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181화 (181/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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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곡(渴谷)에 배치되다 >

길우몽은 염사 혼돈역에 들어온 후 곧바로 흑선풍 휘하의 부대를 찾았다.

흑선풍은 멸계 영역에서 그 이름이 드높은 수사로 인계 침공 초기부터 지금까지 인계 침공을 주도하는 인물이었다.

이번 염사 혼돈역의 멸계 측 인원은 모두가 바로 이 흑선풍의 지휘를 받아야 했다.

그렇지 않고 개별 행동을 하다가는 쥐도 새도 모르게 죽임을 당해도 하소연 할 길이 없었다.

흑선풍이 그리 하라 했으니 그리 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영체기 초기로군.”

“그렇소.”

“특기가 무엇인가?”

“강체술을 이용한 무투요.”

“오호? 강체술? 특이하군.”

길우몽의 대답에 면접을 맡은 영체기 후기 수사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강체술은 비주류에 속하는 수련법이었다.

극멸기로 신체를 강건하게 만드는 공법이지만 그 대신에 술법에 약한 면이 있었다.

비록 고위 수사들 사이에 거리란 것이 큰 의미가 없다고 해도, 극멸기를 이용한 원거리 공격과 육체를 이용한 근접전은 다를 수밖에 없다.

강체술을 익힌 경우는 자칫 원거리에서 두드려 맞기만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몸 하나는 튼튼하지요. 어지간해서 부러지고 터지는 일은 없습니다.”

“허허. 그거 좋군. 그렇지 않아도 염사의 화염지대에서 수사들이 육체적인 부담을 많이 느끼고 있는데 강체술이라면 그럴 일은 없겠어.”

“화염지대가 그리 험합니까?”

“그곳의 금제 때문에 능력의 팔 할이 깎인다고 봐야지. 물론 무리해서 일순 능력을 끌어 올릴 수는 있지만 항상 그리 하고 다닐 수는 없지 않겠나.”

“그렇군요.”

“그런 곳에 배치가 된다면 자네의 특기를 잘 살릴 수 있겠군.”

“그런데 흑선풍 어르신께서 멸계 수사들 사이의 다툼을 금지하셨다 들었습니다만?”

“흠, 내 그 이야기도 해 줄 참이었네. 이곳 염사 혼돈역에 있는 동안에는 절대로 같은 멸계 수사에게 위해를 가해서는 안 될 것이네.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지면 흑선풍 어르신의 벌을 피할 수 없을 것이야.”

“그 이야기는 듣고 왔습니다. 밖에서도 누차 강조를 하더군요.”

“가볍게 듣지 말게. 흑선풍 어르신의 신통은 가히 일절이라 그 분을 속일 수는 없을 테니까.”

“네, 알겠습니다. 명심하지요.”

“음, 그래, 길우몽이라고? 자네는 화염지대의 갈곡(渴谷)이라는 곳에 배정을 해 주겠네.”

“갈곡.”

“가 보면 알 것이네. 이 옥간을 가지고 전송진을 찾아가게.”

“알겠습니다. 그럼 다음에 기회가 되면 또 뵙지요.”

“그래, 그러지.”

길우몽은 면접 수사에게서 화염지대의 갈곡이란 곳에 배정을 받고 전송진을 탔다.

그리고 갈곡에 도착한 길우몽은 그곳에 화신기 수사가 다섯이나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게다가 그 다섯 중에 하나는 입령기를 엿봤다는 모양이니 가히 이쪽 세상에서는 최고 경지의 수사라 할 수 있는 이였다.

어쨌건 그 다섯 화신기 수사가 갈곡 공략을 책임지고 있었고, 그 아래로 영체기와 성단기의 수사들이 즐비했다.

어차피 염사 혼돈역에는 성단기 아래로는 지원조차 받아주지 않으니 축기기 수사는 꼴도 볼 수 없었다.

“그러니까 주로 괴수를 상대한다는 말이군?”

“그렇다. 지금 화염지대에는 인계 놈들이 네 방향, 우리 멸계에서 네 방향을 틀어잡고 공략을 하는 중이다.”

“서로 많이 싸운다고 들었는데 그렇진 않은 모양이네?”

길우몽이 아쉽다는 듯이 입술을 혀로 적시며 말했다.

그 모습에 마주 앉은 동료 수사가 피식 웃었다.

그 동료 멸계 수사는 얼굴이 마치 까마귀 가면을 쓴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직접 본 적은 없지만 조인족 중에 오아(烏鴉)족이라는 종족이었다.

이 오아족 수사는 갈곡에서 길우몽과 함께 조를 이루어 활동하게된 동료로 매방(每方)이란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다른 쪽에선 인계 놈들이랑 많이 싸운다고 하는데 우리 갈곡 쪽은 그렇지 않아.”

“왜 그렇지?”

“그야 우리 갈곡이 세 갈래의 공략 부대 중에서 중앙에 있기 때문이지.”

“그러니까 좌우에 있는 부대들 덕분에 이쪽 갈곡에 인계 수사들의 난입이 적다는 이야기군.”

“그렇지.”

“그럼 남은 한 갈래는 좌우에 인계 놈들이 있겠군.”

“맞아. 그래서 그 쪽은 연이어 계속 싸움을 하고 있지.”

“피해가 크지 않나?”

“그럴 리가! 흑선풍 어르신이 그 쪽에 계시니 큰 문제는 없지.”

“아, 흑선풍 어르신이 그 쪽에 계시는군? 그런데 거긴 어딘가?”

“적염하(赤炎河)라 부르는 곳이네.”

“음, 이름만 들어도 용암이 흐르는 강이 있을 것 같은 곳이군.”

“하하하. 바로 그거지. 그 이름대로 붉은 용암이 흐르는 곳이네. 무척 위험한 곳이고 화계 괴수들이 많은 곳이기도 하지.”

“그렇군.”

길우몽이 매방의 말에 여상하게 대꾸를 할 때였다.

갑자기 길우몽와 매방 두 사람 앞에 전신부 하나가 나타났다.

검붉은 대나무 조각으로 된 전신부에선 갈곡의 화신기 수사 중에 한 사람의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 당장 움직여라. 북쪽에서 괴수들이 몰려 내려오고 있다.

길우몽과 매방은 즉시 눈빛을 교환하고는 둔광과 함께 거처에서 모습을 감췄다.

그리고 그들은 갈곡의 상공에 모습을 드러냈고, 매방이 소매에서 비행 법기를 꺼내 던졌다.

매방의 비행법기는 썰매 같은 모양으로 여러 마리의 까마귀가 줄을 잡고 끄는 형태였다.

“함께 가지.”

매방이 길우몽에게 권했고, 길우몽은 고개를 끄덕이고 매방의 비행 법기에 올라탔다.

그리고 길우몽은 비행법기를 끄는 까마귀가 괴뢰의 한 종류임을 알아봤다.

“비행 법기를 끄는 괴뢰는 처음 보는군.”

길우몽이 색다른 것을 발견한 기쁨을 드러내며 말했다.

“우리 일족에게 전해지는 비술로 만든 것이네. 괜한 욕심은 버리는 것이 좋을 거야. 우리 일족 이외에 다른 누군가가 이 흑오들을 쓴다면 곧바로 일족의 공격을 받게 될 테니까.”

그렇게 경고하는 매방의 목소리는 차가웠고, 눈초리는 날카로웠다.

“이거 원, 뒷배 없는 산수는 서러워서 살겠나.”

길우몽이 과장 되게 어깨를 움츠리고 엄살을 부렸다.

매방도 그런 길우몽의 모습이 진심이 아님을 뻔히 들여다 봤지만 피식 웃고 말았다.

그렇게 길우몽이 매방의 비행법기를 타고 몇 시간 이동하자 저 멀리 괴수들의 움직임이 감지되었다.

“영체기도 하나 있는 것 같은데?”

길우몽이 괴수들을 먼저 감지하고 매방에게 일렀다.

매방은 자신보다 길우몽이 먼저 괴수들을 발견한 것에 놀랐는지 눈을 똥그랗게 떴다.

하지만 곧 그 차이가 크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역시 괴수들의 접근을 감지했던 것이다.

“영체기는 누가 맡을까?”

매방이 길우몽을 보며 물었다.

길우몽은 그 말을 듣자마자 썰매 비행 법기에서 몸을 일으켰다.

“내가 하지.”

그리고 말과 함께 둔광을 펼쳐 괴수들을 향해 이동했다.

매방은 길우몽이 그렇게 사라지자 소매를 앞으로 향하고 그 안에서 수십 개의 검은 깃털을 날려 보내며 법언을 외쳤다.

“변해라(變)!”

그러자 날아가던 깃털들이 일제히 흉측한 공허체로 변하기 시작했다.

새의 모습을 근원으로 했겠지만 너무 많은 변이를 일으켜 새와 박쥐를 섞어 놓은 것처럼 보이는 공허체는 검붉은 깃털을 지닌 괴수들과 공중에서 맞부딪혔다.

“차아앗!”

콰직! 퍼버벙!

그 사이 길우몽은 비행 괴수들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영체기 괴수를 상대로 거침없이 날뛰는 중이었다.

강체술을 특기로 내세운 길우몽은 전투 중에 몸이 검은 색으로 물들고 나타결공법을 끌어 올리면 극멸기로 이루어진 허상의 갑옷이 몸에 덧씌워진다.

그런 상태로 이리저리 둔술을 펼치며 괴수를 향해 주먹질과 발길질을 하는 길우몽이었다.

“허어, 강체술을 쓴다지만 저리 둔술이 자유로우면 강체술의 한계도 저 놈에겐 없는 것이라 봐야겠군.”

원거리 공격이 부족한 것이 강체술의 한계.

하지만 아예 자신의 몸을 공격 수단으로 삼고, 둔술로 거리를 제압하면 원거리에서 몸을 던지는 것과 뭐가 다른가.

도리어 술법을 날리는 것보다 강력하고 또한 임기응변이 쉬우니 공격이 매서운 것으로 따지면 길우몽 쪽이 더 나을 것 같았다.

매방은 그런 생각을 하며 길우몽의 싸움을 놓치지 않고 눈에 담았다.

“좋군. 썩 쓸모가 많겠어.”

그리고 길우몽이 결국 영체기 비행 괴수의 목을 꺾은 순간 그렇게 결론을 내리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치지지지지지직!

챠르륵! 찌잉! 찌잉! 찌잉!

“이거 시원시원 하군. 수고 했네.”

싸움이 끝나고 전장 여기저기에 진극멸기가 응결되기 시작하자 매방이 길우몽의 곁으로 다가오며 치하를 했다.

길우몽은 목이 꺾어진 괴수의 사체를 공간낭에 넣고, 자신의 몫으로 응결되는 진극멸기를 취했다.

그리고 다가오는 매방을 바라봤다.

“아직 잘 몰라서 그런데 여기서 분배는 어떻게 하지?”

길우몽이 손에 든 진극멸기를 힐끗 내려 보며 매방에게 물었다.

“그거야 정하기 나름이 아니겠나. 둘이 공평하게 나누거나 혹은 각자의 몫을 알아서 챙기거나.”

“주로 취하는 방식은?”

“그야 공평하게 나누는 것이지. 물론 한 쪽이 너무 처지는 경우엔 당연히 다시 분배를 결정해야겠지만.”

“그럼 당분간은 공평하게 나누는 쪽으로 해야겠군?”

“그러지. 하지만 그건 자네가 가지게. 다음부터 나누기로 하지.”

매방은 망설임 없이 길우몽이 죽인 괴수와 거기서 나온 진극멸기를 양보했다.

원래 길우몽이 가지는 것이 당연하지만 함께 움직였다는 이유로 욕심을 낼 만도 한데, 전혀 그런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길우몽은 곧바로 진극멸기를 공간낭에 넣었다.

그 즈음 매방의 공허체들도 주변에 응결된 진극멸기를 매방에게 가져다 주었는데, 매방은 그 중에 절반 정도를 공허체에게 내어 주었다.

공허체들은 길우몽이 보는 앞에서 그 진극멸기를 빠르게 흡수했다.

“개인적으로 기르는 공허체인 모양이군.”

길우몽이 매방 곁에서 공허체들의 식사를 지켜보며 말했다.

“그렇지. 의외로 이렇게 성장시킨 공허체가 쓸모가 있어. 때로 공허체의 탈을 벗고 멸계수로 거듭나는 경우도 있고.”

“멸계수(滅界獸), 들어는 봤지만 한 번도 본 적은 없군. 영체기는 되어야 가능성이라도 있다고 들었는데?”

공허체가 특별한 기연을 얻어서 실존하는 생명체가 되면 그것을 멸계수라 불렀다.

하지만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라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매방은 공허체를 길러 멸계수를 만들 희망을 가지고 있는 듯 했다.

“하하하. 말이 그렇지. 진짜로 멸계수를 바라는 것은 아니야. 그저 직접 성장시킨 공허체가 야생의 것보다 의식 연결이 잘 되어 부리기가 좋아서 그런 것일 뿐.”

매방은 별 것 아니란 듯이 그렇게 말을 흐렸다.

그리고 그렇게 갈곡 배치 이후 길우몽의 첫 임무가 무사히 끝이 났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일 뿐, 이후로 길우몽과 매방은 괴수 방어에 쉴 틈도 제대로 없이 동원되는 시간을 보내야했다.

물론 위험한 일이지만 그 대신 임무에 성공하면 그 때마다 괴수 사체나 부산물, 진극멸기 등의 수입을 얻을 수 있어 그리 나쁜 일은 아니었다.

그렇게 다시 몇 년의 시간이 흘렀다.

*   *   *

“으음.”

길우몽이 명상 수련에서 깨어나며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지금 이 순간 화염지대의 중앙, 화산의 분화구에서 엄청난 보광이 충천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덕분에 길우몽도 보물의 기운을 느낄 수가 있었는데, 그 기운이 어딘가 익숙했다.

‘이건 내가 아니라 본체인 건우의 경험이다. 거기서 느꼈던 기운이 분명해. 그런데 그게 어떻게 여기에 있다는 거지?’

< 갈곡(渴谷)에 배치되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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