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 문진은 아직도 배가 고프다
‘결국 저 도롱뇽은 죽음을 피하지 못하겠지. 게다가 이 구슬에 남겨진 화신도 발아를 하지 못할 테고.’
문진은 능토대와 무묵진이 쌍두단미영원을 협공하는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어차피 그들이 필요한 것은 쌍두단미영원의 영찬(靈璨)이었다.
그건 쌍두단미영원을 죽여야 얻을 수 있는 것.
그래서인지 능토대와 무묵진은 어느 순간부터 서로 힘을 모아서 쌍두단미영원을 공격하고 있었다.
물론 그런 중에도 서로에 대한 경계는 절대 늦추는 법이 없었다.
그게 아니었다면 쌍두단미영원은 이미 오래 전에 숨이 다했을 것이다.
‘그나저나 어째서 토벌대 본진이나 멸계 본진에서 더 이상의 충원이 없는 걸까?’
문진은 문득 그런 의심이 들었다.
화신기 셋이 싸우는 상황이었다.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토벌대 본대에서 그것을 모를 턱이 없었다.
그렇다면 벌써 누가 와도 왔어야 하는데 소식이 없다.
그 뿐만이 아니다.
무묵진이 나타났으니 멸계에서도 이쪽 상황을 알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무묵진을 돕기 위한 공허체나 멸계 수사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뭔가 사정이 있는 모양이네. 그리고 다른 변수가 생기지 않는 것이 상황을 살피기에 좋기는 하지. 자, 그럼 이제 생각을 해 보자. 내가 여기서 뭘 더 얻을 수 있을지.’
문진은 공간낭에서 금은연리옥함을 만들던 극금문의 봉인술법을 차용한 목함을 꺼냈다.
그것은 지금 문진이 만들 수 있는 최고의 봉인 목함이었다.
‘이걸 이대로 들고 있다가는 문제가 생길 수도 있지. 그러니 잘 숨겨 둬야지. 그리고 여유가 되면 곧바로 무명공으로 연화해서 새로운 공법을 만드는 거지.’
문진은 목함에 흑은색 구슬을 넣으며 활짝 웃었다.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무명공에 어울리는 진혈을 얻었다.
도롱뇽의 진혈이지만 그 피에는 도롱뇽 괴수의 태고 선조의 피가 흐르고 있을 것이다.
아직 그 진혈의 진정한 정체는 알 수 없지만 화신기 괴수의 힘이라도 제대로 낼 수 있다면 나쁘지 않을 것이다.
무명공을 여럿 익히는 데에도 제약이 없다.
그러니 부담 없이 쌍두단미영원의 피를 무명공에 쓰려는 것이고 화신기 괴수라면 한동안 문진이 쓰기엔 부족하지 않은 공법이 나올 것이다.
케에에에에에에에!
문진이 흑은색 구슬을 봉인 목함에 넣는 순간이었다.
쌍두단미영원이 미친 듯이 날뛰며 능토대와 무묵진의 포위를 뚫으려 했다.
쌍두단미영원은 자신이 만든 알의 기척이 사라지자 그것이 완전히 깨진 것으로 생각하고 광분한 것이다.
하지만 능토대와 무묵진은 그저 정말 최후의 발악을 하는 것이라 여기며 더욱 조심스럽게 쌍두단미영원을 상대했다.
케케케케켑! 케에에에에!
쿠구구구궁! 털썩!
결국 쌍두단미영원은 두 화신기 수사의 포위를 뚫지 못하고 거체를 땅에 눕히고 말았다.
원망스런 눈빛이 수십 리 밖에 있는 문진을 향했지만 그 의미를 알 수 있는 이는 없었다.
하물며 일을 저지른 문진 조차도 쌍두단미영원의 원통함을 짐작하지 못했다.
“드디어 죽었네.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
문진은 그저 정족지세 세 개의 다리 중에 하나가 부러지고 둘만 남은 상황에서 능토대와 무묵진이 어떻게 할 것인지가 궁금할 뿐이었다.
* * *
“일단 영찬부터!”
“그렇게 하지!”
능토대의 말에 무묵진도 동의했다.
죽은 쌍두단미영원의 화신을 몸에 가두고,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영찬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자칫 쌍두단미영원의 화신이 몸에서 빠져나가 어디론가 숨어버리면 그동안의 고생이 헛것이 될 수도 있었다.
그래서 둘은 우선 보물을 완성하자는데 뜻을 같이했다.
둘은 눈빛을 교환하며 영기와 극멸기를 떨쳐내어 쌍두단미영원의 사체에 금제를 둘렀다.
이제 쌍두단미영원의 영체는 그 사체 안에 있는 극멸기와 영기, 혼돈기를 받아들여 하나의 영찬을 만들어 낼 것이다.
“자리를 옮겨 볼까?”
무묵진이 능토대를 보며 말했다.
둘의 싸움으로 쌍두단미영원의 사체가 훼손되는 것을 피하지는 뜻.
하지만 능토대는 고개를 저었다.
“그럴 수는 없지.”
이미 세 명의 영체기 수사가 능토대를 돕기 위해 진법을 완성해 놓은 상태였다.
여기서 움직이면 능토대만 불리할 뿐이다.
게다가 쌍두단미영원이 여기에 있는데 어디로 간다는 말인가.
“하긴 저걸 두고 다른 곳으로 가는 것도 곤란하긴 하지.”
무묵진 역시 쌍두단미영원의 사체에서 멀리 떨어지고 싶지는 않은 모양인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슬쩍 검은 붕대가 감긴 손을 떨쳐 극멸기를 일깨웠다.
그에 맞서 능토대 역시 의념을 퍼뜨리며 영기를 사방에 둘렀다.
동시에 세 명의 영체기 수사도 진법의 축을 차지하고 앉아서 영기를 끌어 올렸다.
“어디 붙어 보자꾸나!”
무묵진은 더 이상은 말이 필요 없다고 느꼈는지 곧바로 극멸기를 이용해 검은 안개를 만들어 능토대와 영체기 수사들을 향해 밀어 붙였다.
“쉽게 당해 줄 것 같으냐! 멸계의 잡종!”
능토대 역시 기세에서 밀리지 않았다.
그의 손짓에 수백 장의 땅이 치솟아 오르며 무묵진을 향해 노도(怒濤)처럼 밀려갔다.
“우리도 힘을 냅시다.”
거기에 더해서 영체기 수사들도 진법을 발동시켜 영기 가득한 새하얀 운무를 만들어 냈는데, 그것이 무묵진의 검은 안개와 만나 서로 상충되었다.
“으음?”
무묵진은 그 모습에 살짝 낮은 신음소리를 냈다.
“어떠냐? 그 동안 네 놈의 수법을 연구하며 만들어낸 진법이다. 크하하하.”
그 모습에 능토대가 지금껏 참아왔던 울분을 터트리기라도 하듯 크게 웃으며 공세에 막차를 가했다.
쿠구구구구구구궁! 콰과과곽!
능토대의 손짓에 노도처럼 밀려들던 대지에서 수 백 개의 짐승 머리가 만들어지더니 뱀의 몸통 모양으로 늘어나며 무묵진에게 짓쳐 들었다.
“제법이다!”
무묵진이 그 모습에 소매를 떨쳐 더욱 짙은 안개를 만들고 그 안개 속으로 몸을 감추었다.
능토대가 만든 수백 개의 짐승 머리는 그 안개를 사납게 물어뜯으며 난동을 피웠다.
마치 짐승 머리를 달고 있는 수백 마리의 뱀이 검은 살점을 뜯어 먹는 것 같았다.
그렇게 순식간이 무묵진의 검은 안개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하지만 그 누구도 무묵진이 그렇게 쉽게 죽을 거라곤 생각지 않았다.
“광휘!”
영체기 요괴 수사가 고함을 질렀다.
그러자 진법의 축을 이룬 다른 두 영체기 수사가 진법 곳곳에 법결을 날리더니 품에서 하얀 구슬 하나씩을 꺼냈다.
요괴 수사 역시 같은 구슬을 꺼내 피를 뿜어 법결을 새겨 넣었다.
그리고 세 수사가 동시에 허공의 한 점을 향해 구슬을 던졌고, 구술은 한 점에서 만나 거대한 영기 폭발을 일으켰다.
푸화화확!
그리고 그 폭발은 엄청난 빛을 만들어 냈는데, 그 빛에 닿은 어둠은 순식간에 씻겨 나갔다.
문진은 멀리서도 그 빛이 일정 범위 안쪽이라면 사각지대 없이 모두 작용하는 것을 알아보았다.
“크으으윽!”
그리고 그 빛이 한 지점에서 하얀 불꽃이 되어 타오르더니, 그 불꽃 안에서 무묵진이 낭패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는 몸을 감고 있는 검은 붕대들이 여기저기 찢어진 모습으로 불꽃에서 토해지듯 허공으로 내동댕이쳐졌다.
“끄으윽, 준비를 많이 했구나.”
무묵진은 영체기 수사들의 진법이 오로지 자신을 겨냥해서 만들어진 특별한 것임을 알아봤다.
지금은 사실상 능토대 보다는 영체기 수사들의 진법이 그에게 더 위협적인 상황이었다.
무묵진의 눈빛이 사나워지며 영체기 수사들의 진법을 노려봤다.
당장이라도 영체기 수사들을 찢어 죽이고 진법을 부수고 싶었지만 정작 그는 마음처럼 움직이지 못했다.
“어떠냐? 꽤 맵지?”
어느새 그와 영체기 수사들 사이에 흙기둥을 뽑아 올리며 막아서는 능토대의 존재 때문이었다.
“고약하게 되었구나. 이런 준비를 했을 줄은 나도 몰랐군.”
광휘라는 수법에 타격이 컸다.
극멸기를 이용해서 안개를 만들고 그 안개를 부리는 것이 무묵진의 특기였다.
그런데 안개에 몸을 감추고 큰 공격을 준비하다가 광휘라는 불의의 기습을 당하고 말았다.
그것도 무묵진의 극멸기 흑무와는 극상성의 공격.
그 때문에 안개와 동화되어 있던 무묵진이 의외로 큰 타격을 입은 상태였다.
이런 상태라면 능토대를 상대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거기에 영체기 수사들의 진법까지 더하면?
무묵진은 승산이 낮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고작 이런 얄팍한 수로 나를 어쩔 수 있을 것 같으냐?”
하지만 그럼에도 무묵진은 허장성세를 펼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상황에서 몸을 빼는 것이야 어렵지 않겠지만 이대로 물러나선 체면이 서지 않는다.
게다가 지금 쌍두단미영원의 몸에서는 엄청난 보물이 만들어지고 있는 중이다.
그것을 취하지 못하면 파괴하는 것이 차선일 것이다.
“끌끌끌, 눈동자 돌아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겠지만 네 뜻대로 되지는 않을 것이다.”
무묵진이 허장성세를 보였지만 능토대는 속지 않았다.
그는 무묵진의 상세가 위중함을 짐작했고, 그렇다면 무묵진이 벌일 일은 하나 밖에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무묵진은 능토대가 쉽게 속아주지 않자 속으로 초조했지만 겉으로는 태연함을 가장하며 다시 극멸기를 끌어냈다.
그 극멸기는 이전과 다름없이 광대하고 강력하며 흉흉했다.
“내가 조금 손해를 봤다고 나를 너무 무시하는구나. 고작 화신기 초기 주제에!”
무묵진이 능토대에게 경지를 운운하며 심기를 건드렸다.
그리고 극멸기로 만든 검은 안개로 능토대가 만들었던 것과 비슷한 뱀들을 만들어냈다.
눈과 코가 없이, 오로지 입만 달린 검은 뱀들이 꿈틀거리며 능토대와 영체기 수사들을 향해 몰려갔다.
능토대는 어림도 없다는 듯이 콧방귀를 뀌며 흙방패를 만들어 무묵진의 공격을 막았다.
당연히 그 방패들은 진법을 유지하는 영체기 수사들에게도 펼쳐졌다.
“노옴!”
하지만 무묵진도 오랜 세월을 살아온 화신기 수사였다.
능토대의 방어를 생각지 못했을 턱이 없었다.
무묵진이 고함을 지르며 하늘로 두 손을 뻗어 올렸다가 빠르게 지상으로 내리쳤다.
쿠르르르르르릉!
순간 검은 번개가 다발을 이루고 진법 안의 영체기 수사들을 향해 내리 꽂혔다.
파차차차차차차창!
“끅!”
“크아아악!”
“커억!”
당연히 영체기 수사들의 진법에도 나름의 방어술법이 펼쳐져 있었다.
하지만 여덟 겹의 방어막이 일순간 살얼음 깨지듯 깨져 나가고, 영체기 수사들의 몸에 검은 번개가 틀어박혔다.
“크하하하하. 맛이 어떠냐!”
순간 무묵진은 영체기 수사들의 죽음을 확신하며 크게 웃었다.
물론 그 사이에 무묵진 역시 능토대의 공격에 왼 팔을 잃었다.
그 짧은 순간 능토대가 날린 짐승 머리에게 왼 팔을 뜯어먹힌 것이다.
그만큼 무묵진이 손해를 감수하고 영체기 수사들의 공격에 집중했다는 이야기였다.
푸화화화화화홧!
“크아아아아아악! 이, 이게······. 두고 보자!”
하지만 무묵진의 기쁨은 너무 일렀다.
검은 번개를 맞은 세 명의 영체기 수사중에 요괴 수사가 죽음을 불사하며 영체까지 불태워 진법을 폭주시켰다.
그러자 이전 광휘보다 몇 배는 강력한 빛이 터져 나왔고, 무묵진은 그 빛을 견디지 못하고 다시 하반신이 날아가는 중상을 당했다.
무묵진은 그런 피해를 입자마자 곧바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게 서라!”
그러자 능토대는 지금이 무묵진을 처리할 가장 좋은 기회임을 직감하고 황토색 둔광과 함께 전장에서 사라졌다.
휘이이이이이이잉!
모두가 죽거나 사라진 전장에 스산한 바람만 휘몰아쳤다.
그런 중에 작은 둔광이 번뜩이며 전장 한 가운데에 문진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 이거 어떻게 되는 거야?”
일부러 어리숙한 모습을 보이는 문진.
하지만 그의 눈빛은 영활하게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 여봐라! 아이야!
그 때, 어디선가 문진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