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 대의를 내세우며 사익을 취하려 해?
“이제 머지않아 목적지에 도착한다.”
“그래, 고생 많았지. 그 사이에 열한 명이나 죽었으니까.”
양청의 말이 선련 소속의 원생이 침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들은 목적지까지 열흘 정도의 거리를 남겨두고 잠시 지하에 거처를 마련하고 쉬는 중이었다.
이곳까지 오는데 걸린 시간만 1년이 넘게 걸렸다.
그 사이에 이런저런 사고로 원생들 중에 열한 명이 희생되는 불행한 일도 있었다.
원생의 표정이 어두운 이유는 그 때문이었다.
희생자들 중에 몇은 다른 원생들을 위해서 고계 공허체를 유인하다 죽은 이들도 있었으니 이런 때에 그들이 생각나는 것도 당연했다.
어쨌거나 그런 과정을 거쳐 드디어 목적지를 코앞에 두게 되었을 때, 양청이 잠시의 휴식을 제안했다.
목적지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주의력이 떨어질 수도 있으니 잠시 쉬면서 심신을 가다듬자는 제안이었다.
문진을 비롯한 다른 별좌들은 그런 양청의 제안을 수용했다.
그 동안 무리다 싶은 정도의 강행군을 한 것도 사실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잠시의 휴식이 결정되자 도련의 행자들이 나서서 지하에 공간을 만들었다.
그들은 별좌들이 이끄는 각각의 무리가 따로 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수좌인 문진에게도 외따로 작은 공간을 내어 주었다.
지금 양청 무리가 있는 곳도 바로 그들 선련에게 배정된 지하 공간이었다.
“보름 후에는 다시 움직여야 한다. 그리고 그 후 열흘 정도면 목적지에 닿을 수 있겠지.”
“그런데 양청, 혹시 그곳에 토벌대가 없으면 어떻게 하지?”
원생 중에 하나가 불안한 표정으로 물었다.
사실 그 걱정은 모두가 하고 있는 것이었다.
자신들의 토벌대 진영이 무너진 것처럼 다른 곳도 그럴 가능성이 있었다.
“그 때는 또 다른 곳을 찾아야지. 어떻게 하겠어? 하지만 그럴 일은 없을 거야.”
그런데 양청이 뭔가 자신이 있는 표정으로 원생의 걱정을 다독였다.
“그럴 일이 없을 거라고?”
무슨 말인가 하는 표정으로 그 원생이 다시 양청을 보며 물었다.
그러자 양청이 소매에서 손바닥 크기의 깃발 몇 개를 꺼내 그들이 머무는 공간의 여덟 모서리에 날렸다.
날아간 깃발이 모서리에 꽂히자 양청이 다시 영기에 의념을 담아 깃발들을 활성화 시켰다.
우우우웅!
“어? 뭐 하는 거야? 왜 결계를 쳐?”
“조용히 해 봐. 양청이 뭔가 뜻이 있으니까 이러는 거겠지.”
“그럼. 일단 들어 보자.”
원생들이 양청의 특이한 행동에 뭔가 심상치 않은 기색을 느끼고 눈빛을 빛냈다.
“얼마 전부터 선련 전용의 전신부가 희미하게 빛을 내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렇게 결계를 두른 양청의 말이 놀라웠다.
“전신부가? 그럼 선련의 연락망에 연결할 수 있다는 거잖아!”
원생 하나가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고 고함을 질렀다.
그러자 양청이 슬쩍 손을 들어 그를 진정시켰다.
“하지만 아직은 조금 부족하다. 내 생각에 하루나 이틀 정도 더 가게 되면 그 때는 전신부를 쓸 수 있을 거다.”
“우와, 그럼 선련에 도움을 청할 수 있다는 거네?”
“그게 아니라도 선련을 통해서 우리의 상황을 알릴 수도 있다는 거지. 그렇게 되면 토벌대에서 우릴 마냥 버려두지는 않을 거고.”
“이제 위험할 일은 거의 없다는 거잖아. 안 그래? 응?”
“그래, 그렇게 봐도 되겠지.”
선련 소속의 원생들은 저마다 흥분하며 기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런 원생들을 보며 양청이 굳은 표정으로 손을 들어 보였다.
원생들이 모두 입을 닫고 그런 양청을 바라봤다.
“흐음. 너희 말대로 이제 위험할 일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한 가지를 따져 봐야 한다.”
“따지다니? 뭘?”
“공헌점수!”
양청이 한 원생의 물음에 그렇게 대답했다.
“공헌점수? 그러고 보면 우리 공헌 점수가 상당하겠네? 그렇지 않아?”
“당연하지, 우리가 성단기 공허체의 공세를 막아서 다른 이들의 도주를 도운 공이 작다고 할 수는 없을 테니까. 연신기 주제에 성단기 공허체를 끝까지 잡아뒀다는 것은 정말 대단하지.”
“맞아. 생각해보니까 우리가 살아 돌아가면 큰 치하를 받게 될 거야.”
“그러네. 하하하. 좋은데?”
원생들은 저마다 자신들에게 돌아올 공헌 점수를 생각하며 얼굴에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양청은 여전히 표정이 어두웠다.
“으음. 다들 기대하는 것처럼 적잖은 공을 인정받게 될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여기서 그 공헌 점수를 누가 가장 많이 가지고 갈 것인지를 생각해보자.”
양청은 그렇게 말을 하고 원생들을 바라봤다.
그러자 원생들은 생각할 것도 없이 말했다.
“그야, 수좌가 제일 많은 점수를 받겠지.”
“그렇지. 수좌의 공이 가장 컸으니까.”
“솔직히 혼자서 거의 대부분의 공을 세웠다고 봐도 무방하지. 또 수좌가 아니었다면 공을 세우고도 살아남아 점수를 받을 일은 기대하기 어려웠을 거고.”
“마땅히 수좌가 받는 것이 옳지.”
다들 한결같은 말로 이견이 없었다.
양청은 그런 원생들의 태도에 살짝 한숨을 쉬었다.
“모두들 그렇게 생각하겠지. 하지만 나는 조금 다르다.”
양청이 표정만큼 딱딱한 어조로 그렇게 말하자 원생들이 모두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생각이 다르다고?”
“그럼 뭘 어떻게 하자는 거지? 이해가 안 되는데?”
원생들의 반발은 꽤가 격했다.
하지만 양청은 그 모든 것을 짐작했다는 듯이 서둘지 않고 차분한 음성으로 말했다.
“이해한다. 수좌인 문진의 공이 크다는 것은 나도 인정한다. 하지만 그가 공헌의 대부분을 독차지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다르다니? 공을 세운만큼 되돌려 받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두고 문제를 삼는 것은 옳지 못하다.”
“그럼 죽은 열한 명의 공헌 점수는? 그것을 우리가 나누는 것은 정당한가?”
양청이 반발하는 원생을 보며 물었다.
“그야, 그들이 우리 상동강 소성의 수련원생으로 묶여 있으니······.”
“거기다가 공헌 점수는 개인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수좌가 이끄는 무리 전체에게 주는 것이다. 당연히 죽은 이의 점수를 제하고 받을 이유가 없지.”
“그렇지.”
죽은 열한 명.
하지만 그들이 받을 공헌점수도 이번에 돌아가면 정산되어 내려올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받아 분배하는 것은 수좌인 문진에게 달려 있었다.
“그렇게 말한다면, 문진의 공이 크다고 할지라도 공헌 점수를 모두가 공평하게 나누어 받는 것이 옳지 않은가. 죽은 이의 것도 분배하는 마당에.”
“그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나?”
“아니지, 원래 공헌 점수가 단체에 내려온다 하더라도 각각의 몫이 달랐다. 누가 얼마나 더 많은 일을 했는가에 따라 분배가 달랐던 것을 생각하면 공적에 따라 차등 분배하는 것이 원칙이다.”
원생들의 의견이 나뉘기 시작했다.
양청은 그 모습을 보며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차등 분배가 원칙이긴 하지. 나도 인정한다. 하지만 이번에 받을 점수가 워낙 크다는 것을 생각하면 고민의 여지가 있다.”
“무슨? 어떤 면에서?”
“아마도 이번에 수좌가 그 공적을 모두 인정받으면 축기기에 오르고 또 그 이후 수련에 도움이 될 지원까지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야 그렇겠지.”
“당연히 그 정도는 되어야 하겠지.”
“하지만 만약 그것을 우리가 나누어 가진다면? 그럼 우리들 대부분이 축기기에 도전해 볼 여지가 생긴다.”
“으음??”
“우리 모두 완경이니 당연히 그럴 수 있지. 지금은 준비가 미흡하여 시간이 필요하지만 어느 정도 지원만 있다면······.”
“그렇지. 도움을 조금만 받을 수 있다면 축기에 오르는 것도 기대할 수 있지.”
양청의 말에 원생들의 눈에 욕심이 깃들기 시작했다.
“그러니 하는 말이다. 수좌 하나에게 점수를 몰아주어 그를 축기기에 올리고 또 수련을 지원하는 것과, 우리들 모두가 축기기에 도전할 기회를 얻는 것. 어느 쪽이 더 좋겠느냐.”
“으음.”
“수좌 하나만 축기가 되는 것보다는 우리들 중에 몇이 축기에 오르는 것이 좋겠지. 하나 보다야 여럿이······.”
“그렇기는 하지만 어떻게 수좌의 공헌점수를 공평하게 나눈단 말이지? 그가 그것을 허락하지 않으면?”
“솔직히 수좌에게 그런 손해를 강요하긴 어렵다. 그는 지금껏 많은 일을 했으니까.”
“그렇긴 하지만 대승적으로 생각하면 점수를 나눠서 우리 서른여섯이 모두 축기에 도전할 기회를 받는 쪽이······.”
양청은 원생들이 이리저리 갈등하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때가 되었다는 판단이 서자 단호하게 말했다.
“수좌 하나가 점수를 독차지 하는 것보다는 우리 모두가 나눠 받는 것이 인계 전체를 위해서도 크게 이롭다. 아니, 수좌가 점수를 독점하는 것은 수도계의 발전을 위해서도 옳지 못하다. 그런 즉, 수좌에게 공평한 분배를 요구해야 한다.”
“하지만 수좌가 그걸 거부하면?”
“나라도 거부할 거 같은데?”
양청의 말에 원생들이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이 공익을 위해서 문진을 징치할 수밖에. 어차피 우리가 필요한 것은 공헌 점수를 받기 위한 옥간 뿐이다.”
“뭐? 뭐라고?”
“설마 수좌를 해치자는 거냐?”
“그건 아니지. 어찌 같은 인계 수사를 해칠 수가 있단 말이냐?”
“옳다. 그것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대의를 위한 일이다. 대의를 위해 작은 일탈 정도는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양청은 문진을 해치는 일을 두고 작은 일탈이라고 가볍게 치부했다.
원생들이 느끼는 부담을 최대한 줄어보려는 의도였다.
“으음. 양청의 말이 옳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수좌를 해치는 것은······.”
“아니지. 우리는 좀 크게 볼 필요가 있다. 수도계 전체의 전력 상승에도 역시 우리들 일부가 축기에 오르는 것이 수좌 홀로 축기에 오르는 것보다 유익하다. 그러니 양청의 말이 영 틀린 것은 아니다.”
“일을 행할 때엔 단호한 결정이 필요할 때가 있다. 때때로 그런 결정을 미루다가 큰 일이 어긋나기도 한다.”
원생들의 이야기는 점점 양청의 뜻대로 흘러갔다.
그리고 사실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공헌점수를 받아서 조금이라도 빨리 축기에 오르고 싶은 원생들 개개인의 욕망이 바탕에 짙게 깔려 있었다.
“그러면 이제 우리 의견을 결집하자. 그리고 도련과 법정회, 일원맹과도 의견 조율을 하고.”
“응? 일심벌은?”
“일심벌은 우리들 중에서 수좌와 가장 가깝다. 그들은 설득하기 어려울 것이다.”
양청이 일심벌만 빼 놓은 이유를 설명했다.
그리고 그렇게 다른 세력까지 끌어들일 계획을 밝히자 선련 소속의 원생들은 모두 양청의 계획을 받아들였다.
* * *
“하아, 이 깜찍한 새끼들! 이것들이 대의 어쩌고 하면서 결국은 통수 짓을 하려고 하네? 역시 수도계란 곳은 다 똑 같아. 빌어먹을 놈들!”
문진이 석실에 홀로 앉아서 깊은 한숨을 쉬며 분통을 터트렸다.
그가 양청과 선련 소속의 원생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모두 보고 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번에 양청이 휴식을 제안할 때부터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평소의 양청은 열흘 밖에 남지 않은 거리를 쉬었다가 가자고 할 놈이 아니었다.
그래서 의아하게 생각하며 양청의 동태를 살핀 것이다.
문진은 진염결을 익혀 다른 수사들에 비해서 의념의 양이 많았다.
게다가 유혼결의 영향으로 그 의념의 강도나 밀도가 한 단계 높은 경지의 수사와 같았다.
따지자면 그는 의념의 크기만 부족할 뿐, 축기기와 다름없는 수준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조금만 수고하면 양청이 펼친 금제 따위에 구멍을 뚫는 것은 충분히 가능했다.
그렇게 작은 틈을 만들고 영기의 가닥을 밀어 넣어 그들의 작당모의를 처음부터 끝까지 보고 들은 문진이었다.
“이것들을 어떻게 하지?”
도련의 동진수, 법정회의 향보아, 일원맹의 장화련.
이들과 양청이 뜻을 모으게 되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갈지 모른다.
어쩌면 일심벌의 구관아까지 저쪽으로 돌아설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지 않으면 일심벌과 문진 자신을 묶어서 처리하려 들 수도 있으니 구관아로서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을 것이다.
“이걸 끝까지 기다려서 몽땅 쓸어버려?”
문진은 잠시 눈빛을 사납게 빛냈다.
그가 작정하고 일을 꾸민다면 서른다섯 연신기 완경의 수사들을 한꺼번에 처리하는 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물론 그러자면 준비할 것이 많지만 마침 보름의 여유도 있는 상황이다.
“아! 몽땅 죽이고 싶은데, 그건 그것대로 조금 곤란하지. 혼자 어떻게 여기까지 살아왔는지 설명하는 것이 쉽지 않을 테니까. 그럼 어떻게 한다? 으으음.”
문진은 양청 일당의 문제를 깊이 고민하기 시작했다.