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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환장 통수 선협전-192화 (192/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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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때기를 까는 길우몽의 행보 >

퍼버벙!

“크아악! 기, 길 수사! 자비를···!”

검은 갑옷을 두른 거인이 붉은 옷의 붉은 머리카락을 지닌 요족 수사에게 주먹질을 하고 있었다.

요족 수사는 머리에 뿔이 나 있는 소머리 요족 수사였다.

그는 온 몸에 화염을 두르고 있었는데 극멸기를 품은 화염은 연속된 거인의 주먹질에 터져 나가는 중이었다.

금방이라도 거인의 주먹에 맞아 죽을 상황이라 다급하게 자비를 청하고 있는 요족 수사였다.

“자비? 지금 그런 것을 나에게 요구한다고?”

하지만 돌아오는 거인 수사의 목소리는 차갑기 그지없었다.

“지나던 길에 경지 높은 수사가 있기에 교류를 할까 하고 인사차 찾아왔는데, 그런 나를 공격한 것이 네 놈이 아니냐. 그것도 나를 죽여 내 멸기함분을 빼앗으려 했지.”

거인 수사는 요족 수사의 멱살을 잡아들어 올리며 냉기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요족 수사의 몸을 지키던 화염은 거의 사라지고 없었다.

거인 수사의 주먹질에 모두 흩어져 버린 것이다.

“자, 잘못했소이다. 내가 멸기함분에 눈이 멀어 못할 짓을 하고 말았소이다. 제발 살려 주시오. 제발.”

요족 수사가 간절한 표정으로 거인 수사를 보며 애원했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거인 수사의 몸집이 조금씩 줄어들어 8척 정도가 되며, 몸을 감싸던 검은 갑옷도 흩어졌다.

그렇게 드러난 모습은 나타결공법의 강체술을 펼친 길우몽이었다.

“어리석은 것. 네가 지금의 나와 같은 입장이면 어떻겠느냐? 너는 나를 살려주었겠느냐?”

길우몽이 요족 수사를 보며 비웃는 표정으로 물었다.

요족 수사는 길우몽의 말에 체념어린 표정을 짓고 말았다.

“하아, 그 말이 옳다. 내가 너라면 절대 용서하지 않았을 것이다.”

요족 수사는 그렇게 말을 하며 제 스스로 머리의 우각(牛角) 두 개를 뽑아냈다.

뿌지지지직!

“이 두 개의 뿔은 나의 모든 것이다. 이것을 받고 나를 살려주거나 혹은 죽이거나 알아서 해라.”

요족 수사는 그렇게 말을 하고는 길우몽에게 뿔을 내밀었다.

길우몽은 멱살을 잡지 않은 다른 손을 휘저어 그 뿔을 소매로 끌어넣었다.

“고맙다. 하지만 쓰는 수가 너무 얄팍하구나!”

길우몽은 요괴 수사의 뿔을 받아 넣은 직후 다시 그 수사를 노려보며 인상을 썼다.

그리고 동시에 요괴 수사의 머리를 잡고 아귀에 힘을 주었다.

콰드드드득! 뿌드드드득!

“크르르르륵!”

요괴 수사는 다급하게 길우몽의 손을 벗어나려 했지만 엄청난 의념의 힘에 짓눌려 극멸기를 제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리고 곧바로 길우몽의 힘에 머리통이 일그러졌다.

“네 놈이 이렇게 귀한 것을 숨겨 두고 고작 뿔을 내어 준 것으로 상황을 피하고자 한 죄가 크다.”

길우몽의 손아귀 안에서 일그러지는 요괴 수사의 머리통에서 무언가 밀려나왔다.

길우몽은 그것을 의념으로 뽑아내었다.

순간 요괴 수사는 세상을 잃은 표정으로 몸에 힘이 빠지고 말았다.

“워낭인가? 하긴 멸기함분이야 수사 마다 다른 모양으로 만들어지긴 하지.”

길우몽이 피식 웃으며 워낭 모양의 멸기함분을 허공에 띄웠다.

그리고 의념을 펼쳐 무언가를 불렀다.

키리리리리릭! 키리리릭!

그러자 그의 발밑이 갈라지며 선태 괴수가 모습을 드러냈고, 그 선태 괴수의 입에서 선태를 닮은 멸기함분이 모습을 드러냈다.

매미의 허물처럼 생긴 멸기함분은 스르륵 날아와 길우몽의 왼쪽 어깨에 내려앉았다.

길우몽은 요족 수사에게서 빼앗은 워낭 모양의 멸기함분을 움직여 선태 멸기함분에 접촉시켰다.

파지지지지지직!

순간 검은 섬광이 요란하게 일어나더니 다음 순간 워낭 멸기함분은 사라지고 선태 멸기함분만 남았다.

선태 멸기함분이 워낭 멸기함분을 삼킨 것이다.

“소화를 하려면 적잖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진극멸기가 많아서 나쁠 것은 없지.”

길우몽은 피식 웃으며 선태 멸기함분을 다시 선태 괴수에게 날려보냈다.

선태 괴수는 입을 벌려 날아오는 멸기함분을 삼키고는 길우몽의 발밑에 머물렀다.

“너는 이제 쓸모가 없구나.”

길우몽은 일을 마치고 모든 것을 빼앗긴 요족 수사의 숨을 거두었다.

살려둬서 좋을 것도 없고, 이미 멸계 수사들 사이에서 손속이 단호하기로 소문이 난 상황이라 일관성을 지키려는 것이었다.

“좋은 뜻으로 인사를 하려는 건데 왜 그리들 욕심을 내는지.”

길우몽은 그렇게 투덜거리고는 슬쩍 발을 굴려 선태 괴수의 머리 위에 내려섰다.

그리고 선태 괴수에게 명령을 내려 한쪽 방향으로 움직이게 했다.

먼 곳에서 화신기 수사의 기운이 느껴지니 가서 인사라도 하려는 것이다.

인사를 하는 중에 슬쩍 멸기함분을 자랑하고 그것에 욕심을 보이면 또 적당하게 징치를 해 줄 요량이었다.

“이번에 만날 녀석도 내가 누군지 모르는 녀석이었으면 좋겠군. 뭐, 아직 여기까지는 내 소문이 퍼지지 않았겠지.”

소문보다 빠르게 멸계 영역을 가로지르며 화신기 이상의 수사들을 찾아다니는 길우몽이었다.

사실 그 동안에도 벌써 수십 명의 화신기 수사들이 길우몽의 보물을 탐내다가 도리어 화를 당했다.

그래서 그가 지나온 지역에는 선태(??)수사 길우몽의 이름이 제법 크게 나 있는 상황이었다.

“죽거나 혹은 충성을 맹세하거나. 항상 선택은 자신의 몫인 것이지. 이번 놈처럼 되지 않는 잔머리를 굴리면 선택의 기회도 없는 거지만.”

길우몽은 그리 말했지만 사실 요족 수사가 멸기함분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잘 구슬려서 충성 맹세를 받았을 것이다.

죽여봐야 얻는 것도 별로 없는데 부려 먹을 부하로 만드는 것이 지금으로선 더 유용하니까.

하지만 요족 수사가 되지 않은 잔머리를 쓴 것도 있고, 멸기함분을 가지고 있는 죄도 있어서 깔끔하게 죽임을 당했던 것이다.

*   *   *

“이러고도 무사할 것 같으냐! 나를 해치면 하량님께서 너를 가만히 두실 거 같으냐?”

또 다시 새로운 화신기 멸계 수사와 마주한 길우몽.

그런데 이번에 만난 수사는 궁지에 몰리자 자신이 멸계7존의 한 명인 섬비(閃飛) 하량(河亮)에게 속해 있다며 길우몽을 압박하고 있었다.

하량이란 수사는 멸계7존 중에 하나로 그의 칭호처럼 빠른 속도를 특징으로 하는 수사였다.

당연히 인계 침략 초기부터 활동했던 멸계 수사로 이름이 높았다.

“나는 섬비(閃飛) 하량(河亮)이 두렵지 않은 사람이다. 그와 따질 것이 있다면 이후에 따질 일이고, 지금은 네가 지은 죄에 대한 벌을 받아야지. 그리고 아쉽겠지만 지금 이곳에는 하량이 없다.”

길우몽은 그렇게 말을 하며 한층 의념을 강하게 투사하여 상대를 압박했다.

화신기 후기의 멸계 수사는 길우몽의 의념을 견디지 못하고 몸만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역시 의념의 강력함만한 것이 없다. 화신기 후기의 극멸기 운용은 어렵지 않게 억누를 수 있군.’

길우몽은 지금 상황이 마치 어른이 아이의 팔을 비트는 것처럼 쉽다는 생각을 하며 피식 웃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섬비(閃飛) 하량(河亮)에 대해서 잠시 고민했다.

지금 이후로 하량과 적대적인 관계가 될 수도 있음을 따져보는 것이다.

하지만 그 고민은 길지 않았다.

콰직!

“컥!”

길우몽은 하량의 수하라는 놈을 단숨에 으깨버렸다.

“넌 생긴 거 부터가 마음에 안 들었어!”

길우몽은 으깨진 멸계 수사로부터 공간낭을 회수하며 중얼거렸다.

원래 인간형의 외모를 지녔던 이가 몇 번의 변이를 거쳐서 마치 공허체처럼 기묘한 부분들을 가지게 된 수사였다.

그 때문에 겉보기에 흉하고 징그러운 면이 많았다.

그런 놈이 길우몽이 슬쩍 드러낸 멸기함분에 눈이 돌아가 거처의 진법과 금제를 발동시켰다.

자신의 거처에서라면 충분히 길우몽을 제압할 수 있으리라 믿은 것이다.

당연히 길우몽이 그 수사에게 맞추어 경지를 비슷하게 드러낸 때문에 벌어진 오해지만, 길우몽은 스스로 떳떳하지 못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저 상대의 욕심이 화를 부른 상황일 뿐이었다.

“그나저나 이 놈을 죽였으니 이제 하량과 악연을 맺었다고 봐야겠지?”

어차피 자신에 대한 소문은 이미 많이 퍼진 상황이었다.

위문진과 하나가 되어 출도한 후로 길우몽의 행보는 일관된 모습이었다.

화신기 이상의 고계 멸계 수사를 만나 교류를 하고, 그 중에 말썽이 생기면 상대를 죽이거나 혹은 제압하여 수하로 삼았다.

꽤나 패도적인 행보라 할 수 있는데, 그런 중에도 길우몽은 스스로를 감추는 일은 없었다.

자신이 한 일을 부정한 적도 없고, 찾아오는 수사를 피한 적도 없었다.

그러니 하량의 수하라는 이 놈의 죽음 역시 부정하거나 감추지 않을 것이고, 어쩌면 조만간 하량을 마주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나저나 지난 5백 년 동안 세상은 그리 변한 것이 없네. 흑선풍의 세력이 무너졌는데도 인계와 멸계의 싸움에 변화가 없어.”

길우몽은 자신이 죽인 수사의 거처를 돌아보며 쓸만한 것을 챙기던 중에 문득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리고 동부의 전실에 있는 의자로 가서 앉아 생각에 잠겼다.

‘영족인 예예가 항(恒)에 정착하여 그 왕인 종관과 함께 한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문제는 흑선풍이 죽은 직후에도 인계의 대대적인 반격이 없었다는 거지.’

수도계의 싸움이야 수십 년, 혹은 백 여 년의 간격을 둘 수는 있다.

그만큼 준비에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5백 년이 지났다면 흑선풍 세력의 괴멸에 대한 반사 이익을 볼 시간은 지났다고 봐야 했다.

‘인계 놈들이 정신이 없는 거지. 그만한 호기가 또 어디 있다고 그걸 그렇게 흘려 보내?’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지만 또 다르게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분명히 현 상태를 고착시켜 유지하려는 놈들의 수작이 있었겠지. 고일대로 고인 것들이 썩어 풍기는 악취가 느껴지는 것 같군.’

분명히 그런 놈들이 있다고 했었다.

‘아참, 이거 벌써 5백 년이 넘도록 폐월 수사와의 연락을 끊고 있었군. 어쩌면 폐월 수사는 내가 죽었다고 여기고 있을지도 모르겠어.’

길우몽이 흑선풍의 부름을 받아서 염사 혼돈역에 들어간 것은 폐월도 알고 있다.

그런데 그 이후로 한 번도 연락을 하지 않았으니 길우몽이 죽었다고 여기는 것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수련 때문에 까맣게 잊고 있었다니, 이런 것을 보면 수사도 불완전한 존재인 것은 분명하지.’

길우몽은 고개를 저으며 소매를 펄럭여 수련동부의 전실을 깔끔하게 정리했다.

그의 손짓에 동부 전실의 가구와 장식이 깔끔하게 지워지듯 사라졌다.

그리고 그렇게 드러난 바닥에 길우몽이 전신 법기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전신 법기는 원래 원형인데 그것을 열여덟 개의 조각으로 나누었다.

그렇게 나눈 조각은 겉으로는 구별이 가지 않도록 똑같이 생겼는데, 길우몽은 그것을 각각의 자리에 정확하게 배치했다.

철컥, 철컥! 철컥! 철컥!

열여덟 개의 조각이 맞물려 원형 법기를 만들어내자, 그 다음은 그 법기에 드러난 동심원들을 돌려 맞추는 것이었다.

화살의 과녁처럼 원이 그려진 법기는 그 원들이 제각각 양쪽 방향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길우몽은 그것들 역시 어렵지 않게 이리저리 돌려 맞췄다.

“되었다.”

길우몽은 정말 오랜만에 전신 법기를 완성하고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곧 상대와 연결이 될지 어떨지 걱정이 되어 표정이 굳었다.

“뭐, 되면 좋고, 아니면 말고!”

하지만 곧 길우몽은 별 것 아니란 듯이 전신 법기에 극멸기를 불어넣었다.

그렇게 흘러들어간 극멸기는 전신 법기를 가득 채우고 그 위에 사람 몸뚱이 크기의 검은 안개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그 안개는 일체의 변화도 없이 그저 덩어리진 채로 전신 법기 위에 머물고만 있었다.

“결국 폐기된 것인가?”

한 쌍으로 만들어진 전신 법기였다.

폐월 쪽에는 항상 대기 상태를 유지하고 있어서 이쪽에서 연락을 하면 즉각 반응을 해야 하는데 반응이 없는 것이다.

길우몽이 살짝 실망하며 전신 법기를 거두려 할 때였다.

전신 법부 위에 머물러 있던 검은 안개가 일렁거리며 모양을 바꾸기 시작했다.

< 판때기를 까는 길우몽의 행보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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