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 나타결공법(??結功法)
문진이 공헌점수로 제일 먼저 한 일은 축기단을 다시 구하는 것이었다.
그는 축기단을 구한 즉시 승경에 도전했고 어렵지 않게 성공했다.
이미 한 번 발을 디뎠던 경지라 벽이 거의 없다시피 해서 축기단을 쓴 것이 오히려 아까울 지경이었다.
어쨌거나 축기에 올랐으니 축기단은 제 값을 했다 할 것이다.
‘다행히 축기기가 되었는데도 임무를 바꾸지 않고 유지해 주니 고마운 일이지.’
토벌대 지휘부에서는 축기기에 오른 문진에게 상동강 소성 수련원생의 수좌 자리를 그대로 유지시켜 주었다.
그도 그럴 것이 문진을 제외한 서른 네 명의 원생들 모두가 축기기에 도전하고 있었고, 그들 중에 적어도 삼할은 축기기에 오를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니 새로운 축기기 십여 명의 등장을 기대해 볼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어차피 문진이 맡아서 관리하던 이들이니 그대로 맡기겠다는 것이다.
‘승격 직후에는 따로 과한 임무를 주지 않고 경지를 공고히 하도록 시간을 주니 당장은 해야 할 일도 거의 없지.’
문진은 수좌 직위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에 불만이 없었다.
도리어 원생들의 축기기 도전과 경지 안정 때문에 따로 일을 맡지 않으니 여유 시간이 늘어 좋았다.
그는 그렇게 얻은 시간을 이용해서 장서고를 드나들며 새로운 공법들을 살피기에 여념이 없었다.
‘무명공과 쌍두단미영원의 진혈이 만들 새로운 공법, 그걸 설명할 근거 자료가 필요하다.’
이제는 무명공을 익히는데 쓸 귀한 진혈도 확보가 되었다.
그래서 한결 마음이 급해진 문진이었다.
쌍두단미영원의 진혈로 무명공을 익히면 어떤 수련 공법이 나올지 그도 알 수 없었다.
다만 결과가 나왔을 때, 그것을 설명할 근거를 구하기 위해 장서고의 정보들을 기억 속에 저장해 놓을 뿐이었다.
“후우, 이제 시작을 해 보자.”
문진은 거처에 앉아 소매에서 황토색과 금색의 깃발들을 여럿 꺼냈다.
그것은 금기(金氣)와 토기(土氣)가 깃들어 있는 깃발들로 거처에 결계진을 만드는 용도였다.
그는 그 깃발들을 방의 네 모퉁이는 물론이고 바닥에도 어지럽게 꽂아 세웠다.
“이것으로 부족하지.”
하지만 얼마나 큰 영기 유동이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 정도 금제로는 안심할 수 없었다.
문진은 다시 소매에서 옥병을 꺼내 뚜껑을 열고 허공을 향해 내용물을 뿌렸다.
푸확!
작은 옥병에서 흑은색의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그 연기들이 이전에 꽂아 놓은 깃발들을 감싸더니 조금씩 스며들었다.
“극멸기가 담긴 혼돈기. 이것이면 내가 공법을 익히며 흘러나올 영기를 상쇄시켜 주겠지.”
극멸기를 사용하는 것은 위험하다.
하지만 혼돈기와 섞여 있는 극멸기는 수사들도 간혹 사용하곤 했다.
문진도 장서고에서 그런 내용을 읽은 터라 마음 놓고 혼돈기를 사용하는 것이었다.
“그럼 이제는 이걸······.”
문진이 공간낭에서 목함을 꺼냈다.
이전과 달리 목함에는 여러 장의 법부가 붙어 있었다.
봉인 능력이 있는 목함도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상두단미영원의 기운이 흘러 나와 몇 번이나 봉인을 보강한 것이다.
문진은 조심스럽게 법부들을 떼어내고 목함의 뚜껑을 열었다.
딸깍!
치이이이잉!
주먹 크기의 흑은색 구슬이 모습을 드러내며 낮게 진동하는 소리를 냈다.
문진은 곧바로 영기로 구슬을 감싸며 구슬에 의념을 불어 넣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곳에 들어 있는 화신의 조각은 지워야 한다.’
화신기에 이른 쌍두단미영원이 자신의 화신 일부를 구슬에 넣어 두었다.
물론 그것은 극히 미약한 수준에 불과해서 지금은 말 그대로 씨앗의 씨눈 정도에 불과했다.
그러니 문진이 마음만 먹으면 그 화신을 지우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이를 통해서 다시 되살아날 생각이었겠지만 나 때문에 그 희망은 무너지겠군.’
문진은 그런 생각을 하며 곧바로 구슬 안에 들어 있는 화신의 씨앗을 의념으로 감싸 밖으로 끌어내어 태워버렸다.
케케케케켑!
화신의 씨앗이 남긴 것은 뜻 모를 단말마의 비명 한 마디 뿐이었다.
문진은 맥없이 사라진 화신의 씨앗에는 더 이상 관심을 두지 않고, 흑은색 구슬에 집중했다.
“기운이 특이하다. 태고 생명체의 진혈이 포함되어 있는 것은 분명한데, 여기에 영기와 극멸기가 혼돈기의 힘으로 결합되어 있다. 이게 무명공과 만나면 어떻게 변할지 모르겠군.”
무명공을 운용하면 그것이 무명공에 사용할 수 있는 것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다.
무명공은 흑은색 구슬에서 태고 생명체의 진혈을 감지하고 있었다.
‘시작하자!’
문진은 잠시 구슬을 살피다가 각오를 다지며 무명공으로 구슬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조금씩 몸으로 흡수되는 흑은색 구슬, 그와 함께 무명공의 흐름도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강력하다! 이건 성해룡주의 기운을 흡수할 때와 비슷한 수준이다.’
문진은 저도 모르게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며 한층 조심스럽게 무명공을 운용했다.
당연히 구슬을 흡수하는 속도도 이전보다 훨씬 느려졌다.
그렇게 다시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별좌들이 몇 번 문진을 찾아왔지만 수련 때문에 거처를 봉인한 것을 확인하고 그냥 돌아가야 했다.
* * *
“나타결공법(??結功法)이라. 이름에 나타가 들어가는 것을 보면 삼두육비의 나타태자와 연관이 있는 건가?”
문진은 무명공으로 흑은색 구슬을 모두 흡수하고 나타결공법이란 공법을 얻었다.
원래 무명공에서 나온 공법의 이름에는 진혈의 정체가 어느 정도 드러난다.
그런데 이번에는 나타(??)라는 이름이 나왔다.
건우와 문진 두 사람의 기억에 의하면 나타는 건우의 원래 세상에서는 삼두육비의 천계 신장으로 손오공과 싸웠던 존재다.
그리고 이쪽 대천세계에 존재하는 나타는 선계의 이름 높은 신선들 중에 하나로 마를 물리치는 힘을 지닌 신화 같은 존재였다.
“그래도 이쪽 세상의 나타와 연관이 있겠지? 그런데 나타(??)선인(仙人)은 그야말로 전설같은 존재라 그 본체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군. 그래도 나타의 진혈이라니 엄청난 행운이로군.”
그래봐야 미약하기 짝이 없는 진혈의 기운이지만 무명공이라면 그것을 키워 낼 수 있을 것이다.
문진은 그런 기대를 가지며 나타결공법을 자세히 살피기 시작했다.
“영기, 혼돈기, 극멸기?”
그리고 나타결공법이 아주 특별한 공능을 지니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나타결공법은 세 가지 기운을 동시에 수련할 수 있는 특이한 공법이었다.
“이거 문제로군. 영기는 몰라도 혼돈기와 극멸기는 들키면 안 될 일이야. 인계 수사들 중에서 영기와 혼돈기를 함께 쓰는 이는 극히 드물다 했는데? 게다가 인계 수사가 극멸기를 쓰면?”
당연히 멸계 수사로 오해받을 가능성이 높았다.
“으음. 어디 보자······.”
문진은 다시 나타결공법에 깊이 빠져들며 그 공능과 효과를 살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문진이 눈을 번쩍 떴다.
“하하하하. 이거 굉장한데?”
문진의 표정이 더 없이 밝아졌다.
그는 곧바로 나타결공법을 직접 펼치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의 몸에 영기와 혼돈기 극멸기가 동시에 피어 올랐다.
오른쪽에 영기, 왼쪽에 극멸기, 중앙에 혼돈기.
그 기운들이 문진의 머리 위로 피어 올라 뭉치자 마치 세 개의 머리가 더 생긴 듯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변화는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문진의 머리 위에 있던 기운 중 극멸기가 혼돈기에 스며들기 시작하자 극멸기과 혼돈기의 양이 줄었다.
대신에 영기의 양이 그만큼 늘어났다.
결국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문진의 머리 위에는 영기만 남았을 뿐, 혼돈기와 극멸기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번쩍!
문진이 눈을 뜬 것은 그 때였다.
그의 눈에 칠색의 광채가 어렸다가 사라졌다.
“영기를 극멸기로, 극멸기를 다시 영기로 바꿀 수 있다. 다만 아직 영기나 극멸기를 혼돈기로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
문진은 아쉬운 듯이 중얼거렸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상황이었다.
극멸기와 혼돈기 때문에 나타결공법을 익히지 못할 상황은 피할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나타결공법을 운용하면 몸이 강건해지는 것이 강체술(剛體術)의 효과도 있었다.
“강체술과 영기 운용이 합쳐진 공법이라니, 대단해. 아주 좋아. 하하하.”
수사들의 싸움에서 육체적인 강건함은 그다지 의미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때로 강력한 공격 술법도 거뜬히 버티는 강건한 육체로 두각을 나타내는 수사들이 있다.
그게 아니어도 육체의 강건함은 생각보다 수도계 전투에서 큰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다.
나오금강체술을 주력으로 하는 길우몽으로 활동한 기억이 있는 문진은 나타결공법에 강체술 공능이 있는 것을 더 없이 기뻐했다.
“좋다! 아주 좋아. 게다가 세 가지 기운을 쓸 수 있다는 것은 제작이나 연단, 진법 구축 같은 것에도 굉장히 유용할 거다. 하하하하.”
* * *
“어? 수좌다!”
“수좌가 나왔다!”
문진이 거처에서 나오자 별좌와 행좌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그들은 모두 문진이 수련을 마치고 나오기만 기다리고 있었던 듯 했다.
‘으음. 축기기에 오른 사람이 많군. 열세 명이나 축기에 오르다니.’
문진은 다가오는 별좌와 행좌들의 경지를 살피고 내심 놀랐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는데 동기들 중에 스물이 넘는 수가 아직도 연신기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한쪽에 따로 서 있었는데 그 행동이 매우 조심스러웠다.
연신기와 축기기는 한 단계에 불과하지만 수도계에서는 감히 넘볼 수 없는 격차가 있다.
그러니 지금까지는 동기였지만 이제는 선배로 대해야 할 상황이 되어 있었다.
“너희도 잘 지냈느냐?”
문진이 일부러 그들 연신기들에게 인사를 했다.
“네, 선배님.”
그들은 문진의 말에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한 치 앞도 모르는 것이 수도계의 일이다. 너희가 축기에 늦었지만 또 성단에 빠를 수도 있는 법. 하지만 당장은 수도계의 위계를 지켜 불손함이 없어야 할 것이다.”
문진은 속으로는 애틋하지만 겉으로는 냉정한 말을 쏟아냈다.
그것이 수좌인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한 것이다.
“물론입니다. 어려서부터 수도계에서 배고 배운 것이 있는데 어찌 경망스럽게 굴겠습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문진의 말에 연신기들 중에 하나가 대표로 나서 허리를 숙이며 대답했다.
“그래, 보아하니 너희도 이제는 축기기 승경을 미룬 모양이구나.”
문진은 연신기에 머문 동기들이 수련 자원을 모두 소비해서 더는 축기기 도전을 할 상황이 아님을 짐작하고 그리 물었다.
“그렇습니다. 선배님.”
“그래, 그럼 이제 다시 토벌대의 일을 맡아 공헌을 세우고, 그 보상을 받아야 수련을 할 수 있겠지?”
“네, 선배님.”
“아, 우리도 그것 때문에 수좌를 기다렸다고. 축기에 오르긴 했지만 이젠 빈털터리가 되어 버려서 말이지.”
“그래, 수좌는 수련을 하느라 모르겠지만 그 사이에 멸계의 세가 많이 줄었어. 그래서 토벌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지.”
“이럴 때에 우리도 한 손 거들에서 공헌 점수를 많이 얻어야지.”
“맞아. 그러니 수좌가 좀 나서서 자리를 알아봐. 네가 없으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문진의 말에 이번에 축기에 오른 이들도 우르르 나서서 말을 보탰다.
문진은 그런 별좌와 행자들의 모습에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수좌의 일을 너무 팽개쳐 두었다는 자각이 있긴 했던 것이다.
문진은 곧바로 토벌대 지휘부를 찾아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았다.
그리고 그 중에 연신기 수사들에게 배정할 적당한 잡무를 받고, 축기기 동기들과 함께 할 전투 임무도 수령했다.
연신기는 본진 밖으로 나가서 전투를 하기는 너무 위험해서 내부의 일을 맡기기로 했고, 축기기 동기들과는 공허체 사냥을 나서기로 한 것이다.
아울러서 채집과 부산물 획득도 노려볼 생각이었다.
“자, 그럼 가자.”
문진이 임무 배정을 마치고 열세 명의 축기기 동기를 이끌고 인솔자를 찾아 나섰다.
< 어라? 들켰네? >
“그것 참, 후배는 나날이 실력이 늘어나는 것 같아.”
“부끄럽습니다.”
“아니야. 문진 후배가 벌써 축기 완경에 이른 것도 이른 것이지만, 그 법기 제작과 연단술, 괴뢰와 진법에 이르기까지 출중한 능력을 쌓지 않았나. 그것도 고작 백여 년 만에 이룬 성과지.”
“그게 모두 지학우 선배님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문진은 감당하기 어렵다는 듯이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그는 지학우 수사와 정자의 탁자에 마주하고 있었는데, 그곳은 다름 아닌 토벌대의 지학우 거처였다.
지학우는 문진이 축기 중기부터 모시고 있는 성단기의 수사로 토벌대의 다양한 공방을 책임지는 인물이었다.
물론 그래봐야 성단기 수준이고, 영체기와 화신기 수준에서 쓸 것들은 각자가 알아서 준비를 하는 것이 상례였다.
대신 지학우가 책임지는 공방들에서 기본 재료들을 일정 수준까지 만들어 준비를 해 두는 식이다.
문진은 한동안 상동강 소성 수련원생을 이끌며 수좌 노릇을 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외부 활동 보다는 내부 활동에 주력하게 되었다.
그의 관심이 제작과 연단, 진법, 괴뢰 등에 편중된 면이 있어 지휘부에서도 그렇게 배치를 했던 것이다.
“내가 경지가 더 높다고 하지만 사실 후배의 독특한 발상들이 훨씬 가치가 있는 것들이었지. 내가 그 덕분에 영체기를 넘볼 수 있게 되었으니 고맙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네.”
성단기와 영체기의 차이는 극명하다.
특히 이곳처럼 멸계의 침범을 받아서 계 전체가 영계로 올라가는 시험을 치르는 경우는 더욱 그렇다.
왜냐하면 승계 시험을 치르는 계면에서는 주기적인 천겁이 닥치지 않기 때문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영체기가 되면 3천년에 한 번씩 천겁을 맞이하고 다섯 번째 천겁에서는 대천겁을 겪는데, 승계 시험을 치르는 계면에선 그게 없다는 소리다.
그래서 이런 계면에선 영체기 이상의 수사는 사실상 사고사가 아니라면 영생을 할 수 있는 조건이 성립한다.
그러니 지학우가 영체기가 될 가능성을 찾은 것에 이리 감격스러워 하는 것이다.
연신기 200년, 축기기 500년, 성단기 1천년.
도합 1천7백년 정도가 인간 수사가 성단기로 살 수 있는 수명이다.
그런데 이미 지학우는 그 수명이 거의 다한 상황에서 영체기에 오를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가 문진의 독특한 발상들을 곁에서 지켜보다 희망을 본 것이다.
“제가 작은 도움이라도 되었다면 기쁜 일입니다만, 그것도 모두 선배님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더는 그에 대해선 말씀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과한 치하는 도리어 부담이 되는 법.
문진은 적당히 선을 그어 지학우의 인사를 막았다.
지학우도 그런 문진의 뜻을 알고는 받아들였다.
“어쨌건 이제 이곳 혼돈역도 거의 정리가 되는 분위기니 자네도 수련원으로 돌아가겠구만.”
지학우는 화제를 돌려 문진의 거취에 대해 물었다.
쌍두단미영원이 잡히고, 무묵진이 큰 부상을 입은 사건 이후로 멸계의 세력이 약화되었다.
멸계는 원하는 것을 손에 넣지도 못하고 화신기 중기 수사가 큰 부상을 당하자 곧바로 주력을 혼돈역 밖으로 물렸다.
그래서 그 후로는 인계 수사들의 주도로 혼돈역 점령이 시작되었다.
그래도 곳곳에 남아서 떠도는 공허체들이 적잖게 있었고, 혼돈역의 괴수들도 강력해서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 과정에 백 년 가까운 시간이 흐르고 문진의 성취도 축기기 완경까지 이른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지휘부에서 귀환 순서를 정한다 들었습니다.”
“그럼 후배는 빠른 시일 안에 이곳을 떠나겠군. 나름 공도 많으니 배려를 해 주겠지.”
“하하하. 선배님께서 매번 평가를 후하게 주셨으니 그런 것이 아니겠습니까?”
“내가 나서지 않았어도 후배는 이미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었네. 쌍두단미영원을 발견하고 영찬까지 수습했으니 그럴 수밖에 없지.”
“그건 왜 그렇게 왜곡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문진은 지학우의 말에 이번에도 부끄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백 번 양보해서 쌍두단미영원의 은신처를 찾는데 도움이 된 것은 인정할 수 있다.
그것은 자신이 양청 일행을 죽인 것에서 비롯된 일이니까.
하지만 그 영찬을 얻은 것은 죽은 향일 수사의 공이었지 문진이 한 일은 하나도 없었다.
그저 향일에게 옥함을 받아 잠시 가지고 있다가 능토대에게 건넨 것이 전부인데, 그것을 두고 영찬을 수습했다고 하다니.
생각만 해도 절로 얼굴이 붉어질 일이었다.
“하하하. 고작 연신기가 그런 일을 했다는 것이 중요하지. 만약 그 일을 나 같은 성단기나 영체기 선배가 했다면 후배처럼 널리 이름이 날 일은 없었을 걸?”
“후우, 모르겠습니다. 한 일에 비해서 너무 큰 명성을 얻었습니다.”
“어쨌거나 자네는 수련원 출신이니 이번에 돌아가면 소성 수련원에 갈 것이고, 축기기 완경에 이르렀으니 대성 수련원으로 곧바로 가겠군.”
지학우는 대견스런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는 문진의 빠른 성장이 마치 자신의 일인 것처럼 기뻐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어찔 될지는 돌아가 봐야 알겠습니다. 그나마 함께 왔던 동기들 중에 열 명 정도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축기에 올랐으니 큰 성과라 할 수 있겠습니다.”
“나머지야 이미 나이가 많으니 돌아가면 수련원에서 내쳐지겠군.”
“수련 자질이 그밖에 되지 않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하지만 또 어찌 알겠습니까. 뒤늦게 축기에 성공하고 수명이 늘어 다시 그 수련에 정진할 수 있을지 말입니다.”
“그래, 그래. 수도계의 내일은 아무도 모르는 법이지. 하지만 나는 오래지 않아 후배를 가까운 곳에서 다시 볼 것이라 믿는다네. 어쩌면 그 때는 우리 둘이 모두 영체기에 올랐을 수도 있겠지.”
“덕담 감사합니다.”
문진은 지학우의 말뜻을 알아차리고 진심을 다해 감사를 표했다.
그리고 몇 달 후, 문진은 토벌대를 떠나 상동강 소성 수련원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다만 토벌대로 올 때에 문진 일행을 인솔했던 원보영은 혼돈역 토벌전에서 불행한 사고로 죽었기에 함께 하지 못하고 문진이 일행을 이끌었다.
“어서 오너라.”
상동강 소성의 수련원에 도착하자 수련원의 원장인 영체기 수사가 문진 일행을 맞이했다.
그리고 축기에 오른 이들만 남겨 그들의 거취에 대해 알려주었다.
“너희 중에 문진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삼합하 대성의 수련원으로 가게 된다.”
원장의 말에 원생들이 살짝 동요하는 모습을 보였다.
유독 문진만 그 대상에서 빠진 것을 궁금하게 여긴 것이다.
“문진은 이미 축기 완경에 이른데다가 혼돈역 토벌전에서 지대한 공을 세웠기에 국가 수련원에 들어갈 자격이 생겼다.”
원장은 곧바로 문진이 빠진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자 다른 원생들도 상황을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국가 수련원은 성단기가 되어야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습니까. 그런데 그곳에도 공헌 점수로 경지를 보완하여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까?”
문진은 자신에게 해당하는 일이기에 궁금함을 이기지 못하고 영체기 수사에게 무례할 수 있는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수련원장은 오래도록 수련원을 관리해 온 때문인지 까마득히 어린 수사의 질문에도 고까운 표정 없이 웃으며 대답해 주었다.
“당연히 가능한 일이다. 다만 그런 예가 많지 않은 것은 낮은 경지에 그만한 공적을 쌓은 이가 드물기 때문이다. 하물며 나이까지 많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이 붙으니 더욱 힘든 일이지.”
나이가 많으면 수련원에서 나가야 한다.
이번에 돌아온 원생들 중에 축기에 오르지 못한 이들이 모두 이 자리에 없는 것도 그런 이유다.
그들은 모두 수련원에서 쫓겨날 것이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진관국 국가 수련원에 속하게 되겠군요?”
“그렇다. 그러니 이 옥간을 들고 전송진을 타거라. 그리하면 곧바로 국가 수련원으로 갈 수 있을 것인 즉.”
원장은 곧바로 청옥 조각 하나를 소환해 문진에게 날려 보냈고, 문진은 미끄러져 오는 옥간을 받아들고 원장에게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그럼 다음에 또 뵙기를 바라겠습니다.”
어차피 얼굴도 제대로 본 적이 없는 원장에게 따로 정이 있을 턱이 없었다.
다만 함께 동고동락했던 동기들이 문제였으나 문진은 눈빛만으로 인사를 나누고 미련없이 등을 돌렸다.
원래 토벌대에서도 축기 중기 이후로는 따로 생활했기에 애틋하게 석별의 정을 나누는 것도 손발이 오그라들 일이었다.
그렇게 문진은 상동강 소성의 수련원을 떠나 진관국(津寬國) 국가 수련원으로 향하게 되었다.
* * *
문진은 깊은 수련 삼매경에서 깨어났다.
벌써 진관국 국가 수련원에 들어온 것도 30년이 흘렀다.
그 시간 동안 문진은 국가 수련원 10년 차에 벽을 뚫고 성단기 초기에 올랐다.
그 후, 20년을 일로매진 수련에 몰두하고 있는 문진이었다.
방금도 그는 나타결공법(??結功法)에 빠져 1년 만에 깨어난 참이었다.
그런데 그런 문진의 눈앞에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져 있었다.
“일어났느냐?”
“누, 누구십니까?”
문진은 깜짝 놀라며 주변을 살폈다.
수련 삼매에서 빠져 나왔는데 누군가와 눈이 마주치다니.
그 말은 자신의 수련 거처에 침입자가 있다는 이야기였다.
나타결공법은 워낙 특이한 공법이라 수련을 할 때에는 어김없이 최고 수준의 금제를 겹겹이 펼치고 수련을 했다.
특히 극멸기가 드러나지 않도록 혼돈기를 주입한 깃발 금제를 수도 없이 둘렀다.
더구나 문진은 이제 성단기에 이르러 그가 만드는 금제는 이전 축기기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그런데 그런 자신의 수런처에 남모르는 이가 들어왔다고?
“놀랐느냐?”
“뉘신지는 모르겠지만 어르신을 뵙습니다.”
문진은 급히 방석 옆으로 내려 앉으며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상대가 화신기 경지에 있음을 알아봤기 때문이다.
“맹랑한 녀석이구나. 아주 특이한 공법을 익히고 있어.”
그런 문진을 바라보는 화신기 수사의 눈빛이 매서웠다.
“후, 후배는 절대로 멸계 수사가 아닙니다.”
문진이 급히 자기 변호를 했다.
“멸계 수사가 아니라? 그런데 극멸기를 쓴다고?”
화신기 수사는 담담한 어조로 그렇게 물었다.
감정이 담기지 않은 목소리가 때로 더욱 두렵게 느껴질 수도 있음을 문진은 그 순간 실감했다.
“후, 후배는 혼돈역 괴수의 진혈을 얻어 그것을 흡수하며 공법을 익혔을 뿐, 멸계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그래?”
“그렇습니다.”
“그럼 그 진혈은 어찌 얻었느냐?”
“싸, 쌍두단미영원의 영찬을 수습한 일이 있었는데, 그 때, 그 쌍두단미영원의 사체가 소멸하며 진혈이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남몰래 취했다?”
“주,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어허! 그것이 죄는 아니지. 어차피 그냥 두었으면 대기로 산화하거나 땅에 스며 사라졌을 것을 네가 취한 것이 죄라 할 수는 없지. 수사가 보물을 취할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고 타박할 수야 있나.”
“하, 하지만.”
“게다가 그 때, 네가 수습하여 바친 영찬의 가치를 생각하면 쌍두단미영원의 진혈 따위야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니고.”
“가, 감사합니다.”
“하지만 그 진혈로 이런 공법을 만든 것은 특이하구나. 너는 어떻게 이런 공법을 만들었는지 낱낱이 아뢰거라. 만약 그 과정에 허점이 있다면 네가 멸계 수사임을 부인치 못할 것이다.”
화신기 수사의 말에 문진이 침을 꿀꺽 삼켰다.
눈앞의 수사를 제대로 이해시키지 못하면 문진은 그 즉시 멸계 수사로 판정되어 죽임을 당할 것이다.
문진은 그 동안 나타결공법에 대한 변명으로 준비해 두었던 공법 생성 과정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야기의 뼈대는 간단했다.
문진이 쌍두단미영원의 진혈을 얻었고, 그것을 몸에 흡수하기 위해서 그에 맞는 법결들을 짜맞췄다.
그러면서 조금씩 쌍두단미영원의 진혈을 몸에 흡수하여 연화했는데, 그 과정에서 아주 독특한 공법이 만들어졌다.
그것이 바로 나타결공법이다.
이런 내용이었다.
“음, 거기서 그런 법결을 넣었어? 그렇군. 그러니 그런 변화가 생겼겠지. 거기에 진혈의 힘이 더해지면서 그런 공능이 생겨 난 것이고. 어허, 아쉽구나. 쌍두단미영원의 진혈을 더 구할 수만 있다면 나타결공법을 많은 수사들이 익힐 수 있을 텐데, 그럴 수가 없으니.”
이미 쌍두단미영원은 죽어 영찬이 된 상황이었다.
어디 다른 혼돈역에 쌍두단미영원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괴수가 영기와 극멸기, 혼돈기를 함께 쓸 수 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게다가 그렇게 세 기운을 쓴다고 해도, 그 몸에 있는 진혈이 문진이 얻은 것과 꼭 같을 수도 없다.
마치 유전 형질이 조금씩 다른 것처럼 같은 태고 조상을 가지고 있어도 이어받는 진혈의 힘은 제각각일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음, 어쨌거나 너는 나와 함께 가야 할 거 같다. 따로 챙길 것이 있느냐?”
잠시 진혈이 없음을 아쉬워하던 화신기 수사가 문진을 노려보며 물었다.
그리고 그 후 문진은 수련원의 거처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는데, 수련원에선 그가 특별한 수련을 위해 고계 수사의 부름을 받았다는 이야기만 전했다.
그렇게 문진은 종적을 알 수 없게 되고 말았다.
< 어라? 들켰네?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