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 괴수가 그랬을 걸?
“어쩐 일로 여길 왔지?”
양청이 갑자기 찾아온 문진의 모습에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지난 이틀 동안 법기 제작에 몰두하여 삼결방 법기를 몇 개 만들었다. 그래서 모두에게 나눠주기 위해 나선 참이다.”
“아! 그래? 그거 고마운 일이네.”
“그런데 너희는 모두 깨어서 무얼 하고 있는 거지? 명상이나 공법 수행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연단이나 제작을 하는 것 같지도 않은데?”
“아, 그냥 그 동안 있었던 일들을 돌아보며 타산지석의 예로 삼을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중이었다.”
“그런 일인데 거처에 금제와 결계까지? 그건 좀 과했군. 나는 또 무슨 일이라도 있는 줄 알고 놀랐지.”
“하하하. 별 일 없으니 걱정하지 마라.”
“알았다. 그럼 이걸 받아라. 나는 또 다른 별좌들도 만나야 하니 오래 머물러 있기는 어렵겠다.”
“그래. 그렇군. 어쨌건 이 법기는 고맙다. 네가 수고가 많다.”
“재료를 받고 만들어 주는 것인데 수고랄 것이야 있나. 이제 열흘이면 이 고생도 끝이 날 것이니 모두 힘을 내도록 하자.”
“하하하. 그래. 그래.”
문진은 양청의 어색한 배웅을 받으며 물러났다.
그리고 곧바로 구관아, 동진수, 향보아, 장화련에게 자신의 거처에서 만나자는 연락을 보냈다.
“무슨 일이지?”
“왜 우리를 다 불러 모은 거지?”
“양청은? 양청은 부르지 않은 건가?”
“그 녀석은 또 미적거리다가 늦게 나타나겠지.”
문진의 거처에 모인 별좌들은 소집한 이유를 궁금해 하며, 늦게 오는 양청을 험담했다.
“내가 법기를 몇 개 만들었는데, 그걸 너희에게 나눠주기 위해서 불렀다. 내가 가져다 주는 것이 도리겠지만, 바쁘게 법기를 만들다보니 조금 지친 감도 있고 해서.”
“무슨, 당연히 우리가 와야지 안 그래?”
“그럼, 동진수 말이 옳지. 그런데 벌써 법기를 완성했다고?”
“여러 번 만들다보니 한꺼번에 여러 개의 법기를 동시 제작하는 방법이 떠올랐다. 당연히 들어가는 영기와 의념이 커지지만 시간을 단축하기엔 나쁘지 않더군.”
문진은 그렇게 대답하며 별좌들에게 방어 법기를 나눠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모두에 삼결방 법기도 세 벌씩 분배했다.
모두에게 법기 분배가 끝나자 문진의 앞에는 양청의 몫으로 남긴 법기들만 남았다.
그 법기를 보며 장화련이 투덜거렸다.
“양청 이 녀석은 도대체 뭘 하는 거지? 문진, 녀석에게 연락은 한 거야?”
“당연하지, 전신부를 보냈는데?”
“잠깐, 그러고 보니 양청 그 녀석 거처에 금제와 결계를 치고 있잖아. 그러면 문진의 전신부를 받지 못했을 수도 있네?”
문진의 대답에 향보아가 양청의 거처에 처진 결계를 알고 있었던 듯이 말했다.
그러자 구관아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던 듯 향보아의 말을 받았다.
“그러네. 도대체 무슨 일을 꾸미느라 금제까지 두르고 있는지 몰라.”
“양청이 거처에 금제를 둘렀어?”
장화련은 그런 사실을 몰랐다는 듯이 눈을 커다랗게 떴다.
“뭔가 방해를 받고 싶지 않은 일이 있는 모양이군. 그렇다면 법기는 그냥 휴식이 끝나고 출발할 때에 전해 주면······.”
문진이 그렇게 상황을 정리하려 할 때였다.
콰과과과과과광!
우르르르르르릉!
엄청난 굉음과 함께 석실 전체가 크게 흔들렸다.
“크윽, 이게 무슨 일이지?”
“어디서 일어난 폭발이야?”
“미친, 양청! 양청의 거처야!”
“도대체 무슨 일이야!”
폭발 직후, 문진과 네 별좌는 서둘러 양청의 거처를 향해 몸을 날렸다.
하지만 양청의 거처로 향하는 통로는 중간에서 무너져 있었고, 그 안쪽에서 엄청난 극멸기가 스며 나왔다.
“뭐지? 이 극멸기는?”
“설마 공허체가 온 건가?”
“어때? 살아 있는 녀석들이 있어?”
“몰라, 극멸기가 워낙 강렬하게 소용돌이 치고 있어서 안쪽 상황을 파악할 수가 없다.”
“나, 나도 그래.”
“어쩌지?”
“젠장, 고계 공허체라도 나타난 거 아닐까?”
별좌들이 허둥거리는 중에 다른행자들도 하나둘씩 달려와 모두 한 곳에 모이게 되었다.
문진은 그들을 훑어보며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양청과 그 행자들을 이대로 두고 갈 수는 없다. 그들 모두가 죽었더라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확인하는 것이 동료로서의 도리일 것이다.”
문진의 말에 별좌와 행좌들은 떨떠름한 표정이지만 억지로 고개를 끄덕였다.
“동진수, 행자들과 함께 길을 터라. 내가 뒤에서 엄호를 하겠다.”
문진이 곧바로 동진수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동진수가 도련 소속의 행자들을 이끌고 앞장서서 길을 뚫기 시작했다.
극멸기가 가득 스며 있는 땅은 다른 곳과는 달리 영기를 이용한 술법이 잘 통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이 펼치는 지둔술의 위력은 무척 낮아졌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자 결국 양청의 거처가 있었던 곳까지 길을 열 수는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그러게? 도대체 무슨 일이야?”
양청의 거처에 도착해서 양청과 행자들의 주검을 수습한 일행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허둥거렸다.
양청과 선련 소속의 원생 다섯은 모두 한 곳에 몰려서 죽어 있었다.
그런 그들 앞에는 삼결방 법기의 조각들이 흩어져 있었는데 그 중에 일부가 원생들의 몸에 박혀 있기도 했다.
“삼결방 법기로 적의 공격을 막다가 그 힘을 견디지 못한 모습이네. 도대체 뭐가 나타났던 걸까?”
“그러게, 이렇게 모여서 방어를 했지만 한 순간에 당해 버렸군.”
“이 놈들이 거처에 금제를 두르고 있었으니 우리는 이런 일이 벌어져도 모르고 있을 수밖에. 미련한 것들!”
“운이 없었던 거지. 지나가던 공허체나 괴수가 이들을 발견하고 공격한 것이 분명해.”
“하지만 왜 이들을? 이들은 금제로 몸을 감추고 있었고, 우리들은 그냥 노출되어 있었는데? 공격을 받았으면 우리가 받아야 하는 거 아냐?”
구관아는 이해가 되지 않는 듯이 말했다.
그러자 향보아가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지, 이 정도 고계의 존재라면 우리 같은 것은 그냥 버러지 보듯 했을 수도 있어. 그렇게 보면 공허체가 아니라 혼돈역 괴수 중에 하나가 출현했다고 봐야겠지.”
“그러니까 양청 등은 어째서······.”
“거처에 두른 금제가 그 괴수를 자극했다는 것이 가장 타당하겠지. 그냥 지나갈 일인데, 금제를 두르고 있는 양청 일행이 그 심기를 건드렸다? 뭐 그런 거 아니겠어?”
“그럴까?”
“그렇겠지.”
“그렇지만 양청을 공격한 것이 극멸기니 공허체의 공격으로 보는 것이 옳지 않아?”
장화련이 주변에 가득 퍼져 있는 극멸기가 부담스러운 듯이 영기로 제 몸을 감싸며 말했다.
“혼돈역의 괴수들은 극멸기와 영기를 동시에 사용하기도 한다고 했다. 그러니 그런 경우라 봐야겠지.”
“그런가? 아무튼 이 녀석들은 운이 없었군. 안타까운 일이야.”
“자, 모두 유해를 수습해서 공간낭에 넣고 이곳을 떠나기로 하자. 여기 계속 머무는 것은 도리어 위험할 수도 있겠다.”
그 때, 문진이 모두에게 길을 나설 것을 제안했다.
그리고 양청 일행의 유해를 가지고 가자는 것은 만약 이번 일이 문제가 되더라도 이들의 유해를 통해 사건을 설명하려는 것이다.
이곳에 유해를 두고 가면 이후에 고계 수사가 이곳을 찾아 사건 조사를 할 가능성도 있지만 유해를 가지고 가면 그럴 가능성이 낮아진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밝히긴 어렵겠지만 그래도 만의 하나에도 대비를 하는 것이 좋지.’
문진은 그런 생각을 하며 양청과 다섯 행자의 유해를 수습했다.
그리고 아울러서 그들이 가지고 있던 공헌점수 옥간도 따로 챙겨 넣었다.
그 직후 문진 일행은 다시 지상으로 올라와 목적지를 향해 움직였다.
* * *
“허어, 그것 참.”
붉은 얼굴의 영체기 수사가 탄식을 하며 혀를 찼다.
“면목이 없는 일입니다. 우리는 그 아이들이 모두 죽었을 것이라 생각하고 포기하지 않았습니까.”
그러자 곁에 앉아 있던 이마에 소뿔을 단 영체기 수사 역시 한탄을 했다.
“어쨌거나 아이들이 돌아온 것은 축하할 일입니다. 하지만 연신기 아이들의 일이야 우리가 상관할 일은 아니지요.”
“그야 그렇지만 그래도······.”
“공을 세웠으면 그에 합당한 처우를 해 주면 될 일입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수사의 죽음이야 곳곳에 흔한 일이 아닙니까. 지금도 멸계와 싸우며 죽어가는 이들이 한 둘이 아닙니다.”
“크음.”
붉은 얼굴의 수사와 우각(牛角:소뿔) 수사는 3년 가까이 혼돈역을 떠돌다 돌아온 연신기 아이들을 안타까워했지만 다른 수사들은 아니었다.
연신기 수사 서른 남짓의 일이야 그들에겐 대수로울 것이 없는 일이었다.
그들의 관심은 생환한 아이들이 아니라 그 아이들이 가지고 온 소식에 있었다.
그것도 토벌대 본진이 무너진 것이 아니라 근처까지 와서 죽었다는 여섯 아이들에 대한 것에 관심이 있었다.
“거처에 있던 아이들이 한 번에 극멸기의 폭발로 죽었다고 했지요?”
“그렇습니다.”
“그것은 그 쌍두단미영원(雙頭短尾??)의 공격 특징이라 봐도 되지 않겠습니까.”
“그게 중요한 것이지요. 그게 아니라면 우리가 이리 모일 일이 뭐가 있답니까?”
회의장에 모인 영체기 수사들의 입에서 쌍두단미영원이란 이름이 나왔다.
두 개의 머리를 가진 짧은 꼬리의 도롱뇽.
이는 이곳 혼돈역의 원래 주인이라 할 수 있는 화신기 초기의 괴수를 이르는 이름이었다.
사실 이곳 혼돈역에서 그 괴수가 가장 큰 보물이라 할 수 있어서 멸계와 인계 모두 그 괴수를 사냥하려 했었다.
하지만 멸계에 화신기 중기 수사가 있어서 그가 먼저 쌍두단미영원을 공격했고, 그들이 서로 싸우는 중에 인계 수사들이 뒤늦게 도착해서 싸움에 끼어들었다.
그 덕분에 틈을 보아 쌍두단미영원이 모습을 감추었다.
벌써 수십여 년 전의 일인데 그 후로 쌍두단미영원의 흔적은 어디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 도롱뇽이 근처에 나타났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마땅히 종적을 쫓아서 잡아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으음. 하지만 쌍두도롱뇽은 그 경지가 화신기 초기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저번의 싸움으로 큰 부상을 입어 지금은 고작해야 영체기 수준에 불과할 겁니다. 그러니 부상을 회복하기 전에 찾아서 잡아야 하는 것이고요.”
“하지만 지금 능토대 어르신도 아직 부상을 회복하지 못했는데, 자칫 서두르다 화를 입을 수도 있음입니다.”
능토대는 화신기 초기의 수사로 인계 토벌대에서 가장 경지가 높은 수사였다.
그 역시 화신기 중기의 멸계 수사와 쌍두단미영원의 싸움이 끼어들었다가 적잖은 부상을 입고 요양중이었다.
“쯧, 어쨌거나 아이들이 죽었다는 곳을 조사하기는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야 이를 말이겠습니까.”
“그럼 그 아이들 중에 하나를 길잡이 삼아서 누가 한 번 갔다 오시지요. 세 명 정도가 가면 되지 않겠습니까?”
“도롱뇽이 아무리 부상이라지만 화신기 초기의 경지이니 조심하긴 해야겠지요. 다섯으로 하십시다.”
“그럴까요?”
“그리고 무엇보다 보안이 중요합니다. 아무래도 멸계의 끄나풀이 토벌대에 끼어 있는 것 같으니 말입니다.”
“그래야지요. 그것 참, 점점 멸계수사로 전향하는 놈들이 늘어나고 있으니 그것도 큰 문제입니다.”
“어서 멸계를 멸하고 우리가 모두 영계 비승을 해야 할 텐데 말입니다.”
“그렇긴 하지만, 또 지금의 고착 상태를 유지하고 싶어 하는 이들도 없는 것은 아니라서 그게 문제지요.”
“허어어, 인계가 모두 한 마음이 되어도 모자랄 판에 분열이라니······.”
이야기가 겉돌기 시작했다.
그러자 상석에 앉았던 영체기 수사가 탁자를 두드리며 말했다.
탕탕탕!
“되었습니다. 이만 파하고 모두들 할 일들을 하십시다. 쌍두단미영원(雙頭短尾??)의 흔적을 조사할 분들은 나와 함께 그 연신기 아이들을 만나 보는 것으로 하고요.”
“그럽시다. 그럼 수고 해 주십시오.”
“모두를 위한 일인데 수고랄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영체기 수사들의 회의.
실질적으로 이곳 혼돈계에 들어온 인계 토벌대의 대소사를 결정하는 최고 회의나 다름이 없었다.
화신기 초기의 능토대 수사가 직접 나서지 않는 이상은 모든 일은 이들 영체기들의 회의 결정에 따라 진행이 되었다.
그리고 문진에게 다섯 명의 영체기 수사가 찾아온 것은 그 직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