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185화 (185/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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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염화업동 선연과 악연 >

‘헛! 화신기!’

길우몽은 공간 이동으로 나타나는 수사의 경지를 곧바로 알아차렸다.

게다가 지금 나타난 수사는 멸계 수사가 아니라 인계 수사였다.

길우몽의 눈동자가 빠르게 움직였다.

머리카락과 눈썹, 수염이 모두 은색으로 빛나고 금포로 된 화려한 복장을 입은 미중년 외모의 수사가 그런 길우몽을 차분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너는 누구냐?”

그 때, 모습을 드러낸 화신기 인계 수사가 길우몽을 보며 물었다.

“저는 위문진이라 합니다. 선배님.”

문진은 허리를 숙여 인사하며 나타결공법을 이용해 영기를 몸에 둘렀다.

“위문진? 들어본 적이 없는 이름이구나.”

“진관국 삼합하 대성에 속한 상동강 소성 수련원 출신으로 진관국 국가 수련원에 있었습니다.”

“으음? 어디 보자. 그래, 들은 기억이 있다. 그 때는 문진이라 들었는데 성이 위씨였더냐?”

“네, 선배님.”

“그 사이에 벌써 영체기라, 성장이 무척 빠르구나. 그럼 지금은 대륙 수련원에 있더냐?”

영체기가 되면 일곱 대륙에서 각각 운영하는 수련원에 들 자격을 얻게 된다.

“그것은 아닙니다. 따로 수련을 하고 있었습니다.”

“오호, 그래. 그렇구나. 그런데 어찌 염화업동(炎火嶪洞)에 들게 된 것이냐?”

“호기심에 어쩌다보니······.”

“말하기 싫은 구석이 있는 모양이구나. 아무려면 어떻겠느냐. 이리 만난 것도 인연이니 한동안 함께 하자꾸나. 나는 종관(縱貫)이라 한다.”

“그렇군요. 들은 기억이 있습니다. 항국(恒國) 소속이셨지요.”

“옳다. 내가 바로 항국의 국왕이지.”

“그런 분께서 어찌 이곳에 직접 오셨습니까?”

한 나라의 대표 수사가 혼돈역에 들어오다니.

문진은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보통 국가의 왕 역할을 하고 있는 수사는 일종의 내정에 집중하는 편이다.

대외적인 무력 활동은 다른 수사가 맡는 것이 보통인데, 항국의 국왕이 이런 곳에?

“별 것 아니다. 그저 묘한 끌림을 느껴서 산책 하는 기분으로 온 것뿐이지.”

종관은 그렇게 말을 하고는 주변을 살폈다.

문진이 만든 전투의 흔적이 여기저기 남아 있었다.

“멸계 놈이 이곳에서 싸움을 벌인 모양이구나.”

“그런 것 같습니다. 저도 조금 전에 이곳에 도착해서 자세한 것은 모르겠습니다.”

문진은 조금 일찍 도착한 것 뿐이란 말로 모든 의심을 떨쳐냈다.

“심심찮게 공간 균열이 생겨서 이리저리 사람을 옮겨 놓는 곳이라 항상 긴장을 늦출 수가 없는 곳이지.”

종관은 그렇게 말을 하고는 잠시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하다가 눈을 떴다.

“자, 이쪽으로 가자꾸나. 그래도 목적지는 분명하지 않으냐. 도대체 이 화산의 중심에 있는 보물이 뭔지 궁금하니 말이다.”

그리고 종관은 앞으로 뚫린 동굴 통로를 가리키며 앞장서기 시작했다.

결계와 금제가 첩첩한 곳이라 화신기 수사인 종관도 함부로 빠르게 이동하지는 않았다.

덕분에 문진은 한 걸음 뒤에서 종관을 따르며 편안하게 걸음을 옮겼다.

그런 중에 몇 번 화산의 괴수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가볍게 처리할 수 있는 것은 문진이 나서서 법기 결속을 이용해서 처리했고, 문진에게 부담스러운 것은 종관이 가벼운 손짓으로 날려 보냈다.

종관은 특이하게도 화살을 본명법보로 사용하는 수사였다.

문진은 그것을 보고 종관이 이곳에 있는 궁선의 유산인 거대각궁 영족과 어떤 교감이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보아하니 종관 역시 화신기 완경에서 입령기를 엿본 것처럼 보였다.

그런 경지에 있으니 거대각궁이 본체인 예예 수사에게서 뭔가 느꼈을 수도.

“어허! 또 다시 공간 균열이다. 아이야.”

염화업동(炎火嶪洞) 이레 째, 종관이 몇 걸음 앞에 기미를 보이는 공간 균열을 문진에게 경고했다.

그리고 손짓으로 문진을 가까이 불렀다.

그 동안은 공간 균열을 피했지만 이번에는 함께 그 안으로 뛰어들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 동안 종관이 파악한 바에 의하면 공간 균열에도 종류가 여럿인데, 그 중에 염화업동의 안쪽으로 이동시켜 주는 것도 있었다.

그런 공간 균열만 골라서 타다보면 결국 염화업동의 끝, 화산의 중심에 닿게 될 것이란 것이 종관의 결론이었다.

“저것이 그 공간 균열입니까?”

문진이 종관 옆으로 다가서며 물었다.

“그렇다. 하지만 네가 걱정이구나.”

“괜찮습니다. 어차피 균열을 타지 않아도 선배님과 헤어지게 될 테고, 함께 균열을 타면 다시 한 곳에 떨어질 확률도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열에 일곱은 서로 다른 곳에 떨어질 것이다. 그나마 조금이라도 염화업동의 안쪽으로 이동된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제 저도  조금만 더 노력하면 공간 균열을 미리 감지할 수 있고, 또 생성되는 모습을 보고 안쪽으로 이동할 수 있는 것을 구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곧바로 선배님의 뒤를 따라서 화산 중심으로 가겠습니다.”

“하하하. 그래. 어차피 내가 계속 너를 지켜줄 수는 없는 노릇이니 제 앞가림은 제가 해야겠지. 다만 이걸 받아라.”

종관은 문득 생각이 났다는 듯이 소매에서 법부 하나를 꺼내 주었다.

금색의 현묘한 법문이 빼곡하게 들어찬 그 법부는 보는 것만으로 사람을 홀리게 하는 힘이 있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대단한 것을 알긴 하겠지만 도무지 파악할 수가 없습니다.”

문진이 깜짝 놀라며 말했다.

“인계에서 쓰는 부적이 법부라면 영계에서는 령부(靈符)를 쓴다. 이것은 그 령부를 인계로 가지고 온 것이다.”

“려, 령부란 말씀입니까?”

화신기 수사도 령부는 만들지 못한다.

그것은 영계에 비승한 화신기 수사라도 마찬가지다.

결국 이 부적은 입령기 이상의 존재가 만든 물건이란 소리였다.

“그리 놀랄 것은 없다. 인계로 내려오며 그 위력이 크게 줄었다. 너도 알겠지만 법칙의 힘이 작용하여 상위 계의 것은 하위 계에서 제약을 받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괜찮다. 넣어 두거라. 그리고 정말 위험한 상황이 되면 그것을 쓰거라. 영기를 불어 넣고 의념을 일으키면 곧바로 작동을 할 것이다.”

“그럼 어찌 되는 것입니까?”

“하하하. 어찌 되기는 위기에서 벗어나는 것이지. 그걸 쓰게 되면 항국의 편전에 도착할 것이다. 하하하하.”

“네? 항국의 편전이요?”

그 말은 혼돈역을 벗어나 항국까지 전송된다는 이야기였다.

“돌아갈 때에 쓰려고 가지고 온 것이지만 인연이 닿은 너를 위해 내어주는 것이다.”

“가, 감사합니다. 선배님.”

“하하하. 그래, 그럼 되었다. 자, 어서 들어가자꾸나.”

종관은 문진의 감사 인사가 부담스럽다는 듯이 그의 소매를 끌고 공간 균열 안으로 들어갔다.

*   *   *

“허, 그것 참.”

문진은 잘려나간 소매를 보며 허탈한 표정으로 탄식을 터트렸다.

그가 매방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올 때와 비슷하게 이번에는 그의 소매 끝부분이 종관의 손에 들려 있을 것이다.

어쨌건 다시 혼자가 된 문진은 급히 의념을 퍼트려 주변을 살폈다.

당연히 문진은 나타결공법을 운용하며 언제든 영기와 극멸기를 상황에 맞게 쓸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문진은 자신이 퍼트린 의념에 익숙한 느낌의 멸계 수사 하나가 걸리는 것을 느꼈다.

문진은 곧바로 의복을 바꾸고 강체술을 끌어 올리며 극멸기를 몸에 둘렀다.

다른 수사는 근처에 없으니 일단 멸계 수사 노릇을 하기로 한 것이다.

게다가 나타결공법의 극멸기를 이용한 강체술은 신체를 강건하게 만드는 것과 함께 약간의 외형 변화도 만들어 주었다.

그래서 문진 상태와는 꽤나 다른 모습이 될 수 있었다.

“어? 길 수사!”

그런 문진을 향해 저 앞쪽 통로에서 매방이 달려왔다.

문진의 의념에 잡혔던 멸계 수사는 다름 아닌 매방이었던 것이다.

“아이고. 반갑네.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되는군.”

매방이 더없이 기뻐하는 표정으로 문진을 향해 다가왔다.

강체술을 끌어 올린 길우몽의 모습을 한 문진은 그대로 가만히 서서 매방을 맞이했다.

매방은 강체술을 풀지 않는 그의 모습에 잠시 주춤했지만 다시 밝은 표정을 지었다.

“그 동안 고생이 많았던 모양이군. 이렇게 경계를 하다니 말이네. 이보게 길 수사, 나 매방이네. 뭘 그리 경계하나?”

“우리 사이가 돈독하기야 하지만 그렇다고 아주 마음을 놓을 수야 있나? 멸계에서 살아온 세월이 몇이데? 게다가 흑선풍 어르신의 지침이 이미 유명무실해 진 것을 아는 마당엔 더욱 이럴 수밖에 없지.”

“하긴, 이해하네. 하하하.”

길우몽의 말에 매방도 까마귀 가면 같은 얼굴로 크게 웃으며 기분나빠 하지 않았다.

그렇게 다시 길우몽과 매방이 함께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며칠 후.

퍼벅! 콰광!

“크으윽! 매, 매방! 네 놈이! 울컥!”

거대 괴수의 앞발을 맞고 벽으로 날아가 처박힌 길우몽이 피를 토하며 매방을 노려봤다.

매방은 까마귀 가면 얼굴로 활짝 웃으며 그런 길우몽을 보았다.

그리고 그 매방의 곁에는 화신기 급의 괴수 하나가 있었다.

“어떤가? 이 녀석은 내가 지금까지 심혈을 기울여 키운 녀석이라네. 그래서 그런지 나보다 경지가 높아진 지금도 나를 충실하게 따르지.”

매방이 고개를 숙여 머리를 들이미는 괴수의 코를 쓰다듬어주며 말했다.

길우몽은 통로의 막다른 곳에 갇혀 있는 상태라 빠져나갈 길이 없어 보였다.

게다가 매방의 곁에 있는 네발 짐승 괴수는 화신기 급이었다.

그런 놈을 뚫고 나간다는 것은 지금의 길우몽으로선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키는 길우몽의 눈빛은 전혀 빛을 잃지 않고 있었다.

“왜지?”

길우몽이 매방을 보며 물었다.

“별 거 아니야. 네가 익힌 공법, 그게 꽤나 탐이 났단 말이지.”

“공법? 나를 죽이고 그걸 어떻게 얻을 생각이지?”

“완전히 죽이지 않으면 되는 거지. 영체만 잡아서 추혼술을 쓰면 되지 않겠어?”

“하하하. 그래, 영체기가 되니 그런 수도 있군.”

“게다가 네가 알려준 이곳 염화업동의 비밀. 설마 균열 중에 그런 특별한 것이 있을 줄은 몰랐지.”

“내가 균열의 종류를 알려주고, 또 구별법도 알려줬는데 그걸 네가 독차지 하겠다고?”

“최대한 빨리 화산의 중심으로 가야지. 그리고 그곳에서 보물을 얻고 빠져 나가야 하거든.”

“네가? 고작 영체기 수준인 네가 어찌 화신기들의 틈에서?”

길우몽은 그게 가능할 것 같으냔 듯이 비웃다가 매방의 곁에 있는 괴수를 보고는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생각해보면 화신기 수준의 괴수가 있다면 매방의 계획이 아주 근거가 없다 하진 못했다.

이곳 화염지대는 전체적으로 금제 때문에 수사들이 제 힘을 내지 못한다.

게다가 이곳 염화업동은 그 금제가 중심으로 갈수록 점차 강해진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괴수들은 그 금제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고, 도리어 힘이 늘어난다.

이런 곳에 화신기 급의 괴수가 있다면 도박을 해 볼 법도 했다.

더구나 공간 균열의 비밀을 알았으니 최대한 빠르게 중심으로 간다면 제일 먼저 도착해서 보물을 취할 가능성이 아주 없지는 않다.

그렇게 영기를 손에 넣으면?

입령기를 엿본 수사라도 감당할 수 있지 않을까?

“자, 이제 반항은 그만두고 곱게 잡혀라. 그러면 너의 영체는 소멸시키지 않고 놓아줄 것을 약속하지.”

“물론 추혼술을 펼쳐서 백치가 된 후에?”

길우몽이 매방의 제안을 비웃었다.

그리고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나타결공법을 운용하여 극멸기의 강체술을 극도로 끌어 올렸다.

그런 길우몽의 머리 위에 붉은 눈의 극멸기 머리가 나타나 매방을 노려봤다.

“여, 역시 대단해! 멋지군!”

매방이 홀린 듯이 극멸기로 이루어진 나타결공법의 검은 머리를 보며 감탄했다.

“네가 멸계수를 숨기고 있을 줄은 몰랐지. 그것도 화신기 급의 멸계수라니 정말 놀랐다. 하지만 비장의 수를 너만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지. 너, 실수한 거다!”

길우몽은 그렇게 외치며 지금껏 감췄던 혼돈기를 극도로 끌어 올렸다.

그러자 길우몽의 검은 머리 옆에 회색 머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혼돈기로 이루어진 회색 머리는 눈동자까지 잿빛이었는데 그 시선이 매방을 노려보자 매방은 저도 모르게 세 걸음이나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곧 자존심이 상했다는 듯이 자신의 멸계수를 향해 명령을 내렸다.

“죽여! 죽여서 영체를 뽑아와라!”

< 염화업동 선연과 악연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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