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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격 선태(??)수사 길우몽 >
5백 년 후.
가부좌를 틀고 앉은 위문진의 앞에 선태 모양의 멸기함분(滅氣含盆)이 검은 빛으로 조용히 맥동하고 있었다.
위문진이 있는 곳은 여전히 선태 괴수의 몸속 공간이었다.
지난 5백 년 동안 위문진은 한 자리에서 진극멸기를 흡수하며 수련 경지를 끌어 올리고 있었다.
그 덕분에 영체기였던 그가 5백 년 사이에 화신기 완경까지 경지를 끌어 올릴 수 있었다.
몇 년 전에 완경에 올라 경지를 안정시키는 과정에 들어갔던 그는 드디어 그 과정을 마무리 지은 상황이었다.
스슥!
그 때, 위문진이 경지 안정화 수련을 마치고 눈을 뜨기 직전에 그의 앞에 새로운 사람의 모습이 나타났다.
이십대 초반의 잘 생긴 얼굴을 한 그는 아공간 입구를 열고 모습을 드러낸 건우였다.
건우의 등장을 눈을 감고 있던 위문진도 알아차렸지만 특별한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
“이제 우리 경지가 화신기 완경으로 서로 같아졌으니 유혼결을 마무리해도 될 것 같은데? 네 생각은 어때?”
건우가 그런 위문진을 내려 보며 물었다.
그러자 위문진은 살짝 눈을 뜨고 건우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유도 묻지 않아?”
건우가 위문진의 수긍에 조금 미안한 표정으로 그렇게 물었다.
“이유랄 것이 뭐가 있겠어? 너와 내가 하난데, 유혼결이 완성된 지금에 굳이 둘로 나뉘어 있을 이유가 없는 거지.”
위문진은 평온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하지만 화신기 완경 둘이 하나가 되는 건데? 둘이서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지 않을까? 솔직히 그것 때문에 나도 선택을 미룰까 했거든.”
건우가 아직도 고민이 된다는 듯이 위문진을 보며 말했다.
사실 유혼결에서 태어난 위문진이나 그 본체인 건우 사이에는 어떤 주도권 싸움도 없었다.
그들은 서로가 하나라는 사실에 어떤 이의도 없는 상태였다.
다만 지금 유혼결을 마무리 하는 것을 두고 고민하는 것은 두 사람이 하나가 된다는 점에 대한 고민일 뿐이었다.
“바보같은 질문이다. 지금의 너와 내가 함께 덤벼도 하나가 된 우리를 이길 수 없을 거다. 두 개의 몸으로 각각 다른 일을 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마음먹은 일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는 것이 더 중요하지.”
하지만 위문진은 일고의 고민도 없다는 듯이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그 대답에 건우의 표정이 확 밝아졌다.
“하하하. 맞다. 이제부터 멸계 수사 놈들의 머리 위에 올라서서 그것들을 휘어잡아야 하는데 지금의 우리는 좀 부족한 감이 있지.”
“그러니 너와 내가 하나가 되어야 하는 거다. 그렇게 하면 의념의 강도가 두 배가 되겠지. 의념의 크기가 조금 늘어나는 효과도 있긴 하겠지만 그것이야 별 것도 아니고.”
“그렇지! 지금보다 의념의 강도가 두 배가 되면 어쩌면 영계의 입령기 수사들과도 견줄 수 있을지 몰라. 그리고 그 정도면 화신기 완경의 수사들 따위야 거리낄 것이 없겠지. 의념의 양이야 아공간 덕분에 견줄 놈이 없는데 그 강함까지 두 배가 된다면.”
“다만 오래 묵은 놈들이라 어떤 특별한 공법을 익혔을지 모르니 항상 조심하긴 해야지.”
위문진은 그렇게 말을 하고는 다시 조용히 눈을 감았다.
건우를 그런 위문진의 태도에서 유혼결의 완성에 대한 의지를 읽었다.
건우는 잠시 위문진을 바라보다가 그의 등 뒤에 가부좌를 하고 앉았다.
그리고 건우와 위문진은 함께 유혼결의 마지막 과정인 합혼(合魂)을 시작했다.
* * *
백 장의 체구를 지닌 삼두육비의 거인이 선태 괴수의 몸속 공간에 우뚝 서 있었다.
천 여 장의 크기로 넓어 보였던 선태 괴수의 공간이 지금은 그 삼두육비의 거인 때문에 좁아 보였다.
거인이 여섯 개의 손을 가슴 앞에 모으고 영기와 극멸기, 혼돈기를 아울러 하나의 구(球)를 만들어 냈다.
파지지지지직! 파지지지직!
세 개의 기운이 모여서 불안정하게 요동치는 구체.
하지만 삼두육비 거인은 여섯 개의 손으로 그 구체를 감싸서 기운을 조율했다.
덕분에 위태로워 보이던 구체가 조금씩 안정을 찾아갔다.
“좋군.”
결국 세 가지의 기운을 조화롭게 만드는데 성공한 삼두육비의 괴물이 흡족한 웃음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영기가 일렁이는 살색 머리, 혼돈기가 감도는 회색 피부의 머리, 극멸기가 응결된 검은색의 머리가 동시에 한 목소리를 내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삼두육비의 거인은 여섯 손으로 들고 있던 구체에 강한 압력을 주어 작게 만들기 시작했다.
빠지지지직! 빠지지지직!
겨우 안정되었던 구체가 다시 위험한 소리를 냈지만 우악스런 거인의 여섯 손을 벗어나지 못하고 조금씩 줄어들었다.
결국 어린아이 주먹 크기고 줄어들어 구슬이 된 구체가 거인의 여섯 손 안에 남았다.
거인은 의념을 일으켜 그것을 세 얼굴 앞에 띄우고 한참을 살폈다.
그러더니 어느 순간 회색의 머리가 입을 열어 구슬을 꿀꺽 받아 삼켰다.
그리고 다음 순간 삼두육비의 거인의 몸에서 영기와 혼돈기가 급격하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결국 얼마 후에는 검은색의 머리를 지닌 거인만 남게 되었다.
그런데 그 모습이 극멸기를 이용하여 나타결공법의 강체술을 극성으로 펼친 길우몽과 꼭 닮아 있었다.
게다가 백장의 크기가 서서히 줄어들어 7척 정도의 크기로 줄어들자 그는 영락없는 위문진의 다른 모습 길우몽이었다.
“합혼은 완벽하게 이루어졌다. 의념의 크기도 조금 커졌고, 그 강도는 두 배가 되었다. 유혼결의 효과는 굉장하다.”
마계 수사 길우몽의 모습을 한 건우가 감탄을 감추지 못하고 중얼거렸다.
위문진을 흡수하여 인계의 유혼결을 완성하고 그 효과를 확인한 건우였다.
그 결과 위문진의 모든 것이 고스란히 건우에게로 옮겨왔다.
위문진이 익혔던 나타결공법은 물론이고 법기 제작이나 제련, 연단술, 진법 따위의 공부들도 고스란히 이어졌다.
게다가 흑선풍에게서 빼앗은 선태 괴수 또한 건우에게 그 소유권이 넘어와 있었다.
위문진의 모든 것이 건우와 통합된 것이다.
그 덕분에 건우는 멸계 수사로 활동하는 것에 전혀 문제가 없게 되었다.
게다가 그의 아공간에도 큰 변화가 일어났다.
합혼의 과정을 마치고 상태를 확인한 그는 이제 아공간의 변화를 직접 살필 생각이었다.
- 어서 오세요. 축하드려요.
건우가 아공간으로 들어가자 루야가 그를 반겼다.
그리고 그 곁에는 중년 수사 모습의 용랑과 붉은 털이 선명한 혈원이 나란히 서 있었다.
혈원은 이제 크기가 수십 장에 이르는 거체가 되었지만 몸의 크기를 용랑과 비슷하게 줄인 상태였다.
“경하드립니다. 주인님.”
“감축, 또 감축 드립니다.”
용랑과 혈원이 공손히 허리를 숙여 축하 인사를 해 왔다.
그들은 위문진이 수련을 하는 5백 년 사이에 차례로 깨달음을 얻어 화신기 경지에 올라섰다.
그리고 그 경지를 다독이느라 수련거처에서 잘 나오지 않았는데, 이번에 건우가 큰 공법 성취를 이루자 축하하기 위해 나온 것이다.
“그래, 고맙구나. 자, 그럼 어디 새로 생긴 영역에 가 볼까?”
루야, 용랑, 혈원의 인사를 받아주며 슬쩍 허공에 손을 저었다.
그러자 건우를 포함한 넷이 일순간 아공간의 한 곳으로 이동되었다.
- 으으, 극멸기는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아요.
“확실히 영기와는 상극입니다. 지금도 조금씩 제 영기가 극멸기를 만나 흩어지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러니 극멸기를 쓰는 멸계 놈들과 영기 수도사들이 공존하지 못하는 것이군요.”
극멸기를 직접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셋이 처음 극멸기를 접한 반응은 그와 같았다.
- 그나마 건우 님이 아공간 분할로 극멸기 지역을 분리해 둬서 다행이지 아니었으면 난리가 났을 거예요.
“그러게 말입니다.”
“그나저나 주인님의 아공간에 극멸기 지역이 생긴 것은 정말 의외입니다. 이게 문제가 되지는 않을지 모르겠습니다.”
혈원이 걱정스런 눈빛으로 건우를 보며 말했다.
건우는 그런 혈원에게 괜찮다는 듯이 손을 저어 보였다.
“이렇게 공간 분할을 해 두면 영기와 극멸기가 서로 섞일 일이 없다. 그러니 문제될 것은 아니지. 더구나 이렇게 아공간에 극멸기 영역이 생긴 후로 나타결공법의 극멸기 운용이 한결 쉽고 편해졌다.”
- 그야 아공간 자체가 건우 님의 의념 공간이기도 하니 당연하겠죠.
“하긴, 주인님께서 극멸기를 쓰시니 의념 공간에 극멸기가 있는 것도 당연하긴 하겠습니다.”
“생각해보니 당연한 이치이긴 합니다.”
용랑과 혈원도 건우의 아공간에 극멸기 구역이 새로 생긴 것을 그렇게 받아들였다.
“게다가 나타결공법을 사용하여 영기를 모두 극멸기로 바꾸거나 극멸기를 영기로 바꾸어도 아공간에선 변화가 없다는 거야. 그건 정말 다행이지. 아니었으면 아공간 전체가 극멸기로 가득할 수도 있었는데 말이지.”
건우는 위문진과 하나가 된 후 아공간에 극멸기 영역이 새로 생긴 것을 알았다.
그리고 나타결공법을 펼치면서 기운의 변화가 아공간 전체에 영향을 끼칠 것을 염려했는데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다.
공법에 따른 기운의 변화는 아공간 밖에서 일어나는 형식이었던 것이다.
- 그나마 다행이죠. 그런데 건우님.
루야가 밝은 표정으로 맞장구를 치더니 정색하며 건우를 불렀다.
“그래, 무슨 일이냐?”
건우가 물었다.
- 이제 어쩌실 거예요? 의념도 두 배 강해지고, 의념 공간의 크기도 훌쩍 커졌으니 이제 멸계 수사들을 파리 잡듯이 잡고 다니실 건가요?
루야는 건우가 크게 성장했으니 멸계 수사를 마음껏 유린하고 다닐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는 모양이었다.
“아무리 지금의 나라도 멸계 수사들 전체를 적으로 둘 수는 없지. 입령기를 엿봤다는 경지는 나도 아직 이르지 못한 경진데, 그 쯤 되는 놈들이 여럿 모이면 나도 감당하기 어려울 걸?”
- 하지만 멸계 수사들은 그렇게 무리를 짓는 일이 드물잖아요.
“그렇다고 해도 내가 분탕질을 치고 다니면 어떻게 나올지 모르지. 솔직히 멸계 8존인가 하는 것들은 아직도 둘 이상은 감당할 자신이 없기도 하고.”
- 네? 정말요?
“흑선풍이 쉽게 죽었다고 그를 얕볼 수는 없지. 당시 예예 수사가 다루던 진법에 화신기 괴수가 백여 마리는 얽혀 있었을 걸? 게다가 영체기나 성단기 괴수는 또 얼마나 많았겠어? 그런데 그 괴수들의 힘을 진법으로 집중시켰지. 그러니 흑선풍을 비롯한 화신기들이 그리 허무하게 죽은 거다. 지금의 나도 그런 진법에는 자신이 없다.”
“옳습니다. 주인님께서 아무리 강해졌다고 해도 한 손이 열 손을 이기긴 어렵습니다.”
“용랑의 말이 옳습니다. 이제 앞으로는 저희 둘도 마음껏 부려 주십시오. 지금껏 주인님의 은혜만 입은 터라 송구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핏덩이 말처럼 저희를 우마처럼 부려 주십시오.”
혈원과 용랑이 자신들도 돕겠다며 나섰다.
하지만 건우는 고개를 저었다.
“멸계에서 활동을 하는데 너희가 나설 일은 없다. 그렇다고 너희를 인계 영역으로 보내자면 또 너희의 신분을 증명해야 하는데 그것도 만만치 않고.”
“그, 그건······.”
“······.”
건우의 말에 용랑과 혈원이 대답이 궁색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당장 그들이 할 일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어쨌거나 이제 어지간한 놈이면 가볍게 제압할 수 있을 테니 답답함은 덜 하겠지. 한동안 쌓인 스트레스나 좀 풀며 명성을 쌓아야지. 악명이라도 쌓아서 이름값을 높여야 어디서 무시를 당하지 않지.”
건우는 그렇게 말을 하고는 활짝 웃었다.
그리고 그 뒤로 멸계 영역에 새로운 수사에 대한 이야기가 급격하게 퍼지기 시작했다.
선태(??)수사 길우몽의 등장이었다.
< 출격 선태(??)수사 길우몽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