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182화 (182/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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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족(靈族) 예예(刈叡)가 왜 이곳에? >

길우몽은 초점 없는 눈으로 허공을 응시했다.

그가 바라보는 방향은 화염지대의 중앙.

거대한 화산이 있는 곳, 보광이 충천하는 바로 그 방향이었다.

‘이것은 궁선의 유산, 아니 그 유산에서 태어난 영족의 기운이다.’

길우몽은 드디어 이곳 염사 혼돈역에 있다는 보물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이름이 예예(刈叡)였지. 그런데 그녀가 어떻게 이곳에 있는 거지? 그 당시 십이비선의 영계 비승로에서 되돌아 나온 것은 봤지만 나, 아니 본체와 마찬가지로 이 세상에 떨어졌던 건가?’

길우몽은 십이비선 중에 궁선의 유산에서 태어난 영족의 마지막을 떠올렸다.

예예(刈叡)란 영족 수사가 마지막에 영계 비승로를 거꾸로 나와서 건우와 함께 폭발에 휩싸였던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어째서 이런 곳에 머물고 있는 거지?’

당시 예예(刈叡)는 화신기 후기의 수사였다.

그 정도라면 이곳 세상에서도 떵떵거리며 살 수 있을 정도는 된다.

게다가 영족이니 멸계 수사가 아님을 증명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영족은 본체를 드러내는 것으로 자신을 증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건에서 태어나는 것이 영족이다보니 본체를 드러내 그 물건의 기원을 따지면 태생을 설명하기 쉽다.

당연히 예예(刈叡) 수사가 다른 인계 세상에서 온 것은 쉽게 증명할 수 있었을 것이고, 본체인 건우처럼 어정쩡한 상태도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왜 이런 곳에서 대규모 금제를 펼치고 인계와 멸계 양쪽에서 공격을 받는 신세가 되었을까.’

길우몽은 어떻게 해서든 예예(刈叡) 수사와 직접 대화를 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예예(刈叡) 수사가 있는 화산까지는 아직도 멀고 멀었다.

그 중간에 얼마나 많은 난관이 있을지 모른다.

오죽하면 8존 중에 하나인 흑선풍이 나서서도 화염지대의 공략이 지지부진한 상태일까.

‘그래도 어떻게든 수를 내 봐야 할 텐데, 고작 영체기 수준이라 한계가 많군.’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경지가 낮으면 할 수 있는 일도 그만큼 초라할 수밖에 없다.

영체기가 낮은 경지라 할 수는 없지만 그 모든 것은 비교 대상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어떻게 한다?’

예예(刈叡)의 존재를 확인한 길우몽의 머릿속이 복잡해지고 있었다.

*   *   *

“궁선의 유산이 왜 여기 있어?”

- 궁선의 유산이 아니라 예예 수사라고 해야죠. 이젠 물건이 아니라 영족인데요.

“지금 그게 중요해?!”

- 그러게요. 그 때, 건우 님이 이곳에 떨어질 때, 그 영족도 함께 떨어진 거겠죠. 그러다가 운 없이 혼돈역에 떨어진 것이 아닌가 싶네요.

“그런데 왜 저렇게 괴상한 금제를 펼쳐 놓고 있는 거냔 말이지. 저건 마치 스스로를 가둬 놓은 꼴이잖아.”

- 그건 관점 차이죠. 저 화염지대의 금제를 그 영족이 펼친 거라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일 수도 있죠.

“스스로를 보호한다고? 아! 그렇구나. 당시 영계 비승로가 폭발하면서 공간 균열에 휩싸였지? 나는 뭐 아공간에 숨어서 버틸 수 있었지만 그 영족은 그게 아니었겠네?”

- 네, 그 추측이 확실히 일리가 있어요. 건우 님이나 되니까 그 공간균열에서 별 피해 없이 버텼지, 다른 수사들이었으면 죽어도 몇 번은 죽을 일이죠.

“음, 그러니 궁선의 유산, 아니 예예(刈叡) 수사가 크게 원기를 상했다고 보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저런 금제를 펼치고 요양을 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는 일이지.”

- 그게 아니라면 다른 누군가가 예예 수사를 잡아두기 위해서 금제를 펼쳤을 수도 있고요. 지금 상황을 보면 그럴 가능성도 아주 없지는 않죠.

“음, 확실히 화염지대의 괴수들이 예예(刈叡) 수사의 기운을 훔쳐 먹고 있는 것 같기는 하지. 문진은 아직 그런 사실은 모르는 모양이지만.”

- 영체기 밖에 안 되었는데 그걸 어떻게 알겠어요?

“이럴 때에는 영통이 되지 않는 것이 답답하다니까. 내 영혼의 조각인데 거의 완전한 독립체라니.”

- 그래도 서로 같은 존재라는 인식은 분명하니 다행이죠. 안 그랬으면 동족혐오로 서로 죽고 죽이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고요.

“야, 끔찍한 소리 하지도 마라. 그리고 유혼결은 아무리 뜯어봐도 의심스러운 구석이 없었어. 혼을 다루는 거라서 내가 얼마나 세세하게 살폈는지 너도 알잖아.”

- 그야 그렇죠. 네네, 그건 인정합니다.

“아니지.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야. 그 예예 수사에 대한 이야기나 하자.”

- 해 봐야 소용도 없는데요? 어차피 문진이 알아서 할 일인데 건우 님이 관심을 둘 일이 있어요?

“야! 지금은 비상 상황이잖아. 잘 보고 있다가 정 급하다 싶으면 내가 나서야지. 아니면 혈원을 내보내거나.”

- 아, 혈원을 문진에게 붙여 주시게요?

“그 놈, 흑성성패력 공법으로 드디어 화신기가 되었으니 써먹어야지. 그 동안 밥값도 못하고 있었는데.”

- 용랑도 오래지 않아서 고비를 넘길 거예요. 기미가 보이고 있어요.

“다들 화신기가 되면 여기저기 써 먹어야지.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제대로 밥값을 못한 놈들이라니까.”

건우는 용랑과 혈원을 떠올리며 입맛을 다셨다.

축기기 수준의 꼬꼬마를 데려다가 화신기까지 키웠는데 정작 그 놈들은 별로 한 일이 없어 보였다.

고작해야 몇 가지 잔심부름을 한 정도가 전부 아닌가 말이다.

건우는 화신기가 되면 녀석들을 제대로 부려 먹어야겠다고 벼르며 다시 아공간 밖의 문진을 바라봤다.

“이참에 그냥 밖으로 나서서 내가 직접 예예 수사를 만나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은데?”

그러다가 건우는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입령기를 엿봤다는 수사들 여럿이 모여서도 화염지대에서 애를 먹고 있는데, 자신이 홀로 나서서 길을 뚫고 들어가는 고생을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기다리면 길이 열리겠지. 그러면 적당히 때를 봐서 예예 수사를 먼저 만나는 쪽으로 계획을 세워보자. 그게 아니면 어부지리를 노려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게다가 아직 예예 수사의 정확한 상황도 알 수 없으니 그게 좋은 거 같기도 하네.’

어부지리를 노리는 것은 고전적인 방법이지만,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기도 했다.

건우는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고는 다시 검선의 유산에 집중했다.

백팔십 번째의 검에 숨겨진 구결은 좀처럼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또한 언젠가는 풀어낼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   *   *

“이보게, 우몽.”

길우몽이 거처에서 쉬고 있는데 매방이 급히 그를 찾았다.

“무슨 일인가?”

그 동안 제법 친해져서 대화가 자연스러운 두 사람이었다.

“총 동원령일세.”

“뭐? 총 동원령? 그게 무슨 소린가?”

매방의 말에 길우몽이 깜짝 놀라며 물었다.

“얼마 전에 보광이 충천한 것은 자네도 알겠지?”

“물론이지, 나도 미약하게나마 그 기운을 느꼈으니.”

“으음. 그런가? 나는 제대로 느끼지 못했는데, 확실히 우몽 자네의 강체술은 특별한 구석이 있는 모양이군.”

“아니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지 않나. 총 동원령이라니, 무슨 말인가?”

“아! 그렇지. 도관중 어르신께서 공략 속도를 높이기 위해서 영체기 이상을 모두 불러 모으셨다네.”

도관중은 갈곡을 책임진 다섯 화신기 중에 우두머리였다.

입령기를 엿보았다는 경지의 그가 무슨 일로 갑작스러운 명령을 내린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 길우몽이었다.

“흑선풍 어르신께서 따로 언질을 주신 모양이야. 우리 갈곡이 다른 쪽보다 인계 놈들의 방해를 적게 받으니 공략에 집중하기 좋겠다고 말이야.”

“으음. 그렇군.”

말이야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대놓고 돌출되면 그 때는 또 상황이 어떻게 달라질지 모른다.

“이번에 보광이 충천할 때에 뭔가 새로운 것이 드러났는지 흑선풍 어르신께서 갑자기 서두르시는 모양이더군.”

매방도 그 이상은 모르는 모양이었다.

길우몽은 고개를 끄덕이고 매방과 함께 갈곡 본진의 상공으로 날아올랐다.

그곳에는 이미 도관중을 비롯한 다섯 화신기 수사들의 거대한 비행 법기가 떠 있고, 그 뒤로 영체기들의 비행법기가 무수히 떠 있었다.

길우몽은 따로 비행 법기를 꺼내지 않고 매방의 까마귀 썰매에 함께 올랐다.

길우몽이 가진 비행 법기는 성단기 때에 만든 것이라 이런 자리에서 쓰기에는 부족함이 많았다.

영체기가 되어 새로 만들고 있기는 하지만 멸계 쪽의 지식이 부족하여 쓸 만한 것을 만들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다른 수사가 쓰던 것을 썼다가는 어떤 후환이 있을지 모르니 쓸 수도 없었다.

[들어라!]

그 때, 도관중의 목소리가 갈곡 상공에 떠 있는 모든 수사들의 머릿속을 울렸다.

의념을 이용하여 뜻을 전달하는 방식이었다.

모두의 시선이 도관중이 올라탄 거대 괴수의 머리로 집중되었다.

도관중은 비행 법보가 아니라 비룡 괴수를 탑승용으로 쓰고 있었다.

비룡 괴수는 피막으로 된 날개를 가진 거대한 도마뱀 모습으로 길우몽은 그것을 보고 건우의 기억에서 와이번을 떠올렸다.

다만 그 크기가 머리에서 꼬리까지 1천 장이 되는 거체여서 건우 기억속의 와이번과는 괴리감이 상당했다.

[흑선풍 님께서 이르시기를 이곳에 있는 보물 영기는, 영족일 가능성이 높다 하셨다. 그리고 아울러 그 영족은 멸계에 속한 놈이 아니라 하셨으니, 그것이 인계 놈들과 함께 하게 되면 그 후환이 무궁할 것이다.]

“어?”

길우몽은 도관중의 말에 깜짝 놀라며 저도 모르게 탄성을 지르고 말았다.

그런 길우몽을 매방이 힐끗 쳐다봤지만 길우몽 이외에도 영족이란 말에 놀란 이들이 많아 크게 주목을 받지는 않았다.

‘흑선풍이 예예 수사의 정체를 알아차렸군. 그래서 인계보다 먼저 예예 수사에게 닿으려는 것이야.’

길우몽은 곧바로 흑선풍이 서둘러 갈곡을 움직이려 하는 이유를 알아차렸다.

[지금부터 우리는 최대한 빠르게 금제를 뚫고 화산 지역에 닿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러니 죽기를 각오하고 싸움에 임해야 할 것이다.]

도관중은 그렇게 말을 하고 자신이 타고 있는 비룡의 머리에 발을 굴렀다.

도관중의 발에 머리가 짓눌린 비룡 괴수는 크게 포효를 터트리고는 몸을 상승시켰다.

그리고 그를 따라서 다른 네 화신기 수사들의 비행 법기도 상승했다.

남은 것은 영체기 수사들의 비행 법기.

그들은 다섯 화신기 수사들이 열어준 공간을 통해서 빠르게 화염지대를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공략을 하라고 했으니 해야 하고, 서두르라 했으니 서둘러야 했다.

천천히 뒤따르는 화신기들은 영체기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적이 나타날 때에나 나설 것이 뻔했다.

“작정하고 백여 명의 영체기 수사들이 나섰으니 효과는 좋겠군.”

“대신에 우리가 돌출되면 다른 쪽의 괴수들까지 우리 쪽으로 몰리겠지. 우리와 인계 놈들까지 여덟 방향의 공략이 비슷비슷한 이유가 뭐였나? 튀어나가면 망치질을 당하기 때문이지.”

매방의 말에 길우몽은 그렇게 말을 하며 흑선풍의 의도를 추측했다.

아마도 갈곡이 크게 돌출된 후, 화염지대의 괴수들이 갈곡 쪽으로 몰리면 반대쪽에 있는 흑선풍이 화산으로 빠르게 치고 올라가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인계 놈들은 상황을 모르지만 흑선풍은 미리 알고 준비할 테지. 운이 좋다면 한 번에 화산까지 닿을 수도 있을 테고.’

어쨌건 그건 그거고, 지금 당장은 갈곡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마주오는 괴수들을 상대하는 것이 급했다.

“먼저 가지!”

길우몽이 그렇게 말을 하고는 나타결공법의 강체술을 끌어 올려 검어진 피부에 또 극멸기의 허상갑옷까지 더한 모습으로 둔광을 펼쳐 괴수들 틈으로 난입했다.

콰드드득! 콰직! 퍼버버벅!

길우몽이 괴수들 틈에서 육박전을 시작하는 것으로 갈곡의 화염지대 공략을 위한 총공세가 시작되었다.

< 영족(靈族) 예예(刈叡)가 왜 이곳에?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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