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179화 (179/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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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기(靈機)가 나타났다고? >

나타결공법(??結功法)의 세 가지 공능 중에 하나인 극멸기 사용.

그 공능을 극성으로 끌어 올리면 자연스럽게 길우몽의 몸에 강체술이 적용된다.

그것도 나타결공법의 강체술은 매우 강력한 것이어서 같은 경지의 술법 공격을 어느 정도 무시할 수 있을 정도다.

지금도 길우몽의 몸에는 극멸기의 검은 기운이 갑옷처럼 둘러져 철사머리카락 멸계 수사의 공격을 어렵지 않게 밀어내고 있었다.

“크흣, 내가 빠르······.”

하지만 철사머리카락의 멸계 수사는 길우몽의 접근 속도를 늦추고, 자신은 머리카락의 수축을 이용해 빠르게 진극멸기에 닿을 수 있었다.

그리고 웃음을 흘리며 진극멸기를 취하려던 그는 갑자기 깜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덜컥 몸을 멈춰 세웠다.

“이, 이게?”

“하하하. 내 금제 진법이 아직 남아 있음을 잊었구나.”

“그럴 리가 없다. 네 진법은 1회용······.”

“법기에 극멸기만 보충하면 진법을 다시 일으키는 것이 뭐가 문제겠느냐. 네가 그 심오한 이치를 알지 못한 탓이지.”

길우몽은 진법의 힘에 몸이 묶인 철사머리카락 수사에게 그렇게 말을 하며 곧바로 극멸기의 창을 쏘아 보냈다.

나타결공법으로 머리 위에 만들어진 극멸기의 덩어리에서 날카로운 창이 만들어져 철사머리카락 수사의 가슴을 꿰뚫었다.

“끄어어어억!”

“고맙다. 덕분에 모든 것을 내가 취할 수 있게 되었구나. 그리고 혹시 모르지. 네가 죽으면 또 다른 진극멸기가 하나 더 생길지도. 하하하.”

길우몽은 끝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고 죽어가는 철사머리카락 멸계 수사의 모습을 지켜봤다.

그리고 그가 죽은 후에도 몇 번이나 확인하며 변수를 점검했다.

그 과정은 먼저 죽은 네 명의 멸계 수사들에게도 꼭 같이 적용되었다.

“역시, 이런 놈이 하나 정도는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

그리고 먼저 죽었던 네 멸계 수사 중에 하나가 자신의 영혼을 흑옥에 옮겨 숨은 것을 발견했다.

하지만 길우몽은 그 흑옥을 굳이 파괴하지는 않았다.

대신에 흑옥에 봉인을 걸어 갇혀 있는 영혼이 다시 밖으로 나올 수 있는 시기를 몇 백 년 정도 늦춰 버렸다.

그 정도 시일이 지난 후에 이 멸계 수사의 영혼이 자유를 되찾는다 해도 자신에게 해코지를 할 수 있을 가능성은 별로 없을 것이다.

‘영혼 자체를 건드는 것은 그리 내키지 않는단 말이지. 차라리 이 영혼을 그대로 윤회 시킬 수 있다면 좋겠지만 소멸은 가능해도 윤회로 돌릴 재주는 없으니 그냥 두는 것이 좋겠지.’

길우몽이 영혼을 건드리지 않는 것은 건우 때부터 생긴 금기였다.

영혼을 건드리면 그에 따른 반서가 만만치 않았다.

게다가 건우가 주로 익힌 공법이 그런 반서에 적잖은 영향을 받았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건우는 영체 자체나 영혼을 건드리는 일을 피했고, 유혼인 문진 역시 같은 성향을 지니게 된 것이다.

“으음. 멸계 놈들이라고 해도 영혼을 건드리는 것은 꺼림칙하지. 뭐 어쨌건 이렇게 해서 아홉 놈의 재물을 취했고, 진극멸기도 제법 얻었네. 게다가 뜻밖에 등급이 높은 진극멸기도 손에 들어왔고.”

길우몽은 결과가 만족스러운 듯이 미소를 지었다.

문진의 외모에서 나타결공법의 영향으로 조금 선이 굵어진 길우몽의 모습은 시원시원한 느낌의 미남이었다.

*   *   *

소문이 돌았다.

멸계와 인계의 경계 한 곳에서 유독 멸계 수사들의 실종이 잦다는 소문이었다.

물론 저계 멸계 수사들은 인계 수사와 싸우다 죽고, 같은 멸계 수사들끼리 싸우다 죽고, 괴수나 마수를 만나 죽고, 상위 공허체에게 잡아 먹혀 죽는 일이 흔하다.

그래서 멸계 수사의 실종은 그리 이야깃거리가 될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한 구역의 전력에 크게 구멍이 날 정도라면 이목을 끌지 않을 래야 않을 수가 없다.

당연히 그런 일을 일으킨 입장에서는 난감한 상황이기도 하다.

‘이건 좀 곤란한데? 내가 너무 과하게 해 먹었나?’

패를 지어 인계 수사를 사냥하고, 이후 돌아오는 과정에서 한 패였던 멸계 수사를 처리하는 일을 반복한 길우몽이었다.

그런데 그런 일이 여러 번 겹치게 되자, 멸계 수사들의 수가 많이 줄었다.

‘거기다가 이젠 내가 그런 짓을 하고 다닌다는 것을 눈치챈 놈들이 많아. 그래서 대 놓고 나를 배척하는 분위기야.’

멸계 수사끼리 뒤통수를 치는 것이야 특별할 것이 없는 일이다.

하지만 같은 등급임에도 유독 두각을 나타내는 이가 있다면 경계의 대상이 되는 것도 당연했다.

“이제 조금만 더 하면 영체기에 올라설 수 있을 텐데.”

길우몽은 자신이 머무는 여각의 별체 객실에 앉아서 입맛을 다셨다.

진극멸기도 등급이 있는데, 하급을 여럿 모아서 합성하면 윗등급의 진극멸기를 만들 수 있었다.

같은 등급의 진극멸기를 몇 번 흡수하면 그 후로는 그에 대한 내성이 생겨 성장 속도가 느려진다.

그래서 상위 등급의 진극멸기가 필요한데, 그럴 때에는 하위 등급을 합쳐서 상위 등급을 만들 수 있다.

길우몽 역시 그런 식으로 진극멸기를 흡수하여 성단기 완경에 이른 상태였다.

여기서 한 발만 더 나아가면 영체기 수준이 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그의 영향력이 조금이라도 더 늘어날 수 있을 것이다.

“제대로 한 방만 더 터트리면 될 거 같은데, 요즘 이것들이 나를 피하기만 한단 말이지.”

차라리 무리를 지어 자신을 노리면 좋을 것인데, 그것도 아니고 다들 몸을 피하고 마주치기를 꺼려한다.

그러니 멸계 수사를 잡을 상황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혼자서 인계 수사를 잡으러 다니기도 위험하다.

자칫하면 정말 수십 명의 멸계 수사들에게 협공을 당해 찢겨 죽을 것이다.

이곳 멸계 수사들은 능히 그런 짓을 하고도 남을 놈들이었다.

특히 튀어나온 못이나 다름없는 길우몽을 처리하기 위해서 그런 작당모의를 하는 것은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귀찮긴 하지만 다른 지역으로 가는 것이 좋겠어. 이쪽에서 이름을 좀 알리고 세를 키워볼까 했는데, 미운 털만 박힌 거 같으니까.’

모두 제 스스로 자초한 것이지만 길우몽은 억울한 표정이었다.

‘일단 공간낭 정리를 좀 하고, 곧바로 다른 지역으로 가자.’

아공간이 있는 건우라면 할 필요가 없는 일이지만 보통의 수사들은 공간낭 관리를 꼼꼼하게 해야 한다.

여러 개의 공간낭을 소유하고 거기에 들어 있는 것들을 정리해서 관리하는 것은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잡다한 것들은 때때로 정리해서 매각하고 공간낭의 여유를 확보할 필요가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본체의 아공간은 너무 부럽다니까.’

*   *   *

“떠나려는 모양이군.”

길우몽이 공간낭 정리를 위해 상점에 들어가자 주인이 곧바로 그를 알아보고 중얼거렸다.

“겁쟁이 놈들이 나를 따돌리니 방법이 없지.”

길우몽은 억울하다는 표정을 감추지 않고 상점 주인에게 투덜거렸다.

자신의 경지에 맞춰 들어온 상점이라 주인 역시 성단기 후기의 경지에 있었다.

그래서 서로 말을 높이고 낮추고 하는 불편함 없이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되었다.

“하긴 혼자 활동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지. 차라리 다른 지역으로 가는 것이 옳은 선택일 수도 있겠지.”

“그래, 그래서 이걸 정리하려고.”

길우몽이 공간낭 하나를 상점 주인에게 내밀었다.

주인은 그 공간낭을 받아 의념을 불어넣어 안에 들어 있는 물건을 살폈다.

“으음. 성단기 수준에서는 아직 쓸만 한 것들이 많은데? 보기 보다 눈이 높군?”

상점 주인은 길우몽이 처분하려는 목록 중에 제법 가치가 있는 것들이 끼어 있음을 알고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 정도 수준의 물건을 정리한다면 가지고 있는 것은 그보다 뛰어난 것들일 테니까.

“영체기도 한 발 남았는데, 기회가 있을 때마다 쓸모없는 것들을 처리해야지. 어때? 그걸로 여기 있는 것들 중에 구할 수 있는 것이 있나?”

길우몽이 다시 옥간 하나를 상점 주인에게 내밀었다.

그 안에는 법기를 만들거나 혹은 진법을 구성하는데 필요한 재료 목록이 빼곡하게 들어 있었다.

“으음. 이중 어떤 것이든 상관없나?”

상점 주인이 물었다.

“그래. 교환 비율을 너무 후려치지만 않으면 상관없다.”

길우몽은 고개를 끄덕였고, 상점 주인은 길우몽의 공간낭을 매대 밑으로 넣고, 새로운 공간낭을 꺼내서 그 안에 옥간에 있는 물품들을 채우기 시작했다.

물론 교환하는 것이라 수수료 명목으로 상점 주인이 이득을 취하긴 했지만 길우몽이 거래를 파기할 정도로 욕심을 부리지는 않았다.

“나쁘진 않지만, 좋은 거래도 아니군. 딱 고만고만한 수준이야.”

길우몽이 공간낭을 받으며 말했다.

“어차피 이 지역을 떠날 건데 내가 후하게 대할 이유가 없지. 딱 이만한 수준이 적당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렇게 말을 하니 또 그렇긴 하군. 좋아. 그럼 잘 있으라고.”

길우몽은 상점 주인의 말에 화를 내지 않았다.

주인의 말대로 적당한 거래를 했을 뿐이라고 생각하면 그만이었다.

“잠깐, 내 이야기를 좀 듣고 가겠나?”

그런데 돌아서려는 길우몽을 상점 주인이 불러세웠다.

순간 길우몽의 눈빛 깊은 곳에서 서늘한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

이유 없이 붙잡진 않을 텐데, 그것이 마냥 좋은 의미라고 기대하긴 또 어렵다.

멸계 수사들 사이에선 깊게 얽힐수록 그 끝이 나쁜 경우가 많았다.

“무슨 일이지?”

그래도 일단 용건은 들어 볼 일이다.

지금껏 멸계 수사들과 복잡하게 얽혔지만 항상 그들을 처리하고 마지막 과실을 따 먹은 것은 길우몽 자신이었다.

그러니 이번에도 그렇게 만들면 그만이었다.

“소문이 하나 있다.”

“소문?”

“새로운 초거대 혼돈역이 발견되었다고 하더군.”

“초거대 혼돈역이라고?”

“그렇지. 그런데 그 혼돈역에 보광이 충천해서 8존 중에 흑선풍 어르신이 공략을 위해 사람을 모은다고 하더군.”

“8존의 흑선풍 어르신?”

주인의 말에 길우몽도 깜짝 놀랐다.

인계 침공을 주도하고 있는 멸계의 우두머리는 여럿 있지만 그 중에 가장 큰 영향력을 지닌 이들이 여덟 있었다.

그 여덟을 이곳에서는 멸계8존이라 불렀고, 흑선풍은 그 여덟 중에 하나였다.

이들은 당연히 입령기를 엿본 수준의 경지를 가지고 있고, 오랜 세월 인계 침공을 주도했기에 엄청난 세력을 가지고 있었다.

8존 아래에는 입령기를 엿본 수순의 멸계 수사들이 수십 명씩 있고, 그 아래로 화신기 멸계 수사가 수 백이 넘었다.

그런데 그런 대단한 인물이 혼돈역에 나타난 보물에 관심을 가졌다는 이야기다.

자연스럽게 길우몽 역시 그 보물에 대한 욕심이 슬금슬금 피어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아, 이미 그곳에 대해서 인계도 알아차리고 대규모 인원을 파견한다고 하더군. 아마 이곳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치열한 싸움이 벌어질 것이야. 당연히 자네에겐 좋은 기회들이 많이 있겠지.”

“죽을 가능성도 높고?”

“크흐흐. 그거야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할 일이지.”

“뭐, 그건 그렇군. 그래서 그 초거대 혼돈역에 대한 다른 정보는?”

“여기 있다. 진극멸기 두 개만 받지.”

“정보가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거냐?”

“당연하지.”

“떠나는 몸이라고 속이려 드는 거면 반드시 대가를 치를 거야.”

“걱정하지 마라. 성단기 완경이라 언제 영체기가 될지 모르는 너에게 사기를 칠 정도로 정신이 없지는 않으니까.”

“하긴, 네가 사기를 치면 내가 영체기가 되자마자 너부터 족칠 걸 알 테지. 알았다 믿어보지.”

길우몽은 그렇게 말을 하고는 응결된 진극멸기 두 개를 주인에게 넘기고 옥간을 받았다.

그리고 그 후 길우몽의 모습은 그 지역에서 다시 보이지 않았다.

재미있는 것은 길우몽과 함께 일단의 멸계 수사들 역시 모습을 감추고 이후 소식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 영기(靈機)가 나타났다고?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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