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186화 (186/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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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멸계 수사는 죽은 멸계 수사뿐이다 >

우우우우웅! 후우우웅!

매방의 공격 명령에 화신기 등급의 멸계수가 길우몽을 향해 달려들었다.

매방의 멸계수는 사족보행의 짐승 모양이었지만 일반적인 짐승과 달리 이형의 느낌이 강했다.

번들거리는 피부는 물론이고 갈기 대신에 꿈틀거리는 촉수들과 상어의 그것을 닮은 이빨들이 더욱 흉흉했다.

그런 거대 멸계수가 길우몽을 단번에 집어 삼킬 듯이 달려든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길우몽의 몸이 급격하게 커지며 순식간에 이두사비(二頭四臂)의 거인으로 변했다.

검은색과 회색의 머리 두 개에 네 개의 팔을 지닌 거인은 키가 삼십 장에 이를 정도로 컸다.

게다가 왼쪽과 오른 쪽의 팔다리에는 각각 극멸기와 혼돈기를 휘감고 있었는데, 그 기세가 매우 강렬했다.

“그래봐야 고작 영체기일 뿐, 감히 내 멸계수의 상대가 될 것 같으냐!”

매방은 그런 길우몽의 모습에 크게 놀라면서도 자신의 승리를 의심치 않았다.

그리고 그 말처럼 매방의 멸계수는 길우몽을 압도했다.

키리릭 키리리리!

콰드득! 퍼벅! 퍽퍽! 콰득!

“크윽! 아아악!”

거대 멸계수는 이두사비의 거체가 된 길우몽의 팔을 물어뜯고, 촉수를 창처럼 써서 몸을 찔렀다.

그나마 길우몽의 몸이 강체술로 강화되지 않았다면 단번에 팔이 잘리고 몸에 구멍들이 생겼을 것이다.

“노오옴!”

길우몽이 용을 쓰며 거대 괴수의 입에 물리지 않은 세 개의 팔을 이용해서 괴수를 공격했다.

세 개의 주먹이 괴수의 머리를 두드리고 촉수를 잡아 뽑았다.

하지만 영체기와 화신기의 차이는 그렇게 쉽게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아무리 길우몽이 화염지대의 금제에 영향을 덜 받는다고 해도 아주 받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러니 영체기 수준의 그것도 금제의 영향을 받는 길우몽이 화신기 등급의 멸계수에게 이길 가능성은 처음부터 없었던 셈이다.

그럼에도 길우몽이 매방의 멸계수와 맞서 싸운 것은 그 외에 다른 수가 없었기 때문이고, 격한 상황에서 공법의 수련 경지를 높이기 위해서였다.

사실 길우몽은 지금이라도 마음만 먹으면 매방과 그의 멸계수를 한 번에 처리할 수단을 분명히 가지고 있었다.

‘이제 일곱 번 남았는데 또 쓰기엔 너무 아깝단 말이지. 차라리 그걸 시험해 볼까?’

실패하면 어쩔 수 없이 마귀팔면호령의 일곱 번 남은 기회 중에 하나를 쓰면 될 일.

길우몽은 자신이 떠올린 수법을 일단 한 번 써 보기로 마음먹었다.

키리리리릭!

바로 그 때, 매방의 멸계수가 길우몽의 팔을 물고 거칠게 머리를 흔들었다.

삼십 장에 이르는 길우몽의 몸이 그 힘에 펄럭이는 옷가지처럼 이리저리 휘날렸다.

퍼벅!

“크으윽!”

다음 순간 멸계수가 길우몽을 바닥에 내동댕이 치더니 큰 앞발로 내리밟고 머리를 물어뜯으려 했다.

길우몽은 몸을 뒤틀었지만 짓누르는 앞발의 힘을 벗어나지 못했다.

이러다간 멸계수에게 머리를 물어뜯기게 될 상황.

길우몽은 급하게 몸의 크기를 줄였다.

텁, 텁텁텁!

하지만 몸의 크기를 줄였지만 끝내 멸계수의 입을 피하지 못한 길우몽.

멸계수는 작게 변한 길우몽을 한 입에 물어 삼키더니 주둥이를 몇 번 벌렸다 닫으며 씹는 동작을 했다.

“크하하하. 그래 잘 했다. 이제 그 몸뚱이는 뱃속에서 소화를 시켜버리고, 영체와 공간낭만 따로 빼 내면 된다. 잘 했다. 잘 했어.”

매방이 그 모습에 크게 웃으며 즐거워했다.

화신기 멸계수라면 어렵지 않게 영체기 길우몽을 소화시킬 것이고, 그 과정에서 그 영체만 따로 분리해 내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이후엔 길우몽의 영체에 추혼술을 펼쳐, 알고 싶은 것은 알아내면 그만이다.

생각만 해도 절로 흥이 날 일이다.

매방은 기뻐하며 자신의 멸계수가 길우몽을 빨리 소화하기를 기다렸다.

쿠쿠쿠쿠쿠쿵! 퍼벙!

“크악! 이, 이게 무슨!”

하지만 매방의 바람은 거대한 몸뚱이가 터져 나가는 멸계수의 모습과 함께 산산히 부서졌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길우몽! 네 놈! 무슨 짓을 한 것이냐!”

매방은 평생을 공들여 키웠던 멸계수가 고깃조각이 되어 흩어진 모습에 제 정신이 아니었다.

싸움에 패했으면 제일 먼저 몸을 피할 생각부터 했어야 하거늘, 그는 도리어 피안개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길우몽에게 따지고 들었다.

콰곽!

하지만 그 대가는 길우몽의 우악스런 손아귀에 목이 잡히는 볼썽사나운 꼴로 돌아왔다.

“매방.”

“기, 길 수사!”

길우몽의 부름에 매방은 번뜩 정신이 들었다.

지금 이 순간 자칫하면 그의 생이 허무하게 끝날 수도 있었다.

아니 어쩌면 죽은 것보다 더한 상황도 있을 수 있었다.

“우리가 서로 그다지 돈독한 사이는 아니었어도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칠 사이는 더더욱 아니지 않았나?”

“이, 이보게 길 수사. 내가 요, 욕심에 눈이 멀어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했네. 제, 제발 용서해 주게.”

“용서?”

“아니, 이것들을 모두 내어 주겠네. 그리고 멸계수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비전의 방법도 알려주겠네.”

“그걸 매방 네가 알려주지 않는다고 내가 얻지 못할 거라고 생각해? 네가 나에게 추혼술을 펼칠 수 있는데, 나라고 그렇게 하지 않을 것 같아?”

“자, 잘못했네. 내가 정말로 잘못했으니 제발 살려주시게.”

매방은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서 머리를 굴렸다.

대가를 치르고 살아날 수 있다면 그게 뭐든 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영체를 뽑아 추혼술을 펼치겠다는 길우몽의 말에 마음만 다급해 질 뿐, 좋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쯧, 얼굴을 마주 보고 있는 것도 기분이 나쁘군. 잘 가게 매방, 끝이 이렇게 되어 섭섭하군.”

그런 중에 길우몽은 매방에게 작별 인사를 하며 매방의 몸으로 극멸기와 혼돈기를 불어 넣었다.

그리고 연이어서 밀려드는 새로운 기운.

“이, 이게 무슨!”

순간 매방의 까마귀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그는 길우몽이 영기를 자신의 몸에 밀어 넣는 현실을 이해할 수 없었다.

멸계 수사가 어떻게 영기를?

우르르르르르릉! 쿠우우웅!

“커억!”

퍼버벙!

하지만 매방의 의문은 해소될 시간이 없었다.

짧은 순간 매방의 몸에 들어간 극멸기와 영기가 혼돈기의 인도를 받아서 서로 만나 충돌을 일으킨 것이다.

혼돈기는 극멸기와 영기가 상쇄되지 않게 하면서 서로의 극상성을 극대화시켰다.

그리고 이어진 것은 두 기운의 충돌로 인한 폭발.

“화신기 멸계수도 견뎌내지 못한 힘이야. 영체기, 그것도 금제로 약해진 너 따위가 버틸 수는 없지.”

길우몽은 폭발과 함께 영체까지 심각한 타격을 입은 매방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러면서 소매에서 작은 호리병을 꺼내 매방의 영체를 빨아들였다.

매방의 영체는 폭발의 충격으로 제 정신을 찾지 못한 상태였다.

아마도 오랜 시간이 지나야 제 정신을 차리겠지만 그 전에 추혼술로 백치가 되고 말 것이다.

이후엔 윤회에 돌려보내거나 아니면 마귀와의 거래에 써 먹어도 될 것이다.

고작 영체기의 영체라 큰 거래를 하기는 어렵겠지만.

“그나저나 이 놈, 가진 것이 제법 많은데? 숨은 부자였군?”

길우몽은 죽은 매방의 공간낭을 수습하여 살피며 밝은 표정을 지었다.

물론 공간낭의 상당 부분에는 금제가 걸려있어 아직은 내용물을 완전히 파악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일단 파악된 것만도 지금의 길우몽보다 부유해 보였다.

“좋아, 아주 좋아. 하하하. 역시 좋은 멸계 수사는 죽은 멸계 수사 밖에 없는 거였군. 이렇게 푸짐한 선물을 받다니.”

길우몽은 기분 좋게 웃었다.

마귀팔면호령의 일곱 번 남은 기회를 써 먹지 않고도 화신기 등급의 멸계수를 처리했다.

물론 목숨을 건 도박과 같은 수로 마귀팔면호령이라는 보험이 없었다면 시도도 못했을 일이지만 일단 결과가 좋으니 다 좋은 거 아니겠나.

“든든한 뒷배가 있다는 게 이렇게 좋은 거군. 미친 짓을 하면서도 위험 부담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니, 이렇게 좋을 순 없지.”

길우몽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나타결공법의 극멸기만 남기고 혼돈기를 갈무리했다.

당연히 길우몽의 머리 위에는 검은색의 극멸기 머리만 남아서 붉은 눈을 껌뻑거렸다.

“그나저나 좀 더 서둘러야겠네. 이러다가 종관 선배에게 많이 뒤처지겠어.”

염화업동의 공간 균열에 대한 파악은 이제 끝났다.

화산의 중심에 누가 빨리 도착하느냐 하는 것은 특별한 공간 균열을 얼마나 자주 만날 수 있느냐 하는 운에 달린 문제였다.

그렇다고 길우몽에게도 기회가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길우몽은 서둘러 다시 염화업동의 동굴을 내달리기 시작했다.

*   *   *

- 가만히 둬도 알아서 잘 하네요.

루야가 문진을 살필 수 있는 투명한 아공간 입구에서 눈을 떼며 말했다.

건우는 수미산 밑에서 검선의 유산을 살피던 명상을 중지하고 눈을 떴다.

“문진도 나잖아. 내가 그 정도도 못할 거 같았어?”

- 그러면서 문진이 위험할 때마다 뛰쳐나가려고 움찔한 건 뭐에요?

“그런 적 없다만?”

- 네에, 제가 잘못 본 거겠죠.

“그나저나 점점 위험해 지기는 하는 거 같지?”

- 그렇죠. 주위에 화신기 존재들이 득실거리는데요. 그것도 완경 수준을 뛰어 넘어 입령기를 엿봤다는 자들도 적지 않을 테죠.

“도관중도 그렇고, 종관도 있지. 게다가 멸계8존의 하나라는 흑선풍도 있고.”

건우는 염화업동에서 괴수를 처리하며 공간 균열을 찾고 있는 문진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이번 매방의 멸계수도 사실 문진이 감당하기엔 벅찬 상대였다.

멸계수에게 잡아먹힌 후에 뱃속에서 영기와 극멸기를 충돌시킨다는 계획은 정말 확률 낮은 도박이었다.

성공했으니 다행이지 아니었다면 어쩔 수 없이 마귀팔면호령의 마귀를 불러내야 했을 것이다.

“앞으로 그보다 더 위험한 상황이 이어지겠지.”

- 그런데 만약 인계 화신기 수사와 멸계 화신기 수사가 만나는 자리에 문진이 가게 되면 그 때는 어쩌죠?

“뭘?”

- 그 때에 문진이 될 건지, 길우몽이 될 건지 선택을 해야 하잖아요.

“당연히 길우몽이어야지. 앞으로 계속해서 멸계 쪽에서 활동을 해야 하는데.”

- 그런가요? 그럼 종관 수사를 만나면 어쩌죠?

“나타결공법의 극멸기 강체술을 쓰면 종관도 문진의 정체를 알아낼 수 없을 거야. 외모가 닮은 것을 제외하면 전혀 다른 사람이라 생각하겠지.”

- 음. 그럴까요?

“아니라고 해도 생각이 있다면 문진에게 아는 척을 하지 않을 거고, 아는 척을 한다고 해도, 멸계 수사들이 그걸 믿어주진 않겠지. 얄팍한 이간질이라 생각할 테니까.”

- 아, 그건 그렇겠네요. 인계 수사가 길우몽을 보며 무슨 말을 해도 멸계 수사들이 믿기는 어렵겠죠.

“그나저나 화산의 중심에서 인계 화신기들과 멸계 화신기들이 대대적으로 마주치는 상황이 되면 내가 나서도 별 도움이 안 될 수도 있다는 게 문제야. 문진이 빨리 예예를 만나야 할 텐데 말이지.”

건우는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지 않았다.

입령기를 엿본 수사들의 능력은 그로서도 쉽게 감당할 수준이 아니었다.

과거 제윤국의 국사인 손진만 하더라도 건우와 동수를 이루지 않았던가.

지금 건우가 그 때보다는 더 강해졌다고 해도 입령기를 엿본 수사들은 가볍게 볼 수 없는 이들이었다.

“검선의 유산 백팔십검의 공법 구결까지 수습했지만 여전히 천지 영기가 희박한 것이 문제야.”

건우가 아공간 밖을 내다보며 중얼거렸다.

검선의 검술은 백팔 검까지가 인계에서 온전하게 펼칠 수 있는 검술이었다.

그 이상은 모두 영계 수준의 천지 영기가 필요했다.

천지 영기의 수준이 낮은 인계에선 제대로 펼치기 어렵고, 펼친다고 해도 제 위력이 나오지 않았다.

게다가 억지로 펼치면서 부족한 영기를 본인의 영기로 감당해야 하니 그 후유증도 컸다.

- 그래도 비장의 한 수로 제대로 한 방 먹일 수 있는 수단은 있는 거잖아요.

“그래, 대신에 나도 큰 대가를 치러야 하지. 그래서 될 수 있으면 쓸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어서 빨리 멸계 놈들을 몰아내고 인계를 영계로 편입시켜야 할 텐데 말이지.”

건우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새로운 공간 균열에 뛰어드는 문진을 지켜봤다.

운이 좋게 또 다시 화산의 내부로 이동하는 특별한 공간 균열을 발견한 문진이 희희낙락하며 공간 균열로 들어가고 있었다.

< 좋은 멸계 수사는 죽은 멸계 수사뿐이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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