 것은 나중의 일이지만, 저 길가 놈의 진법을 안전하게 쓰려면 등에 붙은 혹을 떼어 내야 한단 말이지.”
유매가 고개를 돌려 힐끗 등 뒤를 돌아봤다.
“이제 새로운 괴뢰 공법이 들어왔으니 목우의 몸으로 갈아타고 새로 준비한 혼원석을 연화시켜 흡수하면 어렵지 않게 지금의 경지로 올라올 수 있을 거야. 그렇게 되면 일생의 혹을 떼고 진일보한 고계 경지로 올라갈 수 있겠지.”
이미 목우에게 쓴 것 보다 훨씬 격이 높은 혼원석을 구해 놓았다.
하지만 괴뢰로 몸을 옮기고 그 혼원석을 쓰자니 연신기부터 새로 시작을 해야 했는데 그건 너무 위험했다.
그래서 망설이고 있었는데 목우의 경지인 화신기 초기 경지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혼원석을 흡수할 방법이 생긴 것이다.
“좋아! 좋아, 아주 좋아!”
음양쌍인(陰陽雙人) 유매(瑜媒)는 좋다고 무릎을 치며 탄성을 질렀다.
그리고 그러느라 그의 등 뒤에 붙어 있는 여성 수사의 눈이 살짝 뜨였다가 감긴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 음양쌍인(陰陽雙人) 유매(瑜媒)와의 거래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