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189화 (189/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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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멸계 수사 길우몽의 눈누나나나 >

“어라? 흑선풍? 그런데 상태가 영 이상했던 거 같은데?”

길우몽은 자신과 예예가 있는 석실로 이동된 후, 중첩된 공간 균열에 갈려나가는 흑선풍을 보며 깜짝 놀라고 있었다.

물론 그런 중에도 매번 그랬듯이 공간 균열에서 죽어가는 수사의 공간낭을 빼내기 위해서 애를 쓰고 있었다.

위험한 공간에 직접 들어가지 못하니 외부에서 공간낭을 빼내려는 것인데 다행히 흑선풍의 공간낭 하나가 위험 영역 밖으로 끌려 나왔다.

매번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간혹 성공하는 경우가 있었다.

“와, 흑선풍의 공간낭? 여긴 뭐가 들어 있을지 궁금하네. 흐흐흑.”

저도 모르게 환호성을 올리는 길우몽.

그에겐 멸계8존의 하나인 흑선풍이 죽어 나갔다는 사실보다 자신의 손에 쥐어진 공간낭이 더 중요해 보였다.

‘나도 뭐라도 얻는 게 있어야지. 자그마치 령부를 투자한 장산데.’

길우몽은 힐끗 예예 수사의 눈치를 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러면서 내심으로 조금 찔리는 면이 없지는 않았다.

사실 길우몽은 종관이 준 령부에 혹시 자신이 파악하지 못할 무슨 수작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완전히 버리진 못했다.

그래서 꺼림칙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데 예예의 상태를 보고는 곧바로 령부를 써버리기로 마음을 먹은 것이다.

물론 령부에 담긴 심오한 법문과 구결, 공법상의 활용이나 새로운 비기 등이 탐나긴 했다.

하지만 의심스럽고 꺼림칙한 것을 품고 있기에는 길우몽의 상황이 좋지 않았다.

멸계로 투입된 밀정이란 신분도 그렇지만 혹여 본체인 건우와의 관계라도 드러나면 정말 곤란한 일이 될 것이다.

그런 우려를 안고 있느니 차라리 예예를 구하는데 쓰고, 화신기 완경의 우군을 하나 만드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었다.

원래는 그냥 버리려는 생각도 있었던 물건이지만 어쨌건 쓰긴 쓴 상황이 되었으니 손해를 채우긴 해야 할 거 아닌가.

- 이제 끝을 내자꾸나. 준비가 끝났다. 조만간 염사 혼돈역 전체에 진법 폭발이 일어날 것이다.

그 때, 예예 수사의 의념이 길우몽의 머릿속으로 전해졌다.

드디어 때가 된 것이다.

“그럼 예예 수사께선 어서 떠나셔야지요. 물론 저도 어디 안전한 곳에 옮겨 주시고요.”

- 그렇게 해야지. 너는 혼돈역 외곽으로 보내주마. 이번 진법 폭발은 주로 진법을 이루는 괴수들을 괴멸하는데 집중될 것이니 인계 수사들 중에는 살아남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멸계 놈들이야 이미 피해가 막대하니 이쯤해도 될 것 같고.

“이미 차고 넘칩니다. 화신기는 거의 죽지 않았습니까. 고생하셨습니다.”

길우몽이 예예에게 정중하게 허리를 굽혀 인사를 했다.

특히 자신과 안면이 있는 멸계수사들이 전부 죽은 것이 특히 마음에 들었다.

길우몽의 부탁을 받은 예예가 특별히 신경써서 그 수사들을 처리해 준 것이다.

- 네가 인사할 일이 아니다. 급하니 인사는 짧게 하자꾸나. 어쨌건 다음에 또 보겠지. 강녕하려무나.

예예는 그 말과 함께 길우몽에게 공간 균열을 씌웠다.

그리고 길우몽이 사라진 것과 동시에 예예 역시 가슴에서 화려한 금빛 광채가 번뜩이더니 씻은 듯이 모습을 감췄다.

전송 령부를 사용한 것이다.

그 얼마 후 염사 혼돈역은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폭발을 일으켰고, 거의 모든 땅과 하늘이 불타올랐다.

이변이 있다면 그런 중에 주먹 크기의 벌레 덩어리가 화산 폭발 속에서 빠져 나온 것이겠지만 아무도 그 사실은 알지 못했다.

그 벌레들은 원래는 흑선풍이 길우몽에게 붙였던 것인데 공간 이동 중에 서로 다른 곳으로 이동되어 염화업동을 떠돌고 있었다.

그러다가 폭발이 일어났는데 운이 좋게도 죽지 않고 살아남았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본체인 흑선풍이 사라지자 생존 본능만 남아서 뭉쳐 있는 상태였다.

그것이 이후에 어떻게 될 지는 아무도 모르고 또 관심도 없었다.

그런 벌레 보다는 흑선풍의 세력이 염사 혼돈역에서 괴멸을 당했다는 것이 중요했다.

따지고 보면 인계를 침략한 멸계 세력의 한 축이 무너진 것이다.

그렇게 인계와 멸계 사이의 전쟁에 중요한 전환점이 만들어졌다.

“그나저나 이제 어디로 간다? 아니 그 전에 이번에 얻은 것들로 경지를 좀 끌어 올리는 것이 중요하겠지?”

길우몽은 간신히 염사 혼돈역을 빠져나와 멸계 영역으로 향하며 중얼거렸다.

그런 길우몽의 입가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그도 그럴 것이 흑선풍의 공간낭에서 기대하지 않았던 큰 보상을 얻었기 때문이다.

흑선풍이 지금껏 인계 침략을 하며 모았던 진극멸기가 길우몽의 손에 들어왔다.

물론 공간낭에 그것을 넣어 둔 것은 아니었고, 모처에 동부를 짓고 진극멸기를 모아두었다.

“천지 법칙에 따라서 인계에선 화신기 이상은 올라갈 수가 없지. 그러니 흑선풍도 화신기 완경에서 입령기를 엿본 이후로 더는 성장할 수가 없었지. 그래서 진극멸기가 있어도 흡수할 수가 없었던 거고.”

그랬다.

화신기 완경에 이른 멸계의 수사들은 더 이상 진극멸기를 흡수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인계에 작용하는 법칙의 힘 때문이었다.

인계 수사들 역시 영계에 오르지 못하면 입령기에 오를 수 없다.

그저 이곳이 일반적인 인계와 달리 영계 진입을 앞두고 있어서 그나마 입령기 경지를 엿볼 수 있을 뿐이다.

그렇다 하여도 결국 화신기 완경인 것.

멸계 수사들 역시 그 법칙을 벗어날 수 없고, 극멸기를 얻어도 쓰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하지만 다시 멸계 본계로 돌아간다면 얼마든 흡수할 수 있을 터.

그러니 화신기 완경에 이른 멸계 수사들은 진극멸기를 얻는 족족 깊이 보관해 두었다.

언제건 멸계 본계로 돌아가면 흡수하여 빠르게 경지를 끌어 올릴 생각으로.

“하하하. 그런 엄청난 진극멸기가 내 손에 들어왔단 말이지. 하하하하.”

길우몽은 생각할수록 기분이 들떠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리고 흑선풍의 보물 창고로 가는 발걸음엔 조급함이 가득했다.

어서 빨리!

*   *   *

<흑선풍이 죽었다.>

<흑선풍의 세력이 염사 혼돈역에서 괴멸적인 피해를 입었다.>

<흑선풍의 진극멸기가 어딘가에 남아 있다.>

<흑선풍의 진극멸기는 그의 공간낭에 없었다. 지금 어딘가 숨겨져 있다.>

길우몽이 흑선풍의 세력권으로 가고 있을 때, 인계에 자리 잡은 멸계 영역은 그렇게 떠들썩해지고 있었다.

길우몽은 거쳐가는 도시나 성에서 그런 소식을 들을 때마다 흑선풍의 진극멸기를 노릴 이들이 늘어날 것이 걱정되었다.

물론 흑선풍은 자신의 보물을 지킬 최고의 한 수를 마련해 뒀기에 어느 정도 안심이 되기는 했지만 흑선풍의 진극멸기를 노리는 이들도 만만치 않았다.

대부분 화신기 이상의 멸계 수사들이 흑선풍의 세력권으로 몰려드는 중이라 했다.

물론 그 아래 경지의 멸계 수사들도 눈치를 보며 기웃거리는 형편이었다.

어떻게든 흑선풍이 숨겨놓은 진극멸기를 찾아 흡수하기만 하면 곧바로 화신기 완경까지 치고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흑선풍이 인계 침략 초기부터 지금까지 모은 진극멸기의 양을 추측해 보면 화신기 완경을 몇 명은 만들어 낼 정도의 양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러니 고계 멸계 수사들의 무거운 엉덩이까지 들썩이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왜 진극멸기를 공간낭에 넣어 직접 보관하지 않았다는 거지?”

“이런, 그렇게 소식이 늦다니. 그래서야 어디······.”

“그렇게 놀리지만 말고, 아는 것이 있다면 내 궁금증을 풀어주는 것이 어떤가?”

“뭐, 아는 놈들은 다들 아는 이야기니 무료함을 달랠 겸 그렇게 해 볼까?”

2층의 목조 건물 다관(茶館)에 탁자를 달리 하고 멸계 수사들이 제각각 앉아 있었다.

그런데 자리는 각기해도 이야기는 모두 어우러져 함께 하는 것이 특이했다.

길우몽도 그 다관의 한쪽 구석에 탁자 하나를 차지하고 앉아서 차를 마시는 중이었다.

수사가 굳이 뭔가를 먹고 마실 이유는 없다.

하지만 수사들 중에는 먹고 마시는 행위 자체의 즐거움을 버리지 않는 이들이 제법 많았다.

게다가 먹고 마셔서 수련에 도움이 되는 종류도 제법 많은 편이라 수사들의 왕래가 많은 곳에는 이런 다관이나 음식점이 성황을 이루기도 했다.

게다가 그렇게 수사들이 모이면 자연스럽게 정보 교환이 이루어진다.

가만히 앉아서 차만 마셔도 주위에서 떠드는 소리에 적잖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길우몽이 지금 다관에 앉아 있는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흑선풍 세력이 점령하고 있던 지역으로 들어서면서 돌아가는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다관에 들어온 것이다.

“이건 알겠지? 진극멸기는 하급을 여럿 모아서 합치면 그보다 위의 것을 만들 수 있다는 거.”

질문을 받았던 수사가 찻잔을 들어 입술을 축이고는 말을 시작했다.

“그걸 모르는 이가 어디 있다고!”

“그래, 그렇지만 일정 수준 이상의 진극멸기를 합치기 위해서는 그만한 준비가 필요함을 아는 이는 드물지.”

“음? 진극멸기를 합치는데도 뭐가 필요하다고? 그냥 여럿 모아서 의념으로 연화하고 합치면 되는 거 아닌가?”

“그러게? 고등급의 진극멸기를 합성하기 위해서는 뭔가 다른 것이 필요했던 건가?”

대부분 그런 사실은 몰랐다는 듯이 다관의 저계 수사들이 웅성거렸다.

“사실 화신기 중기 정도까지는 알 필요도 없는 내용이지. 그 경지까지 필요한 진극멸기는 합성이 그리 어렵지 않으니까.”

그런 주위 사람들의 반응에 말을 하던 수사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어깨에 힘을 주며 말했다.

“뭐, 화신기 후기나 완경까지 필요한 진극멸기도 굳이 다른 과정을 거치지 않고 일반적인 합성으로 만들어 낼 수는 있지. 그만큼 손실이 생기긴 하지만 다들 그러려니 하는 추세고.”

“그렇지. 나고 그렇게 알고 있었다고.”

“시끄러! 지금 그게 아니라 더 좋은 방법이 있다는 소리를 하는 거잖아!”

“그래, 조용히 해 봐. 어이, 계속 해!”

“쯧쯔. 더 무슨 말이 필요하지? 고등급의 진극멸기를 합성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방법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방법을 쓰면 진극멸기 중에서도 아주 특별한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래서 흑선풍이 그것을 만드느라 진극멸기를 공간낭에 넣어 직접 가지고 다니지 못했다. 그런 이야기지.”

“그렇군. 그럼 도대체 그 방법이란 것이 뭐지? 진극멸기를 손해보지 않고 합성하는 방법, 아니 특별한 진극멸기를 만드는 방법이라니!”

“그것까지야 내가 어찌 알아? 그리고 안다고 해서 지금 여기서 떠들 이유가 있나? 재미 삼아 이야기를 시작했더니 보따리를 훔치려고 드네.”

한 수사의 말에 이야기를 풀어 놓던 수사가 얼굴을 찡그렸다.

그리고 이후로는 차만 마실 뿐 다시 이야기를 시작하지 않았다.

다관에 있던 수사들은 서로 눈총을 주며 자잘못을 따지다가 하나 둘, 자리를 떴다.

그리고 그들이 떠난 자리에는 또 다른 수사들이 들어와 앉았다.

길우몽은 그런 모습을 지켜보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확실히 저 수사의 말이 맞긴 하지. 진극멸기는 등급이 올라갈수록 합성에서 손실이 커진다. 그래서 어느 정도 이상부터는 합성의 손실을 줄이기 위한 방법들을 마련하지. 게다가 특별한 진극멸기는······.’

흑선풍의 공간낭에서 발견한 옥간에 그 내용이 있었다.

화신기 이후부터 사용할 진극멸기는 그냥 합성만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진극멸기로 그릇을 만들어 그 안에 농도 짙은 진극멸기를 담아 놓은 형태로 만들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진극멸기로 만드는 그릇.

그것이 담고 있는 진극멸기의 농도를 짙게 만들고 유지시켜준다.

게다가 필요한 양만큼 나누어 쓸 수 있게 만들어주기도 한다.

흑선풍 역시 그런 진극멸기의 그릇을 만들었고, 또 그 크기를 키우느라 진극멸기를 품에 넣고 다니지 못했다.

‘그건 내 거야. 누구도 흑선풍의 진극멸기를 얻을 순 없을 걸? 내가 가진 열쇠가 없다면 보물창고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테니까.’

길우몽은 그렇게 자신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마음 한편에는 혹시 누군가 그것을 발견해서 가지고 가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없잖아 있었다.

그래서 그의 발걸음은 여전히 조급함이 서려 있었다.

그렇게 흑선풍의 세력권으로 들어온 후, 다시 여섯 달이 지날 무렵, 길우몽은 드디어 보물 창고의 열쇠를 사용할 수 있는 곳에 도착했다.

삐이이이이이이!

험준한 산맥의 초입에서 길우몽의 입에 물린 한 뼘 크기의 짧은 대롱 호각이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 멸계 수사 길우몽의 눈누나나나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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