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180화 (180/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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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발로 찾아와서 준다고? >

“이건 또 무슨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길우몽은 십여 명의 멸계 수사에게 포위된 상태로 궁지에 몰려 있었다.

그의 의복은 여기저기 찢겨 있었고, 입가에는 토혈의 흔적이 보였다.

“그 동안 네 놈이 한 짓을 떠올리면 지금 상황이 그리 억울할 것도 없을 텐데?”

그를 포위한 멸계 수사들 중에 하나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그의 피부는 녹색으로 비늘이 돋아 있었다.

길우몽은 그와 비슷한 외모의 멸계 수사를 언젠가 본 적이 있었다.

그리고 길우몽과 연을 맺은 대부분의 멸계 수사는 끝이 좋지 않았고, 녹색 피부에 비늘이 있었던 이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무슨 짓을 했다는지 모르지만 변명 따위를 해 봐야 의미가 없겠지. 그래서 이제 나를 궁지에 몰았으니 어쩔 셈이냐?”

한동안 활동하던 지역을 떠나서 새로 발견되었다는 초거대 혼돈역으로 가던 길우몽.

그를 한 무리의 멸계 수사들이 뒤쫓아 왔다.

어떻게든 몸을 빼려 했지만 실패한 길우몽.

그의 시선이 무리들 중에 제일 뒤쪽에 있는 멸계 수사에게로 향했다.

그는 열 명의 멸계 수사를 앞세워놓고 뒤쪽에 물러나 바위를 깔고 앉아 있었다.

‘저 영체기 놈만 없었어도 이런 상황까진 오지 않았을 텐데.’

의외로 그 멸계 수사는 영체기 초기의 수사였다.

길우몽을 쫓기로 결정한 이들이 영체기 멸계 수사를 데리고 온 것이다.

바짝 마른 갈대처럼 생겨 먹은 그 영체기 수사는 길우몽이 도망가려 할 때마다 수작을 부려 앞을 가로막았다.

그 때문에 번번이 포위망을 거의 뚫었다가 다시 갇히곤 했었다.

“선배께선 뭘 얻고자 저 같은 것을 잡으려 하십니까?”

길우몽이 입가의 피를 소매로 닦아 내며 영체기 멸계 수사에게 물었다.

고작 성단기 수준에 불과한 자신을 영체기 수사가 노려서 얻을 것이 뭐가 있단 말인가.

게다가 열 명의 성단기도 끼어 있으니 나눠먹을 입들이 너무 많았다.

“풋, 그거야 네가 알 필요가 없지 않으냐. 너는 그저 여기서 재롱을 떨다가 죽으면 그만이다.”

영체기 수사는 길우몽의 항변에는 관심도 없다는 듯이 그렇게 말을 하고는 포위하고 있는 이들에게 눈짓으로 신호를 줬다.

여유를 주지 말고 계속 공격을 하라는 뜻이다.

길우몽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저 늙은이는 그저 싸움 구경을 하기 위해 나선 것일 뿐인가? 멸계 수사들 중에 특이한 취미를 가진 이들이 있다더니 저 늙은이가 싸움 구경을 즐기는 그런 놈이었나?’

아무리 생각을 해 봐도 영체기가 자신을 노려서 얻을 것이 없었다.

있다면 진극멸기 정도겠지만 그조차도 경지를 끌어 올리느라 대부분 소비하고 얼마 남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영체기 수사가 고작 길우몽의 공간낭에 들어 있는 하찮은 수련 자원을 노리고 이런 곳에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만 떠들고 그냥 혀를 길게 빼물고 죽어라. 뭣들 하나 어서 저 놈을 공격해!”

“그래, 여유를 주지 마라!”

길우몽이 영체기 수사와 대화를 시작하자 열 명의 성단기 수사들이 불안한 표정으로 서둘러 공격을 다시 시작했다.

극멸기가 끓어오르고, 갖가지 술법들이 난무하며 길우몽을 옥죄였다.

나타결공법의 강체술이 아니었다면 길우몽의 몸은 이미 예전에 갈기갈기 찢겼을 것이다.

길우몽은 강체술의 기운을 몸에 두르고, 의념을 움직여 십여 개의 법기를 한꺼번에 운용하며 멸계 수사들의 공격을 막아냈다.

그렇게 또 한 동안 10:1의 접전이 이어졌다.

그러던 어느 순간이었다.

엄청난 극멸기가 파도처럼 휘몰아쳐 길우몽의 법기들을 박살냈다.

길우몽의 시선이 곧바로 영체기 멸계 수사에게로 향했다.

“선배, 결국 체면도 없이 어린 아이들의 싸움에 직접 나서십니다 그려?”

길우몽의 대거리가 불손하기 짝이 없었다.

이미 선을 넘었다고 생각해서 하고 싶은 말을 숨기지 않은 것이다.

“풋, 볼 것을 다 보았으니 시간을 끌 것은 없겠지.”

“뭘 봤다는 거요?”

“아이야, 네가 익힌 공법이 아주 특이하구나. 게다가 법기들을 서로 연계하여 묶어내는 것도 일절이라 할 만 하다. 내가 배운 것이 적지 않았다.”

“고작 하수의 잔재주를 훔쳐 배우기 위해서 이런 곳까지 왔다는 거요?”

“삼인행필유아사(三人行必有我師)요, 어린 아이에게도 배울 것은 있다. 나는 그것을 한 시도 잊지 않고 지금껏 무엇이건 배울 것이 있으면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내 경지는 그렇게 해서 올라선 것이다.”

“당연히 그 스승이 되었던 이들은 세상에 없겠구려?”

“풋, 애석하지만 또 그러할 수밖에 없었지. 배운 것을 익히기 위해서는 그만한 노력과 재물이 필요하니 말이다.”

“하하하. 좋습니다. 우리 수사들의 삶이 언제는 안 그랬겠습니까. 진정 존경스럽습니다.”

길우몽이 크게 웃으며 진심으로 영체기 수사를 치켜세웠다.

멸계에서 살아가는 수사로서는 아주 전형적이고 모범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지 않은가.

“어차피 죽을 놈에게 존경 따위를 받아서 뭘 하겠느냐. 네가 그리 입에 꿀을 칠한다고 내가 마음을 바꿔 너를 살려줄 성 싶으냐?”

“하하하. 어찌 그런 생각을 하겠습니까. 그런 것은 바라지도 않습니다. 노야께서 지금껏 살아 온 방식이 있는데 어찌 저 때문에 그것을 바꾸라 하겠습니까. 하지만 저도 그냥은 죽어드릴 수가 없으니 짹 소리라도 내어 봐야겠지요?”

길우몽은 그렇게 말을 하며 소매에서 영패 하나를 꺼내들었다.

마귀팔면호령(魔鬼八面呼令)이었다.

“으응? 그건?”

영체기 멸계 수사가 길우몽이 꺼낸 영패를 보고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견문이 있으신가 봅니다?”

“설마 마귀와 계약을 했더란 말이냐?”

영체기 멸계 수사가 확인하듯 물었다.

“그야 보면 알 일이지요.”

길우몽은 그렇게 말을 하고는 마귀팔면호령에 의념을 불어넣어 여덟 마귀 중에 하나를 일깨웠다.

그러자 마귀팔면호령에서 뿔이 거창한 마귀의 머리가 쑤욱하고 빠져 나왔다.

작은 영패에서 나온 마귀의 머리가 십여 장의 크기로 부풀어 오른 것은 순식간이었다.

염소처럼 생긴 머리에 눈은 붉은 광체가 났고, 검은 갈기와 수염이 모두 불길한 기운을 품고 있었다.

= 원하는 것을 말해라.

마귀가 영패를 들고 있는 길우몽을 보며 말했다.

그 때였다.

영체기 마계 수사가 급하게 둔술을 펼쳐 모습을 감췄다.

“도망간 놈과 여기 있는 열 놈을 모두 제압해라.”

= 고작 그런 일로 나를 쓴다고?

“그렇다.”

= 용을 잡을 칼로 지렁이를 잡는구나. 하지만 네가 원한 것이니 이것으로 내 일은 끝났다. 크크크큿.

마귀는 길우몽을 비웃는 듯이 묘한 웃음을 흘리더니 검은 연기로 변해 사라졌다.

그리고 마귀의 머리가 모두 사라지는 순간, 길우몽의 앞에 도망갔던 영체기와 열 명의 성단기 멸계 수사들이 정신을 잃은 상태로 나타났다.

그들은 언제 어떻게 제압이 되었는지도 모르고 정신을 잃어 버렸다.

그도 그럴 것이 길우몽이 마귀팔명호령에서 소환한 마귀는 한 번은 화신기 이상의 공격도 막고 반격해 줄 능력이 있는 존재였다.

그런 존재에게 고작 영체기 하나와 성단기 열을 제압하라 했으니 숨 쉬는 것보다 쉬운 일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마귀 하나를 낭비했지만 당장 죽음에서 벗어날 길이 이것 밖에 없었다.’

길우몽은 아쉬운 표정으로 마귀팔면호령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그러면서 본체인 건우를 떠올렸다.

아공간에 머물며 지금도 길우몽의 상황을 지켜보고 있을지 모른다.

그게 아니면 루야가 건우 대신 상황을 살피고 있을 것이고.

하지만 이번 일로 건우를 불러낼 수는 없었다.

‘마귀를 하나 낭비하는 것과 건우를 아공간에서 나오게 하는 부담을 비교하면 이쪽이 더 낫다. 건우는 아직 등장할 때가 아니야.’

길우몽은 그렇게 판단했다.

‘자, 그럼 어디 챙겨 볼까?’

길우몽은 정신을 잃고 있는 열한 명의 멸계 수사들을 향해 다가갔다.

“뭐? 뭐야? 이런 마귀 놈이!”

그런데 수사들을 향해 다가가던 길우몽은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의념을 펼쳐 확인하더니 분통을 터트렸다.

염소 머리의 마귀가 열한 명 수사들의 영혼을 뽑아 간 것이다.

게다가 영체기 멸계 수사의 경우에는 영체를 통으로 가져가 빈 몸뚱이만 남아 있었다.

“하여간 마귀 새끼답네. 뭐 어차피 내가 손을 더럽힐 일이 없으니 나쁘진 않다만, 그 놈이 거래 내용에 없는 이득을 챙긴 것은 기억을 해 둬야지. 어디 두고 보자 마귀 놈.”

길우몽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마귀팔면호령의 빈자리에 의념을 불어넣어 거래의 부당함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이후 다시 그 마귀와 거래를 할 때에는 작은 이득이라도 취할 수 있을 것이다.

치지지지지지직!

챠르르르륵! 찌이이이잉!

“오오오! 진극멸기! 그것도 지금껏 본 것 중에 최고 등급?”

길우몽이 제멋대로인 마귀의 행동에 인상을 쓰고 있을 때, 갑자기 진극멸기가 생성되기 시작했다.

영체기 하나와 성단기 열이 죽었으니 진극멸기가 만들어질 가능성은 있다고 생각했다.

‘이거면 영체기도 가능하다.’

하지만 막상 기대보다 높은 등급의 진극멸기가 응결되는 것을 확인하자 길우몽의 입이 크게 찢어졌다.

*   *   *

염사(鹽沙) 혼돈역(混沌域).

새로 발견이 되었다는 초거대 혼돈역은 염사라는 이름이 붙었다.

하지만 소금모래란 이름은 이 초거대 혼돈역을 대표하기에 적당하지 않은 이름이었다.

그저 처음 혼돈역으로 진입하면 도착하는 곳이 소금모래가 가득한 사막이라 초기 진입자들이 그런 이름을 붙였을 뿐이다.

지금은 이 초거대 혼돈역이 사막과 평원, 숲, 산맥, 거대 호수, 화산 등등의 여러 지형을 지니고 있음이 밝혀졌다.

그리고 이 혼돈역의 중심에 있는 화산, 그곳에서 주기적으로 보광이 충천하여 수사들을 끌어 모으는 중이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화산에 가까이 간 수사는 없다고 했다.

이유는 거대한 화산지대 전역을 차지하고 있는 괴수들과 그 지역 전체에 펼쳐진 금제들 때문.

인계와 멸계의 수사들은 드넓은 화산지대 전체에 펼쳐져 있는 금제와 봉인들이 인위적인 것임을 확인했다.

누군지 화산을 축으로 해서 엄청난 금제를 펼쳐 보물을 보호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 보물에서 흘러나오는 영기를 흡수하기 위해서 오래도록 수많은 괴수들이 그 금제로 파고들어 적응하여 영역을 만들었다.

그런 괴수들은 화산지대의 금제를 등에 업고 엄청난 힘을 발휘했다.

오죽하면 멸계8존의 하나라는 흑선풍도 화산지대의 금제를 한 번에 뚫지 못하고 있을까.

물론 그것은 인계 쪽에서 들어온 수사들과의 대치도 한 이유가 되기는 했지만, 어쨌거나 입령기를 엿봤다는 최고 경지의 수사도 보물을 쉽게 취하지 못하는 것은 분명했다.

“결국 들어오긴 했는데, 뭔가 좀 이상하단 말이지.”

그리고 길우몽 역시 그런 염사 혼돈역에 모습을 드러냈다.

염사사막에 모습을 드러낸 길우몽이 먼 하늘을 바라보며 뭔가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르신, 그럼 저희는 이만 가 봐도 되겠습니까?”

그런 길우몽에게 성단기 후기의 멸계 수사가 물었다. 혼돈역으로 들어오는 전송진을 함께 탔던 다른 수사들도 길우몽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모두들 성단기 급이라 영체기에 오른 길우몽을 두려워 하는 것이다.

그들은 귀찮은 듯이 휘젓는 길우몽의 손짓에 허리를 깊이 숙여 보이고는 분분히 둔광을 남기고 사라졌다.

그 후, 길우몽도 훌쩍 몸을 날려 검은 둔광과 함께 모습을 감췄다.

< 제 발로 찾아와서 준다고?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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