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172화 (172/499)

171. 어쨌거나 살아서 포포(包抱)를

“일을 어찌 이리 만드시오?”

영체기 수사 하나가 요괴 수사를 보며 책망하듯 말했다.

“그게··· 나도 이렇게 될 줄은 모르지 않았겠소. 하필 비행 법기의 귀환 지점을 중심으로 저리 대치를 하게 될 줄을······.”

요괴 수사도 난감하다는 듯이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지금 상황에서 비행 법기를 빼 내는 것도 조심스러웠다.

자칫 그 움직임이 세 화신기 존재의 격돌을 불러올 수도 있었다.

자연스럽게 베틀 북 비행 법기 하나가 모두의 시선을 사로잡은 가운데 적막한 대치가 이루어졌다.

“그것 참. 허!”

화신기 중기의 멸계 수사 무묵진도 어이가 없는지 혀를 차며 문진을 바라봤다.

문진은 꼼짝 없이 비행 법기 위에 서서 눈치를 살폈다.

그러다가 불쑥 어깨를 펴며 무묵진을 노려 보았다.

경지가 아무리 높다고 하더라도 어차피 적이었다.

적을 앞에 두고 두려움에 떠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자존심도 상하고, 또 다른 수사들 보기에도 민망한 노릇이었다.

“호오? 네 놈이 지금 나를 노려 보는 것이냐?”

무묵진이 그런 문진의 태도에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눈빛에 힘을 담아 문진을 노려봤다.

하지만 그런 무묵진의 눈길에 담긴 힘은 문진에게 닿지 않았다.

능토대가 무묵진의 눈빛 공격을 중간에서 막아 선 것이다.

케케켑, 케케!

그 순간 쌍두단미영원이 영기와 극멸기를 움직였다.

능토대와 무묵진이 서로 충돌하자 그 틈을 본 것이다.

당연히 능토대와 무묵진의 대치가 풀리고 다시 쌍두단미영원을 억제하는 방향으로 둘의 기운이 움직였다.

“으윽!”

그리고 그 사이에 끼어 있는 문진은 비행 법기의 방어 술법의 도움으로 겨우겨우 그런 힘의 유동을 버텨내는 중이었다.

‘이러다간 정말 순식간에 뭉개질 수도 있겠어. 어떻게든 여기서 벗어나야 한다.’

문진은 비행 법기 위에 가부좌를 하고 앉아 눈을 감았다.

그리고 세 화신기 존재들이 대치하고 있는 기운을 느끼려 애썼다.

정족지세(鼎足之勢).

솥의 세 발이 균형을 맞추고 있는 것 같은 상황.

하지만 여기도 미묘한 차이가 있고, 흐름이 있을 것이다.

그 틈을 보아서 어떻게든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그 틈은 세 힘이 서로 충돌할 때에 일어날 것이다.

화신기들이 굳이 문진의 존재나 역할에 신경을 쓰진 않을 터.

먼저 움직이지만 않으면 그저 눈앞에 알짱거리는 귀찮은 존재일 뿐, 굳이 어찌해야 할 대상도 아니고, 신경 쓰다가는 도리어 다른 이들에게 틈을 줄 수도 있는 상황이다.

그러니 아무도 문진을 어쩌진 않을 것이다.

문진은 그렇게 믿고 눈을 감고 자신이 살아날 길을 찾기 위해 최대한 의식을 집중했다.

‘도롱뇽은 어차피 도망갈 수 없다. 그럼 무묵진이 문제인데, 이는 영체기 후배들의 보조를 받으면 어떻게든 감당이 가능할 것이다.’

능토대는 이리저리 상황을 타개할 궁리를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세 명 남은 영체기 수사들에게 자신을 보조할 진법을 구축하게 했다.

능토대의 명을 받은 영체기 수사들은 빠르게 진법을 만들어 언제든 무묵진을 공격할 태세를 갖췄다.

무묵진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선뜻 움직이기 어려웠다.

쌍두단미영원의 기세가 많이 줄어들고 있었다.

이미 한계에 다다른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여기서 쌍두단미영원의 숨이 끊어지면 그 순간 그것을 취하는 쪽이 승자가 된다.

변수는 쌍두단미영원이 마지막 발악을 하는 것.

보아하니 지금 능토대가 쌍두단미영원의 자폭을 막고 있다.

저것을 건드렸다가는 쌍두단미영원을 허망하게 잃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 때문에 무묵진도 능토대를 함부로 할 수가 없었다.

‘결국 쌍두단미영원의 숨이 끊어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거군. 그 전에는 건드리기 곤란해.’

결국 자폭을 하지 못하게 막고, 숨이 끊어질 때까지 기다려야 쌍두단미영원의 영찬을 얻을 수 있다는 결론이 났다.

무묵진이 허공에 가부좌를 하고 앉았다.

그러자 능토대 역시 흙기둥 위에 정좌를 하고 앉아 눈을 감았다.

그 뒤로 세 영체기 수사가 겹겹이 진법을 보강하며 더욱 굳건한 대비 태세를 갖췄다.

케케케케케 케에에엡!

쌍두단미영원은 그 모습에 희망이 없음을 느꼈다.

원래 몸에 쌓은 혼돈기를 배출하여 극멸기와 영기를 충돌시키려 했었다.

상극의 두 기운은 보통 상쇄되는 것이지만 간혹 두 기운을 한꺼번에 이용할 수 있으면 충돌과 폭발을 유도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능토대가 쌍두단미영원의 혼돈기 배출을 억제하고 도리어 다시 주입시키는 수를 썼다.

그것으로 쌍두단미영원이 하려 했던 최후의 한 수가 막혀 버린 것이다.

이젠 이대로 조금씩 말라 죽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현실을 인정한 쌍두단미영원의 눈빛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능토대와 무묵진도 쌍두단미영원의 기세가 한풀 꺾인 것을 느끼며 진잔한 미소를 지었다.

* * *

‘으음. 된다! 이대로 축기기로 간다!’

그 때, 베틀 북에 올라앉은 문진은 일생일대의 도박을 하고 있었다.

그는 공간낭에서 이전에 받았던 축기단을 꺼내 삼키고 영기를 끌어 올려 경지를 한 단계 끌어 올리려 하고 있었다.

원래는 가만히 기다리다 세 화신기들의 싸움에서 틈을 보아 몸을 피하려 했지만 성공 가능성이 낮아 보였다.

그래서 차라리 축기기에 오르는 순간의 힘을 빌려 살 길을 도모해 보기로 결심한 것이다.

경지가 올라갈 때에는 천지영기의 움직임이 일어나고, 천지 법칙의 주목을 받게 된다.

비록 연신기에서 축기기로 오르는 작은 일이라 천지 법칙의 영향이 크지는 않겠지만 어쨌거나 변수를 만들 수 있을 터.

그렇다면 그 순간을 빌어서 정족(鼎足)의 형세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도.

“그것 참.”

무묵진이 슬며시 눈을 뜨고 문진을 노려보며 다시 한 번 혀를 찼다.

인간 수사가 축기기에 오르려는 시도를 하고 있음을 알아보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흙기둥 위에 있는 능토대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둘은 곧 다시 눈을 감고 전체적인 상황을 살피기 시작했다.

중간에 끼어 있는 연신기 수사 따위는 일고의 가치도 없었다.

축기기가 된다고 해도 그것은 별반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차라리 영체기 요괴 수사의 비행 법기 자체가 가진 힘이 어린 연신기 수사보다는 더 신경 써야 할 대상일 것이다.

‘고작 축기기에 오르는 것이 어려울 것은 없다. 의념도 충분하고 축기단의 기운으로 영기도 넘친다. 이런데 축기가 되지 못한다면 내 본신의 경지가 부끄러울 일이지.’

문진은 축기기에 오르는 것에 자신이 있었다.

유혼결(幼魂結)로 강화된 의념의 힘이 있고, 진념결로 의식도 다른 수사에 비해 넓게 확장된 상황이다.

문진은 축기단의 도움으로 증폭된 영기를 움직여 금과 토, 두 개의 영근을 재촉했다.

두 영근이 모두 축기의 수준에 올라야 온전한 축기기가 될 수 있다.

문진은 한 번에 두 개의 영근을 성장시키는 무리수를 두고 있지만 겉으로 드러난 표정은 태연했다.

그렇게 며칠의 시간이 흘렀다.

쌍두단미영원의 기세는 나날이 줄어갔고, 능토대와 무묵진은 변함 없는 모습이었다.

그 중앙에 문진 역시 처음과 같은 모습으로 가부좌를 하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쌍두단미영원, 능토대, 무묵진의 눈이 번쩍 떠졌다.

“축기에 성공했구나!”

“별난 놈이로군!”

케에에에에에.

세 화신기 존재가 주목하는 가운데 문진의 몸에서 휘황한 광채가 치솟아 오르며 하늘로부터 천지 법칙의 기운이 쏟아졌다.

그리고 동시에 문진은 극도의 열락과 환희의 표정을 지으며 하늘로 고개를 들었다.

모두가 그런 문진의 축기기 승경(昇境)에 잠시 한 눈이 팔렸다.

그런데 그 순간!

“어엇? 저 놈이?”

“허어! 진정 별난 놈이로고!”

케에에에에에!

문진이 천기 법칙과 연결된 상태로 베틀 북 비행법기에서 뛰어내렸다.

문진은 곧바로 수백 장 밑의 땅바닥으로 떨어져 내렸고, 그런 문진을 따라서 천지 법칙의 기운이 선을 그리며 이어졌다.

“크하하하. 재미있는 놈이구나.

무묵진이 크게 웃었다.

지금 이 순간 어린 연신기 수사는 축기기로 오르는 것을 포기하고 위험에서 스스로를 구한 것이다.

땅에 떨어진 어린 수사는 곧바로 대지 깊은 곳으로 파고들고 있었다.

그곳 역시 쌍두단미영원과 능토대, 무묵진의 기운이 대치하고 있는 곳임은 분명하지만, 이미 어린 수사가 움직임을 시작할 때에 마땅한 대처를 하지 못했다.

세 화신기 존재가 모두 그러했으니 이미 움직이고 있는 작은 벌레를 잡겠다고 따로 뭔가를 하는 것도 우습다.

그 움직임이 무슨 변화의 단초가 되는 것이 위험한 일이었지 이미 움직이게 된 후에는 또 별반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 버렸다.

축기에 오르는 것에 집중하느라 돌발 행동에 반응하지 못했다.

허를 찔린 셈이다.

능토대로선 기꺼운 일이고, 무묵진으로선 면이 깎인 일이고, 쌍두단미영원은 상관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 순간 쌍두단미영원은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다.

그 하찮은 존재도 어떻게든 살 길을 찾는데, 자신은 너무 쉽게 포기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것 참.”

“고약하게 되었군.”

능토대와 무묵진도 쌍두단미영원의 변화를 곧바로 알아차렸다.

쌍두단미영원의 각오가 달라지니 곧바로 기세가 되살아나며 영기와 극멸기가 용틀임을 하고 있었다.

능토대와 무묵진은 사라진 어린 수사에 대해서는 잊어버리고 다시 쌍두단미영원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는 영체기 수사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 * *

“우아아! 살았다아!”

그 시간, 문진은 지하 500장 밑에서 환호성을 올리고 있었다.

이곳도 위험하긴 마찬가지지만 그거야 최대한 먼 곳으로 벗어나면 그만이다.

이제 화신기들의 싸움이 시작된다고 해도 어떻게든 살 길은 찾을 자신이 있었다.

“정말 죽을 뻔 했네. 후아아.”

문진은 깊은 숨을 토해냈다.

그리고 동시에 아쉬운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축기에 걸쳤던 경지가 다시 연신기 완경으로 돌아와 있었기 때문이다.

축기의 승경 모습으로 관심을 끌었지만 그것을 포기함으로서 생명을 구했다.

계획대로 된 일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축기기에 닿았던 그 법열의 환희는 너무도 강렬했고, 그것을 토해 낸 상실감은 어마어마했다.

‘괜찮다. 심신을 안정시키면 언제든 다시 도전할 수 있다. 축기단이 없다고 해도 승경에 실패하지는 않을 것이다.’

문진은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며 부지런히 지둔술을 펼쳐 세 화신기 존재들로부터 멀어졌다.

그러던 어느 순간, 갑자기 벽이 허물어지며 비어 있는 공간이 나왔다.

“어? 이건 뭐지?”

문진은 그 공간이 자연스럽지 않음을 알아봤다.

흙과 돌이 얽히고설키며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곳이 아니라 정방형의 각진 공간이었다.

그리고 그 중앙에 어린 주먹 크기의 둥근 물체 하나가 놓여 있었다.

문진은 조심스럽게 의념을 뿌려 위험을 확인하며 그것에 다가갔다.

“어라? 이거 그 쌍두도롱뇽과 같은 기운인데?”

흑은색의 구슬에서 느껴지는 기운은 며칠 동안 문진이 질리도록 느꼈던 바로 그 쌍두단미영원의 기운이었다.

문진은 구슬을 잡고 의념을 불어 넣었다.

그러자 구슬 안에 잠들어 있는 미약한 화신의 느낌과 함께 쌍두단미영원의 진혈이 느껴졌다.

“이거?”

문진이 깜짝 놀라며 저도 모르게 멀리 쌍두단미영원이 있는 쪽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 순간 지상에 있던 쌍두단미영원은 자신이 안배한 최후의 한 수에 문제가 생긴 것을 알아차렸다.

케케엡! 케에엡!

콰광! 콰광! 콰과과과광!

“어엇? 갑자기 이게 무슨?”

“결국 죽기 전에 마지막 발악이라도 하겠다는 것이냐!”

쌍두단미영원은 자신이 만든 알이 문진의 손에 들어간 것을 알아차리고 광분했다.

쌍두단미영원이 영기와 극멸기로 능토대와 무묵진은 물론이고 영체기 수사들까지 무작위로 노리며 폭발을 일으켰다.

하지만 능토대와 무묵진은 그것이 어린 연신기 수사의 탓이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그들은 그저 기세가 달라졌던 쌍두단미영원이 마지막까지 발악을 하는가 하며 비웃을 뿐이었다.

두 화신기 수사가 방어를 하는 상황에서 쌍두단미영원이 날뛰어봐야 뾰족한 수가 없음을 자신하는 그들이었다.

그렇게 쌍두단미영원의 난동은 사흘 밤낮으로 이어졌다.

“이거, 좋은데? 이걸로 무명공을 익히면 어떤 공법이 나올까?”

그런 중에 문진은 수십 리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싸움 구경을 하며 쌍두단미영원의 진혈 구슬을 쓰다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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